<보아라,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면 영어보다 더 크게 써놓았을까>

 

여기는 태국, 가이드북 없이도 아무 걱정 없이 어디나 쏘다닐 수 있는 나라(그만큼 생생한 한글 정보가 넘쳐나는 곳). 지난 한 달간 유럽-비록 서유럽에 비하면 물가 착한 동유럽이었지만-에 머물다 다시 태국으로 돌아오니, 평소 한국에서 지내다 태국에 곧장 올 때보다도 훨씬 물가가 저렴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그러니 유럽애들은 여기가 얼마나 좋을까. 걔네들은 여름 휴가도 보통 한 달 가량 즐길 수 있으니 항공권만 저렴하게 구한다면 같은 가격으로 본토에서는 상상도 못 할 호사를 누리다 갈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동안 여행하면서 태국을 진득하게 누린다기 보다는 그저 경유지로 이용한 경우가 태반이었고, 무의식 저 아래 태국의 저렴한 물가가 사뭇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매년 물가가 올라가고 있네, 예전의 태국 물가가 아니네, 지껄여대곤했지만, 이 모든 게 다 나의 오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와 가깝다는 이유로 그간 내가 태국으로 대표되는 동남아의 훌륭한 인프라를 얕잡아보고 있었던게지. 하여간 내 경우만 놓고 말하자면, 이번 역시 태국에 다시 오고 싶어 온 것은 아니지만,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태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마음 편하고 좋을 수가...

 

 

기차 발차 시각이 오후 6시였던 관계로 12시까지 꽉 채워 체크아웃을 하고, 무거운 배낭은 숙소에 맡겨둔 뒤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여전히 반 싸바이 맛사지집 : 2시간 타이 마사지 300밧/인. 숙소 이름 대면 10% 할인되므로 둘이 2시간 받고 540밧+팁으로 100밧 지불). 온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주느니 잠이 솔솔 오는구나. 이럴 땐 정말이지 원장 사모님이라도 된 것 같다. -_-; 

 

즐길 수 있을 때 인프라를 즐겨둬야 한다며, 어제에 이어 연달아 동대문을 방문한다. 오늘도 김치말이국수 한 그릇 빠질 수 없지(김치말이국수140밧+두부고추장찌개 150밧).

 

  

카오산을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찾아 짊어지고 시간 맞춰 훨람퐁 기차역(Hualampong station)으로 간다. 사실 태국에서 기차를 타보는 건 처음이라, 카오산에서 기차역까지의 길에 대해선 까막눈이었다. 때문에 어제 미리 홍익여행사에서 해당 구간 교통편에 대해 문의를 했었고, 택시를 타는 게 이래저래 편리하다는 정보를 기억해 두었다. 가끔 빙빙 돌아 안내하는 택시 아저씨도 있다길래 잡아탄 택시 안에서 우리가 초행이 아니라는 듯 의연함+아는 척 표정으로 앉아 있어서 그런지 ^^; 홍익여행사에서 알려준 요금와 비슷하게 나왔다(53밧->60밧 지불. 카오산과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 / 아래 요왕님의 개념도 첨부).

 

 

 

<치앙마이행 2등석 침대칸 가격 : Lower 아랫칸 881밧, Upper 윗칸 791밧>

 

태국의 기차 여행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www.railway.co.th/english/index.asp

 

당신이 아쿠아(www.aq.co.kr) 회원이라면

 http://www.aq.co.kr/aqua_magazine/index_magazine.html?url=magazine.htm?cn_idx=2873&che_url=magazine&

 

훨람퐁역은 생각보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듯 보였고 동시에 생각보다 시장스러운 편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혹 긴 열차 주행 시간을 대비한 주전부리 준비를 하나도 안 해왔다 해도 걱정할 것 없다. 훨람퐁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그걸 몰라 이미 카오산 대형 수퍼에서 이것저것 사서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물론 가격면에선 후자가 경쟁력 있겠지만) 태국에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해도 해당 열차와 좌석을 찾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속속 올라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조금은 잘 차려입은 듯한 태국인들이다.  

 

 

이제 럭셔리 치앙마이행 열차 여행의 출발. 우리가 이 기차 안에서 보낼 시간은 장장 13시간 15분(그렇다. 카오산에서 모집하여 출발하는 버스보다 가격은 훨씬 비싸면서 더 오래 걸린다 -_-;). 그러나 침대칸이라 그런지 각자의 좌석이 매우 널럴하여 생각보다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이 기차는 대우에서 만든 모양인데, 많이 낡긴 했지만 잘 관리되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우리 객차 담당 아저씨를 비롯하여 티켓을 검사하는 아저씨까지 매우 정중하신 분들인지라 이 기차가 이래 보여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교통 수단임을 눈치챌 수 있다.  

 

기차가 방콕 시내를 벗어나면서 기찻길 옆으로 매우 빈곤하게 사는 가정들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덕분에 잠시 잊고 있던 인도가 다시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인도행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안 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김원장 마음에서 인도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게로구나.

 

 

얼마나 달렸을까, 공손함이 몸에 익은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매우 까불거리는 식당칸 직원이 나타나 저녁 식사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먹거리를 제법 준비해 온 우리지만 비치되어 있는 메뉴판에 소개된 세트 메뉴들이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가격대 또한 경쟁력이 있는 것 같아 우리도 몇 가지 주문해 보기로 한다(저녁 메뉴의 경우 150밧, 아침은 90밧). 직원이 계속 술을 주문할 것을 푸시해오는 것으로 보아 술을 주문하면 그에게 뭔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_-;  

 

 

 

 

 

메뉴 소개는 하나같이 그럴 듯 했는데 서빙되는 모양이나 맛은 영 우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아직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이 향들. 안주 삼기도 별로인데 여기에 술까지 시켰음 좀 더 괴로웠을 듯 싶다.

 

대략 오후 8시를 전후하여 기차는 점차 침대칸으로 변신을 해나간다. 마스크까지 하고 나타나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신 우리 객차 담당 아저씨.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탁만 하면 뭐든지 해결해 주실거라는 믿음을 강력 발산하시는 분.  

 

(와중에 저녁 식사 계산하러 온 식당칸 직원분. 여전히 코믹하시다)

 

(시차 적응 안 된 김원장 표정 ㅋㅋ)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던 좌석이 침대로 변(신!)한 후 보다 넓고 흔들림이 덜한 1층을 김원장에게 양보하고, 나는 사다리를 이용, 2층으로 기어 올라간다. 2층은 아래층에 비해 폭도 좁고 높이도 제법 낮은 편이다. 그래도 1층처럼 창이라도 있음 좀 덜 심심할텐데... 밤이래도 바깥은 더울텐데 돈값을 하는 기차는 시원하다 못 해 이젠 좀 추울 정도다. 우리 좌석은 바로 문 앞이었고 문 위에 선풍기가 한 대 달려 있었는데 그 놈 때문에 더 그런 듯 싶다. 그런데 고장인지 도무지 꺼지질 않네. 우리의 멋진 마스크맨 아저씨께 도움을 청해본다. 아저씨 열심히 낑낑거리셨으나 역부족. 결국 다른 직원 불러 아예 해체 -_-; 해 버리시는 것으로 어쨌든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젊고 돈 없었을 때 해외에서 하는 기차 침대칸 여행이란 참으로 낭만적이고 멋진 것이었지.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일신의 안락만을 꾀하며 산지도 어언. 이제 와 행하는 기차 침대칸 여행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로구나. 그 어찌 기차 침대칸의 문제라 할 수 있으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문제지.

 

여행을 하면서(혹은 인생을 살면서) 좋은 호텔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편리한 교통편에 지출을 늘리는 일, 때마다 신중할지어다. 덜커덩 덜커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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