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6월 16일, 불가리아 Ruse를 떠난 이후로 왼편을 바라보는 열대어 모양의 루마니아를 저런 빨강선 모양으로 삐뚤빼뚤 내질러 어제 클루즈 나포카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오늘은 상기 첨부한 지도에 나와있지도 않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과 거의 맞닿은, 루마니아 북단의 시게투 마르마찌에(Sighetu Marmatiei)라는 곳으로 갈 예정.

 

루마니아 북부 마라무레스 지방(http://www.visitmaramures.ro/)에서 이제는 유럽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그 무.언.가.를 냄새라도 맡아보려면 우선은 그 동네의 중심(?)이라고 할 시게투 마르마찌에부터 가는 편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물론 우리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말이다).

 

 

오늘 우리의 여정은 클루즈 나포카에서 12시 52분 출발, 살바(Salva)라는 중간 경유지에 14시 34분 도착(이동 거리 105Km), 그 곳에서 다시 14시 45분에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출발,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19시 19분에 도착(이동 거리 118Km)하는 것이다(31.4레이/인). 물론 나는 이 표를 받아들고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김원장은 한참 들여다보더니 첫 기차는 105Km를 대략 시속 62Km의 속도로 운행하는 셈이지만, 두번째 기차는 티켓 대로라면 자그마치 -_-; 시속 26Km로 달린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잘 못 인쇄된건가? 뭐, 타 보면 알겠지.

 

@ 사실 우리에게 차가 있었다면 클루즈 나포카에서 시게투 마르마찌에까지 보다 일직선(?)으로 난 길을 이용해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이동할 때는 아주 짧은 거리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기차를 타는 쪽이 몸이 편할거라는 생각에 기차편을 주로 이용했는데 클루즈 나포카에서 시게투 마르마찌에의 철도 노선은 살바를 경유하는, 제법 우회하는 루트였던지라 다시금 렌트카가 아쉬웠다.

 

첫 기차는 제대로 된 시각에 나타나고 정시에 출발했지만 함께 탄 승객들이 역시나 매우 시끄러웠던데다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살바에 도착해야 할 시각을 한참 넘기고도 살바 비슷한 게 나타나질 않아 애를 태웠다. 우리는 14시 45분에 살바에서 시게투 마르마찌에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안절부절하는 나와는 달리 김원장은 소음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시급했던지라, 그 기차 놓치면 살바에서 자면 되지, 그 따위 갈아타는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원장이 너무 괴로워하고 있어서 성질 건드릴까봐 말 안 걸고 살살 눈치만 보고 있었거든). 살바에 대한 정보는 정말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살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마음이 급한 나는 허둥지둥 내렸는데, 때마침 다른 레일에 정차한 채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객차가 몇 안 되는 짧은 기차가 보였다. 알고보니 이런 일이 오늘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나와 김원장 뿐만 아니라 우리 열차에서 그 열차로 우르르 얼마간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두 열차의 차장 아저씨들의 고갯짓으로 두 열차는 다시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뿌~웅~ 칙칙폭폭.

 

승객들이 꽉 차 있었던 이전 열차와는 달리 작디 작은 시골 마을들만 연결하는 이번 열차는 그 행선지에 어울리게끔 좌석 상황이 아주 널럴한 편이었던지라 우리는 긴 복도를 가로지르며 아무도 없는 컴파트먼트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김원장은 조용한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하게 되자 비로소 안도감을 얻었고 그런 김원장을 보며 나도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열차의 노후 정도가 너무 심각했던지라 좌석 쿠션은 여기저기 뜯어지고 컴파트먼트의 문이나 바깥으로 난 창문 모두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갑자기 찬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결국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아무리 용을 써봐도 창이 닫히지 않아 우리는 신나게 들이치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댁들, 달리는 기차에서 비 맞아 봤우? -_-;

 

 

결국 비가 너무 많이 들이치면 잠시 창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다른 컴파트먼트나 복도 따위에서 지내다가 빗발이 좀 수그러들면 우리 컴파트먼트로 돌아오는 식으로 우리 여정은 이어졌다. 기차는 티켓의 인쇄된 시각을 절대 우습게 보지말라는 듯, 느릿느릿한 속도로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시골 마을과 시골 마을을 이어 달렸고, 어머, 이게 역이야? 싶을 정도로 작은 간이역들을 하나씩 하나씩 찍으면서 갔다. 짙은 색 스카프를 두르고 이런저런 짐을 이고 진 아주머니들이 기차에서 힘겹게 내리면, 그 분을 마중나온 가족들이 반기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하기도 해서 이 두번째 기차 여행 분위기는 나름 정겹기도 했는데, 그래도 탑승 시간이 너무 길어지니 몸도 피곤하고 늦은 시각에 생소한 동네에 도착해서 숙소 잡을 걱정 때문에 맘도 썩 편치 않았다. 김원장은 나보다 더욱 피곤한지(하긴 언제 어딜 어떻게 가도 나보다 항상 피곤해 하지 ㅋㅋ), 이번 루마니아 북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 노선을 반대로 이용, 살바로 나아가서 그 곳에서 동북부 수체아바(Suceava) 쪽으로 가는 내 계획을 다시 재고해 보라고 한다. 엇, 안 되는데, 나는 꼭 수체아바로 갈 껀데... (며칠 지나면 김원장이 오늘의 괴로움을 까먹겠지? 그럼 그 때 다시 찔러봐야지 ㅋㅋ)

 

여하튼 그 와중에 다행으로 살바에서의 출발은 늦었지만, 아저씨가 열심히 밟으셨는지(?) 시게투 마르마찌에에는 원래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다. 오후 7시 19분. 드디어 시게투 마르마찌에 도착.

 

<루마니아 북단의 시게투 마르마찌에>

<시게투 마르마찌에 역. 이 사진은 나중에 찍은 것이라 날이 훤하다>

 

 

승객들을 따라 대충 시내쪽 방향을 잡고 쫄래쫄래.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마음에 두었던 숙소 주소의 바로 그 자리에 숙소라는게 아예 없는 것.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계속 숙소가 있(어야한)다는 대로변을 왔다리갔다리 하다가 결국 주소가 틀렸다는 우리끼리의 결론을 내리고 더 늦기 전에 이를 대신할 다른 숙소를 찾기로 한다. 아, 이럴 땐 정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피곤함이 밀려오는 저녁, 이 한 몸 편히 누일 공간을 찾아 지구 반대편, 발음도 안 되는 이름의 낯선 마을에서, 얼굴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적당한 숙소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하는 이 순간 말이다. 아아, 그리운 우리 집, 편안한 내 침대.  

 

 

그러다 우리가 헤매던 길 건너편에서 숙소 비스끄리무리한 놈을 발견한다. 그 이름은 Vila Royal.

 

 

@ 숙소 : 빌라 로얄 http://www.vilaroyal.ro/en.html

위치는 시게투 마르마찌에 한 복판(홈페이지상의 약도 참조)으로 입지가 훌륭한 편.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1층은 David's라는 펍이고, 숙소는 안쪽 2층부터 시작한다.

때마침 더블룸이 다 나가서(이 집은 6개의 더블룸, 1개의 싱글룸, 아파트먼트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아파트먼트에 머물기로 했다. 가격은 140레이/박(아침 불포함으로)로 다소 센 편이었으나 우리는 피곤했고 그래서 그냥 지르기로 했다. 다행이라면 가격에 걸맞게 아파트먼트는 일반 더블룸에 비해 소파가 딸린 거실이 따로 달려있어 공간이 제법 넓었고 내부 시설도 4성급으로 TV는 기본이고 에어컨, 냉장고에 미니바까지 구비되어 있었다(결론적으로 가격 대비 추천할 만한 곳이다).

 

 

요 며칠 어째 점점 숙소나 밥 먹는데 돈을 팍팍 -_-; 쓰고 있다는 생각에, 그래선 안 되지만 시설 좋은 욕실에서 밀린 빨래도 좀 하고, 에어컨이 안 들어와요~ 사람도 불러 고치고(다른 때라면 그냥 얌전히 견뎠을지도), 발코니 열어제낀 뒤 밥도 한 냄비 지어 냠냠.

 

<소심한 김원장, 고기 냄새 따위를 방에 배게 하면 안 된다고 우겨서 반찬은 달랑 깻잎. 기껏 동네 수퍼내 정육점에서 베이컨이라 생각(?)되는 고기를 좀 썰어왔거늘>

 

아... 그래도 배부르고 등따스하니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다시 마음이 편안해져온다. 침구는 폭신하고 뽀송뽀송한 것이 나도 이런 침대로 바꾸고 싶구나. -> 이렇게 마음이 팔랑거려서야, 원.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루마니아의, 아니 동유럽의, 아니 전 유럽을 통틀어 가장 인.심.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난 시골 마을로 기어들어 갈 것이다.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숙소 발코니에 서서 바라본 마을> 

 

@ 오늘의 영화 1 : <마요네즈> 김혜자는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최진실의 뽀샤시한 화장이 볼 때마다 거슬렸던. 이 영화를 보면 엄마가 보고 싶어질 것 같아서 안 보고 있었는데 결국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 오늘의 영화 2 : <주먹이 운다> 김원장이 추천했던 영화를 뒤늦게 나 혼자(김원장은 요르단 페트라 옆 마을에서 봤다). 두 주인공은 맨 나중에서나 만나는구나.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비 맞으며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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