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가슴이 두 번 아프다. 시기쇼아라의 이 좋은 숙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고, 이 숙소 때문에 오늘 클루즈 나포카의 숙소가 분명 허접하게 느껴질 거라는 것 때문에 또 한 번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세상만사 일장일단인가. 덩달아 숙소 주인 아주머니까지 우리가 떠나는 게 (당연) 가슴이 아프신 모양이다. 친구들한테 꼭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열심히 고개는 끄덕여 보지만 과연 여기까지 올 친구들이 내게 있을까, 갸우뚱하게 된다. 

 

얘들아, 시기쇼아라 놀러가라~그리고 저 집에서 묵어라~ 

 

어제 새로 뚫어놓은 길을 이용해 시기쇼아라 기차역으로 간다. 배낭을 메긴 했지만 간 밤의 휴식+내리막길+평지의 조합이라 그런지 그저께(기차 이동+평지+오르막길)보다 훨씬 덜 힘들다.

 

<보시는 바와 같이 12시 36분 시기쇼아라 발, 15시 54분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 예정>

 

우리가 어제 미리 예매해 둔 기차(2등석 36.7레이/인)편은 일종의 급행으로 예정대로라면 시기쇼아라에서 클루즈 나포카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해당 열차가 시기쇼아라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1시 20분에야 탑승했으니 실제 출발 시각보다 40분 정도 늦게 출발한 셈. 게다가 우리가 탑승한 뒤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클루즈 나포카에 내린 시각은 오후 5시 50분, 즉 탑승 시간도 한 시간 정도 늘어진 꼴이 됐다. 사실 기차가 늦게 온다거나, 예정보다 한참 뒤에 하차하게 된다거나, 뭐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여기가 스위스도 아닌데, 뭘.

 

하지만,

 

이번 좌석은 오픈 스타일이 아닌 컴파트먼트 스타일로 6명이 한 칸에, 한 줄에 3명씩 서로 마주보고 탑승했는데, 우리와 같은 칸에 타고 있던 한 할머니와 손자의 조합이 김원장에겐 커다란 악재였다. 할머니는 끊임없이 뜻 모를 루마니아 말로 (우리 말고) 다른 일행에게 말을 시키거나(그래서 처음엔 우리를 제외한 4명이 모두 한 일행인 줄 알았다) 열라 싸가지없는 -_-; 손주를 큰 소리로 혼내거나 하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손주는 손주 대로 문쪽에 앉아 발로 문을 계속 차 대고, 아니면 뿅뿅 소리가 나는 오락을 정신 없이 해대는 것으로 김원장을 스테레오로 괴롭혔다. 날은 덥지, 객차 안은 시끄럽지, 열차는 늘어지지, 3박자가 쿵작 쿵작거리는 가운데 겨우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했을 땐 김원장은 거의 파김치 수준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클루즈 나포카는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자들용 숙소가 거의 없다시피했고 가이드북에서 그나마 추천하는 (원하는 가격대의) 호스텔은 역에서 너무 멀었다.

 

 

날은 곧 어두워져 갈텐데, 내일 또 기차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몸도 맘도 피곤한데... 하는 이유로 결국 우리는 역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그것도 대로변의 한 숙소를 잡기로 했다(날이 어찌나 더워졌는지 역에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숙소까지 걷는데도 땀이 뻘뻘나더라). 김원장이 아주 싫어라 하는, 시끄러운 대로변에 위치한 숙소였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저녁에는 교통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대로였고 그나마 완전 도로 반대편으로 방을 잡았더니 생각보다 아늑하게까지 느껴졌다.

 

@ 숙소 : 펜션 주니어 (http://www.pensiune-junior.ro/)

론리플래닛에는 Hotel Junior라고 소개되어 있다. 레스토랑을 겸하지만 아침은 안 준다 -_-;

트윈룸 130레이(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시기쇼아라 숙소에 비하면 속이 쓰린 가격이었지만, 항상 그렇듯이 일단 돈이 내 손을 떠나고 난 뒤에는 좀 초연 -_-; 해지는 것 같다). TV는 당연 그러려니 했는데 방안에 냉장고까지 있는 걸 보니 겉보기는 우리네 모텔 같아도 나름 비싼 숙소 ^^; 가 맞나보다

 

localizare

 

일단 샤워부터하고 저녁 먹으러 나선 길, 해가 지면서 거리에도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도쿄라는 일식당. 가이드북의 지도에 따르면 우리 숙소는 지도 바깥으로 동북쪽에 있고, 도쿄는 지도 바깥으로 남서쪽에 있는 것 같으니 완전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유럽에선 어디든 길 이름과 번지수만 알면 어지간해선 찾을 수 있으니까...

 

<클루즈 나포카의 메인 광장이라고 할 만한 Piata Unirii에 자리 잡은 성 미하일 교회>

 

생각보다 훨씬 크고 번화한,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득시글거리는 클루즈 나포카 시내를 관통하여, 그리고 막판 몇 분은 거의 감에 의존하여, 결국 도쿄 레스토랑을 찾는데 성공한다(www.tokyorestaurant.ro). 오호, 홍살문으로 장식한 입구라니!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럽구나. 김원장, 오늘은 비싸도 먹는거지? 

 

여기서 잠깐 옛날 이야기, 2002년에 폴란드를 여행하다 크라코프에 이르렀을 때 - 그러니까 아마도 집 떠난지 대략 4개월쯤 지났을 때 - 누가 더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둘 다 너무나 한식이 먹고 싶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쌀 지고 다니면서 한식으로 밥 해 먹으며 여행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삼시세끼 현지식으로 사먹을 때였거들랑(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아침에 맥도날드, 점심에도 맥도날드, 저녁에 현지 식당, 이런 식 -_-). 그러다 크라코프 올드타운의 대광장에서 일식 레스토랑을 하나 발견하고 눈이 돌아간 우리는 꿩 대신 닭이라고 한식 대신 일식으로 정신적 허기라도 달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받아든 메뉴판의 가격들이 눈 돌아가게 비쌌던지라 결국 둘이 제일 작은 초밥 세트 하나 시키고 나눠 먹어야만 했다는. 그나마 나는 초밥 대부분을 김원장에게 양보하고 딸려나온 시커먼 미소국만 야금야금 들이켰는데, 그 국이 매우 짰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인상 깊은 맛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때 둘이 한 그릇씩 시켜 먹어도 결국 총 지출에는 별 차이가 없었을텐데, 왜 당시에는 감히 지르지 못했을까... 여하튼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만큼은 내 클루즈 나포카에서 얼마가 나오더라도 1인당 한 그릇씩 시켜 먹자고 김원장과 굳게 다짐하며 홍살문을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유니폼으로 기모노랍시고 맞춰 입은 것 같기는 한데 허리 뒤에 베개 대신 커다란 리본 비스무리한 것을 묶고 있는데서 그만 웃음이 빵! 서빙을 하던 루마니아 언니들은 우리를 일본인으로 여기기라도 한 건지, 다른 테이블에 비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이 식당에 오니 젓가락을 가져다 달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더라.   

 

진중히 메뉴판을 쭈~욱 훑어보고 난 뒤 김원장은 Japanese plate를,  

 

 

나는 Sashimi & Katsu Dinner를 주문했는데, 메뉴의 칼로리며 그램,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설명해 놓은 것이 나름 유럽스러웠다(눈에 와 닿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코스처럼 차례로 등장한 우리 맘마들.  

 

<이 동네선 모두 보기 힘든 것들의 컴비네이션=두부+간장+파> 

<환타를 저런 컵에 담아주니 나름 술스럽다>

 

<메뉴판 사진과 매우 흡사한 세팅> 

<넘쳐나는 연어 파뤼~ 그나마 연어 구하기가 쉬운 모양이다> 

<내가 좋아라~하는 통카츠. 언젠가 발리 일식당에서 주방장 아저씨가 돈까스를 통카츠~라 발음하는 걸 듣고 이후 매번 따라하곤 함> 

<후식까지 냠냠> 

<Japanese plate 40+Sashimi Katsu Dinner 45+환타 두 병 8=총 93레이 지불(한화로 약 42,000원>

 

지르기 전에 흠... 일단 지르고 나니 배터지게 먹을 동안 잠시 돈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다시 지불하려 할 때 움찔, 그러나 여기가 면한 바다라고는 저 멀리 동쪽 끝 흑해 뿐인 ^^; 게다가 루마니아에서도 듣도 보도 못 한 이름을 가진(적어도 내게는) 도시 한복판임을 고려해 볼 때, 한 끼 고급 레스토랑에서 배려 담긴 서비스를 받으며 우아하게(한 톨 남기지 않고 배터지도록 먹는 게 어찌 우아란 단어랑 어울리겠냐마는) 먹은 값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더라(그건 그렇고 어쩜 얄밉게도 어딜 가나 일식은 이렇게 고급 음식인 것 마냥 자리매김했을까). 

 

사족으로, 약 1년이 지난 지금(2009년 6월 18일), 당시엔 돈 지불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저 돈으로 한국에서는 훨씬 더 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는 저 때 참 배불리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돈 생각은 별로 안 난다. 돈보다는 역시 추억이구나. 김원장, 앞으로도 우리 여행가서 돈 좀 쓰자 ㅋㅋ

 

여하튼 배 두들기면서 식당을 나서니 어느새 클루즈 나포카에 어둠이 아득히 내렸다. 나른한 포만감이 기분을 업! 시켜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트란실바니아 전통 빵이라는, 굴뚝처럼 생긴 Kürtőskalács도 하나 산다. 나는 루마니아 소개 영상에서 이 빵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는 마치 특정 지역의 명물이라 여기 근처 시골 마을에선 팔아도 이런 도시에선 쉽게 못 만날 이미지였거늘, 클루즈 나포카의 작은 수퍼에서도 양산품마냥 이렇게 포장해 팔 줄이야. 루마니아의 호도과자이련가.   

 

<150g 작은 놈이라 2.5레이. 생각보다 맛은 평범하다. 또 모르지, 갓 구워낸 놈은 훨씬 맛있을런지도. 돌아와 정보를 뒤적여보니 루마니아 뿐만 아니라 이 근처 나라들에선 꽤나 popular한 모양. 궁금한 분은 검색 엔진을 이용해 보시길>

 

어두운 밤 거리를 되짚어, 인적이 드문 길들을 지나(참, 클루즈 나포카에는 중국 음식을 파는 패스트푸드 집도 있다. 밤 늦게까지도 영업하고 있더라)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새 10시 20분이다. 투숙객도 거의 없는지라 데스크 담당 직원이 로비에서 졸고 있다. 너무 늦게 들어온 것 같아 좀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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