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주인 아주머니께 가이드북을 보고 대충 짜집기해 만든 루마니아 문장내일 아침 브라쇼브로 가는 버스는 몇 시에 있습니까?–은 성공리에 잘 먹힌 것 같다. 내가 삐뚤빼뚤 써내려간 그 문장을 보여드리자마자 아주머니께서 지갑 안에 꼬깃꼬깃 접어놓은 버스 운행 시간표를 꺼내 보여주셨으니 말이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웅 속에 숙소를 나선 뒤 브라쇼브행 버스를 타러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터리로 향한다.

 

출근 시간도, 등교 시간도 아닌데 생각보다 버스 이용객이 많다. 보아하니 독일에서 사용하던 버스를 중고로 들여온 것 같다. 여기도 아침부터 뜨겁게 연애질인 젊은 청춘들이 있구나 *^^* 거의 꽉 찬 채로(우리의 커다란 배낭을 놓을 공간이 딱히 없어 맨 뒷자리에 배낭과 함께 나란히 앉았는데 중간에 앉았으면 좀 미안할 뻔 했다) 브라쇼브까지 달려온 버스는 브라쇼브 외곽의 커다란 도매 시장 같은 곳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을 부려놓고 종점인 터미널(오토가라 2)에 도착했다. 이 근처 어드메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메인 터미널(오토가라 1)로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제 2터미널 출입구를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 정류장 같은게 보이질 않네. 일단 차가 들어온 방향으로 나아가 버스가 다닐만한 큰 길로 발걸음을 옮겨 보지만 그 큰 길에서도 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 이럴 때 내가 잘 쓰는 방법, 현지인 붙들고 물어보기.

 

대로변에서 공사중이던 아저씨 한 분께 ‘가라(역)’를 외치니 역시나 알아들을 순 없지만 긴 설명과 함께 손을 들어 가야할 방향을 짚어 주신다. 아저씨 덕분에 곧 버스 정류장 발견, 버스 정류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노트형 시간표에서 우리가 타야할 버스 번호와 운행 시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싱가포르처럼 어떤 기계적 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곳인데도 정말 제 시간에 버스가 도착한다. 브라쇼브는 교통체증이라는게 거의 없는 도시인가보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터미널과 붙어있는 역에 도착해서(즉, 오토가라 1) 시비우(Sibiu)행 버스 시간표부터 알아본다. 만약 시비우로 가는 버스가 당장에 없다면 오늘은 브라쇼브 올드 타운으로 들어가 브라쇼브에 하룻밤 이상 머물며 관광을 할 것이고, 혹여 시비우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 우리는 곧장 시비우로 뜰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쇼브와는 운이 안 닿았는지, 처음 시나이아에서 브라쇼브로 왔을 때 당장 저네스쯔로 가는 기차가 있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조만간 시비우로 가는 버스가 들어올 시각이라네. 그래, 그럼 그냥 시비우로 가자!

 

저네스쯔를 나오면서 날이 개는 것처럼 보이더니 – 그래서 우리의 아쉬움을 사더니 – 시비우를 향해 달리는 길, 다시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날씨만 좋다면 시비우로 가는 길 중간에 내려 Fagaras 산군 구경도 하고 갈텐데…

 

시비우에 내려 터미널 근처에 숙소부터 잡고 나자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어차피 유럽의 볼거리라는게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있지 않은가. 시비우도 마찬가지, 우리는 님도 보고 뽕도 딸 겸, 시비우 올드 타운으로 향한다.

 

 

<시비우 올드타운 대광장, Piata Mare>

 

<대광장에서 마야인지 잉카 후예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던지라 잠시 시공간의 혼동이 ^^;> 

 

오호, 자갈 포장길을 따라 야트막히 경사진 길을 올라 간만에 보는 파스텔톤의 바로크인지 고딕 양식의 -_-; 건축물들이 가득 둘러싼 올드타운 대광장(Piata Mare / 어쩐지 정은 중세삘의 소광장 Piata Mica이 더 가지만)이 그야말로 유럽에 온 실감이 팍팍 나게 만든다(하지만 내가 건축학도도 아니고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것도, 그렇다고 유럽사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유럽 도시들의 올드타운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진다는게 좀 안타까울 따름이다 ^^;)

 

 

<금강산도 식후경. 구운 고기겠거니 하고 시켰는데 훈제 햄스러운 뭔가가 등장> 

 

 

그러고보니 중동 여행을 한 뒤라 그런가, 예전 동유럽 여행 때는 몰랐는데, 새삼 먹거리에서 지난날 터키 제국의 위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이야 내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도 시내에 나가면 전통 복장을 하고 나온 중동계 아저씨가 케밥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하튼 이처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는 어딜가나 중동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쩌면 루마니아의 나이든 시골 아주머니들이 스카프를 두르고 다니는 것도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걸까? (또 혼자 상상의 나래를~)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시비우의 소광장, Piata Mica

 

혹시나 더 괜찮았을 숙소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 가이드북에 추천된 숙소들을 쭈욱~ 한 번 둘러보고 결국 우리의 지치지 않는 데스티네이션,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록 크기는 크지 않더라도 골목 골목마다 수퍼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시비우인데도 생각보다 재래시장의 규모가 제법 된다.

 

 

몇 바퀴를 돌아 두 손 가득 체리며 양상치 따위 과일과 채소를 주섬주섬 싸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시비우의 주민들이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비록 대광장을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일본인 할아버지 할머니 패키지 투어팀을 보긴 했다만(아아, 역시 일본이야) 아직까진 시비우에 우리 같은 관광객 메뚜기들이 휩쓸고 지나가진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좋다.

 

 

@ 저네스쯔->브라쇼브 : 브라쇼브에서 저네스쯔에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왔지만, 저네스쯔에서 브라쇼브로 갈 때는 일단 숙소에서 정거장이 매우 가깝고 기차보다 자주 있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는 아침 일찍부터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1인당 3.5레이로 탑승시 운전사 아저씨에게 지불하면 된다. 저네스쯔에서 아침 10시 차를 타고 나갔는데 브라쇼브 오토가라(Autogara) 2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50분.

 

@ 브라쇼브 오토가라 2->오토가라 1 : 오토가라 2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만약 저네스쯔에서 온다면 버스가 들어온 반대 방향의 출입구로 나가 길 건너 편에 있는)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23B(23 숫자에 빗금 가 있는)번 시내버스를 타고 대여섯 정거장을 가면(유턴을 하자마자 내리면 된다) 역과 붙어있는 오토가라 1에 도착한다(1.5레이/인). 시내버스표는 정류장 맞은 편 부스에서 구입했으며 버스 탑승 뒤 차내 설치된 검표기에 직접 한 장씩 넣어 날짜 도장을 받는 시스템이다.

 

@ 브라쇼브->시비우 : 우리의 경우 오토가라 1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있으면 곧 11시 30분 시비우행 버스가 들어올 시각이라고 해서 별로 기다리지 않고 시비우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19레이/인. 이번엔 버스 출발 뒤 동승한 차장 아저씨가 티켓을 끊어주는 시스템). 시비우에는 3시간 후인 2시 30분쯤 도착했다.

 

@ 시비우 숙소 : 시비우 역시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이 붙어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서 주변을 휙 둘러보니 저~쪽으로 뾰족한 시계탑이 보이길래 그 쪽이 올드타운임을 직감, 방향을 잡고 걸어가다 왼편 골목으로 처음 보이는 숙소 광고 간판을 보고 찾아들어갔다. 자칭인지 타칭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별 3개를 달고 있던 숙소의 이름은 Hermannstadt pensiune.

 

 

우리 전용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복도 맞은편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저렴한 사양의 트윈룸이 105레이/박(조식 불포함. 숙소가 레스토랑과 겸업을 하므로 추가 요금으로 조식 포함 가능). 가격은 지난 며칠간 묵었던 다른 숙소에 비하면 좀 비싼 감이 있었지만 방 자체는 분위기 있는 다락방 구조로 정갈하고 아늑해서 마음에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터미널/기차역과 가까워 오늘처럼 짐을 부리기도, 이후 짐을 꾸려 이동하기도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거기에 더해 론리 플래닛에서 저렴하다고 추천하는 시비우 숙소들의 더블룸 역시 최소 이 정도 가격 이상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게다가 그 곳들은 터미널/기차역에서 걷기도 좀 멀고)

 

@ 시비우 재래시장 : 올드타운에서 약간 북서쪽인 Piata Cibin에 위치. 볼 만하기도, 또한 살 만하기도 하다. ^^

 

 

<시비우 재래시장의 작품, 양상추>

 

@ 오늘의 영화 : <투명장> 처음엔 이연걸이 아닌 줄 알았다. 화려한 캐스팅에 눈요기감 전투씬. 그다지 필요하진 않으나 100% 와닿지도 않는 스토리. 작중 화자인 금성무와 이연걸은 대체 그런 대화를 언제 나눈건지. 

 

<시비우 뭔 종합 병원의 진료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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