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아가 휴양지긴 휴양지인 모양이다. 6월 중순인데도 이렇게 쌀쌀한 밤을 가진 곳이라면 부쿠레슈티 시민들의 한 여름 휴양지로 딱이겠지. 우리 침대 위에 왜 이리 두꺼운 이불이 놓여있나 했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다(어디선가 퍼온 여행정보에 의하면 시나이아가 루마니아 국립 부쿠레슈티 대학이 외국인들을 위한 여름학기 루마니아어 코스를 개설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고 즐겁게 공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한 점 하나, 과연 시원한데서 공부하면 공부란 놈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_-;)

 

보통의 다른 나라들은 이 정도 규모의 산맥이라면 국가간의 경계로도 삼았을 법 한데 루마니아의 이 카르파치아 산맥은 어째 나라 한가운데를 뒤집어진 ‘ㄴ’자 모양으로 휘돌아 나간다. 그저 지나가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산을 넘어/휘돌아 다니느라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 옛날엔 이 산 너머와 저 산 너머의 마을이 서로 교류가 적었을테니 그만큼 각 마을마다의 고유한 관습이 잘 지켜져 내려올 수 있어 전통의 구경거리를 제공해 줄 확률이 높다고도 할 수 있겠다(하지만 요즘 같이 차만 타면 쉽게 넘나드는 시대에도 과연 그러할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이 나라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파악하고 갈 수 있을까).

 

 

오늘은 케이블카를 타고 Bucegi 산에 오르기로 한다. 예전 가이드북에 의하면 아침 일찍 시나이아에서 옆 마을 Busteni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케이블카를 이용, 산에 올라 시나이아 방면으로 내려오는 트레킹을 하라 권하고 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Busteni cable-car는 화요일이 휴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시나이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걸어서 시나이아로 내려오는 루트를 밟기로 했다(시나이아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하이킹 루트 맵에서 나름 괜찮아 보이는 여러 개의 루트를 염두에 두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트레킹 정보를 물어보러 갔었는데 아저씨가 시나이아에서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다 되짚어 걸어 내려오는 루트 말고는 시간이 오래 걸려 힘들거라고 겁을 주는 바람에 그냥 그리 정했다). 

 

@ 여기서 잠깐, 시나이아에서 코타 1400, 코타 2000 오르기 : 코타(Cota)란 루마니아어로 ‘해발’을 뜻한다고 한다. 즉 시나이아 시내 한복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400m 지점과 해발 2,000m 정상 부근까지 갈 수 있는데 현재 각각의 요금은 다음과 같다.

 

코타 1400 : 성인 편도/왕복 13/22.5, 어린이(5~12세) 편도/왕복 7.5/12.5

코타 2000 : 성인 편도/왕복 23.5/45, 어린이 편도/왕복 12.5/22.5

 

 

우리는 코타 2000으로 가는 23.5레이/인 편도표를 끊어 올라갔는데 코타 1400에서 같은 티켓을 이용하여 케이블카를 한 번 갈아타야한다.

 

 

이 곳 케이블카 시스템상(스키장 리프트마냥 여러 대의 케이블카를 계속 돌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두 라인으로 한 대씩 왕복 운행이 가능한 듯) 오늘 아침 우리야 널럴하게 타고 올라갔지만 성수기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 길 듯 싶다. 사람이 몰리는 성수기에 이 곳을 찾아온다면 (폴란드의 자코파네에서 그랬듯) 운행 시간 이전부터 찾아가 줄을 서두는 편이 차라리 유리할 것 같다. 

 

 

 

 

<빠른 속도로 상승하던 케이블카를 산 중턱에 턱, 세우더니 뭔 줄을 마구 내려주던 차장 할아버지. 출발시부터 무서웠는지 시끄럽게 계속 울던 꼬마애가 생각난다> 

 

길고 긴, 그 와중에 어째 살짝 불안하게 ^^; 살랑살랑 흔들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순식간에 해발 2,000m에 올라선다. 아, 바람이 아랫 동네보다 훨씬 차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다 내려다 본 풍경> 

<코타 2000에 위치한 산장/매점> 

 

코타 2000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시원 시원 그 자체. 겨울에는 이 곳이 자연 스키장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올라온 방향으로는 내 수준으로는 턱도 없는 -_-; 경사의 슬로프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여기가 해발 2,000m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가 쫘~악 펼쳐진다. 흠, 비용만 저렴하다면 이런 곳에서 스키를 타도 재미있을 듯 싶구나.

 

 

 

  

계획으로는 곧장 시나이아로 향하는 최단 루트를 따라 하산하여야 했으나 그러기에는 부체지산 능선이 빚어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김원장, 우리 그냥 Busteni 방면으로 산 능선을 따라가다가 다시 시나이아로 돌아오는, 안내소 아저씨가 말렸던 루트를 그냥 지를까?"

 

뭐 하루 종일 천천히 걷는다는 마음으로 시도하면 못 걸을 것도 없겠지.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질.렀.다.(시나이아-코타2000-능선-Cabana Piatra Arsa까지는 노란 세로줄 루트를 따라, Cabana Piatra Arsa-꼬불꼬불 내리막길-Poiana Stanei-시나이아까지는 파란 세로줄 루트를 따라 가는 코스). 얼마간 능선을 따라가겠지만 이후로는 내내 내리막길일테고, 각각의 트레일은 표시가 잘 되어있다고 했으니 길을 잃을 위험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다가 가방 안에는 약간의 먹을 것도 챙겨온 상태였던지라 홀라당 마음을 바꿔먹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케이블카로 올라온 방향의 반대편은 이렇게 널찍하고 완만한 벌판 분위기가 난다> 

<우리를 유혹하던 저 길> 

 

<우선은 저렇게 노란 세로줄 무늬 간판이 달려있는 안내 막대를 따라 능선을 타기로> 

<지도를 펼쳐들고 앞으로의 루트를 가늠해 보는 김원장>  

 

출발은 정말 좋았다. 카르파치아 산맥의 평균 해발 2,000미터 급 산들이 연이어져 빚어내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날씨도 좋았고 성수기라 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라서였는지 이 광활하게 펼쳐진 멋진 풍경 모두를 우리를 포함한 오직 몇만이 고스란히 누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름 모를 분홍빛 야생화 들판도 지나고> 

<MT 따위를 나온 것처럼 보이던 젊은이들. 왜 내 젊은 날엔 젊음을 몰랐을까> 

 

 

 

비록 빛은 바랬지만 트레일 표시도 잘 되어 있었고 길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Cabana Piatra Arsa 근처 갈림길에 도착하기까지!(이런 풍경이라면 얼마든지 더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

 

어랍쇼? 이렇게나 빨리 갈림길 지점에 도착한거야? 안내소 아저씨와 또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군. -_-;

 

<이제부터의 하산길은 파란 세로줄 무늬를 따라가면 된다> 

 <만국 공통의 흔한 낙서 주제>

 

 

 

<흠... 저 바닥까지 내려가야한다, 이거지?> 

 

  <여기까지 과연 누가 왔다가랴 했는데... 영재와 혜림이도 왔다갔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면의 지도를 통해 상상했던 우리 예측과는 달리) 내리막길은 매우 길었고 꼬불꼬불 지그재그 그 자체였다. Poiana Stanei에 이르는 내리막길은 그야말로 좁고 경사가 제법 심한 산길이었는데,(반면 Poiana Stanei 이후부터 시나이아까지는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은 완만한 길로 보다 걷기 편하다. 참고로 능선을 벗어나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Poiana Stanei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단지 거슬러 올라오는 부자 한 쌍만을 만났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그 중간 어디에선가부터 다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Poiana Stanei에 도착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로 아이고, 다리가 아프구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거기에 더해 김원장은 언제 어디에서 물렸는지 벼룩 따위 흡혈충에게 엄청나게 공격당한 등판이 간지러워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추고 여기저기 피부가 벌개지도록 박박 긁어대야했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돌아돌아 내려오면서 바라본 산 아랫 마을들의 정경이나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볼 때면 점점 멀어지는 산 봉우리들과 구름들, 우리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무식한 내가 보기에도 고도에 따라 식생이 자연스레 바뀌는 모습을 발견해내는 경험들은 정말이지 즐거웠다. 아이 좋아라~

 

 

 

 

 

 

 

 

 

거기에 더해 별탈없이 시나이아 마을에 들어서자(막판에 Peles 성 부지쪽으로 방향을 잘못 잡아드는 바람에 좀 돌아나와야했던 것을 제외하면 -_-;) 결국 우리가 무사히 트레킹을 해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밀려드는 뿌듯함이라니… 오늘이 바로 루마니아 여행 최고의 날이 되지 않을까, 싶더라.

 

 

 

 

<드디어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은, 차도 다닐만한 도로를 만나다> 

 

풀려버린 다리를 끌고 비틀비틀 숙소로 돌아와 베이컨 구워 고추장 푸욱~ 찍어 양상추쌈 싸먹고 푸르른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의 긴 여정이 마치 까마득한 예전 일이라도 된 듯한, 마치 한 여름 밤의 꿈과 같다. 양 엄지발가락 옆으로 어느새 생겨버린 굳은 살만이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 일깨워주고 있구나.

 

@ 시나이아가 휴양지라서인지 아니면 원래 루마니아 전역 분위기가 그런건지 아직 파악은 안 되지만 불가리아에 비해 시내 길거리에서 전형적인 bakery보다는 미니 패스츄리를 즉석에서 구워내어 판매하는 체인점들(그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가게 www.fornetti.ro)이 종종 보인다. 종류별로 g으로 달아서 판매하기 때문에 하나씩 골라 먹기 좋다.

 

 

@ 시나이아의 미니 재래시장(?)은 Sinaia Tourism Information Centre를 바라보고 바로 왼편으로 나있는 꽃집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다보면 오른편 실내에 있다. 과일이나 야채 구입 용이. 커다란 슈퍼마켓은 역을 나와 시내로 오르지 않고 왼편으로 계속 찻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 위치. 도매 전문(?)인지 구매 단위들이 워낙 커서 배낭메고 돌아댕기는 우리로서는 딱히 구입할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물론 작은 슈퍼마켓은 시내 여기저기 있다.

 

(클릭하면 커짐 : 케이블카 타는 곳, 미니 재래시장 표시) 

 

@ 부체지산 트레킹을 하기 전에 Sinaia Tourism Information Centre에 들러 무료 지도며 날씨 정보며 싹싹 긁어 챙겨가자. www.info-sinaia.ro 

 

<참, 부체지산에 곰 사는 모양이더라. 길도 잠깐 잃었었는데 -_-;> 

 

@ 우리가 찾은(?) 시나이아의 free wifi spot : 무선 네트워크 신호가 시내 여기저기에서 생각보다 많이 잡히지만 쓸만한 놈은 Sinaia Tourism Information Centre 앞에서 잡은 Tourism Information Centre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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