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코 터르노보 전경이랄까>
 

 

그간 언제 비가 내렸냐 싶게 어젠 간만에 쨍하니 개어 마치 더 이상 비라는 놈은 내리지 않을 듯 강력한 햇살로 마구 공격해대더니, 오늘은 얼씨구나,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_-;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형상을 하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오늘 예정되어 있던 먼 거리 하이킹은 계획에서 접어야할 것 같다.

 

 

덕분에 오전부터 시간 여유가 생긴지라 김원장은 에티오피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내 이발소에서 다시 헤어컷을 하고(5레바=약 4000원),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한 아저씨>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전망이 근사한 식당에서 낮술을 들이키며 내리는 비에 촉촉히 젖어드는 벨리코 터르노보를 바라보며 분위기에 맘껏 취한다. 여기까진 참 좋았던 것 같은데…

 

 

 

(치킨 스테이크 7.5 + 호두/구운 사과/건포도 토핑 피자 5.5 + 콜라 1.4 + 300cc 생맥주 1.4)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는 주인집과는 별채로, 한 건물 안에 3개의 손님방이 있다. 앞 마당을 비롯, 건물 입구와 작은 냉장고가 놓여있는 아주 좁은 공간은 손님들 간의 공용인데 우리 맞은 편 방에는 한 커플이, 그리고 우리의 왼편으로 방문이 나 있는 방에는 주인집 아들인지, 하여간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묵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내내 앞마당에 나와 공부를 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사실 뭐 그리 문제랴, 오히려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지. 실상 이 동네에선 저 또래 아이들이 여자친구 옆에 끼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흔하지,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은 극히 보기 힘든 모습 -_-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학생이 열라 큰 목소리로 중얼중얼대며 공부를 한다는 것과 그 학생이 앉아있는 의자가 바로 우리 방 창문 앞이라는 것.

 

이전 내 여행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워낙 소음에 취약한 김원장이었던지라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도 수이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창문을 닫고 방안의 TV를 켜서 스포츠에 집중하려는 듯 보이더니 나중엔 도무지 안 되겠는지 창문을 열고 TV 볼륨을 키워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에 방해를 받게끔 -_-; 하는, 내가 보기엔 다소 치사한 방법까지 구사한다. 하지만 학생은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여 바로 우리 턱 아래서 (우리가 절대 알아들을리 없는 언어로) 공자왈 맹자왈을 헤아리니… 결국 김원장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산책이나 하잔다. 학생 승!

 

 

 

 

그렇게 쫓겨나듯 나선 산책길, 나는 벨리코 터르노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언덕을 오르며 기분이 상쾌한데, 김원장의 상한 기분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끝내 김원장의 입에서 “여행이 더 이상 구원이 아닌 모양이다”란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나는 이 말을 듣고 김원장의 아이디, ‘배낭여행의’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말아라, 라 받아쳤지만).  

 

 

 

내 주제에 감히 여행이란 무엇이다, 정의 내릴 순 없지만 김원장의 말대로 여행은 구원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절대적인 개념이라기 보담은 아마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의 상대적 개념이겠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학생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김원장은 옳다쿠나, 나보고 그 자리를 맡으란다. 김원장이 시키는 대로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다큐멘터리를 한 편 감상하는 동안 학생이 돌아왔다. 내가 본인이 원래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본 학생은 방에서 주섬주섬 책들을 챙겨오더니 이제 우리 건너편 방 앞 테이블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중얼중얼… 그 소리에 내가 다큐멘터리의 볼륨을 높이자 그제서야 눈치를 챈건지 아니면 본인이 그저 맘을 바꿨는지 더 이상 중얼거리지 않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 이젠 우리 승!

 

삼자간의 이 불편한 대치는 갑자기 구름떼가 몰려오면서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금세 빗방울이 다시 비치며 끝이 났다(결국 무승부?).

 

6월 중순, 때 아닌 우박까지 섞여서 내리는 비를, 조.용.한. 방에서 모든 창을 열고 마당과 맞은 편 언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참 좋구나. 나중에 지리산 자락에서 살던 안 살던, 마당을 바라보는 통창이 난 집을 구해보면 어떨까?

 

<오늘의 김원장 작품 : 부대찌개>  

 

@ 오늘의 다큐 : <걸어서 세계속으로/아드리아해의 보석상자 – 크로아티아> 이번에 안 가기로 한 나라이고 별 마음도 없었는데 다큐를 보니까 다시 가고 싶네. 견물생심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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