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루트를 과감하게 홀라당 제껴버린 뒤 새로이 맞는 아침이다. 마치 여행도 새로 시작하는 듯한 착각에 잠시 허우적(아마도 김원장은 전혀 안 그렇겠지?).

 

소피아발 벨리코 터르노보행 열차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숙소에서 나온다는 것이 키릴 문자 가득한 전광판을 보고 플랫폼을 찾고 하느라 정작 우리 좌석도 못 찾은 채 막 출발하려는 열차 위에 몸을 던지다시피 해야 했다. 열차 행선지가 맞는지만 확인하고 급하게 일단 가까운 아무 객차에나 올라탄지라 이미 앉아있는 한 청년에게 우리 좌석표를 보여주고 위치를 물으니 오히려 청년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먼저 나서서 그냥 여기 남는 좌석에 일단 앉으라네.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여기저기 빈 좌석도 별로 없었던터라 그냥 친절한 할머니 옆에 나란히 일렬로 앉는다.

 

중동 같으면 이렇게 마주보고 가는 좌석에서 우리에게 호감어린 질문 한 마디없이 조용히 가긴 어려울 것 같은데 역시 이 땅은 터키와 지척에 있을지언정 – 그리고 터키의 오랜 지배를 받았을지언정 – 유럽은 유럽이다. 우리와 마주 앉은 커플도 우리와의 시선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이 각자 낱말 맞추기나 수도쿠를 하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하고 내 옆에 앉은 할머니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니.

 

 

그러나 차장 아줌마가 다가오자 우리의 평온은 깨어졌다. 우리가 현재 앉아있는 곳은 1등석이고, 한 칸 더 넘어가면 우리의 2등석 지정 좌석이 있단다. ㅎㅎ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짐을 메고 함께 앉아있던 승객들과 빠이빠이 인사를 하고 우리 좌석을 찾아 간다. 흠, 역시 1등석과 2등석은 차이가 나는구나. 이번엔 우리 둘이 마주보는 좌석이었던지라 내 옆에는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가 몇 개는 올라갈 듯한 옆모습 미인이, 김원장의 옆에는 덩치 좋으신 할아버지가 함께 앉게 되었다. 역시나 한 마디 말 나누는 법 없이 기차는 덜커덩덜커덩 앞으로 나아간다. 웃긴 건, 우리 객량의 승객들 대부분이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어쩌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거기에 더해 노출도 심한 젊은 여성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두들 시선이 쫘~악 위아래로 한 번씩 훑어주시더라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이란. ㅋㅋ

 

살짝 연착하기는 했지만 별일없이 기차도 한 번 잘 갈아타고 드디어 불가리아에서 가장 중세적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그리하여 제 1의 관광지라 알려진 Veliko Tarnovo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약간은 맛이 가 보이는 한 아저씨 삐끼의 집요한 호객에 살짝 동해 일단 그럼 그 민박집부터 상태를 확인해 보고 숙박 여부는 이후 결정하기로 하고 아저씨의 차에 올랐다(사실 벨리코 터르노보는 기차역에서 제법 떨어진 계곡 중턱 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인지라 아저씨 차를 얻어타고 일단 언덕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얄팍한 속셈도 더했었다).

 

허름한 민박집의 외관과는 달리 꼬불꼬불 주택내(?) 골목을 따라 손님용이라는 안채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그럴싸하고 무엇보다 볕이 잘 드는 전망 좋은 작은 마당을 가진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가격도 착하고 ^^

 

 

짐을 부려놓고 살짝 벨리코 터르노보 맛보기에 나선다. 흠… 우리가 기대했던 코프리브쉿차의 그것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꽤나 현대적인 도시처럼 보이네. 약간 실망이다. 역시 코프리브쉿차가 너무 좋았어. 그러니 그 다음 방문지들이 더 이상 마음에 쏙 들기 어렵지... 뭐 아직은 벨리코 터르노보의 첫날이니까 속단하긴 이르다. 인간에게 있어 또 다시 해가 떠오르는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 소피아~벨리코 터르노보 기차 : 12.9레바/인X2+좌석찜(?) 예약비 1레바=총 26.8레바 지불. 오전 6시 50분부터 19시 30분까지 일 7회 운행. 우리의 경우 오전 9시 50분 소피아발, Gorna Oryahovitsa 14시 18분 착, 이 곳에서 14시 32분발 벨리코 터르노보행 기차로 갈아탄 뒤 벨리코 터르노보에 14시 52분 도착(예정, 실제로는 고르나 오리야호비짜에서 20분 지연후 출발, 벨리코 터르노보에 그만큼 연착. 고르나 오리야호비짜가 동서 남북 기찻길의 교차점인지 이 곳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승객들이 많다).

 

@ 벨리코 터르노보 숙소 : TV, 화장실이 딸린 독채형 민박. 30레바/박. 조식 불포함. 냉장고는 다른 투숙객들과(2인용 방이 총 3개임) 공용. 우리는 기차역에서 만난 전문 호객 아저씨를 통해 이 집에 왔는데(아저씨 수첩에 각 나라 언어로 된 추천글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부산대 학생의 것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 아주머니가 10레바나 소개비를 주었다고 하더라. 이외 삐끼 아저씨가 우리에게도 중개료를 좀 달라고 했으나 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이 이미 주었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몰래 신호를 줘서 그냥 떼어버렸다. 만날 일도 거의 없고 말도 거의 안 통하는 주인댁 식구들이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친절하신 분들인 듯. 대문에 민박집을 나타내는 아무런 표시가 없어서 위치를 설명하기 좀 애매한데, Guest House Veliko Tarnovo Hotel(http://guesthouse-vt.com/)가 위치한 골목에서 호텔 바로 맞은편으로 14번지를 찾으면 된다.

구시가를 기준으로 시내보다는 성쪽이 훨씬 가깝다(따로 찾아보진 않았지만 우리 숙소가 이름난 Hostel Mostel과도 그다지 멀지 않을 듯).

나중에 시내 중심부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벨리코 터르노보의 저렴한 숙소의 가격대를 물어보니 대략 박당 50레바는 잡아야한다고 하더라.

 

@ CBA 수퍼마켓 : 벨리코 터르노보의 신시가지쪽으로 Vasil Levski를 따라 걷다보면 먼저 왼편으로 CBA가 보이고 계속 직진하다보면 이번엔 오른편으로 작은 또다른 CBA가 보이는데 두번째 CBA 맞은편으로 작은 재래시장이 있다. 야채와 과일 등을 판매하는 재래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다보면 지하에 CBA 매장이 또 있는데 이 매장이 가장 큰 것 같다. 유럽에 넘어오니 베이컨이며 소시지, 맥주에 우리가 흔히 먹는 (동북아) 쌀까지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다 ^^ 

 

그렇다고 매일같이 이래서야... 나 혹시 알콜리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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