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겠다, 공기 맑겠다, 배불리 먹었겠다, 침구 뽀송하겠다, 밤비 내리겠다, 더 이상 잘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침으로 밥을 지어 김 싸 먹고난 뒤, 비는 비록 내리지만 마을 산책이나 해볼까 싶어 방문을 열고 나가려니 어라, 문 밖 공용 거실 상 위에 웬 단촐하지만 정갈한 아침 식사가!

 

어제 인포메이션 아줌마 왈, 우리 숙소가 B&B라 표기되어 있긴 하지만 35레바의 가격에 조식은 불포함이라고 분명 그랬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지?(불가리아는 인도처럼 긍정의 의미일 때 고개를 젓고, 부정의 의미일 때 고개를 끄덕이는데 혹 그래서 인포 아줌마와 내 대화가 엇갈렸던건가?) 혹시나 싶어 그새 옆 방에 다른 손님이라도 들었나 했는데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분명 우리 둘을 위한 아침 식사인게다.

 

 

미니 핫케이크에 블루베리잼이 발린 크레페, 향이 고소하고 매우 짙은 불가리아식 커피, 그리고 엄청난 양의 요구르트까지. 주인 아주머님도 참, 이렇게 식사를 가져다 놓으셨으면 문이라도 두들겨 알려주실 일이지. 어쩜 우렁각시마냥 소리없이 밥 잘 차려놓고 또 소리없이 사라지셨담?

 

방금 배 터지게 아침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렁각시가 차려준 불가리아 가정식 백반(?)을 또 즐거이 먹는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예상치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라는 게 사람 기분을 이렇게 좋게 만들어주는구나. 

 

 

 

 

코프리브쉿차는 해발 1,000m가 넘어가는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와는 겨우 113K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지라 전통 가옥을 내세운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특히나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한적함을 찾아 불가리아 내국인들이 몰려드는 피서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광 안내소를 비롯, 숙소와 레스토랑이 마을 규모에 비하면 꽤나 많다.

 

하지만 아직은 6월 초인데다, 어제 오늘 계속해서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그러고보니 그간 중동을 여행하느라 비 본지도 제법 되었지, 아마?) 오늘이 토요일, 명색이 주말인데도 한 두시간 잠시 들러 하우스 박물관 몇 찍고 가는 외국인 패키지 관광객들 말고는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라곤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로서는 비록 비는 내리고 있지만, 어딜 가나 너무 조용하고 인적 없고, 원한다면 어느 숙박업소나 좋은 방을 골라 적당한 가격에 묵을 수도 있어 행복할 수 밖에(어제 관광 안내소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가장 급이 높은 전통 가옥 숙소의 경우 60~70레바면 하룻밤 잘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돈 5만원 안팎이니 무지 경쟁력이 있는 셈).

 

 

 

 

 

 

 

두 번의 아침 식사가 얼마나 거나했는지 오후 내내 주인 아줌마에게 빌려든 우산을 들고 마을과 뒷산 자락 여기 저기를 쏘다녀도 도무지 배가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행도 길어지고 거기에 유럽이라는, 나름 익숙하다면 익숙한 땅에 들어와서 그런지 그다지 흥미로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코프리브쉿차는 관광지인데도 여전히 착한 가격(엄청 커다랗게 잘라낸 맛있는 케이크가 겨우 2.5레바=약 2000원. 살이 안 찔래야 안 찔수가, 흑흑)에 길을 걷다보면 인사를 건네오는 산골 마을 사람들이 살지, 야트막한 경사의 산길은 빽빽한 침엽수림이 멋드러지게 감싸고 돌지, 숙소에 돌아오면 근사한 방이 기다리고 있지, 수퍼에선 시원한 맥주를 얼마든지 살 수 있지, 뭐 거의 fantastic, 너무 좋아,를 입에 달고 있게 만든다(그러니 언젠가부터 여행이 더 이상 큰 재미를 주지 않네 어쩌네, 아무래도 나한테 엮인 것 같네 어쩌네 하던 김원장 입에서 오늘 산책길에 1년 더 놀아볼까 어쩔까, 아예 평생 이렇게 살아볼까 어쩔까 하는 소리도 나오는게지 ^^). 

 

 

 

 

 

게다가 오늘부터 유로 2008 축구 경기가 시작이다. 당근 김원장 신났지 ^^. 그러고보니 유로 2004 경기는 캄보디아 앙코르왓 어드메에서 봤던 것 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되었나. 

 

@ 이후 보너스 샷 : 이번엔 개울 맞은편 마을로 오후 산책 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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