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는 어제로 충분, 오늘은 버스를 타고 데린쿠유 지하도시 구경을 다녀오기로 한다. 괴레메에서 데린쿠유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 동네 맹주격인 네브쉐히르에서 갈아타야 할 듯 싶다.

 

숙소 주인에게 네브쉐히르로 가는 돌무쉬를 어디에서 타야하냐고 물어보니 내가 가진 정보(괴레메에서 네브쉐히르행 돌무쉬는 정류장이 따로 있다는)와는 다르게 그냥 오토가르에서 타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오토가르에서 매 30분마다 한 대씩 네브쉐히르로 가는 차를 운행하고 있었고. 네브쉐히르행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묻더니 알아서 데린쿠유행 버스를 탈 수 있는 네브쉐히르의 한 정거장에 우리를 내려준다. 흠, 역시 친절한 동네라 여행이 아주 쉽군. 이제 이 정거장에 앉아 데린쿠유행 버스만 기다리면 된다 이거지?


곧 우리 앞에 선 차량은 데린쿠유 바로 못 미쳐 있는 마을인 카이마클리(Kaymakli)행 돌무쉬이다. 그런데 돌무쉬가 텅 빈 것이 마구 타고 싶어지네. 운전사에게 데린쿠유를 외치니 손님 한 명이 아쉬운 그는 카이마클리에도 지하도시가 있고 그게 싫으면 일단 카이마클리까지 간 뒤 다시 데린쿠유행 버스를 타도 된다는 식으로 영어 몇 마디와 바디랭귀지를 섞어 설명을 한다. 그래, 그럼 그러지, 뭐.

 

돌무쉬는 신나게 카이마클리를 향해 달린다. 만약 우리가 스쿠터를 타고 왔으면 이 길을 따라 달렸을텐데… 생각을 하며 바깥을 바라본다. 그러다 고새를 못 참고 설핏 졸기도 한 것 같다. 네브쉐히르에서 카이마클리까지 얼마나 간다고 -_-;

 

돌무쉬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아예 카이마클리의 지하도시 앞에 세워준다. 흠… 어쩔까. 여기서 그냥 데린쿠유행 버스를 기다렸다가 데린쿠유로 가서 지하도시 구경을 할까, 아님 그냥 여기 카이마클리의 지하도시를 구경하고 말까. 김원장의 마음이 후자로 기운다. 그래, 그럼 카이마클리 지하도시를 구경하도록 하자(입장료 : 10리라/인. 데린쿠유도 같은 가격인듯 싶은데 데린쿠유로 가는게 나았을라나? 잠시 고민).

 

<카이마클리의 지하도시 입구>

 

 <미로 같은 지하도시 속을 돌아다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모를까, 결국 지하도시도 내 자족을 위한 코스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워낙 많이 보아왔던 곳이고, 그래서 여기, 터키 카파도키아까지 온 이상 안 보고 갈 수 없는, 그러나 또 하나의 확인 사살 절차였다고 해야하나. 그저 나도 거기 가 봤소~용이라는 소리. 반면 내가 만약 기독교인이었다면 아마도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마치 개미집 같은 그 지하도시 속을 어스름한 조명과 화살표에 의지하여 때로는 몸을 최대한 숙여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내 머릿속의 주된 감정은 “대체 종교가 뭐길래 이렇게까지…”였던 것 같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저 종교의 힘에 의지하여 이뤄낸 결과물이라기엔 일견 너무나 믿기어려운 현장.

 

(그러나저러나 이 지역에 발견된 지하도시가 워낙 많고 그 규모가 방대하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데린쿠유 이외의 지역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 카이마클리의 지하도시에조차 생각보다 많은 투어팀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데린쿠유에 너무 사람들이 몰리는 탓에 번잡하여 대신 이 곳으로 오는건지?)

 

<특산품(?) 반영이 잘 된 이 동네 양말 가판대>

 

지하도시 구경을 마치고 코딱지만한 카이마클리 마을 구경도 마저 한 뒤 다시 네브쉐히르행 돌무쉬를 잡아타고 카파도키아의 행정 중심이라 할 만한 네브쉐히르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네브쉐히르는 규모가 그럴싸한 중소 도시처럼 보였고, 항상 그렇듯 우리는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이 곳에 흥미를 더욱 가지게 되었다. 네브쉐히르를 여기저기 거닐며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후식 중 하나인 바클라바도 사고(파는 언니가 우리보고 당황한 탓에 계산을 잘못한건지 10리라는 싸게 산 듯 ^^;),

 

 

길거리에서 파는 치킨 케밥도 사먹고(김원장이 맛있다고 해서 시차를 두고 한 번 더 사먹었다는),

 

 

공원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서로 구경하는 분위기 ^^; 네브쉐히르가 카파도키아 지역의 중심지이긴 하지만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은 아닌지라 이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에게 더욱 친절한 듯 싶다. 길을 걷던 김원장은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반가움의 악수를 당하기도 했다는 ㅎㅎ) 관광객 오리엔티드된 괴레메에는 없는 현지인용 저렴한 수퍼에 들어가 과자며 방울 토마토도 사고(2.6리라), 커다란 백화점에 들어가 견과류도 좀 사고(아몬드와 땅콩 섞어 270g에 3.75리라) 돈 두르마라고 불리우는, 터키에서만 먹을 수 있는 쫄깃한 아이스크림(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시리아에서도 비슷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도 사먹고 하다보니,

 

 

 

어느새 좋았던 하늘빛이 흐려진다. 그리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이제 괴레메로 돌아갈 시간이다.

 

괴레메로 돌아와 쉬다보니 다시 날이 개어온다. 내일 아침, 드디어 이 수렁과도 같은 괴레메를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이 카파도키아에서의 마지막 날인 셈이다. 이젠 떠날 때가 되었다던 김원장 역시 (양가감정에 시달렸는지) 떠나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한 번 더 걷자고 해서 며칠 전 걸었던 우치히사르행 방면으로 다시 발길을 옮겨 본다.

 

 

 

 

내일 떠나기 전의 마지막 트레킹 삼아 인적 없는 조용한 숲속을 한 발짝씩 걷다보니 이 곳에서 보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사라진다. 따지고보면 지난 4일 내내 처음 계획한 바대로 모두 이룬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_-;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도 그런걸까? 하긴 여행이 또 뭐 별건가? 여행 역시 인생의 축소판에 불과하지 않으련가.

 

 

 

@ 그러고보니 5일밤을 보내도록 그 아름답다 소문난 카파도키아의 노을 사진도, 야경 사진도, 아침녘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기구 사진도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네. -_-;

 

 

@ 오늘의 다큐: <걸어서 세계속으로/발칸반도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 소피아> & <HC 스페셜/충격실황, 난 이렇게 탈출했다-알바니아> 전자를 보고나선 얼른 다시 불가리아에 가고 싶어지더라만, 어찌 후자는 제목부터 저 모양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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