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간 오래토록 기대해 왔던) 터키에 대해 실망을 하긴 한 모양이다(이건 어디까지나 터키탓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모든 걸 상상하고 그에 걸맞는 그림을 혼자 열심히 그려온 우리탓). 시리아에서 김원장이 새로 짠(내가 짜온 루트가 맘에 안 든다나 뭐라나) 터키 여행 계획에 의하면, 하르비예를 떠나 가지안텝(Gaziantep 혹은 Antep)으로, 가지안텝에서 우르파(Urfa)로, 우르파에서 마르딘(Mardin), 마르딘에서 디야르바키르(Diyarbakir), 그리고 디야르바키르에서 (나는 Van, 그러나 김원장은) 말라티야(Malatya)로, 말라티야에서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이런 식의 남부->동부->중부 순의 이동이었는데 오늘 한바터면 우리는 완전 방향을 틀어 (밑도 끝도 없이 완전 반대 방향인 서쪽의) 아다나(Adana)로 갈 뻔 했으니까.

 

하르비예에서 안타키아 시내까지는 돌무쉬를 타고(1.25리라/인) 잘 나왔고, 돌무쉬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정거장에서 오토가르로 가는 버스에도 친절한 아주머니와 한 아이 덕분에 쉽게 올랐고(1리라/인), 비록 그 버스 안에서 살짝 원숭이 신세가 되긴 했으나 무사히 외곽의 오토가르까지 잘 이르렀는데, 이런. 가이드북에는 자주 있다고 소개된 가지안텝행 다음 버스는 오후 1시 30분에나 있다네. 지금 10시 30분도 안 되었구만.

 

3시간도 넘게 터미널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시내로 다시 들어갔다 나오자니 것도 좀 갑갑하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인데 말라티야행 버스 아저씨는 금방 자기네 버스가 출발할테니 계속 말라티야를 가라며 꼬셔대고. 흠... 우쩔까, 가이드북을 다시 펼쳐보니 안타키아에서 가장 가까운 큰 도시로 iskenderun이라는 곳이 보인다.

 

- 혹시 이스켄데룬 가는 버스는 언제 떠나나요? 예? 곧 떠난다고요?

 

우리는 일단 무조건 올라타고 본다(5리라/인. 곧 떠난다고 해서 급히 올라타느라 매표소에서 티케팅도 안 했는데 차장 아저씨말로는 괜찮다네. 자기한테 현금으로 내라나? 미덥지는 않았지만 성인 가격은 7리라/인이 정상가라는데 학생이라고 해서 5리라로 깎긴 했다. ^^; 아직 터키의 도시간 버스 요금에 대해서는 겪어본 바가 전혀 없어서 약간 찝찝했다만). 일단 가보는거야. 가서 가지안텝행 버스가 있으면 거기서 타고, 없으면 오늘 하루, 거기서 자는거지. 설마 잘 방이 없을라고? (점점 아무렇게나 막나가는 여행 스타일 -_-;)

 

버스는 역시나 벤츠. 이제 우리, 당분간 벤츠만 타겠네~하며 히히덕. 게다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석 반대편 맨 앞, 전망 끝내주는 자리에 앉을 수 있어 또 한 번 히히덕.

 

우리 건너편, 그러니까 이스켄데룬행 버스 운전석 바로 뒤에는 한 아줌마가 홀로 앉아 있었는데 열라 휴대폰으로 통화중이다. 아줌마가 우리네처럼 통화중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높이며 까르르대자 차장 아저씨가 다가와 놀랍게도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한다. 오오, 이런 유럽스러움을 봤나. 또 한 번 인상에 팍 남아주시고(지나온 나라들에서는 운전사나 차장 아저씨들마저 운전 중 개의치 않고 허벌나게 통화해댔는데). 그리고 시작되는 차장 아저씨의 서비스. 소문으로만 듣던 터키 버스내 서비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기대를 살짝 했으나 손에 향수를 들이부어주는 것 말고는 시리아의 그것(이것저것 먹을 것 챙겨주기)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시리아가 터키를 따라한게 맞겠지?

 

이스켄데룬에 가까이 가자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뭐야, 이거. 지도를 다시 꺼내 들고 자세히 보니 어라, 이 도시, 지중해변이잖아? 오늘 여차하면 지중해변에서 잘지도 모르겠네? 생각보다 이스켄데룬은 무척이나 크고 번화한 도시다. 음, 이래서야 해변가에서 조용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쓸만한 해변이 있기나 할까?

 

이런저런 걱정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엥? 이스켄데룬 오토가르에 이르러 하차하는 승객은 오직 우리 둘 뿐이다. 왜 아무도 안 내리지? 내리면서 우리 버스 앞면을 보니 어라, 이 버스가 여기가 종점이 아니고 아다나를 들러 또 다른 지중해변의 도시 메르신(Mersin)까지 가는 거잖아? 김원장이 지도를 보더니 아다나에서 내리면 카파도키아가 가깝단다. 그러면서 곧장 아다나로 가자고. -_-; 뭐냐? 우리 (반대 방향의) 안텝으로 가는 중 아니었어?

 

김원장이 터키 여행 루트를 새로 짜면서 내게 동부나 서부,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하길래 볼 것 많으나 그만큼 관광객도 많고 호객꾼도 많고 물가 비싼 서부를 갈 것이냐, 아니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관광객도 없고 사람들은 좋고 물가 저렴한 동부를 갈 것이냐 고민하다 결국 동부를 택했는데, 사실 마음 한 구석에 서부에 대한 미련 역시 남아있던 나, 김원장의 아다나행 의견에 얼추 훌렁~ 흔들린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아다나로 빠진다면 동부는 물 건너가는 대신, 아쉬움이 남았던 서부를 여행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니까.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버스 좌석. 아다나까지 빈 좌석은 물론 있으나 여기 이스켄데룬에서 우리 자리를 이미 예약한 승객이 탑승할 예정인지라 우리는 뒤로 물러나 앉아야 한다는 것. 그러자 좋은 좌석에 목숨거는 김원장, -_-; 그럼 아다나 안 간단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고 싶어하는 차장 아저씨가(며칠 전 시리아에서 건너온 터라 이 차장 아저씨의 태도를 보며 자본주의에 물들었구만, 하는 생각부터 든다 -_-;) 정 앞자리를 원한다면 우리 둘 중 하나는 차장 좌석에, 다른 하나는 복도에 앉아 가라고 할 정도로 우리를 붙들었으나 김원장이 그런 제안에 넘어갈리가 있나. 어쨌거나 인도 같은(만만한게 인도냐 -_-) 나라 같았으면 우리에게 좀 더 돈을 받아내서라도 차장이 미리 예약한 승객의 자리를 우리에게 넘겨줄 법도 하거늘, 지정좌석제를 고수하는 이 곳이 (지나온 나라들에 비해) 매우 선진국(?)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정말 얼렁뚱땅, 샤바샤바, 이런 거 없는 나라에 온 건 가봐…

 

 

마침 30여분 기다리면 12시에 출발하는 안텝행 버스가 한 대 있다길래 결국 예정대로 ^^ 안텝을 가기로 한다 (Gaziantep을 현지인들은 G. Antep 혹은 안텝으로 줄여부른다). 안타키아 버스 터미널에서는 우리가 이스켄데룬으로 일단 가겠다니까 거기 가봐야 결국 안타키아에서 1시 30분에 출발하여 이스켄데룬에 들르는 버스를 타게 될거라고 했는데, 흠, 그럼 그게 뻥이었군. 자기 회사 티켓을 파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구라 정보를 주다니… 이게 그 유명한 터키의 친절인거야?

 

<이스켄데룬 오토가르에서 김원장과 뭔 대화를 길게도 나누던 아저씨>

 

아쉽게도 이번에 우리가 타야하는 버스는 크기도 작고 승차감도 다소 떨어지는 – 게다가 벤츠도 아닌 – 차였지만(버스회사명 Yazar), 덕분에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로 안텝까지 올 수 있었다(15리라/인). 김원장에게 How are you, brother?를 건네는 승객 아저씨, 우리에게 차를 대접하던 운전기사 아저씨, 휴대폰을 통해 3대에 이르는 자신의 모든 가족 사진을 다 보여주고 일일이 설명해주던 81년생 차장 청년(언제 샀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여행필수 터키어회화>라는 소책자를 들고 있었던 탓에 서로 원하는 문장을 짚어가며 나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 우리가 묵을 숙소는 어딘지, 그렇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모두들 관심가져 주고,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어주던 사람들… 그래, 이게 바로 터키의 친절이구나. 심지어 터미널을 나가려는 순간, 터미널에서 다른 도시행 버스를 기다리던 청년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와 시내로 가는 방법을 모른다면 본인이 도로 시내까지 함께 가주겠다고 제안을 하는데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 밖에.

 

<참치 호텔은 아니겠지? -_-> 

 

 

  

안타깝게도 안텝 시내는 나에겐 너무 번화하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호텔도 생각보다 비싸고. 동부가 물가 싸다며? 사람만 좋은거야? 깜짝 놀랄 일은 호텔 방 TV에서 완전 무삭제 버전의 허슬러 채널이 나온다는 것. 이거 완전 쌩 포르노 아냐? 그야말로 충격이다. 물론 포르노 내용을 보고 충격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설령 그렇다 말한들 아무도 안 믿겠지만 ㅋㅋ), 터키에서, 무슬림 국가인 터키에서 이런 방송을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아… 도무지 그 정체성을 짐작할 수 없는 나라, 터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 Yunus Hotel :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이후 리모델링이라도 한 듯 싶다. 현재 2성급. 더블룸 60리라 부르는 것을 55리라로 깎아 묵기로(실제 방은 더블+싱글의 트리플룸). 조식 포함이고 방에서 무선 인터넷 가능. 포르노 방송 역시 콜! -_-; (프론트에 걸어놓기로는 싱글룸이 70리라라는데…)

 

마찬가지로 론리에 소개된 유누스 호텔 옆집인 Hotel Ugurlu는 방이 없다더라. 마찬가지로 2성급. 그리고 유누스의 바로 맞은 편 호텔은 더 후졌는데 50리라 부르고. 그럴바엔 5리라 더 주고 유누스에 묵는게 낫다싶어 유누스로 정함.

 

@ 다소 황당했던 환율 이야기 : 나는 1달러를 950원에 사왔고, 터키에서 1달러는 1.23리라로 바꿔준다고 하길래, 1리라가 우리 돈 770원쯤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시티은행 현금카드에서 출금된 환전 금액을 보니 1리라당 850원도 넘더라. 알고보니 그새 환율이 무지 올랐더군. -_-;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달러를 환전해서 쓸 것을 그랬나? 여하간 1리라에 850원이라면 더 후덜덜이다.

 

@ 가지안텝이 얼마나 크냐고? 시내를 싸돌아다니다 까르푸를 발견했을 정도다. 근데 어찌된게 까르푸 물건이 저렴하질 않다. 오히려 시내 수퍼보다 비싼 것 같기도 하고 -_-; 물건도 그닥 없는 것 같고…(그래도 우리나라 쌀과 비슷하다는 ‘발도’ 상표의 쌀을 구입, 1Kg=3.1리라) 터키 GDP가 어느새 만불에 육박한다지만, 여전히 물가는 우리나라 수준에 맞먹는 고물가다(김원장왈, 지난 세월 힘들게 살아왔을 터키인들이 불쌍하단다). 내가 터키가 세계에서 기름값이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던가? 현재 휘발유 1리터에 3000원을 육박하는 수준이다. 까르푸 매장에 붙어있는, 순간 반가왔으나 가격표를 보고 얼른 마음을 접은 버거킹의 버거세트 역시 우리나라보다 비싸지 싶다. 

 

<터키의 유명한 달달이 후식, 바클라바(Baklava). 그 중에서도 가지안텝은 전 세계 바클라바의 수도(capital)로 불리울만큼 바클라바가 이름난 곳이다. 사진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원조집이라고 해야하나, 가지안텝의 한 가게(http://www.imamcagdas.com/ 엄청난 종류의 바클라바를 구비한 정말 근사한 가게다)에서 사다먹은 바클라바. 겹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파이 안에 달콤하게 절인 다진 견과류가 가득 들어있다고 표현하면 좀 비슷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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