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의 절정, "터키어 회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나름 부페식 아침 식사 아닌가! 물론 찬찬히 살펴보니 딱히 땡기는 메뉴는 없었다만 그래도 간만에 보는 콘플레이크에 소문대로 터키 빵이 참 고소하고 맛있다. 잼도 무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과일이 많이도 나나보다. 터키가 식량면에서 자급자족이 되는 몇 나라 중 한 나라라고 했던가? 하긴 어제 시리아에서 넘어오면서 보았던 들판 풍경으로는 자급자족이 아니라 수출도 가능할 것 같다. 어쨌거나 방도 좋고 아침 식사에서도 간만에 리조트 분위기 풍기고 식당도 좋고 식당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도 정감가고, 참 좋다. 그렇지만 경험상 이렇게 좋은 곳에 머물다간 다음 방문지에서 꼭 실망하게 되더라고. 몸이 편한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이거지.

 

때문에 이 좋은 숙소에서 하루 더 머물까 했던 마음을 접고, 이 곳에서 10Km 가량 떨어져 있다는 하르비예(Harbiye)로 가기로 한다. 지도에도 안 나오고, 가이드북에도 언급된 바 전혀 없는 곳이지만, 물 흐르는 계곡이 있는 휴양지로 더운 여름철에는 근방 아랍인들이 놀러오기도 하는 곳이란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하르비예 호텔 하나 추천해 달라니 가면 호텔이 널렸다나? 뭐 그럼 가서 직접 부딪혀 보도록 하지. 리셉션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그러나 결국 두 명의 아이들과 한 아저씨, 그리고 한 가족의 도움까지 더해서야 하르비예행 돌무쉬 정거장으로 가서 돌무쉬를 탄다(1.25리라/인). 그다지 먼거리는 아니지만, 흙먼지 날리는 좁은 산길을 꼬불꼬불 오르는 동안 돌무쉬에는 어느덧 우리 둘 밖에 안 남았다. 마지막으로 내리던 아저씨는 김원장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물었고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반색을 하며 얼른 악수를 청하기도 했었지. 아마도 단순히 터키인이 한국인을 반가워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과 어떤 특별한 사연을 가지신 분 같던데 그 이상 말이 통해야 말이지. 아쉬워라.

 

 

친절한 돌무쉬 아저씨의 안내로 쉘랄레(Sellale) 계곡 바로 앞에 하차, 눈 앞에 보이는 호텔부터 들어가 본다. 역시 어제, 가격 대비 너무 좋은 숙소에 묵었던게야. 눈에 안 차네. -_-; 호텔측에서는 아직 비수기라 방들도 태반이 비어있기 때문에 알아서 숙박비를 깎아주겠다고 나서지만, 김원장은 지나다니는 차 소음이 우려된다며 더 조용한 숙소를 찾아보겠다고 한다. 나는 쉘랄레 계곡이 내려다 보여서 나름 맘에 드는구만.

 

 

코딱지만한 하르비예 마을을 잠시 거닐다 이번엔 펜션 간판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펜션이라고 하면 내가 한 번은 자보고 싶은, 다소 고급스러운 숙소를 뜻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물론 이 나라 펜션도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긴 하다). 숙소에는 몇 개의 침실과 화장실, 그리고 주방과 거실이 딸려있어 터키의 대가족이 모두 놀러와 지내다 가기 좋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묵기로 결정한 이 쉘랄레 펜션도 자그마치 트윈룸 3개에 화장실 2개, 부엌에 거실까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비록 시끄러울까봐 도로 반대편, 즉 쉘랄레 계곡과 반대편으로 난 방을 잡았더니 전망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만 1박 50리라라는 가격을 열심히 깎아 결국 30리라라는 착한 가격에 잡았으니 뭐 더 이상 바라는 건 양심에 털난 것과 다름 없지(거기에 대박은 바로 옆에 위치한 3성급 Prenses hotel의 무선 인터넷 지원 시스템을 몰래 쓸 수 있다는 것 ^^;).

 

<몰래 쓰는 인터넷이 더 재밌다 ^^;>

 

기대했던 쉘랄레 계곡은 다소 실망이었다. 깨끗한 물이 적당한 수량으로 흐르는, 골이 깊어 규모가 제법 되면서도 한적한 계곡을 기대했는데, 물줄기를 따라 우리네 유원지마냥 레스토랑이며 카페 따위가 이미 여럿 들어찼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당에서 물줄기를 안고, 말하자면 식탁에 앉아 발을 물에 담군 채 음식을 먹을 수 있다거나, 혹은 흐르는 물을 바로 옆에 두고 술을 마실 수 있다거나 뭐 그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경치 좋은 계곡가 바위턱에 엉덩이 붙이고 노가리를 깔 곳 찾기가 마땅치 않다. 결국 계곡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도로 낑낑 올라와야 했다는.

 

 

 

하지만 이 마을 인심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어서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주택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마치 고 동네 공용 오븐이라도 된다는 듯 길거리에 만들어 놓은 화덕에서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뜨끈뜨끈하니 막 구워낸 라마준(Lahmacun ; 터키식 피자?)을 우리에게 먹으라 주시는 것이었다(그것도 너무 뜨겁다며 바깥쪽으로 약간 식은 두터운 빵으로까지 감싸서!). 안타키아 지방 음식이 매콤하다더니 까다로운 김원장마저 입맛에 맞는다며 맛있게 먹는다(절대 공짜라서 맛있는게 아니다). 

 

 

비록 터키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우리 상상 속의 터키 모습은 아무리 둘러봐도 찾기 어렵다. 우리가 들고 있는 가이드북에 따르면 터키 GDP가 3,900불 정도라고 하는데 현지 모습이나 물가가 도저히 3,900불의 나라라기엔 만화 같다. 궁금증을 못 이긴 김원장이 (역시나 공짜 무선) 인터넷을 뒤져 터키의 작년 GDP를 찾아낸다. 역시 그랬다. 2007년 터키의 GDP는 무려 9,400불! 그렇다면 최근 몇 년새 근 3배에 달하는 성장을 한 것이다(터키에 투자할걸 ㅋㅋ). 어쩐지… 그러므로 아쉽게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터키에 대한 그림들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온 것이겠지. 2002년, 그 때 여권만 안 잃어버렸어도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왔을텐데).

 

앞으로 터키를 좀 더 겪어보면 더 잘 느끼게 되겠지만 터키가 과연 (내가 그려오던) 중동인지, 아니면 (그들이 원한다는) 유럽인지 정말 관심깊게 지켜볼 일이다(참, 내가 터키어는 전혀 모르지만, 오늘 터키 TV 뉴스를 슬쩍 보다보니 며칠 전부터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전면 금지된 모양이다. 여기가 술을 안 마시는, 대신 담배를 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임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 역시 놀랄 노자). 

 

 

@ 쉘랄레 계곡에서 하르비예 메인쪽으로 나가다 왼편으로, 전망 좋고 시설 좋은 펜션이 있어 구경가 보았다. Huzur aile pansiyonu(주인 Sabri Ezer Suleyman & Zuher Ezer)이 그 곳으로 성수기 때는 1박에 120리라(혹은 100달러)에 이르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 묵고 있는 펜션과는 제법 등급 차이가 나는지라 내일부터 이틀을 묵는 조건으로 총 80리라(얼마를 깎은건지 ^^; 역시 비수기가 좋아)에 네고를 쳤다. 그래놓고 결국 내일 하르비예를 뜨기로 -_-; 재차 마음을 바꿔 먹으면서 다시 예약 취소를 해야 했지만, 여하튼 이 곳을 하르비예 추천 숙소로 올리는 데는 이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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