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에 운행하는 기차표를 구입한 탓에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_-; 하루에 서너 번 밖에는 라타키아-알레포간 기차가 오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그조차 express serviceslow service로 나뉘는 바람에 급행 시간대를 고집하다 보니 평소 기상 시간보다 제법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알람 맞춰놓고 기상하고 숙소에서 택시까지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기차는 거의 정시 출발, 이른 시간이라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타더라.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훌륭한 기차 내부(한국산이라고 쓰여있던데 설마 진짜 한국산? -_-).  

 

 

여기서도 여지없이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의 초상을 만난다. 저 미래 지향적(?)인 45도 상방 시선 처리.

 

<벼락치기여, 영원하라!>

 

시리아랑 터키랑 가까우니까 전세계적으로 소문난 특급 버스 서비스를 자랑하는 터키의 영향이 여기 시리아 버스 시스템까지 미쳤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은근 기차도 서비스가 좋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려 터질 지경인 주변인들의 눈동자들 세례도 즐겁고.

 

가이드북에서는 이 구간 기차 여행을 extremely comfortable and the scenery is stunning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익스트림리인지는 몰라도 편안하고, 스터닝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로 미소를 지어내는 풍경들을 지나게 된다. 여기가 내가 상상하던 시리아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풍경만 보면 한적한 남동유럽 시골 마을스럽다), 아니, 그러니 내가 그간 상상해왔던 시리아의 모습들은 실제 시리아의 현실과는 그만큼 동떨어져 있었던 거였겠지.

 

가이드북 지도상 알레포 기차역은 지도에 표기되지 않는 외곽이었던지라, 이번에도 하차하면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 "대세를 따르라!"를 택했다. 승객들이 가장 많이 나가는 방향으로 우리도 그들을 따라 따라 쫄래쫄래. 보통 이렇게 따라 나가면 기차역 정문 앞이고 거기에선 사통팔달로 통하는 교통편이 - 아니면 택시들이라도 주욱~ - 있기 마련인데, 어라, 알레포는 예외다.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곳을 따라갔더니 커다란 역사 앞 광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슨 작은 역 쪽광장스러운 곳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광장에서 차를 타는 것이 아니고 맞은편 골목길을 따라 모두들 걸어 내려가고 있다. 슬슬 당황스러워지는 시스템. 하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데야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우리도 그냥 계속 그들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얼마간 걷자 작은 로터리가 나타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마중 나온 가족이나 친지들의 차와 도킹, 총총 사라지거나 합승 택시를 잡아 타거나 하는 식으로 하나씩 둘씩 이 자리를 떠난다. 여기가 바로 일반적인 역전 기능을 하는 곳인 듯. 

 

대도시의 특성상 이 나라가 아무리 이방인에게 친절한 시리아라고 해도, 여기서 커다란 배낭을 멘, 반벙어리 외국인인 우리가 합승 택시를 잡아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마도 운전사 아저씨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듯 싶지만, 겨우 이미 한 승객이 타고 있던 택시에 올라타고 지도상 저렴한 숙소가 몰려 있다는 신시가지 지역 어드메까지 오는데 성공한다(택시비 50파운드). 여행을 하다보면 어떤 날은 대체 여기가 집이야, 외국이야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어떤 날은 매번 도전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댓바람부터 이렇게 부지런히 찾아왔는데 오늘처럼 찍어놓았던 숙소의 방이 정작 확인해 보니 마음에 안 들고, 지도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차선책으로 삼았던 숙소들을 차례로 찾아가 봐도 모두 방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정말 도전 100곡에 나갔는데 생판 모르는 노래 전주가 흘러나오는 환청이...  

 

 

결국 처음에 들렀던, Hotel Al-Gawaher로 돌아와 마음에는 썩 들지 않지만 좁은 트윈룸 하나를 잡는다(700파운드. 화장실 별도. 론리플래닛에 거의 극찬에 가깝게 소개된 숙소의 직원들에게서 종종 접할 수 있는, '너 아니어도 손님 많다'는 식의 대응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던 곳. 장점이라면 아리랑 채널이 잡히는 TV가 있다는 것). 아까 찾아왔다가 너네 집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런가, 직원들은 우리를 더욱 티껍게 대하는 것 같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이 상황에서 꼬리를 내려야 하는 쪽은 당연 우리 쪽인걸. 

 

@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전제 아래, 내 보기엔 어쩐지 건너편 블록의 Tourist Hotel이나 Hotel Somar가 더 나아 보였다. 물론 이들 모두 방이 없었기 때문에 방 구경을 못 해봤으므로 내가 묵었던 Hotel Al-Gawaher와 실제적 비교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Hotel Al-Gawaher는 방이 남아 있는데 걔네들은 방이 없다는 사실에서 더 그렇게 느껴진걸런지도.   

 

여하튼 이제 시리아 여정상 마지막으로 삼은 도시, 시리아 제 2의 도시 알레포에까지 이르렀다. 다마스커스에 이은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터키가 지척으로 가까워서 그런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물동량이 많은 것 같았다. 돈이 더 많이 도는 곳이랄까, 뭐 그런 느낌. 앞으로 살면서 시리아에 다시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다시 찾게 된다면 그 때 알레포는 또 얼마나 화려하게 변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려나. 

 

방에서 한숨 돌리고 난 뒤 구시가지 탐방에 나서기로 한다. 시리아에서 꼭 봐야할 것 몇 가지 중 항상 알레포의 수크(시장)는 그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워낙 건축이니 유적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지만, 시장만큼은 그 무슨 볼거리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알레포의 수크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기대 만빵 하고 신발끈을 고쳐 맨다.   

 

<알레포 성의 한 자락. 규모가 상당해서 치맛자락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일일듯>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알레포의 수크는 거의 관광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차라리 오가는 길에 들렀던 현지인들 많은 시장이 더욱 흥미로웠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건, 상인들 중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심지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오더라는 것이지. 뭐냐, 이 예상치 못했던 시츄에이션은.

 

내가 만약 루트를 반대로, 즉 터키쪽에서 시작해 시리아-요르단-이집트식으로 내려가고 있었더라면, 시리아 알레포의 수크는, 그야말로 중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쿠웨이트를 시작으로 이란,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 예멘을 거쳐 이집트, 요르단을 지나 여기 시리아 꼭대기에 이르렀으니 그동안 이름난 수크란 수크는 모조리 들렀던 데다가, 며칠 전만 해도 다마스커스 구시가지를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며 히히덕거렸던 터라 감흥이 한참 떨어지는 처지일 수 밖에. 그러니 이 다소 실망스런 감흥이 어찌 알레포 수크만의 문제겠느냐. 

 

뭐 여하튼 이런 빈곤한 핑계거리를 이유로, 어딘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썸씽 스페샬을 찾아 미로 같은 수크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도(상인들이 종종 우리들을 저지하곤 했다. "이봐요, 그 길은 막혔어요!") 지금에 와 보니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은 것이 없다. ㅎㅎ 그나마 달랑 한 장 남아있는 아랫 사진은, 남아있는 추억마저 확 희석시킬 정도로,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_- 어찌 그 하고 많은 그럴싸한 수크의 활기찬 모습을 두고, 여기를 찍었을까?

 

 

@ 알레포 수크의 골목 골목이 다 이렇다고 상상해선 절대 안 된다. Bab Antakya 방면으로 진입, 알레포 성을 향해 동쪽으로 나아간다고 치면, 초입 부분은 아마 알라딘 만화에 나오는 옛 수크와 비슷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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