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마에서 그저 퍼져 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하더라도 며칠이고 우습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 여행자의 신분으로 그냥 퍼져 놀다보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보골보골 일어나는 그 넘의 죄책감 때문에 -_-; 오늘은 "크락 데 슈발리에"를 다녀와주기로 했다.

 

하마에서 크락 데 슈발리에까지는 직통으로 연결되지 않는지라 우선 홈스로 간 뒤(엇, 여기까지만 기록이 남아있고 그 다음부터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이제 이후의 여행기들은 순전히 나의 이 처절한 기억력 -_-; 에 힘입어 글을 써나가야 하는 셈이다. 부디 소설이 되진 말아야 할텐데) 그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또 어찌어찌 가라고 숙소 방명록에 써있길래 흠, 이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숙소를 나섰다.

 

문제라면 오늘이 금요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고,

금요일은 이들의 공휴일이라 모든 버스 배차 시간이 하염없이 벌어진다는 것.

그게 어떤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하룻밤 더 하마에서 뒹굴다가 다음날 크락 데 슈발리에로 갔을텐데, 우리는 당연 무식했고, 그래서 용감했으며, 또 하나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첫 에피소드,

 

하마 시내에서 하마 터미널까지 운행하는 시내 세르비스(=service) 버스도 한참을 안 다녀서,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이상한 봉고(=미니버스) 따위를 얻어탔는데,

알고보니 이 봉고는 시내와 터미널간을 운행하는 노선이 아니었으나,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기꺼이 우리를, 단지 우리 둘만을 태운 채, 터미널 근처까지 쒹쒹 달려주셨다. 더욱 감동먹었던 사실은 아저씨가 우리에게 "We are friends!"를 외치며 끝내 차비를 안 받으셨다는 것.

자신의 일처럼 우리를 터미널까지 데려다 줄 차를 수배해 준 주민들이나,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면서까지 우리를 무료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신 것이나 참... 우리에겐 이미 잊혀진지 한참된 그 가치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승객이 꽉 차야 떠나는 시스템 덕에, 중간 경유지인 홈스의 버스 터미널에서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여하튼 버스는 달리고 달려 우리를 크락 데 슈발리에 발치에 내려 놓았다. 입장시 학생증으로 할인을 받았던가, 어쨌던가. 

 

 

 

 

 

 

크락 데 슈발리에 성은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를 떠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의 모델이었다나 어쨌다나 해서 시리아에서는 더욱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는데, 아시다시피 나는 역사나 건축이나 다 젬병이고, 파키스탄 훈자를 여행하면서 마찬가지로 이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은 전혀 하지 않는 상 게으름뱅이인지라, 과연 내가 한국에 돌아가 천공의 섬 라퓨타라는 만화를 찾아볼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의심스러워했던 것 같다(한국에 돌아와 역시나 까마득하게 이 만화에 대해 잊고 있다가 어쩌다 친한 동생 하나가 이 동네를 패키지 여행하고 돌아와 본인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녀 역시 크락 데 슈발리에를 방문하고 돌아와 사진을 한가득 올렸던데, 사진 설명으로는 온통 역사에 관련된 것들뿐이더라. 그러나 한국말로 읽어도 끝내 잘 안 와닿았다는 슬픈 사연 T_T)  

 

 

 

 

 

 

 

그래서 성 자체 보다는 성곽을 내 두 발로 빙글 두르며 내려다보는 경치가 더욱 만족스러웠고,

(보통 성, 이라하면 당연 전망이 좋을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리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라지만 그에 비하면 관람객이 적은 것도 매우 맘에 들었다.

(이 역시 악의 축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시리아가 지닌 태생적 장점, 아니, 이건 내게만 장점이고, 시리아 입장에선 단점이겠지)

다만 어울리지 않게 성 윗층 한 가운데에 큼지막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마음에 안 들었고,

그 레스토랑에서 모락모락 매력적인 향을 풍겨대며 고기를 구워대고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으며,

그 메뉴 가격이 비싸다는 것 또한 마음에 안 들었다. -_-;

 

 

 

 

 

 

 

 

 

이제 다시 하마로 돌아가야 할 시간, 성 구경이야 아무런 문제 없이 즐겁게 마치고 나오는데, 성밖 주차장에서 세르비스 한 대가 눈치 빠르게 호객을 해온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차량이라곤 자신의 이 차, 오직 한 대 뿐이며, 이 차를 놓치면 이젠 버스가 없단다.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우리를 꼬시네. 이미 이 곳까지 오면서 금요일 이동의 쓴 맛을 충분히 본지라 어지간하면 이 차를 타고 홈스까지 가볼까 싶었지만, 그 높디 높은 가격에서 흥정도 안 되는지라 나로서는 이 차에 섣불리 올라탈 수가 없다. 혹 차비를 share할 만한 다른 여행자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관람객 대부분은 모두 커다란 버스를 빌려 타고 온 단체 여행객들인지라 그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한다. 주차장이 아닌, 산 아랫 마을로 걸어가 현지인들을 위해 정기 운행하는 버스편을 찾아보는 것. 설마하니 저 버스가 마지막이겠어? 사실 저런 식의 속임수 호객은 이미 겪어볼 대로 겪어온 터였다. 우리는 걸어서 성 아래 첫 마을로 내려온다. 그러니까 이게 두번째 에피소드의 시작이 된 셈이지.  

 

 

룰루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성 아래 첫 마을까지 내려왔으나 생각보다 마을은 썰렁하다. 겨우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을 만나 더듬더듬 이야기를 나눠보니, 불행하게도 아무래도 차가 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대신 산 아래 다른, 좀 더 큰 마을을 일러주며 그 곳에 가면 버스가 있을거라고. 흠... 그럼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우리는 그 마을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마침 내리막길인데다 주변 경치까지 매우 아름다우니 그까짓껏 트레킹하는 셈 치면 될 것이고, 찻길을 따라 걸어 내려갈테니 혹시 지나가던 빈 차가 우리를 발견하곤 얼른 태워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시리아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쯤에서 또 한 번의 문제라면, 지름길을 찾는답시고 마을을 가로지르다 어느 순간 길을 잘 못 들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아무리 둘러봐도 아까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메인도로는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고,

여기가 대체 어디쯤인지 도무지 위치 가늠을 할 수 없는 가운데,

가뭄에 콩 나듯 지나치는 차들은 대부분 반대편 차선을 밟고 올라가는 중이고,

그나마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주행하는 차 몇 대는 이미 낑기도록 승객들이 탄 상태고,  

아침부터 이동에 시간이 늘어진 탓에 이러다 해지기 전 하마로 못 돌아갈까 마음이 불안해져 온다는 것과

어쩌다 겨우 만나는 마을 사람들은 버스에 관련해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으면서도 차를 대접하겠다며 우리를 붙들려고 하는 난처한 상황까지...

 

그래서 알게 되었다. 아무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진정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오늘내 하마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은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코딱지만한 불안이 얼마나 나 자신을 흔들어 댈 수 있는지를.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는구나, 생각이 몇 번이고 들 무렵, 그래도 바닥 차도에 서는데까진 성공을 했다. 버스는 물론 여전히 콧배기도 안 보이지만.

다들 기도하러 갔나, 주변을 둘러봐도 길을 물을만한 주민 하나 보이질 않는다. 우리는 서로 애써 불안한 속마음을 감춘 채 겉으로는 밝은 척, "곧 버스가 지나가겠지, 뭐~"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버스는 개뿔,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사실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지조차 몰랐지만, 막연히 오른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다 그 길에서 내부에 승객들을 터질 듯(그것도 외국인을 포함해서) 태운 채 손 흔드는 우리를 매정히 지나치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안 되겠다, 일단 왼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 마을까지 가서, 다시 오른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뭐 그런 의견까지 개진을 했던 것 같다(외국인이 타고 있으니 오른편으로 가는게 맞을거야~ 하면서).

 

그러다 문득,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현지인 둘을 발견한다. 오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현지인들이 찻길에 서 있다는 이야기는 분명 이 길로 버스가 지나간다는 소리렷다! 우리는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간다. 아이쿠나, 이런 대박이! 그 중 한 분은 영어가 가능하시다. 와하하~ 그 분 말씀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이 홈스행 맞고, 여기에 기다리고 서 있으면 버스가 올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같이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옳다쿠나! 우리는 드디어 한시름을 놓는다. 

 

나란히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눠보니 영어가 가능한 분은 이 동네 사시는 분으로, 미국에서 6년인가 살다 오셨다고 한다. 지금은 이 곳에서 영어를 가르치신다고. 또 다른 분이 이 분을 만나러 이 동네 놀러오셨다가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여 배웅을 나온 것이라 하신다. 미국에 한참 살다 오신 분이고 현직 영어 선생님이라 하지만 사실 알아듣긴 좀 어려운 발음이라 대화가 원활하게 흐르진 않는다. 물론 우리보다는 유창하게 문장을 구사하시기 때문에 주로 우리는 질문에 답하는 쪽이 된다. 남한과 북한, 한국의 경제 문제, 선생님 월급, 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또 한 대의 버스가 만차인 상태로 그냥 휘~익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는 또 한 동안 감감 무소식. 결국 영어 선생님이 우리 셋을 남겨두고 당신 집으로 돌아가시는가 싶더니, 어라, 본인 차를 끌고 나오셨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겠다는 것. 

 

그 분이 매우 아끼는게 분명한, 아직도 비닐을 채 안 벗긴 자가용을 미안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타고, 우리는 지중해변과 홈스를 잇는 고속도로변까지 편하게 달린다. 비록 다리 아프도록 오랜 시간 걷고,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렸지만, 이로서 결국 오.늘.도. 해.피.앤.딩.

고속도로변 정류장 근처에 아슬아슬 차를 세우고 마침내 우리 부부와 지인이 홈스행 세르비스에 무사히 몸을 싣는 것을 본 뒤에야 다시 본인 차로 돌아가는 그 분의 뒷모습이 정말이지 꽃보다 아름답더라.

 

天空의 城 크락 데 슈발리에에는 天使가 산다.

 

<그 고속도로에서 발견한 표지판. 유럽에서 남아공까지 차로 쭈~욱 달려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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