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에 머물 때만 해도 시리아에서 얼마고 더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남아있는 시리아 돈, 다 쓸 때까지 있자!고 호기롭게 외쳤었지), 알레포에서의 이틀 밤을 보낸 뒤의 김원장 마음은 어느새 바뀌었나 보다. 갑자기 오늘 터키로 뜨겠단다.

 

어제 알아본 시리아-터키간 국제 버스 중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놈도 있다 했으니 그 놈을 잡아타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짐을 꾸린다. 그리고 시간 맞춰 터미널에 나가보니 요일별로 출발 시간이 다른지, 오늘은 11시 버스가 없고 지금으로부터 가장 빨리 출발하는 버스는 12시 30분 버스라고 한다. 택시 아저씨들은 계속 택시를 타고 가라며 호객을 해대고, 실제 가격도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버스의 그것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버스는 1인당 350파운드/택시는 500파운드)이지만, 아저씨들의 거짓말이 싫어서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한다(시리아 알레포와 터키 안타키아를 오가는 버스는 회사별로 제법 그 수가 된다. 그런데 택시 아저씨들은 무조건 버스가 없네, 버스가 끊겼네 하면서 버스 회사 사무실 앞에서 우리를 가로 막으려 든다).

 

버스 티켓을 끊고 출발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길래 PC방에 들러 <이비인후과 개원의 협의회> 사이트에 들어가 어제 시리아 여행에 대해 올린 글의 반응을 살펴본다. 흠… 어제 올린 글에 대해 아주 난리가 났네. 댓글을 본 김원장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모양.

 

환전을 어디서 할까 하다가 국제 버스 차장 아저씨에게 남아있는 시리안 파운드를 터키쉬 리라로 환전하기로 한다(6800시리안 파운드=170터키쉬 리라). 사실 두 화폐 간의 정확한 환율을 모르겠는지라 쌩까고 아는 척, 175리라를 달라고 살짝 우겨보지만 아저씨는 정색을 하며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한다. 옆에서 이런 나를 보며 김원장이 그냥 손해 좀 본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라네.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냐면서. 옆에서 남말하긴 쉽지 -_-;

 

시리아의 알레포와 터키의 안타키아는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이다(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놓고 보면 알레포에서는 안타키아가 훨씬 가깝다). 알레포를 떠난 차는 1시간이 채 못 되어 시리아-터키간 국경에 도착했다. 나름 큰 교역 지대가 형성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국경 지대의 풍경은 오히려 요르단과의 그것보다도 규모가 작아보인다. 하지만 영어로 작성된 여행자를 위한 배려문을 여기저기 붙여둔 것으로 보아 시리아의 개방에 대한 의지랄까, 그런게 엿보이는 국경이었다. 시리아 출국은 간단했다. 차장 아저씨는 진작 우리의 여권을 거두어가 심사대에 내밀어 두었고 우리 말고는 승객 대부분이 시리아인이었는지라 오히려 외국인 줄의 출국 심사가 빨리 끝났다.

 

터키측 입국 직전에 차 안의 승객들은 보루 담배 케이스를 뜯어 구겨버린 상자는 국경지대에 마구 버려버리고 담배갑들을 나눠 여기저기 분산시켜 숨기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그 이전에 한 아줌마 하나도 우리에게 한 보루 맡아 달라 부탁했다가 거절 당하기도 했다). 이후 터키측 세관에서 짐검사를 할 때 보니 비록 건성이기는 하지만 나름 철저히 검사하는 척 하더라. 차에 있는 모든 짐을 다 내리게 하고 버스 안을 샅샅이 살피고 몇 승객의 짐은 모두 열어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다행히 특별히 걸리는 사람 없이 짐 검사를 마치고 터키 국경 사무소를 벗어나는 길, 우리에게 담배 한 보루를 부탁했던 아줌마는 맡아줄 다른 승객을 구했었는지 한 아저씨가 입고 있는 옷의 모든 주머니에서 한 갑씩 담배를 꺼내어 아줌마에게 돌려준다. 그 중 압권은 바지단을 올려 양말 안에까지 숨겨둔 담배 두 갑.

 

, 터키 입국 절차는 조금 황당했다. 한국인이나 시리아인이나 모두 비자가 필요없어서 그런지 입국 사무소가 아닌, 꼭 무슨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징수대 같은 곳에서 입국 도장을 받았다(비자가 필요없는 나라에 왔다는 것이 안도감 같은 것을 약간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의 여행기에 터키를 여행하다 시리아로 넘어오니 시리아가 가난한 나라라는 분위기가 팍 풍겼다는 문장이 있어 은근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대체 터키가 살면 얼마나 잘 살기에? 시리아가 어디가 어때서. 다들 잘살고 있구만, 뭐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그만큼 시리아에 대해 만족을 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터키에 넘어오자마자 몇 가지 반가운 것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첫번째는 문자. 그렇다. 터키는 알파벳을 쓴다(물론 약간의 변종이 존재하긴 한다만). 그러니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비슷하게 읽을 수는 있다는 소리(물론 글씨를 쓰는 방향도 우리처럼 왼쪽에서 오른쪽). 더불어 숫자. 역시 우리와 같은 아라비아 숫자를 쓴다. 그러니까 지난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지렁이) 글자니라~는 이제 안녕이 된 것이지(아아, 그러나 여기에 바로 함정이 있었으니… 이제 겨우 입에 익은 아랍식 인사말과 감사 표현들은 어찌하라고. 터키는 완전 다른 말을 쓰네 그려). 그리고 땅. 아, 글쎄 얘가 얘가 때깔이 다르다. 말하자면 요르단에서 시리아로 넘어올 때 보았던 그 푸르름은 여기에 비하면 껌이었던 것이다. 시리아에서 터키로 넘어오면서 나는 ‘초원’ 혹은 ‘숲’, ‘들판’, ‘밭’ 따위, 한동안 잊고 지냈던 단어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 색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집이었다.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 외벽에 페인트칠부터 한다는 듯, 시리아의 통일성 강한 -_- 흙빛이 주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집들이 우리를 앞다투어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리아를 떠난지 3시간 남짓, 우리는 터키 안타키아 외곽의 터미널, 터키식으로 말하자면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비록 터키가 지금껏 여행해 온 나라들과 말도 글도 다르다해도, 그래도 사람들의 친절함만큼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곳 아닌가. 오토가르 밖에서 돌무쉬라고 불리우는 시내행 미니버스를 타고(1리라) 찍어놓은 숙소의 주소를 보여주니 젊은 총각 차장이 고개를 끄덕여 대며 어디쯤인지 알겠단다. 영어가 아주 짧은 청년이지만,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말끝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터키어를 할 줄 아느냐, 숙소는 여기서 좀 더 가야한다는 둥 열심이다. 짜식, 귀엽네.

 

승객 중 한 아저씨가 우리가 간다는 숙소 위치를 알고 있다며 함께 하차하면 된다는 눈치다. 얼씨구나, 아저씨를 따라 좁은 골목길, 일명 지름길로 숙소를 찾아가는데, 행인들과 몇 마디 나눠보던 아저씨 왈, 우리가 가려는 숙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러시며 당신이 다른 좋은 호텔을 알고 있다며 추천해 주겠다 하시네.

 

그렇게 아저씨가 우리를 안내한 호텔은 척 보기에도 열라 좋아보이는 곳이다. 아니나다를까, 1박에 90리라란다. 1리라를 800원 못 되게 잡아도 하룻밤에 7만원이나 하는 셈. 우리가 비싸다니 아저씨가 뭐라뭐라 하시며 80리라는 어떠냔다. 죄송하지만 그것도 비싸요, 그냥 다른 싼 곳 알아볼래요. 아저씨는 그 길로 우리 인사를 받고 제 갈길을 가시고, 우리도 짐을 다시 둘러메는데, 이번에는 호텔 언니가 우리를 붙든다. 그렇담 70리라는 어때요? (뭐야, 그럼 그 아저씨, 혹시 호텔측에서 수수료 받으시려는 거간꾼이셨으? -_-)

 

보여주는 방을 보니 홍콩에서라면 20만원을 줘야할 것 같은 수준이다(물론 기타 부대시설은 거의 없지만 방 수준만을 놓고 본다면). 조식까지 포함된 가격이라는데… 에라, 우리 오늘 여기서 그냥 자자! 파박, 지른다.

 

 

좋은 숙소를 잡아놓고 희희낙낙하다가(역시 터키의 인프라는 훌륭해!를 외치며 ^^;) 안타키아 시내 구경을 나가본다. 김원장은 이개협의 반응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답글부터 하나 올리자고 한다. PC방을 찾아가보니 속도도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하다(1리라/hr). 더듬더듬 자판을 치다가 터키에는 알파벳 i에 윗점이 없는 문자도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화려한 색상의 안타키아의 좁은 골목에도 물건들이 넘쳐나고 거리에는 한국산 자동차들이 싸악~ 사라졌다. 젊은 여성들은 스카프 따위 집어치운지 이미 오래인듯 하고 여학생들은 달랑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다(나도 오늘부터 반팔 입어야지 ^^). 아니, 그 모든 풍경 자체가 마치 유럽의 어느 거리와 비슷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가 진짜 터키 남쪽 끝 안타키아야? 유럽이랑 한 다리 걸치고 있다는 이스탄불이랑 한참 먼데도?

 

거기에 더해 수퍼에 가보니 오잉? 맥주를 판다. 시리아에서도 술을 파는 식당이 간혹 있었지만, 역시나 무슬림이 태반인 터키에서 이렇게 대놓고 술을 판다니 이거야 말로 뜻밖이다. 가격표를 쭉 둘러보니 시리아에서 300원에 마시던 코카콜라가 여기선 800원이다. 과일값도 야채값도 시리아의 두 배를 우습게 넘나들고… 이런게 과연 ‘잘산다’는 것인가?

 

@ 안타키아(일명 하타이)는 터키의 이름난 디저트 중 하나인 ‘퀴네페(Künefe)’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시내에는 퀴네페 파는 가게가 많다. 배가 불러서 시도를 못해 봤는데 1Kg에 12리라 정도 하는 것 같다. 이것도 비싸네…

 

@ 숙소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쉬쉬 타욱(닭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워주는) 세트 메뉴를 하나 포장해 왔는데(호텔방에서 편히 앉아 맨유-첼시 결승전 보려고 ㅋㅋ), 직원 애들이 우리를 어찌나 친근하게 대해주던지(무조건 정량보다 많이 싸주기만 하면 좋아라~하는 나) 말만 통했음 무지 좋았을성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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