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 맑다가 흐려짐

@ 이동구간 : 자가트(1300m)-참제(1430m)-탈(1700m)-다라파니(1860m)

@ 총 소요시간 : 8시간 20분(순수 걸은 시간 6시간 40분) 

 

<방 안에서 바라본 자가트 골목길>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데다가 걷기 운동도 제법 했겠다, 방까지 나름 아늑하니 푹 잘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내다보니 일찍도 출발하는 바지런한 트레커들 몇이 보인다. 물론 트레커들보다야 짐을 한가득씩 싣고 발걸음을 옮기는 노새들이 훨씬 많지만.

 

<예쁜 사과 팬케이크, 맛은 그다지 예쁘지 않다> 

 

아침은 무슬리와 사과 팬케이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밀크티. 무슬리는 외국 여행하면서 처음 먹어보고, 그러면서 입에 붙고,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챙겨 먹는 메뉴다. 지금도 생각나는 여행 중 최고의 무슬리는 남아공 사비의 한 숙소(http://www.floreat.co.za/)에서 아침 식사로 먹었던 것. 그 이후로는 항상 그 때를 떠올리며 기대에 차 무슬리를 먹게 되지만, 역시 이번에도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차가운 우유를 선호하는 내게 함께 말아 내 온 뜨끈한 (그리고 매우 멀건한) 우유도 그렇고. 

 

사실 네팔 트레킹을 하면서 마주치는 작은 가게들의 먼지 뽀얀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스파게티 국수며, 시리얼, 무슬리 등의 수입품들이 대체 언제적부터 이 자리에 와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 하지만 그런 음식들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그 누군가에겐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큰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웬만해선 음식을 남기지 않을 뿐더러, 입 짧은 김원장이 남긴 음식까지 다 먹어치우는 나지만, 이 무슬리는 차마 다 먹지 못하고 일어난다. 맛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개인적인 산행 경험으로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걷기 부담스러워지는 데다가(몇 년 전만 해도 안 그랬던 같은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쿨럭,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고도까지 올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천천히 밥을 먹고 있는 우리 시야에 슬금슬금 앞서 지나가는 트레커들이 자꾸 들어오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히 생겨나는 조바심이랄까. 이는 분명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성수기의 큰 단점 되시겠다.  

 

 

오전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자, 우리도 이제 출발이다. 아이고, 얘네들부터 다 빠져나가야 우리도 갈 수 있겠네. 차례차례 순서대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롯지가 많아 트레커들이 그만큼 여럿 묵는 마을 안에선 알게 모르게 그들보다 먼저 길을 걷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지만, 정작 발빠른 그들이 내 눈 앞에 사라지면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냐는 듯 속도가 두웅실~ 늘어지게 된다. 게다가 작은 집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발걸음은 더욱 느려지고 만다.  

 

 

다음 마을인 참제(Chamje)에 올라 약 30분간 쉰다. 은근 오르막길이었는지 스프라이트 한 병 다 마시고도 일어나기가 싫어 뭉기적거린다. 언제 말을 섞었는지 김원장이 이 가게 주인의 형제중 한 명이 한국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 어디에 있는데요? 부산이란다. 벌써 9년째. 그동안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그에게서 아득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 가게에서 나는 프랑스에서 온 나홀로 트레커 아저씨 하나와 대화를 나눈다. 내용이래야 별 게 없다. 아저씨는 묻고 나는 답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스프라이트는 얼마 줬냐, 물은 얼마 주고 샀냐, 나는 저 아래 현지인 가게에서 그 반 가격에 샀다, 스프라이트가 그 가격이라면 나는 못 마시겠다 등등... 짠돌이 아저씨다(내 머릿속엔 자동적으로 프랑스 물가가 떠오르고 있다). 우리 대화를 엿듣던 가게 주인이 매몰차게 한 마디 던진다.

 

"여기 고도가 얼만데요!"

 

가게 주인 말이 맞다. 참제에서 사먹는 음료 가격이 카트만두와 같을 수 있나, 하지만 짠돌이 아저씨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나는 이미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 온 그 아저씨가 자가트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의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물을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니까. 나는 그냥 배시시 웃는 것으로 말 꼬리를 말아올린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이 곳에도 외국인용 가격이 따로 존재하는구나.

 

참제를 채 뜨기 전에 출발 전 베시 사하르에서 얼핏 만나 인사를 드렸던 한국인 팀을 다시 만난다. 팀이라고는 하지만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셨는지 서로 약간 서먹서먹해 보인다. 제일 먼저 참제에 도착한 남성분과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여성분과는 체력에서도 차이가 제법 나는 것 같다. 벌써 두 번째니 앞으로도 자주 뵙게 될 것 같다. 오늘도 우리가 조금 먼저 일어난다.  

 

<나에게도 엄마가 못 쓰는 수건이나 런닝 따위로 여기저기 꿰매 만들어준 걸레를 들고 왁스칠한 나무 바닥을 허벌나게 닦아대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어쩐지 초등학교때를 학창 시절이라 일컫는 것은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다만 여하튼. 참제의 작은 학교, 그리고 그 학교만큼이나 작은 아이들이 복도를 걸레질하고 있었다>  

 

 

이젠 지도 속에서 다리를 발견하면 아, 이 쯤에서 조금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겠구나 감이 온다. 참제를 넘어서도 다리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역시나 참제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조금 걷자 길~다란 현수교가 또 나왔다. 먼저 이 길을 걸으신 선배님들께서 한 바퀴 도는 동안 이런 다리를 수십 개 건넌다고 하셔서 나는 처음에 '다리 수를 한 번 세어봐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물론 첫 날부터 그 결심은 까먹었지만(안 센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거기서 뭔 지랄같은 집착이람 -_-;). 

 

이 다리를 건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바위가 만든 자연 그늘이 나타났다. 그 곳에서는 엄청나게 유창한 영어로 인해 미국인이나 영국인일거라 짐작되는(그러고보니 캐나다나 호주 등지에서 왔을 수도 있는데 왜 그 때는 그 두 나라만 생각났을까) 커플이 쉬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니?"

"한국"

"하하하, 내 말은 오늘 어느 마을에서부터 왔냐는 소리야"

 

그리고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_-; 그래서 샤방샤방 열심히 웃어만 줬지, 뭐. 내 미소의 의미를 눈치채 다음 문장은 일부러 천천히 말해줬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탈(Tal)까지는 급경사야.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좀 쉬었다 가려는거고. 너희도 쉬었다 가지 그래?"

 

그들이 어디서 구입했는지 조금은 탐이 나던, 아주 자세히 제작된 지도를 가리켜대며 바디 랭귀지스럽게 이야기해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어차피 우리는 매우 천천히 걸어올라갈 계획이었고, 쏼라쏼라 해대는 걔네랑 같이 있어봤자 마음도 썩 편치 않을 것 같아 그냥 곧장 걸어올라가기로 했다. 그런 우리 뒤로 커플 중 남자애가 손을 흔들며 소리친 말은 놀랍게도 '아니영~'이었다. 나도 같이 "안녕~" 얘야, 이게 바로 본토 발음이란다.  

   

 

안녕~청년이 알려준 대로, 그리고 이미 그 전에 우리 역시 대충 알아온 정보대로 탈까지 이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면서도 길고 긴 오르막이었고(포터인 풀만에게 물어보니 2시간 정도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어제 나디 바자르에서 바훈단다 오르는 길에 비해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래뵈도 파키스탄에서 라카포시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했던 몸이 아닌가!(http://blog.daum.net/worldtravel/8379142). 실제 나란히 두 코스를 가져다놓고 비교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내 몸은 그 때의 오르막이(그리고 내리막도 -_-;) 생애 최악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길을 오르면서도 김원장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기가 라카포시에 비하면 그래도 껌이지?"

 

이 구간을 보다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윗 사진에서처럼 드디어 설산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트레킹에서 만난 첫 설산. 살짝살짝 보이던 그녀의 하이얀 속살. 

  

 

경사가 심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오르막 구간에서도) 숨이 차게 걷지 않는다'가 김원장의 모토였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헐떡거리느라 정신없어 풍경을 놓친 라카포시에서와는 달리, 이 곳에서는 경치 좋은 곳이 나오면 즐길 여유가 다 있더라. 하지만 그러는새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축지법을 구사하는 풀만은 아예 사라져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안녕 커플은 물론 여러 트레커들이 우리를 앞질러 지나갔다(어디에서건 누군가가 나를 앞지른다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왜 그럴까 -_- 거기다 다리들은 또 쭉쭉 길어가지고 설라무네).  

  

 

 

<김원장이 바라보고 있는 오르막 한 중간의 롯지에서는 제법 수가 되는 트레커들이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오르막 한 중간에서 오르다말고 뭔가를 먹고 퍼지기엔 좀 부담스러워 우리는 곧장 오르기로 했다>

 

 

풀만이 2시간이면 바닥에서 탈까지 오를 거라 했지만, 우리가 천천히 걸어올라온 탓인지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탈은 보이질 않았다. 천천히 올라왔다고 해도 소문대로 힘든 구간은 당연히 힘든 구간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도 한 몫 했다. 그렇게 길고 긴 오르막을 모두 오른 뒤에는 일단 주저앉아 쉬고만 싶더라. 그러나 짜증나게도 편안히 엉덩이를 붙일만한 평평한 바위는 보이질 않았고, 내가 겨우 골라낸 바위들은 해가 너무 내리쬐거나 너무 가까운 거리에 다른 트레커들이 앉아있거나 해서 김원장 맘에 들지 않았다. 대체 사진으로 봤던 탈은 얼마나 더 가야하는걸까. 아무리 목을 빼어 앞길을 짚어봐도 탈이 자리잡고 들어앉을만한 스페이스는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이거 막막하군.

 

 

그런데 놀랍게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그러니까 얼마 더 걷지도 않아, 사진에서 많이 봤던 탈 마을의 입구가 짠, 하고 나타났다. 이런걸 바로 드라마틱하다고 하지.

 

 

남들 사진 보면 이 입구를 통해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탈을 멋지게도 찍었두만, 나는 아무래도 구도가 안 나와 카메라 탓만 하고 말았다. 대신 비로소 김원장과 나란히 양 입구에 걸터앉아 초콜릿을 까먹으며 벌겋게 상기된 채 지나가는 트레커며,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재잘거리느라 주변엔 전혀 관심없는 프랑스팀이며, 벌써부터 다리를 절뚝거리며 저는 아줌마며, 그런 우리 모두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바로 옆 군부대(?) 아저씨들까지 구경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 바로 탈> 

 <탈을 바라보는 것도, 탈에 다가가는 길도 매우 아름답다>

 

 

탈 입구에서 탈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데다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길도 평탄해 보여서 우리 역시 바위 위가 아닌, 좀 더 편안히 쉴 수 있는 탈로 서둘러 가보기로 했다.

 

<앞으로 가야할 길. 무지 길어 보이는데 이게 남은 일정의 겨우 반이라니>

 

탈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마 다음에 이 곳에 다시 오는,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아마도 나는 탈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아니, 사실 탈로 걸어 들어가는 그 당시 내 마음도 그랬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지. 이미 충분히 걸었잖아? 

 

하지만 풀만이 한 숙소겸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오늘 여기서 잘래요?"라 물었을 때 우리는 쉽게 그럴거라 답하지 않았다. 넓은 마당이 있는 숙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오가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고, 상당 수의 트레커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지나쳐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밥부터 먹어보고 결정할께요". 일단 밥을 먹으면 몸이 얼마간 퍼질테고 그렇다면 결정내리기가 훨씬 쉬워지겠지?

 

<점심 메뉴 : 맨밥과 버섯 수프, 그리고 비장의 깻잎 통조림(준비해 올 때 보니 깻잎 통조림에도 일반과 매운 맛 두가지가 있더라. 반씩 샀는데 이런데 오니 매운게 훨씬 맛나다)>

 

밥을 먹는 동안 식당 밖에선 몹시 바람이 불었다. 거기에 더해 예상대로 밥을 먹으니 아픈 다리에 몸은 더욱 무거워졌고. 하지만 이 바람에도 야외에서 밥을 먹던 트레커들마저 채비를 챙겨 다시 길을 떠나고, 화장실 다녀오며 슬쩍 본 이 숙소의 방들도 별로 마음에 안 들고, 오늘의 가장 어려운 구간은 이미 지나왔다는 안도감과 아직도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 바늘이 (나보다도 -_-;) 김원장을 움직이게 했다. 아닌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오늘 만약 탈에서 잔다면 이후 묵고자 하는 마을들의 간격이 어정쩡하게 벌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오늘 다라파니(Dharapani)쯤에서 잘 수만 있다면 이후 일정이 딱 좋을 것 같긴 한데... 지도를 펼쳐놓고 확인해 보니 평면 거리로 따지면 자가트에서 탈까지나, 탈에서 다음 큰 마을인 다라파니까지 얼추 같아보이나, 고도차로 따지자면 전자는 400m요, 후자는 160m 밖에 안 되니 길이 그만큼 평탄할 것 같긴 하더라. 그래, 일단 질러 보는거야. 가다가 정 힘들면 카르테(Karte 혹은 Khotro)라는 작은 경유 마을에서 그냥 자자고!    

 

<마르샹디강이 넘 예쁘게 단장하고 기다리는 마을, 탈> 

 

탈에서 가장 예쁜 숙소라는, 탈 외곽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한 롯지 앞을 지나갈 때 우리의 이런 행위가 욕심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가려고 하는거지? 하루쯤 늦어진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잠시 망설였으나, 눈 앞에 펼쳐진 길이, 정말 다리 근육의 통증을 잊게 해줄 만큼 근사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고맙게도 탈을 벗어나 다라파니에 이르는 길의 초반부는 아름다왔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온화했다. 넓게 펼쳐진 탈에 비해 계곡을 따라 오르는 이 길에선 바람도 힘을 쓰지 못 했고 뜨거운 태양조차 희멀건했다. 이 계곡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길에서는 말 열라 안 듣는 노새 무리를 가진 아저씨와 한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뒤섞여가며 걷기도 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노새들 대부분은 말을 너무 못 알아듣는 것 같다).   

 

 

 

 <풀만이 앞서 건너가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짧은 오르막, 그리고 건넌 뒤 다시 좀 더 긴 오르막. 그 오르막 꼭대기에서 우리도 모르게 멈춰진 발걸음.

 

 

 

계곡이 깊어지고 있었고, 그만큼 우리는 산의 품으로 안겨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눈 앞에 나타난 산, 산, 그리고 또 산. 이 산 너머 어드메쯤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 까마득함조차 한편으로는 멋지게 느껴졌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끝내주는 경치라도 내 몸이 편해야 들어오는 법이다. 실제 이즈음 진행 방향의 오른편 너머로는 어디선가 줏어들어 그 이름이 익은 마나슬루 산군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런걸 시시콜콜 찾아 챙기기엔 몸도 맘도 별 관심이 없었다. 몸이야 탈에서 이미 살짝 맛이 간 다리가 다시 아파왔으니 그랬겠지만, 흥미롭게도 맘 역시 어느 정도 비워져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우리 옆에 딱 붙어서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시시콜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가이드를 고용했다면 분명 그렇지 않았겠지만(그의 설명이 매우 매력적인 자극이었을테니), 우리에겐 우리와 따로 노는, 말그런 얼굴의 어린 포터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나마 그와는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작부터 저 멋진 산봉우리의 이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멋진 산봉우리들이 고개를 들면 보인다는 것으로 족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카르테라는 마을이다. 여차하면 자고 가야지, 생각했던 이 마을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롯지도 두 개 뿐이었나, 어쨌나. 그런데 놀랍게도 한 롯지에서 붙여놓았던, 아래와 같은 광고문이 다음 마을인 다라파니에 이를 때까지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냥 그 집에서 잘 것을 그랬나... 하며 ㅋㅋ>

<보라, 그냥 김치도 아니고 맛있는 김치라지 않은가! 한국인이 김치없음 못 산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을꼬!(아마도 한국에서 일하다 오신 분이 차린 집일 듯)>

 

카르테에서 다라파니에 이르는 오르락내리락 구간이 좀 더 험했다면 아마 나는 카르테에서 멈추지 않은 것을 한참 동안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오후 4시, 아래와 같은 '경축 다라파니 입성' 간판을 발견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바로 다음과 같다.

 

'오오! 탈에서 묵지 않고 다라파니까지 오기를 정말 잘 했어!'

 

 

다라파니에서 묵은 숙소는 마을 입구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 풀만이 어느 숙소에서 묵을지를 고르고 있을 무렵, 지나치던 한 숙소에서 어제 같은 곳에서 묵었던 팀의 포터들 둘이 밖으로 나와 풀만과 우리를 불러대는 바람에(그것도 한국말로, "여기 좋아요~" ^^) 그 곳으로 정했다. 아마 그들 모두 언젠가 한국인들의 포터로 뛴 적이 있는 모양이다. 

 

명칭 : The Seven Hotel

트윈룸 숙박비 : 300루피 (화장실 딸린 방. 샤워기는 있으나 뜨거운 물은 안 나온다. 우리는 천장 울리는게 싫어서 윗층 방을 택했다)

마당의 공용 샤워실 : 핫샤워 가능

특이사항 : 실내 식당에서 위성 TV를 볼 수 있다

 

 

 

방도 그 정도면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앞선 이틀의 숙소에 비하면 처음 화장실이 딸린 방이라 마음에 들었다. 긴 거리 이동에 몸이 많이 피곤하다 생각했지만 오늘 이동 중에 풀만이 먹거리 보관 전용으로 이용하는 우리 부직포 보조가방 손잡이 하나를 끊어먹은지라 - 그러고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이 가방은 튼튼하지 않으므로 부피가 큰 대신 가벼운 물건 위주로 넣어 꾸렸어야 했는데, 나는 내 편의만 생각하고 옷가지는 모두 배낭에, 먹거리는 모두 보조가방에 넣어다녔더니 캔 따위가 잔뜩 들어있는 무게를 그 가방이 견딜리가 있나. 게다가 풀만은 포터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 보조가방 손잡이를 머리에 띠처럼 둘러메고 다녔으니 끊어지는게 당연하다 - 배낭과 보조가방 내용물들을 재정비하다보니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겠더라. 김원장은 한 술 더 떠서 더 늦기 전에 샤워까지 하겠단다. 산 속에서 언제까지 뜨거운 물 사용이 가능할지도 모를 뿐더러 해발 고도가 높아지면 고산병의 위험 때문에 머리를 감는 일도 삼가하라고 하니까 샤워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두자는 심사인 것이다.

 

정원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날이 흐려서 태양열로 물을 덥히지 못 했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20분만 기다리면 뜨거운 물을 따로 준비해 주겠단다. 그래? 그럼 차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지, 뭐.

 

밀크티를 마시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걷기로 덥혀진 몸은 슬슬 식어만 가는데 약속한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거늘 아무런 말이 없다.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 물어본다.

 

"5분만 더 기다리세요"

 

5분을 더 기다린다. 아니, 10분도 더 넘게 기다린다. 김원장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이번엔 직접 주인을 찾아나서 물어본다. 이번엔 10분만 더 기다려달란다. 골이 깊으니 해도 일찍 지는 곳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부실한 옷 차림으로 기다려보지만 끝내 감감무소식. 결국 샤워 직전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에 나와 기다리던 김원장이 참지 못하고 화를 벌컥 내며 방으로 돌아간다.

 

"그래, 그럼 일단 방에 가 있어.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하면 내가 얼른 알려줄께"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준비해 주는 뜨거운 물의 양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박자를 놓치면 그 물마저 새치기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화난 김원장을 대신하여 샤워실 앞에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꽤 쌀쌀하다. 하지만 이 정도야, 괜찮겠지. 다행히도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며 뜨거운 물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도 안다. 그러니 주인도 안절부절일 수 밖에. 그러니까 약속된 시각에 뜨거운 물이 준비되지 못하는 게 꼭 주인 탓만은 아닌게다. 주인과 직원이 번갈아가며 아궁이를 쑤시고, 지붕 위에 올라가 수통을 확인하고, 뜨거운 물이 흐를 연결관들을 다시 매만진다. 내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냥) 뜨거운 물이 아니라 very hot water를 쓸 수 있을거야"

 

그래, 그 '조금만 더'를 또 믿어볼께.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이미 정원엔 어둠이 가득 내려와 있다. 생각보다 날이 많이 추웠던가. 몸이 으시시 떨려오는 것도 같다. 이러다 감기라도 들면 큰일인데... 하지만 오기가 생긴다. 지금까지 얼마를 기다렸는데. 김원장은 화가 많이 났는지 방 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다. 아... 저 화를 어떻게 풀어야하나...

 

나도 모르게 이를 딱딱 마주치고 있는데 드디어 주인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얼른 샤워실로 뛰어가 물부터 틀어본다. 어... 이게 뭐야? 똑.똑.똑. 물이 잘 안 나온다. 휴우, 이번엔 샤워기 공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구를 들고 와 여기 때리고 저기 때린다. 그 통에 주인 아저씨와 직원이 젖는다. 그래도 얼마간 때리니 아까보단 물발이 세지는 것 같다. 주인이 흐뭇해한다. 고마워, 그 물 아래 손바닥을 대어본다. 어랍쇼? 이게 또 뭐야?

 

물은 하나도 안 뜨겁다. 베리 핫 워터가 나올 거라며? 나는 되묻는다. 이게 베리 핫 워터야? 따져묻는 듯한 내 말에 잠깐 표정이 일그러지는 듯 싶더니 주인 아저씨는 말한다.

 

"이 정도면 따뜻하네(This is warm)"

 

따뜻? 이 정도의 온도로 이 날씨에 샤워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는 다시 짜증을 묻힌다.

 

"이 물로 샤워 못 해. 너무 춥다고. 샤워를 하면 감기에 걸리고 말거야"

 

내가 먼저 짜증을 내니 아저씨도 짜증을 내는 건 당연지사.

 

"남들은 다 이 물로 샤워해!"

 

아저씨는 다른 배우들을 끌고 무대에서 퇴장하고 나만 혼자 남는다. 이런 젠장. 김원장에게 뛰어가 일단 상황 브리핑, 최대한 긍정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김원장 손에 그 물이 닿는 순간, 아마도 김원장에겐 오래토록 성질 죽이며 기다린 보람은 커녕, 화가 더 치밀었을 것이다. 낮은 목소리로 김원장이 한 마디 한다.

 

"머리만 감아야겠다"

 

사실 머리만 감는다고 해도 조금 불안한 수준의 온도이긴 하지만... 이런 쇼를 해놓고 머리라도 안 감으면 정말 아까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마음에 안 드는 과정을 거쳐 머리만 겨우 감은 김원장과, 살짝 감기 몸살 기운이 도는 나 모두 기분이 매우 드럽다. 왜 시간 약속을 몇 번이고 지키지 않고도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안 하는거야... 기다리면 엄청 뜨거운 물 나오게 해 줄거라면서 저런 미지근한 물 쫄쫄 틀어주곤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는거야...(워낙 네팔리나 인디안은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 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방에 들어와 부들부들 떨어대는 나를 보며 한편으론 김원장의 화는 좀 누그러진 것 같다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저녁 메뉴 : 참치 볶음밥+양파 샐러드 주문하고 뜨거운 물 따로 주문해서 신라면(사발면)> 

<참신한 세팅으로 등장한 양파 샐러드. 어찌나 톡 쏘게 매운지 끝내 다 먹어치우지 못했다>

 

따뜻한 공간에서 배불리 밥 먹고나니 맘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만, 그래도 몸은 여전히 정상의 컨디션을 못 찾고 있다. 다른 트레커들은 카드 게임이다, 위성 TV를 통해 축구를 본다, 하면서 식당에 모두 모여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얼른 올라가 자는게 낫겠다. 이 식당의 직원들도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방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형님, 누나, 잘자요~" 인사를 건넨다. 이거 재밌네. 안나푸르나, 정말 한국인들이 생각보다 제법 오는 곳인가 보다. 

 

썰렁한 방으로 돌아오니 다시 몸이 으슬으슬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김원장이 다시 내려가 담요를 얻어다 준다. 따뜻하게 챙겨입고 침낭으로 골인, 그 위에 무거운 담요까지 한아름 덮고 잠을 청해본다. 트레킹 초반부터 감기걸리면 이건 정말 대박인데... 그러게 아까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게지. 저절로 얻어지는 교훈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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