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바꾸는 것도 꽤나 힘이 드는 일인데, 하물며 대륙을 넘나드는 게 쉬울쏘냐 ㅋㅋ

 

오늘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 비록 한 나라, 이집트 내에서의 이동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남다르다. 아마도 고생스럽게 와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걸런지도 모르지만.

 

샤름행 버스가 오전 8시 30분 차라길래 어제 티켓을 미리 예매하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좀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숙소가 위치한 항구변에서는 지나는 택시가 보이질 않아 배낭을 맨 채 미니버스에 구겨타고 일단 시내로 나온 뒤 다시 택시를 잡아타 터미널까지 왔더니만 어제의 반 가격으로 OK다. ^^ 도착 시각은 7시 30분. 하지만 아직도 매표소에서는 표를 팔지 않는다. 8시부터 판다나? 어제 진작 그렇게 이야기해줬으면 오늘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어쨌거나 8시부터 표를 판다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김원장의 가설이 더욱 확실해졌다.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카이로 따위에서 출발해 샤름으로 가는 버스가 그 시간에 수에즈에 잠깐 섰다가는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러니 좌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8시나 되어야 알 수 있다는 소리일테지. 만약 그 버스 좌석이 몇 장 안 남았는데 행여 줄 잘 못 섰다 놓치기라도 하면 불편한 터미널에서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터, 나는 8시가 되기 전부터 줄도 아닌 줄을 선 사람들로 혼잡한 매표소 앞에서 표파는 아저씨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왔다리갔다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공들여 티켓(30파운드/인+배낭당 1 파운드)을 받아들었는데 생각보다 좌석은 널럴하다 ^^; (게다가 우리가 물었을 땐 분명 우등버스 등급이라고 했는데 우등은 커녕… 에잇)

 

버스는 수에즈 시내를 돌며 승객들을 더 태운다(어라, 수에즈 어디메에 이 버스 회사 매표소가 또 있긴 있었네?). 그리고는 외곽으로 빠져 수에즈 운하 밑으로 뚫어놓은 터널을 통과하는 것으로 대륙을 가비얍게 넘어주신다. 수에즈 터널에 이르러 고도계를 키고 확인해보니 해저 –50m까지 그 숫자가 떨어진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제 아시아로 들어선 버스는 시나이 반도의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한다. 푸르게 넘실거리는 바다가 참으로 아름답다. 카이로 시민들이 이용을 하는건지 해안을 따라 가끔씩 제법 큰 규모의 리조트들이 보이기도 한다. 차는 바다가 손에 잡힐 듯 해안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내륙쪽으로 들어가 모세가 걸었을 황무지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달리면서 서는 마을마다 승객들이 조금씩 올라타더니 어느새 버스는 만원이 되었고, 때마다 행해지는 검문 때문에 시간은 더욱 지체가 된다. 샤름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다섯번 이상 검문을 했고(외국인인 우리는 여권 제시), 거기에 더해 버스 회사의 표 검사까지 두 차례 이상 한 것 같다(그래도 한낮이라서인지 다소 황당하다 소문난 경찰견의 후각을 이용한 검문은 없었다 ^^;). 안 그래도 시나이 반도에서의 테러 예상건으로 마음 한구석이 심란했는데, 좀 달릴만 하면 차를 세우고 이렇게 검문을 해대니 정말 시나이 반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됐다. 뭐 이미 뾰록난 테러 계획이 성사될리 있겠어? 이스라엘 연휴도 다 지나갔다는데 별 일 있겠어? 애써 마음을 편하게 먹어본다. 여행은 운이다. 한국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집 안에 내내 틀어박혀 있는다고 아무 일 안 생기나, 뭐.

 

샤름에 도착하니 어느덧 2시 30분이 훌쩍 넘어 거의 3시를 향해 가고 있다. 거의 막판에 앞자리가 비길래 얼른 자리를 옮겨 앉아 왔는데 때마침 그 좌석에 피 빠는 벌레가 살고 있었는지 나도 김원장도 몸을 북북 긁으며 차에서 내려야 했다. 김원장의 계획으로는 샤름에서 다합까지는 일명 서비스 택시(이 나라 발음으로는 세르비스 택시)라는 합승 택시를 이용해서 편하게 가는 것이었는데, 둘러보니 여기가 거기가 아닌지 -_- 합승 택시 같은 놈은 단 한 대도 안 보인다. 분명 가이드북에선 널려(?) 있을 거라고 했는데.

 

가이드북을 다시 뒤적이니 샤름에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다합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2시 30분에 한 대 있고, 그리고는 5시가 다음 버스란다. 어이구, 그렇다면 2시 반 차는 벌써 떠났을텐데. 혹시나 하고 매표소를 찾아가 물어보니 4시에 다음 버스가 있단다(하지만 표는 4시가 되어야 판단다. 이거야, 원. 그럼 4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아닌가? 아니 출발 시간보다도 이거 혹시 또 좌석이 없으면 못 타는거 아냐?) 흠, 그럼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한 시간을 더 개겨보는 수 밖에 없겠구나(택시 아저씨 하나가 계속 자기 차를 대절해 가라고 꼬셔온다. 가격은 무려 170파운드 -_-). 터미널 매점 앞 의자에 앉아 개기는게 좀 미안해서 차를 한 잔씩 주문해 마시기로 한다. 먹고나서 가격을 물어보니 잔 당 5파운드라네. 아, 쓰봉, 여기마저 옴팡 바가지란 말이냐. 안 물어보고 먹은 우리가 또 잘못이지 -_-;

 

다행히 내 얼굴을 기억했던(역시 몇 번이고 잡스럽게 물어댔더니만 ^^;) 매표소 아저씨 하나가 3시 50분경 남들에게보다 먼저 우리 표를 챙겨준다(11파운드/인). 그리고 알려주는대로 올라탄 버스는 4시에 다합을 향해 칼 출발이다. 야호~ 신난다. 이제 곧 다합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우리 다합에 가면 좋다는 숙소 잡고 며칠이고 늘어져서 푸~욱 쉬자.

 

5시 30분쯤, 수에즈를 떠난지 9시간 만에 드디어 다합에 도착하자 김원장은 오늘의 긴 이동으로 인해 많이 지친데다가 아까 흡혈충이 아예 몸으로 옮겨 붙었는지 온 몸 여기저기 가득 물려댄 터라 거의 뻗기 일보직전이다. 다합 터미널에서 다합 시내까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택시 가격이 5파운드라고 듣고 왔는데) 택시 아저씨는 끝까지 10파운드를 달라네(다합의 택시는 특이하게도 승용차가 아니고 용달차스럽다). 김원장의 상태를 봐서 더 이상의 흥정없이 일단 올라타고 찍어두었던 옥토퍼스 호텔(www.octopushotel.net)까지 간다. 아니, 여기가 다합이야? 내가 생각했던 한적하고 아늑한 휴양지의 모습이 전혀 아니네? 게다가 아아, 이럴수가. 방이 없다니! 일단 옥토퍼스에 배낭을 맡겨두고 옥토퍼스의 소개를 받아 해변의, 그러나 뷰는 나오지 않는 다른 숙소 하나를 구경했는데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연이어 가이드북에 등장하는 추천 숙소들을 비롯, 닥치는 대로 몇 개의 호텔들을 돌아다녀 보지만 어라, 놀랍게도 근방의 모든 추천 숙소에는 방이 하나도 없다. 어쩌다 이런 일이? 뭔 날인가? 대체 어느 나라가 휴가 기간인거야? 시나이 반도 테러 계획 소식은 뽕인거야?

 

어쩔 도리 없이 옥토퍼스 바로 옆, hotel의 80파운드짜리 트리플룸에서 일단 1박하기로 한다. 방은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옥토퍼스가 바로 옆 집이니 내일 방이 나는대로 얼른 옮길 수 있도록. 무엇보다 일단 김원장 옷을 전부 홀라당 벗겨서 몽땅 세탁부터 맡기는 것이 급선무다. 벌써 피가 나도록 긁고 있으니…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오는 길, 결국 이렇게 피를 보고야 마는구나.

(그래도 다합에 오긴 왔다. 요거요거 투명한 홍해 맞지? 야으~호 ^O^)

 

@ 참고로 다합에서 우리나라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해왔던 숙소는 (‘칠천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한) Seven Heaven이다. 비록 바닷가에 바로 면해 있는 숙소는 아니지만 이용하는 여행자들이 많은 만큼 당연 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갖추고 있기도 하거니와(심지어 한국인 다이빙 강사까지) 다합의 번화한 상권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입지까지 나무랄데가 없다(물론 바다도 몇 발짝만 더 걸어주면 되고). 문제는 한때 무지 친절했다던 주인 아저씨가 요즘 동양인 여행자들을 차별하고 한국인 다이빙 강사를 착취, 협박하며 돈독이 올랐다는 등의 안 좋은 소문으로 요즘 Seven Heaven 불매(불숙?)운동까지 벌어진 터인지라 우리는 여기에 묵을 생각을 완전 접고 왔다. 그래서 아예 그 대안으로 요즘 새로 떠오르는 문어(?) 호텔을 노리고 온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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