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야 갖다 붙이기 마련이지만, 어젯밤 갑자기 김원장이 오늘의 목적지를 알렉산드리아로 바꾸면서 댄 핑계는 다음과 같다. 어제와 오늘까지가 각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연휴 기간이었는데 이 중 부활절 연휴를 맞아 시나이 반도로 대거 놀러나온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수단 출신의 이슬람 과격파 전사들이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한 것. 이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시나이 반도에서의 대피(소거?)를 명했고 우리나라 대사관조차 이를 이유로 자그마치 5월 중순까지 -_-; 시나이 반도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올린 터였기 때문에 오늘 날짜로 우리가 시나이 반도를 들어가기가 쪼까 껄쩍지근할 수 밖에.

 

결국 지도를 잠깐 바라보던 김원장이 갑자기 알렉산드리아로 가자!를 외쳤고 그에 맞춰 우리는 밥을 해먹고 오전 8시 알렉산드리아행 기차를 잡아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내 바램대로라면 이 기차역에서 남부 룩소르로 가야하거늘 -_-; 오늘 우리는 북부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사막 속 왕가의 계곡 대신, 지중해 햇살을 맞으러 가는 것이다(지중해라니, 나름 기대가 되긴 한다 ^^).

 

여전히 줄을 이상하게 서는, 아니 줄이라는 것을 서지 않는 이집션들 사이에서 무사히 알렉산드리아 급행 열차 표 두 장을 구해 들고(2등석? 티켓 29파운드/인에 2파운드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추가 가격) 내가 항상 만만히 여기고 이용해 먹는 -_-; 이집션 경찰분들의 도움으로 해당 플랫폼을 찾아 알렉산드리아행 열차를 기다린다(앗, 척 보기에 이란의 최신 유행 복장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지나간다. 들고 있는 짐들이 단촐한 것으로 보아 이란에서 이집트에 놀러와 알렉산드리아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나보다). 레일이 전후로 끝없이 이어지는 서울역과는 달리 유럽의 메인역에서 흔히 보듯 모든 플랫폼이 각 행선지의 끝이자 시작인 일방 구조이다. 그래서 출발 시간 전 적당히 여유를 두고 근처 어디선가 해당 열차가 역 구내 끝까지 들어와 우리 앞에 서고 승객들을 태운다. 흐음, 옛날 유럽 생각 나네.

 

좋은 열차라더니 내부 시설이 제법 괜찮았다.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거기에 속도도 좋고. 문제는 에어컨이었는데, 우와, 배낭에서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 이거야, 원. 이집트에서 감기 들겠네.

 

2시간 남짓 달려 열차는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혹자 말이 카이로와 비교해 알렉산드리아는 훨씬 깨끗하고 유럽스럽다고 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지나보다 기대했는데, 알렉산드리아에 가까워질수록 (나일 삼각주라서인지) 주변이 훨씬 초록빛으로 변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유럽스러운 점을 발견하지 못하겠더라.

 

 

역에서 내려서는 가이드북의 지도를 벗삼아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이 간다는 유니온 호텔을 찾아갔다. 마침 같은 기차에서 내린 다른 외국인 여행객들 모두가 유니온 호텔을 포함, 저렴한 호텔들이 몰려있다는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 찾는데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고풍스러운 역전을 비롯, 호텔을 향해 나아갈 때만해도 전혀 바닷가스러운 분위기가 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갑자기 푸르고 넓은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숙소가 몰려 있다는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아, 내 눈 앞의 이 바다가 바로 지중해구나. 너 참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6년쯤 되었지?

 

 

숙소를 찾아 올라가니(반갑게도 이 집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 가격에 비해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바다가 살짝 보이는 발코니를 가진 트윈룸, 조식 불포함에 세금 포함 80파운드. TV와 욕실 포함. 방의 종류와 뷰에 따라, 조식 포함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역시 카이로가 한 나라의 수도긴 수도였구나. 알렉산드리아가 아무리 제 2의 도시라고 하여도 지방 물가는 지방 물가지. 도미토리가 없어 나홀로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비싸다 소리를 듣는 숙소지만, 우리같이 더블룸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숙소라 보인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로는 아무래도 감질맛만 날 뿐이다. 김원장과 저 근사한 해변도로를 오래오래 산책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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