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장의 증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장기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대부분 겪게 되는 여행 중의 무료함, 무흥미, 무기력. 이런 것도 매너리즘이라고 해야하나.

 

보통 김원장은 여행 시작후 만 3주면 그런 증상을 겪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50여일 만에 왔으니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소에는 한 달짜리 여행을 주로 했으므로 여행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느껴지는 시점에서 귀국하여 하던 일로 복귀하면 그걸로 OK였지만, 이번엔 그와 달리 아직도 만 4개월이나 여정이 남아있는데다가 귀국한다 해도 할 일 없는 백수 신세 -_-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되시겠다(이런 김원장과는 달리 나는 여행하는 동안 거의 내내 여행이 즐겁구나~ 룰루랄라 스타일인데 사실 김원장이 이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동행자로서 막중한 부담을 느끼게 마련이다).

 

당장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면 김원장이 이제 이름난 유적지도 관광 포인트도 싫다며 룩소르나 아스완을 제끼고 바닷가 휴양지로 그냥 뜨자는 것인데… 여기까지 와서 룩소르와 아스완을 제끼자니! 나로서는 심히 안타까운 제안이다. 정 그렇다면 아스완은 빼고 룩소르만이라도 다녀오면 안 될까? 알랑방귀를 뀌어보지만 김원장은 영 내키지 않아하는구나. -_-; 마치 내일 당장이라도 갈 것처럼 국내선 비행기표까지 알아볼 때는 언제고...

 

결국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포기한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내가 또 여길 언제 와 본다고, 어이구… 하는 마음은 없다. 언제고 이집트는 분명 다시 한 번 올 것만 같으니까(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울 엄마가 딱 한 나라, 이집트만큼은 한 번쯤 가보고픈 나라로 꼽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엔 엄마 모시고 와야겠다). 그래서 지난 세월 그렇게 별러왔으면서도 이번에 못 가본 시와 오아시스와, 바로 오늘 갈 뻔도 한, 그러나 가지 못할 룩소르와 아스완을 다시 오면 될 테니 말이다. 가능하면 그때는 리비아 비자를 어떻게든 받아오던지 해서 이집트랑 리비아를 묶어 봐야지. 한 여정이 좌절(?)되는 동시에 또 다른 여정을 꾸리고 있는 꿋꿋한 심성의 인간이 바로 나다. ^^

 

 

하루 종일 숙소 주변을 헤매며 돌아다니면서 눈에 뜨이는 맛난 음식이나 찾아먹다가(오늘은 저칼로리 전문 패스트푸드점이라는 cook door란 식당도 갔었다. 카이로에는 맥도널드 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나름 고급 식당에서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종종 있다) 그래도 내일 카이로를 뜨기는 떠야지, 생각에 미친다. 남들은 후딱 챙겨보고 상이집트로 발걸음 총총 옮기는데, 우리는 오늘 밤까지 헤아리면 뭐 그다지 하는 일도 없이 벌써 카이로에서만 5박을 하는 셈이다.

 

그렇게 김원장이 결정내린 내일의 목적지는 시나이 반도의 다합. 다이빙 뿐만 아니라 장기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홍해의 코사무이라는 다합으로 가서 이번 기회에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던지 늘어지던지 하겠단다. 그래, 그럼 다합에서 뒹굴다 그냥 요르단으로 넘어가자. 무엇보다도 다합에 머물면서 김원장의 여행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야할텐데… 어쨌거나 이집트까지 와서 룩소르도 안 보고 그냥 가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을거야 ㅎㅎㅎ

(다합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것보다는 우선 샤름 엘 쉐이크에 내렸다가 그 곳에서 다시 다합행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보다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숙소 아저씨한테 샤름행 버스 시간표를 알아봐달라 부탁도 해 놓는다)

 

이렇게 또 하루가 하는 일 없이 잘도 간다.

 

@ 우리 숙소(킹스팰리스)의 센스 : 어제 내가 재차 체크인을 하면서 조식을 불포함하는 대신 방 가격을 깎아달라고 했더니 우리가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에 불만이 크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오늘 아침엔 숙소 앞 이집트식 패스트푸드점에서 참신한 샌드위치(?)를 사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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