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집트에서 단 하나만을 보라고 한다면, 나는 당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택할 것이다. 사실 그것만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구조물도 없을 테니까.

 

다행히도 어제 저녁부터 카이로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덕분에 오늘 아침, 피라미드를 향해 가는 우리의 발걸음도 가볍다. 그제와 어제 같은 더위라면 피라미드도 피라미드지만 이집트 남부(상이집트)의 룩소르와 아스완 등지로 내려가기가 심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배낭여행자들조차 인원을 모아 택시를 대절하여 피라미드 투어를 하는 듯 싶지만, 우리는 우리끼리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기로 마음먹는다. 숙소 바로 앞에서부터 전형적인 스타일로 접근해 오는 삐끼와 택시 등을 뿌리치고 피라미드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그 정류장에서 20여 분을 기다려도 해당 번호의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이럴 때 제일 만만한 경찰의 도움을 청해보기로 한다. 쉽게 말해 이집트는 관광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인데 문제는 바로 이런 관광객들을 노린 테러 역시 빈번한 편인지라 거리 어디에서나 (그러니까 거의 관광객들을 위한) 경찰들이 널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거들랑(무장한 경찰들이 거리 곳곳에 있는 모습이 살벌하다기보다는 듬직한 쪽에 가깝다). 영어가 잘 통하진 않지만 이들 대부분은 무척 친절한 편인지라 역시나 내가 피라미드를 가고 싶어한다는 의견이 전달되자 우리를 그들 뒤에 세워두고는 지나가는 어느 버스를 잡아 태워준다. ㅎㅎ

 

이번엔 버스 안 승객들의 친절을 맛볼 차례. 누군가는 우리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의 행선지를 재차 확인해 준 후 우리가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한다고 알려주며 당신이 먼저 내리면서 운전사와 차장에게 특별히 우리의 하차를 부탁하기까지한다. 부탁을 받은 운전사와 차장 역시 우리가 갈아타야할 지점 근처에 이르자 나란히 달리고 있던 하람(?)행 미니버스를 세워 우리를 토스한다. 이집션이 아무리 발랑 까졌다고 한들 역시 관광객 전문 상대의 일부 이야기 아니겠어? ㅎㅎㅎ

 

막연한 상상속 피라미드의 모습은 자욱한 모래먼지 날리는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우뚝 솟은 어떤 것이었는데, 실제로 도심 속에, 그러니까 이미 피라미드 발치까지 주민들이 치고 들어와 사는 까닭에 달리는 버스 창 밖, 복잡하고 혼잡한 건물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피라미드’들’의 모습이 다소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버스에서 내려 피라미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매표소는 그 쪽이 아니라며 우리를 불러세운다. 지도상으로는 맞는데? 의심스러운 아저씨가 우리를 이끌고 가는 방향을 먼저 눈으로 내짚어 바라보니 그 쪽은 마구간. -_-; 그러니까 결국 말이나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를 보라는 호객꾼이었던 셈이다. 이런 아저씨들에 대한 악명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가볍게 무시. 실제 시세는 한 시간당 10파운드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여행객 누군가는 무려 100불을 내고 타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오니(Giza Pyramids의 학생 ^^; 입장료 : 25파운드/인)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들고 있는 깃발에 쓰여져 있는 여행사 이름이나 일행들이 목사님 어쩌구 불러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역시나 성지순례팀인가보다. 반가운 마음에 반자발적으로 목사님 일행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리고 우리도 본격적인 피라미드 구경에 나선다.

 

 

 

 

 

 

 

 

 

피라미드의 역사적 의의나 과학적 신비, 이외 얽히고 설킨 수많은 이야기들보다 가장 앞서 내게 드는 느낌은 무엇보다도 “드디어 바로 피라미드 앞에 섰다”는 다소 자기만족적 감상이다.

 

 

피라미드보다도 더 흥미를 끄는 것이 스핑크스. 우리는 위압적인 쿠푸왕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왼편으로 돌아 스핑크스를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스핑크스의 크기에 실망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가서인지 이 스핑크스가 참 마음에 든다. 스핑크스만의 포스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스핑크스를 빙둘러 이번엔 쿠푸왕의 아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쪽으로 향한다. 몇 낙타몰이꾼들이 다가와 호객을 하지만 소문만큼 끈질기지는 않다(어쩜 우리에게 돈 냄새가 안 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아저씨는 입으로는 세팅된 그럴싸한 호객 문구를 우리에게 중얼중얼 끊임없이 날리면서도 정작 본인의 시선은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실한 먹잇감을 찾아 저~멀리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지라 우리의 웃음을 사기도 한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 앉아 아점으로 미리 준비해 온 빵을 먹는다. 이렇게 피라미드 발자락에 직접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으려니 기분 참 묘하다. 그러나저러나 피라미드를 이룬 하나하나의 돌덩어리가 정말 크기도 하다. 파리들만 아니면 더욱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련만.

 

 

 

피라미드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돌아오니 그 사이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흐미, 얼른 떠야겠네. 정보대로 한 낮의 더위도 더위지만, 수많은 관광객들과 섞이기 싫어서라도 피라미드는 아침 일찍 방문하는 편이 좋겠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피라미드군만큼은 고즈넉하게 즐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 확신한다.

 

숙소로 돌아와 밥 챙겨먹고(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은 간단하다. 일명 걸레빵, 잼과 치즈 한 조각, 그리고 샤이가 전부) 쉬다가 늦은 점심으로 피자를 먹으러 간다. 어제 얼핏 보니 피자헛의 피자 가격이 우리나라 반 정도의 수준 밖에 안 되는 것 같더라. ^^ 이게 대체 얼마만에 가보는 피자헛인지. 우리 입맛엔 다소 짭잘한 치즈크러스트 수퍼슈프림 미디엄(33.41), 치킨 시저 샐러드(11.82), 콜라(4.09), 망고쥬스(5.45)를 배터지게 때려먹고 택스를 포함하여 총 60.25파운드를 지불한다(이상하게도 이런 곳에서도 직원이 박시시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생까고 나온다). 손님들 면면을 보니 이집트에서 이런 종류의 외국계 패스트푸드점이 고급 레스토랑에 속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인 듯 싶다.

 

오늘 해결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랩을 구하는 것이다. 숙소에, 그리고 숙소에서 알려준 슈퍼마켓에 연이어 물어본 결과, 어제 우리가 쌀을 구입했던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오늘 또 그 시장을 찾아가면 삼일 연속 가게 되는 셈이다. 그냥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머리가 따라가주지 못한 탓에 몸이 고생한다. 그럼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한 번 가보자(1파운드). 우리나라 때와 같은 프랑스 회사가 이집트 지하철을 만들었다나 뭐라나 하더니 정말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과 매우 흡사한데다 노선도 두 개 뿐이라 처음인데도 익숙하게 탈 수 있었다. 복잡한 시장을 헤치며 묻고 물어 한 도매상에서 랩을 구입한 뒤에는 근처의 유명한 시장인 칸 할릴리를 구경하기로 한다. 부지런히 걸어 찾아갔건만 유명세에 비해 칸 할릴리는 관광객 오리엔티드된 곳이라서인지 오히려 방금 지나온 현지인들의 시장이 훨씬 정감가고 좋았다. 이 곳엔 골목 가득 기념품 가게만 늘어서 있다. 오히려 역사 깊은 그 구역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모를까, 혹은 아예 기념품 구입을 위해 둘러보러 온다면 모를까, 활기찬 로칼 재래 시장의 모습을 기대하고 찾아온다면 실망할 것 같다. 골목을 걷다 칸 할릴리내 이름난 찻집에 들러 시샤(물담배)를 시도해 본다. 한 대를 시켜놓고 번갈아 김원장이 한 모금, 나도 한 모금. 순하기는 한데 처음이라 우리가 피우는 방법을 몰라서인지 담배를 빨아들이기가 좀 어렵다. 사과향은 참 좋은데 에고, 금방 어지러워지기까지. 과호흡이라도 한건가.

 

 

 

카이로가 덥고 건조해서 그런건지 완전 물 먹는 하마 수준으로 마시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와방 달달한 딸기 주스에 완전 꽂혔는데 이 찻집을 비롯, 여기저기서 계속 먹다보니 어쩐지 일률적인 맛스럽다. 아마도 집집마다 생과일 딸기를 갈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어느 공장에서 대량생산해내는 딸기 주스 엑기스를 구입하여 사용하고들 있는 모양이다(반면 오렌지주스는 즉석에서 직접 짜준다). 그래도 맛있으니까 용서가 된다.

 

 

이 찻집엔 메뉴판이 없다했더니 계산시 다른 가게에 비해 두 배 정도 높게 부른다 -_-; 바가지가 싫으면 이런데와서는 처음부터 물어보고 주문했어야하는데… 간혹 미리 묻는게 미안할만큼 착한 가게도 많은지라 방심하고 다니다보면 또 이렇게 당한다.

 

 

가게를 나와 근처 모스크가 잘 보이는 광장에 앉자 이번엔 옆에 앉아계시던 친절한 할아버지가 말도 안 통하는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해주시고자 애를 쓰신다. 이집트는 무슬림들이 사는 관광대국의 특성이란 이런 것이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인 듯 싶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여타 중동국가들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너그럽고 친절하지만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밉상으로 까졌다.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칸 할릴리의 북쪽으로 걸어가본다. 아, 바로 이런 곳이 우리가 찾던 곳이었는데!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 말이다.

 

칸 할릴리 구역을 빠져 나와 람세스역 방향으로 걷는다. 내일 바하리야에 가서 1박 2일 사막 투어를 하고 난 뒤 비조라 불리우는 합승택시를 타고 룩소르로 빠질 예정이기에 미리 바하리야에 전화를 넣어본다. 마침 내일 미리 예약된 한국인 팀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 쪽 인원이 한 팀 꾸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우리 부부 둘만을 위해 따로 차를 한 대 빌려 투어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한국인들이라… 오래간만에 한국인들을 만나 함께 하는 투어가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노릇이다. 김원장과 일단 내일 분위기를 살펴본 뒤 정 찝찝하면 우리는 그들과 따로 떨어져 야영을 하기로 한다.

 

숙소로 돌아오다보니 기도 시간을 맞은 일단의 이집션들이 길거리에 카펫을 깔아놓고 메카를 향해 진중히 절을 올리고 있다. 막연히 다른 중동 국가의 무슬림들에 비해 이집션들이 상대적으로 신심이 적은 날라리들일거라 생각했는데 ^^; 오늘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말이지 이렇게 슬쩍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의 신분으로는 실상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기가 무척 어렵다. 

 

저녁이 되니 완전 쌀쌀해졌다. 처음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훅~하고 우리를 덮쳤던 더위는 대체 어디로 간거지? 한 현지인의 말대로 그 더위가 요 며칠의 이상기후였나? 이 정도 기온이라면 내일 사막에서의 밤이 살짝 걱정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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