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동아프리카 여행을 다시 계획하면서 네버랜드님의 글이 단연 내 관심을 끌었는데, 그 분의 글중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여행자들이 꼽는 세계 3대 최악의 민족은 인도, 이집트, 모로코다.
나한테 3대 최악의 민족은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다.

 

여행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수도 있고 – 남편과 함께 여행한 나 역시 이란에서 성추행을 겪은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 당근 이란이 저기 들어가 있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 – 여기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두 문장에서 주의깊게 보아야하는 국민이 하나 있으니, 바로 공통적으로 최악이라고 꼽히는 나라, 바로 이집트다. 그리고 우린 오늘 이집트에 왔다.

 

이집트… 2002년, 9개월의 내 인생 첫 장기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지막 종착지로 삼았던 나라,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세계 최대의 관광대국 중 하나로 수많은 여행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나라,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 부부에게는 더 이상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한 번쯤 가줘야 하는 나라’로 전락해버린, 그리고 일명 최악의 국민들이 모여살고 있다는 바로 그 나라. 드디어 그 땅에 오늘, 김원장 부부가 섰다.

 

오늘 아침, 은근 호텔에서 7시부터 준다는 조식을 챙겨 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정신없이 자다 모닝콜을 받아보니 30분 뒤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며 내려오라고 한다. 지금이 몇 신데? 엥? 아직 6시 밖에 안 되었는데? 콸콸 나오는 뜨거운 물에(야, 대체 이게 얼마만에 하는 ‘핫’샤워란 말이냐! 감개무량 ^^;) 샤워부터 하고 너무 좋아서 김원장도 깨워 샤워를 권한 뒤 방정리를 하다보니 벌써 복도에서 베이루트팀이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프런트에서 다시 보딩패스를 돌려받은 뒤 우리 둘만 태운 호텔 차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서운 속도로 20여 분을 달려 우리를 사나 공항에 내려놓았다. 공항 검색대에서 티켓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트랜짓 승객이라고 이야기를 하자 예전에 예멘에서 에티오피아로 갈 때 보았던, 출국 심사대 맞은 편의 사무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 거기에 우리 여권이 보관되어 있다. 이로서 우리는 여권과 보딩패스를 다시 챙겨들고 출국심사 과정을 생략한 채 면세구역으로 빠져나간다.

 

면세구역에 앉아 모니터를 살펴보니 오늘 우리가 이용할 카이로행 항공편이 사나를 출발, 예멘 서부 해안의 알 후데이다(Al-Hudayda)를 경유, 카이로로 가는 것처럼 나와있다. 뭐야, 직항편이 아니었어? (예메니아는 이상하게도 국내선과 국제선을 연결해서 한꺼번에 띄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저러나 이번마저 직항이 아니면 오늘까지 대체 몇 번째 비행인거지? 서울-방콕, 방콕-두바이, 두바이-쿠웨이트, 쿠웨이트-테헤란, 쉬라즈-테헤란, 테헤란-샤르자, 샤르자-무스캇, 세윤-사나, 사나-아디스아바바, 아디스아바바-사나, 사나-알후데이다, 알후데이다-카이로… 자그마치 12번? 여행 시작하고 아직 두 달도 안 되었는데 -_-; 이번 여행은 진짜 비행 많이 하네). 그러고 보니 오전 일찍 출발 예정이던 국내선 하나는 두 시간이 연기된 모양이다. 곳곳에서 승객들이 늘어져 있다. 우리도 저 꼴 나면 안 되는데…

 

베이루트팀이 속속들이 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고 –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는 거의 동시에 했는데 면세구역에 그녀들이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우리보다 1시간 이상 늦어서였다. 김원장은 이제 우리와 헤어질 그녀들에게 부디 타국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라~ (한국어로 ^^;) 전하더라만 – 우리는 다행히 제 시간에 맞춰 출발하는 카이로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는 또 다시 만석. 이 사람들이 다 카이로에 가나? 아마도 그렇겠지?

 

내 생각과는 달리 알후데이다에서 승객들의 반 정도가 내리고 40여분 기다리다 다시 그만큼의 카이로행 승객이 새로 탄다. 그리고 비행기는 홍해를 따라 카이로를 향해 날기 시작한다.

 

 

 

 

우리의 기대대로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카이로 상공을 선회할 때 피라미드를 본다. 오오, 저게 바로 피라미드구나. 하늘에서 봐도 기대 이상으로 크고 근사하다. 내가 정말 이집트에, 카이로에 도착하고 있구나!

 

카이로 공항 환전소에서 스티커형 비자부터 사고(15불/인), 입국 심사를 기다리며 바로 옆에 늘어선 ATM에서 국제현금카드로 버튼 몇 번 눌러 4000파운드(현재 1파운드=대략 180원)를 쉽게 찾아들고 나니 그야말로 선진국(?)에라도 온 느낌이다(우리가 엊그제 세운 이집트 여행 계획은 대략 카이로2-바하리야 사막1-룩소르2-아스완1-룩소르1-후르가다1-다합2에 이르는 열흘 가량의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에 1인 3만원 이상은 들거라고들 하길래 일단 70만원 정도 찾았다). 그래, 너희 인프라 빵빵하다 이거지? 내 마음껏 누려주마! 으하하~

 

내 앞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사람은 분명 에티오피아인인데 비자가 필요없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분명 그는 비자를 사지 않았는데 왜 남몰래 입국심사대 직원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일까?

 

오오, 그런데 입국심사까지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나친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바로 배낭에 꽁꽁 묶어두었던 세면도구 주머니가 사라진 것. 우리가 짐을 에티오피아에서 부쳤고, 이 짐이 다시 예멘을 거쳐 이집트로 왔으니 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에티오피아가 가장 유력한 후보). 아아, 아쉬워라. 에티오피아에서 치약도 샴푸도 새로 샀는데 -_-; 그 주머니 안에 뭐뭐가 있었지? 가장 윗칸엔 치간칫솔과 족집게, 중간칸에는 샴푸와 눈썹정리칼, 면도기와 치약, 그리고 빗, 맨 아랫칸엔 숙소에서 하나 둘씩 모은 일회용 비누와 여행전 새로 구입한 비누곽까지… 진짜 알뜰하게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도 그 주머니 자체가 가장 매력적인 물건으로, 이번에 김원장이 큰 맘먹고 -_-; 세면도구 전용 주머니를 마련한 것인데 말이지(그러고보니 어제 급히 빼돌렸던 칫솔 두 개만 달랑 남았네). 아주 중요한 물건들은 아닌지라 공간이 부족한 배낭에서 빼내어 밖에다 묶어둔 것인데(그렇지만 지금까지 비행기를 그렇게 여러 번 타도 한 번도 안 잃어버렸던건데) 막상 잃어버리니 무지 아쉽기만 하다. 이런 나를 달래어 질질 끌고 공항을 나서는 김원장, 이번엔 김원장이 접근해오는 자칭 공식 공항 도우미라는 애들에게 넘어가려고 한다. 어이~ 김원장, 공항에서 저런 애들한테 걸려들지 말라는게 이 동네 야마야~(너무 그럴 듯하게 차려입고 접근해 오는지라 많이들 속아 넘어가나보다) 여기저기서 택시를 타라 호객해대고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이 없다. 게다가 무지 덥기까지하다. 카이로가 벌써 이런 날씨라면 좀 곤란한데… 이번엔 내가 다소 지쳐하는 김원장을 달래 공항 버스 정거장으로 간다. 여기 택시가 그렇게 바가지가 심하데~하면서.

 

버스에는 아랍어로만 숫자가 쓰여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다리던 차가 들어와도 인식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어, 저 버스 번호가 356번 맞지? 헐레벌떡 뛰어 맨 앞자리 차지 성공(2파운드/인). 어라, 그러고보니 이번엔 작은 가방 옆에 끼워놓은 캔콜라가 없어졌네. 기내에서 받은 건데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뒀더니만 버스 잡는다고 뛰어오다 떨어졌나보다.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벌써부터 손실이 많다 ㅋㅋ

 

카이로의 유명한 교통 체증과 공해를 몸소 체험하는(목적지인 종점까지 1시간 20분 소요) 것에 이어 하차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길건너기 어렵다는 소문이 있는 카이로 시내 한복판에서 엄청난 대로를 건너야는 미션까지 만만치 않은 여정이 이어진다. 그래도 찍어두었던 숙소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는다. 예상치 않았던 마지막 복병, 우리로 따지면 5층에 위치한(얘네식으로는 4층) 숙소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있던 것을 제외하면.

 

짐을 부리고나니 김원장은 맥도날드부터 찾는다. 그래, 이제 우리가 맥도날드 따위의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나라에 왔구나. 쿠웨이트 버거킹에선가 한 번 먹어보고 아마 오늘이 처음이지? (그런데 당장 맥도날드가 눈에 안 들어오는 탓에 하디스에서 먹어준다 ^^;)

 

하디스 햄버거 하나로 이집트에 온 실감이 난다.

 

@ 킹기스 팰리스 호텔 : Daum의 <깡깡이집트> 카페에서 호평을 읽고 찾아간 숙소(카페를 통해 사진이 첨부된 찾아가는 방법 확인 가능). (발코니 없는) 트윈룸 조식 포함 120파운드(화장실/에어컨 포함). www.kingspalacegroup.com / kingspatacehotel@hotmail.com / kingspalacehotel@yahoo.com

샤워후 배수 문제가 약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미단(광장) 탈랏 하르브 변에 위치한 입지도 아주 좋고 숙소도 이 정도면 깨끗하게 잘 관리되는 듯 보이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마음에 든다.

 

@ poste restante 제도를 아시나요?

 

우리말로 ‘보관교부우편물’ 혹은 ‘유치교부’라는 다소 어렵고도 생소한 이름이 붙여진 이 제도를 통해 일정한 주소지가 없는 여행자도 외국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몇 달 전에야 알게 되었다 ^^;).

 

이쯤에서 참고 설명 : 보관교부우편물로 발송되는 우편물의 주소에는 수취인의 성명, 도시명과 가능한 경우에는 그 우편물을 교부할 우체국명을 표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Poste restante"의 표시는 주소면에 굵은 문자로 기재하여야 합니다. 이 우편물에는 약자, 숫자, 성 없는 이름, 가명 또는 어떤 종류의 암호 표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더해 좀 더 안전하게끔 우체국의 EMS 제도(우체국에서 퍼온 이용 방법 : 우체국에서 무료로 제공해 드리는 주소기표지에 발송인과 수취인의 주소.성명.전화번호.내용품명.수량.내용품가격 등을 정확히 적어 우편물에 붙여 제출하시면 됩니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미리 한식 먹거리를 포장하여 박스로 만들어두었다가 이집트에 들어오기 전, 운송 날짜를 계산하여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카이로 중앙우체국으로 보내달라 부탁했다. 그래서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꼭 해결해야할 과제가 하나 있었던 셈.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고 카이로 중앙 우체국 근처에 있는 포스테 레스탄테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이런,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일찍 근무를 끝내버렸다. 내일 여기까지 다시 찾아 와야하나, 그런데 대체 여기 우리 물건이 와 있기는 한건가, 철창 속을 들여다보며 우편물들을 올려놓은 선반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마침 안에서 누군가 우리를 발견한다. 말이 안 통하는 아저씨가 닫힌 문을 열어 우리를 안에 있던 여성에게 안내해주고 그 여성은 EMS로 보낸 물건이라면 길 건너편 EMS 전용 사무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맞은 편 EMS 사무실에서 물어물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가 이름을 대고 여권으로 재확인을 거친 뒤 잠시 기다리니 어머나, 놀랍게도 정말 우리의 보물상자가 이미 도착하여 그간 보관되고 있었던 모양인지 아저씨가 구석에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나온다. 이론상 당연히 와있어야 하는 것인데도 막상 이집트에서 이렇게 내 글씨체와 김원장의 이름, 그리고 반가운 엄마의 글씨체까지를 한꺼번에 만나니 거의 감격 그 자체다. 김원장이 그 박스를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둘이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원.

 

박스를 열어 비빔면부터 끓여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할 새가 어딨어? -_-; 

 

 

(참, EMS 사무실 아저씨가 이미 한국에서 지불한 배송비와는 별도로 통관 비용 67파운드는 따로 물어야 한다고 하더라. 이게 그 유명한 이집트식 바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춤했는데 정식 영수증까지 발급해 주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도 한국에서 부칠 때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바 있다고 한다. 아저씨, 의심해서 죄송해요~).

 

@ 오늘의 영화 : <다세포소녀> 예멘 공항에서 카이로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보다. 영화 초반 5분 간이 너무 참신하게도 웃겨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뒤로 갈수록 초반의 힘을 잃는 듯 하다. 감독은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전달이 잘 안 되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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