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에즈도 전혀 예정에 없던 방문지인데 말이지(우리의 원계획은 카이로2-바하리야 사막1-룩소르2-아스완1-룩소르1-후르가다1-다합2의 총 열흘짜리 일정인데, 지금 현재 스코어 카이로3-바하리야 사막1-카이로2-알렉스2-수에즈1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취향을 가진 김원장을 만나서… ^^;

 

어제의 버스 예매처 직원이나 우리 숙소 아저씨도 뉴 버스 스테이션까지 택시로 10파운드 가량이 정가라며 절대 15파운드 이상은 주지 말라길래, 나도 그럼 10파운드로 가봐야지 마음 먹고 택시 아저씨와 맞섰는데, 역시나 택시 아저씨가 나보다는 더 베테랑이구나. 결국 15파운드에 쇼부를 보고 터미널로 이동한 후 택시 아저씨의 도움으로 수에즈행 버스를 찾아 탑승한다(배낭당 1파운드). 지중해여, 잠시 안녕~ 운이 닿으면 터키에서 또 만날 수 있겠지.

 

버스는 일단 카이로를 향해 달리다 거진 카이로에 다와서 수에즈로 방향을 트는 모양이다. 가이드북에 나온 소요시간이 맞다면 수에즈에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제 겨우 카이로 근처라니. 그래도 중동 여행을 좀 했다고 우리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카이로 방향으로 달리는 내내 우리 이거 카이로행 버스를 잘 못 탄 거 아냐? 하며 키득거린다. 다행히 수에즈는 카이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지라 카이로 근교를 벗어난지 1시간 반만에 수에즈 터미널에 닿았다.

 

터미널에 도착한 김에 내일 샤름행(여기도 알렉산드리아를 알렉스, 샤름 엘 쉐이크를 샤름으로 줄여부르는 경향이 ^^) 티켓을 예매하려하니 내일 티켓은 내일 사라고 하네. 김원장이 그 말을 듣더니 그렇다면 수에즈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아니라 카이로 따위에서 출발하여 가다 들러서는 차일 확률이 높다며(그렇다면 좌석이 없을수도 -_-) 전산화가 되어있는 사무실이 있다면 예매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흠, 수에즈 시내 어딘가에도 알렉스처럼 버스 사무실이 있으려나? 일단 여기 터미널에서는 살 수 없으니 시내로 후퇴하자.

 

지도를 보고 다운타운에 묵을까 아니면 수에즈 운하가 있다는 Tawfiq 항구변에 묵을까를 고민하다 수에즈 운하를 좀 더 편하게 보기 위해 인프라가 떨어지더라도 항구변으로 가기로 한다. 여기서도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계속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던) 택시 아저씨랑 흥정을 해보는데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는 잘 안 내려온다. 그래, 힘 빼지말고 돈 좀 더 쓰면서 편하게 다니자. 터미널에서 20파운드를 주고 Arafat hotel(예멘에서 배운 ‘훈둑’이란 단어가 여기서도 잘 먹힌다. 훈둑 아라파트!)을 가는데 우리랑 말이 거의 안 통함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나 먹힐 수작(그 호텔은 후졌다는 둥, 자기가 좋은 호텔을 알고 있으니 대신 그리로 모시겠다는 둥)을 부리는 우리 귀여운 택시 아저씨. 그러나 우리는 꿋꿋하게 훈둑 아라파트를 찾아간다. 방은 정말 베이직, 그 자체로(잘 안 나오는 TV 포함) 화장실이 딸린 방은 55파운드, 없는 방은 45파운드를 부른다. 화장실 딸린 방이 편하긴 한데 그 방은 창이 없어 다소 감옥 분위기를 풍기는지라 -_-; 화장실이 없지만 환한 방을 택한다(공용 화장실은 후졌지만 그래도 온수 하나 만큼은 간만에 시원하게 콸콸 나와 좋다).  

 

이제 짐을 부렸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선 다운타운으로 나가 돌아다녀보다가 우연히 버스회사 사무실이 걸려들면 내일 버스표 예매부터 하자. 수에즈에는 우리네 봉고와 같은 차량들이 서민들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도 저걸 타고 시내로 가보자. 문제는 지나가는 차량마다 이미 승객들이 꽉꽉 타고 있다는 것. 그러다 우리 옆에 함께 서 있다가 승객이 꽉 찬 차에 올라타는 사람을 보니 열린 문틀을 잡고 전신을 차량 밖으로 내 놓은 채 그냥 매달려 간다. 흠…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김원장도 그렇게 타보겠다네. 결국 김원장은 나를 차 안으로 쑤셔 넣고 본인은 차 밖에 매달린 채 “부디 나를 과부로 만들지 말아다오~” 청을 들으며 시내까지 왔다. 버스 요금은 놀랍도록 저렴해서 일인당 불과 0.25파운드. 우리 돈 50원 안짝.

 

수에즈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거닐다보니 이제서야 내가 말로만 듣던, 글로만 보던 수에즈에 직접 와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동시에 그 사실이 쉽사리 믿겨오지 않는다. 여기가 교과서에 나오던 바로 그 수에즈인거얌? 이 수에즈란 곳은 그간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예전 이스라엘과의 전쟁 당시 주민들 대부분이 폐허가 되다시피한 이 곳을 떠났다가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야 되돌아와 새로이 터전을 일구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래도 여느 이집트의 다른 곳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무언가가 존재하리라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수에즈 시내는 그냥저냥 평범해 보인다.

 

버스회사 사무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마침 슈퍼마켓이라 쓰여진 영문 표기가 있어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본다. 앗, 제법 큰 슈퍼마켓이다(그간 아랍어를 모르는 까막눈 신세였던지라 이렇게 숨어있는 큰 슈퍼마켓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쌀도 사고 인스턴트 커피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대의 언니가 계산은 둘째치고 우리를 무척이나 신기한 듯 정신없이 바라본다. ㅎㅎ 신기하기도 하겠지. 이번 여행을 하면서 원숭이 취급 당하는 데는 무척 익숙해졌다.

 

슈퍼를 나와 거리를 걷다보니 가이드북에 소개된 해산물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온다.

 

-               내일 다합에서 먹는 해산물이 저렴할까? 아니면 이 곳 수에즈가 해산물이 저렴할까?

-               아무래도 다합은 휴양지 분위기가 날 테니 이 곳 수에즈가 더 저렴하지 않을까?

 

잔머리를 굴려본 우리는 이 곳에서 때려먹기로 한다. 중동 특유의 향이 약간 나긴 한다만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처음엔 모듬구이 작은 놈을 시켜서 생선, 오징어, 새우 세 종류를 골고루 맛 보고, 이후 김원장이 제일 맛있다는 새우만 따로 한 접시를 더 시켜 배터지게 먹는다(대략 100파운드). 생각보다 바닷가치고 해산물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우리가 계속 바가지를 쓰고 다니는게 아니라면 -_-; 이집트는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치고는 다른 여타 물가에 비해 해산물의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자면 여전히 싸다. 게다가 오늘 먹은 아이들은 아마도 홍해 수에즈만에서 잡아올린 애들이 아니련가! (김원장은 기껏 신나게 잘 먹어놓고는 이제와 수북히 쌓인 새우 껍질을 보며 우리 단 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냐는 둥 앞으로는 채식을 해야겠다는 둥 딴 소리를 하고 있다 -_-;)

 

이번엔 김원장을 미니버스 좌석에 잘 앉힌 뒤 ^^ 다시 항구로 돌아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도 부르겠다, 이제는 그 유명한 “수에즈 운하”를 보러 갈 차례!

 

우와, 이미 밝혔듯 수에즈는 전혀 우리 계획에 없던 방문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에즈 운하만큼은 정말 근사한 놈이었다. 이렇게까지 좁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운하에(바로 건너편 시나이 반도가 내가 수영해도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다) 엄청난 크기의 선박들이 한 척씩 한 척씩 적당한 간격으로 줄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김원장은 이렇게 큰 배들이 줄줄이 항해하는 모습을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모양이다).

 

 

 

 

 

항구변에는 수에즈 운하를 따라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수에즈 주민들의 피크닉 장소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애용되고 있었다. 엄청 커다란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지어 지나가는 가운데 오붓하게 싸온 도시락을 가족끼리 나눠먹고 닿을 듯 말 듯 거리를 유지한 채 연애를 하는 모습이 다소 생경스럽지만, 우리도 수에즈 운하에 하릴없이 낚싯대를 드리운 한 아저씨 옆에 나란히 앉아 배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불행히도 아저씨의 오늘 조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새우 미끼를 쓰고 계시는데 아직 한 마리의 조과도 올리지 못하신 상태(배 한 척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파도가 이는데 그 아래 고기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을라나 몰라). 그래도 공원의 손수레 간이 찻집에서 차 한 잔 주문하여 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서 우리는 멕시코 어부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린다.

 

선미에 매달린 국기를 보며 지나가는 배 국적 맞추기도 하고, 배들이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기 직전 이 곳의 사무소에서 뭔 신고라도 해야하는지 그 커다란 배 옆으로 작은 모터보트를 기가 막히게 갖다대어 큰 배에서 누군가 그리로 하선했다 우리 옆 사무실에서 수속을 밟고 다시 모터보트에 올라 얼른 원래의 배로 돌아가는 흥미로운 모습도 지겹도록 지켜본다. 사진까지 신나게 찍고 숙소로 돌아오다보니 ‘수에즈 운하에서 수영 금지, 낚시 금지, 사진 금지’라고 쓰여진 안내판이 있네 ^^;

 

막상 와보니 수에즈는 수에즈 운하,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어쩌면 기대를 전혀 안 했기에 이렇게 느끼는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내일 우리는 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즉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제 다시 아시아다!

 

@ 오늘의 영화 :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말도 안 되는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엮어 영화를 만들어도 그저 웃기기만 하면 OK인거야?

 

@ 오늘의 다큐 : 흠냐, 이제 나는 유적지를 벗어나려는데 얘가 또 나를 붙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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