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띠보의 미스터 찰스 게스트 하우스 주인집 딸

 


<숙소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김원장>

 

오전 7시 30분에 픽업을 오기로 한 택시가 제 시간엘 오질 않아서 얼결에 만달레이에서 대학을 나온 주인집 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 공부하는 옆 집 학생들의 정체에 대해 묻기도 하고, 빈대 박멸에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나는 그녀의 풍부한 표정과 대화법을 통해 그녀가 참으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고 생각했다(지금 보니 뭉그니님의 글에 따르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이 그녀가 그 그녀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마케팅에 대해 좀 알고 있는 듯 하다).

 

어차피 우리 영어가 짧으므로 대화는 심도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이런저런 잡다구리 이야기만 훑다가, 문득 그녀의 눈이 우리의 짐에 머물면서 이야기 주제가 '여행'으로 자연스레 넘어가게 되었다.

 

"배낭이 그게 다야?"

"응"

"너무 작은데? 다른 여행객들 짐은 다 이만해~"

"그렇지? 근데 우린 이게 다야"

 

이번 여행은, 짐을 최대한 줄여보자,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봇짐은 진짜 단촐, 그 자체였다. 아마, 한국이 겨울이 아니었으면, 더 가벼운 배낭이었을 것이다.

 

"띠보까지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오니?"

"많진 않아. 작년엔... 30명 정도 왔었나?"

"그럼 일본애들은?" -> 왜 나는 이런데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일본인들은 많이 오다가 요즘엔 안 와. 한국인들이 더 와" -> 일본애들은 요즘 어디를 쑤시고 다니는걸까... 몇 년전 부터 진짜 궁금하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와?"

"독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와"

 

음. 독일이라... 세계에서 여행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 사람이 독일인이라고 했었지. 버마의 띠보 한 구석에서 새삼 그 사실이 실감 난다.

 

"여행 많이 해?"

"음... 응"

"어디 어디 가 봤어?"

"음... 블라블라블라블라... 대략 그 정도 가봤어"

"우와, 그럼 홍콩도 가봤어?"

"응"

"와, 좋겠다. 부러워. 난 홍콩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그러고보니 그녀의 외모는 지극히 중국적이다(역시나 뭉그니님의 글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니까 그녀도 100% 중국인 핏줄일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TV를 통해 보여지는 홍콩이 외부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환상(?)을 심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택시에 오르면서,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그녀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면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버마에 살고 있는 그녀가, 살아 평생에 과연 홍콩에 가 볼 수 있을까...


홍콩에서 활짝 웃는 그녀를 보고 싶다. 

 

2. 오스트리아에서 온 커플

 


<트레킹 중 만난 꽃>

 

뒷말을 좋아하는 나라서 -_-; 만달레이로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나의 상상력이 결국 완결편을 맺었다.

 

이들을 처음 만난 곳은 삔우린의 기차역이었고, 그들은 띠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란히 우리 옆 좌석에 앉았으며, 띠보에 도착하여 역시나 같은 숙소에 들었고, 함께 보트 트립까지 했지만, 내내 그들과는 단 한 마디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인(?)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노땅 커플인데, 부부라 하기엔, 적어도 나의 이 후진 관점에선, 여인이 한참 연상으로 보이는, 그런 커플이었다.

 

보트 트립 중 여인은 그래도 가이드와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나눴고, 그걸 귀동냥으로 듣고서야 그들이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그 남자가 기차에서 읽던 가이드북의 표지가 영어가 아니더라, 하며 잠시 리마인드를 하고.

 

나의 관심을 끈 건 남자쪽이었다(당연하다고? ㅋㅋ). 그는, 나의 대학 시절, 내가 '오피'라고 불렀던 어떤 선배와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참고로 난 '오피'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약자로 썼었다.

 

그는 말이 도통 없었고, 스님이 내오는 음식에도 관심이 없었으며(오오 이런, 나의 관점에선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엄청 커다란 수동 카메라를 들고 댕기는, 그래서 쭈그리고 이런저런 사진을 찍느라 일행에서 자꾸 뒤쳐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쯧쯧, 저러다 따 당하기 십상아닌가.

 

보트 트립이 있던 날 밤에, 내 드라마에 관심없어 하는 오빠를 붙들고 내가 풀어낸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 저 둘은 현재 부부일지라도, 서로가 첫 상대는 아닐 것이다. 남자는 사진가, 즉 예술가로, 보통 저런 류의 사람들은 본인을 이해해주는 연상의 여인을 반쪽으로 찾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아가 너무 강해 저 부인이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쉽지는 않겠다 운운 -

 

뭐, 그러다 여느 때처럼 그들은 내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적어도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진.

 

그들을 다시 만난 곳은 삔우린 외곽의 한 휴게소 앞에서였다. 우리는 합승 택시를 대절해서 만달레이로 되돌아 가는 길이었고, 그들은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를 이용해서 만달레이로 가는 길이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2시간 이상 일찍 출발했지만, 그들은 버스이고, 우리는 택시였기에, 결국 중간의 한 장소에서 도킹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 아는 얼굴.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처음으로 그 여인과 말을 섞게 되었다. 여인은 버스 여행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우리 택시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데다, 이 휴게소의 음식도 썩 내키지 않는지 배도 많이 고프다고 했다. 쯧쯧.

 

그러다, 역시나 따로이 홀로 서서 이것저것 관찰하고 있던 그 남자와도 마주치게 되었다. 어, 그런데, 이럴수가, 오피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저토록 정겨울 줄이야...

 

오피 취소!


결국 나의 빈곤한 상상력은 아래와 같이 끝을 맺었다.


...아저씨는 영어를 잘 못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수줍은 성격의 남자로, 사실은 누구보다도 예술을 이해하고 버마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또한 카메라 앵글에 그 순간을 담아 영원히 남기고 싶어했던, 지극히 마음이 따뜻한 남자였다 블라블라블라...

 

너무 상투적이라고?   


창의력을 길러 업글하도록 하마.^^


 

3. 대만발 합승객



<만달레이 한국음식점 가는 길>

 

만달레이까지 가는 합승 택시 뒷자리에 우리 둘이 편하게 앉아가면서(앞 자리엔 이미 한껏 멋을 낸 한 아주머님이 앉아계셨다), 이 편안함이 만달레이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랬건만, 차는 우리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키아욱메(Kyaukme)에 들러 또 한 명의 승객을 태웠다. 결국 오빠, 나, 그 아저씨 순으로 나란히 앉아 가게된 셈. 어색한 '밍글라바' 인사로 일단 말문은 텄지만 나는 인상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 아저씨 쪽으로 이후부턴 내내 고개도 그쪽으로 못 돌리고 불편한 자세를 지켜나간다.

 

하지만 길 사정은 이런 나의 고충을 알기나 하는지, 덜커덩거리기도 예사거니와 계곡을 건너기 위해 구절양장 꼬불꼬불한 길을 내리락 오르락 난리법석이다. 덕분에 자연스레 오빠를 몸으로 밀어붙이다가 아저씨에게 한껏 기대기도 하면서 스킨쉽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트렁크에 가방을 잔뜩 싣고도 모자라 작은 배낭까지 들고 탄 아저씨가 잠시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껌 한 통을 꺼내어 쫙~ 돌린다. 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단물이 빠져가나 싶을 때쯤 다시 부스럭거리시더니 이번엔 웬 오징어 눈깔(?)을 하나씩 주신다. 일어로 주절주절 쓰여진 개별 포장 안에 오징어 눈깔로 보이는 것이 짭조름하게 양념이 되어 꼭 우리나라 훈제 오징어 비스끄리무리한 맛을 낸다. 택시를 탔음에도 불구, 멀미에 시달리는 오빠는 안 먹지만, 나는 당연 잘 먹는다. 음, 제법 비싸 보이는데? 하면서.

 

이것저것 잘 먹어대는 나를 보던 아저씨가 갑자기 툭 던지신 말,

 

"Are you Korean?"

 

어, 어떻게 한 번에 알아맞추셨을까? 그간 경험상, 이런 국적 맞추기는 웬만큼 그들의 문화나 언어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한 번에 맞출 수 있는 고난이도의 문제인데...

 

"I'm from Taiwan"

 

아하, 그제서야 이 아저씨가 우리가 한국인임을 간파해낸 이유를 알아챈다. 우리가 얼굴은 비슷비슷해도 그들의 말을 듣고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쉽게 구분해 내듯이, 이 아저씨도 우리가 한국인임을 쉽게 알아낸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저씨의 스타일이 버마인이라기엔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긴, 대만인이라 하기에도 좀 어색하긴 한 복장이다. ㅋㅋ

 

지금껏 말을 한 마디도 안 하셔서 그렇지, 알고보니 영어를 꽤나 하시는 분이다. 현재 카오슝에 사시고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 용평에서 스키도 타다 가셨단다. 키아욱메에 친척들이 살아서 두 달 정도의 일정으로 버마를 방문하셨다고도 한다. 역시 버마에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아직은 못 가 본 대만에 대해 몇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영어로 정리하느라 머리가 아파 온다. 정치적 경제적 질문들이라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기가 힘이 드는데, 어랍쇼, 아저씨는 만달레이 못 미쳐 다른 친척집을 가는 중이라며 우리보다 빨리 내리신단다. 아저씨의 유창한 버마어로 택시 아저씨가 찾아간 곳은 만달레이 외곽에 위치한 한 마을이다. 버마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의 부촌으로 유럽식 저택으로 지은 복층 집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데 그 중 한 집 앞에서 내리실 준비를 하신다. 두터운 철제문 사이로 강남에서 많이 보던 외제차 두 대가 서 있다. 음...

 

잘 가시라,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버마어를 그렇게 잘 하시나요?"

"하하하. 제가 버마에서 태어났거든요"

 

음... 아저씨의 히스토리가 궁금하다.  

  


4. 만달레이 호텔 소속(?) 택시 아저씨

 


<밍군으로 가는 배 안에서>


내일 항공편을 미리 예약해 둔터라, 만달레이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밍군을 구경갈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숙소 프런트에서 밍군으로 가는 배라면 언제든지 선착장으로 가서 따로 빌릴 수 있다고 하기에(돈이 문제지 -_-;), 그럼 정규편이 없는 오후 느지막이라도 밍군을 갔다오기로 했다.

 

"그럼 선착장까지는 트리쇼 타고 가면 되나요?"

"트리쇼로 가기에는 좀 멉니다. 저희 호텔 택시를 불러 드릴께요"

 

곧 인상 좋은, 홍금보를 닮은 아저씨 한 분이 로비로 들어섰다. 아하, 이 아저씨가 택시 아저씨구나, 우리는 졸레졸레 아저씨의 차에 따라 올랐다.

 

"밍글라바"

"Are you Korean?"

"Yes"

"안녕하셔요?" 

 

어라, 아저씨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신다. 우리도 따라 안녕하셔요, 한다.

 

"How did yo know Korean?"

"한국에서 일했었어요"

 

헉, 아저씨 한국어 실력이 꽤 되신다. 알고보니 인천에서 4년간 일을 하다 오셨단다.

 

그런데, 인천에서 4년간 일하셨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어떤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간 내가 너무 부정적인 기사와 뉴스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아직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접에 관해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만 싶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차는 금방 선착장에 닿았다. 아저씨는 우리를 위해 배를 한 척 수배해 주시고,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와 설명해 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저는 다시 가요. 이따 다른 차 타고 가요. 다시 또 만났어요"

 

제대로 영글지 않은 한국말이지만,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만은 영글다 못해 너무 익어 터지고 있음이 팍팍 느껴진다. 비록 같이 보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아저씨랑 악수를 나누며 우리도 인사를 드렸다. 만나서 반가왔어요.

 

다음에 이런 제 2, 제 3의 아저씨를 만난다면 꼭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헤어지고 싶다.

 

"그래요? 한국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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