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라는 무르시족도 안 봤는데, -_-; 뉴욕이라도 봐줘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오늘 아침에 콘소에서 뉴욕을 보고 떠나기로 했다. 머스 말로는 뉴욕이 오늘 가고자하는 방향과는 반대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전에 뉴욕을 보느라 일정이 좀 늦어진다면 오늘 오후엔 소도까지만 가자고 한다. 그래도 모레 발레행에는 크게 차질이 없을 거라면서.

 

어제 미리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머스에게 진작 뉴욕을 보고 가겠다 언급해 두었는데도 머스는 일을 한 건지 안 한건지(아님 못한건지), 오늘 아침, 뉴욕 입장료를 지불하러 마을 어딘가부터 가야한다고 한다.

 

-          뉴욕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

-          그렇긴 한데 지금이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매표소가 문을 안 열어서 이 마을에 사는 징수원에게 돈을 내고 가야해.

 

역시나 썩 믿음직스럽지 않은 시스템이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하니 차에 올라탄다. 어라, 그런데 내 옆에 갑자기 어제의 가이드가 올라탄다. 분명 우리는 빌리지에 안 간다고 했는데? 그러고보니 가이드가 머스에게 징수원이 사는 집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탄 것도 같다. 그의 안내에 따라 마을의 좁은 골목을 돌아돌아 어느 집 앞에 우리 차는 섰다.

 

징수원네 집이라고 했는데 징수원이 벌써 나간건지, 아님 알려준 방의 옆 방에서 나온 이 여인이 징수원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징수원이 아니라도 아무나 표를 끊어줄 수 있는 것인지, 과연 저 여인이 들고 있는 종이 뭉치가 티켓 혹은 영수증이 맞는 것인지, 액수는 정말 1인당 50비르인지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손에 100비르를 쥐고 언제라도 입장료를 지불한 태세에 있었던 나는 그래도 입장료 외에 차량에 대한 비용으로 10비르가 추가된다는 것까진 용인해 주기로 한다. 그런데 우리 차를 여기까지 안내해 주고도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며 친한 척하는 이 가이드를 우리가 거기까지 데리고 가야하며, 그 가이드 비용으로 50비르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짜증이 팍 밀려온다. 뭐야, 이거? 또 이런 식이란 말이야?

 

이미 우리에게 티켓을 끊어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여인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시 일정을 틀기로 한다. -_-; 우리, 뉴욕 안 갈란다. 그냥 소도로, 샤샤마네로 출발하자.

 

우리가 마음을 틀어버린 것을 안 가이드는 얼른 김원장을 붙잡고 가이드 비용을 30비르로 깎아주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얼마를 원하느냐, 그 가격에 맞춰주겠다며 부산스럽다. 한편으로 약간 짠해지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그 넘의 돈 때문에 -_-; 이런 식으로 아무 것도 안 보고 휙휙 지나치는 것도 좀 아쉽지만(내가 대체 에티오피아를 언제 다시 온다고! 에티오피아는 그 입지와 인접 국가와의 정치적 문제상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앞으로도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런 기분으로 관광이랍시고 히히덕거리며 구경할 마음도 안 나는 것을 어쩌랴. 이래저래 찝찝하긴 매한가지네.

 

콘소를 떠나 아르바민치로 가는 길. 김원장이 처음 이 길을 지나올 때 아이들이 길에 나와 과일을 파는 것을 봤다며 이번에 돌아갈 때 그 지점에서 과일을 사보자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김원장이 기억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여전히 아이들이 바나나와 망고를 팔고 있다. 머스에게 부탁해서 망고 가격을 물어보니 이들이 망고를 한아름 담아둔 바구니 하나에 10비르라고 한다. 10비르? 정말? 10비르라면 우리 돈으로 1000원 밖에 안 하는데? 속는 셈치고 10비르를 내어본다. 그런데 정말 커다란 바구니에 들어있던 망고를 모두 차 안으로 건네준다. 이게 다 천원어치란 말이야? 뒷자리에 받아든 망고를 하나씩 깔아두고 세어보니 자그마치 17개 -_-; 에 이른다. 맙소사. 우리나라에서 망고 하나에 얼마를 받더라?

 

-          아토 머스, 한국에선 이만한 망고 하나에 2달러도 넘을거야.

-          정말? 한 개에 2달러? 말도 안 돼. 사람들이 그 가격에 망고를 사먹는다는 말이야?

-          그럼~ 좋은 레스토랑에서 망고 주스 한 잔 마시려면 4~5달러도 내야할걸?

 

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더니 곧이어 하는 말,

 

-          에티오피아에는 망고가 이렇게나 많으니 부자 나라네? ^^;

 

정말이지 망고를 그 가격에 바꿔치기할 수만 있다면 에티오피아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 망고를(그리고 저렴하기가 이를데없는 망고에 삘받아서 바나나까지 신난다고 더 지른 탓에 ^^;) 담기 위해 내가 비닐봉지를 요구하자 그 봉지를 1비르에 파는 나라가 바로 이 곳이다. 누군가 쓰던 비닐봉지 하나에 100원을 받는, 그게 바로 에티오피아의 현실.

 

비닐봉지 뿐이랴. 우리 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차를 발견한 아이들의 십중팔구는 뭐라뭐라 외치며 우리 차를 따라 뛰곤 하는데 나는 그게 막연히 돈을 요구하는 소리라 생각했었다. 오늘 김원장이 유심히 그 소리를 듣다가 머스에게 물었겠다.

 

-          아이들이 할랜, 할랜 외치는 것 같은데 할랜이 뭐지?

 

머스가 대답 대신 집어든 것은 본인의 물통. 그가 보여주는 1.5리터들이 페트병에는 Highland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제주 삼다수 따위에 해당하는 에티오피아의 대표적 생수 브랜드명 중 하나가 바로 하이랜드였던 것(우리는 그걸 할랜이라고 들었고). 그렇다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물이란 말인가? 머스의 대답은 No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물통 자체였다. 물통? 물통을 어디에 쓰려고?

 

우문에 현답이라고 물통은 그야말로 물을 담는데, 옮기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상(하)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을 어디선가 길어오거나 떠와야하는데, 그 용기 자체가 귀하다는 것이다. 순간 파키스탄 라카포시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길에 만났던 미나핀 마을 아이들 생각이 났다. 그 아이들도 내가 들고 있던 물통을 심히 탐냈었지.

 

아이들이 우리 차를 따라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며 그리 원하는 것이 그깟 물통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껏 에티오피아 남부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적어도 하루에 물 한 통씩은 비워대는데 매번 그 빈 통을 숙소 쓰레기통 옆에 얌전히 놓아두고 나왔던 생각이 났다(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어 재활용 쓰레기로 셀프 분류 -_-). 아, 안 되겠구나. 이제부터라도 물을 다 먹으면 빈 통을 차에 갖고 타야지. 그래서 원하는 아이에게 줘야지. 그러면 우리 차를 따라 뛰어올 때마다, 혹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개구리춤을 추어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얘야, 그렇게 따라뛰다간(혹은 그렇게 춤을 춰대다간) 그나마 먹은 게 다 꺼지겠다’ 여겼던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알면 보인다더니, 아르바민치에 도착해서 작은 부스형의 점방을 보니 정말 빈 물병들이 대롱대롱 줄에 매달려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저게 파는 거였구나. 이들이 우리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일에 넘치다 못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각종 페트병들을 본다면 환장할지도 모르겠다. 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거지?

 

 

 

게다가 아르바민치 역시 심각한 주유난을 겪고 있다. 이 곳에서도 머스는 기름을 넣지 못해 주유소 몇 곳을 전전한다. 기름없는 주유소,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 불이 켜지지 않는 방, 쥐가 뛰어다니는 식당…

 

 

겨우 기름을 넣고 우리 차는 다시 소도를 향해 달린다. 콘소에서 뉴욕을 보지 않고 떠나왔기 때문에 오늘 일정에 여유가 생긴지라 점심은 소도에서 먹고 오늘 샤샤마네까지 달려줘도 되겠다. 며칠 전 소도를 지나면서 Bekele Molla 호텔 레스토랑 가격이 비싼지라 거부하고 대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기대 이상의 식사를 했던 경험이 있지만, 스파게티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메뉴상의 한계와 김원장이 투르미에서 장에 고통을 받았던 기억도 -_-; 있고 해서 이번엔 안전빵으로 베켈레 몰라 호텔을 이용하기로 한다.

 

베켈레 몰라 호텔은 이름 그대로 에티오피아의 정주영이라고나 할까, 베켈라 몰라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처음 세운 호텔 체인점으로 이 근처 웬만한 동네에서는 하나씩 그 이름을 내건 호텔을 찾아볼 수 있는,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인데 호텔 부설 레스토랑에서는 고가의 가격 때문인지 외국인말고는 이용객을 찾아볼 수 없다. 메뉴판에는 그 이름이 존재하지만 현재 불가능하다는 요리들을 요리조리 피해 ^^; 소고기 탕수육스러운게 나오길 바라면서 fried meat(beef)을 하나 주문해 본다(33비르+환타 2병10비르).

 

 

역시 인생사, 기대하지 말고 살아야지. -_-; 우리 앞에 놓인 고기요리는 잘게 썰었는데도 너무 질겨서,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 늙은 소(실제 에티오피아에서 이론상 제 명을 다하고 죽는 소가 얼마나 될까? 차라리 과로사하는 쪽이 대부분 아닐까? -_-)의 고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신나게 빵만 뜯다가 일어선다.

 

소도부터는 길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다.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거든 ^^ ㅎㅎㅎ 덕분에 이후 샤샤마네까지 이르는 길 위에서는 시속 60Km를 넘지 못하는 우리 차라 할지라도 기분상으로는 시속 100Km를 훨씬 넘어서는 느낌이다. 그간 속도에 굶주렸었나 보군 ㅋㅋ

 

샤샤마네에서는 베켈레 몰라 샤샤마네 지점에 짐을 풀기로 한다. 놀랍게도 트윈룸 60비르의 가격이 몹시 경쟁력있다. 나름 도시(?)라서 경쟁이 심해 가격을 낮춰준 것인지, 아니면 혹시 리셉션 아저씨가 (실수로?) 현지인 가격 그대로 주기라도 한 것인지 모르지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도 뒷마당의 숙소 안에 들어가 있으면 짹짹 이름모를 새도 울고 전혀 시끄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물론 찬물만 사용 가능하고 전기는 어두워져야만 들어오는 시스템은 마찬가지지만) 곳이다. 게다가 화장실에는 에티오피아에선 보기 드문 형광등이 달려있는지라 마치 화장실 안이 우리 집 같다 -_-; (참고로 김원장이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지라 우리 집은 평소 불을 환하게 켜두고 지낸다). 이상하게도 에티오피아는 전기료가 싸지 않은 것 같은데도 전구로는 백열등을(그것도 성능/전력의 문제인지 열라 어두컴컴한) 이용한다. 아니, 그걸 백열등이라고 해야하나? 그저 알전구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이 글을 쓰다보니 이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형광등 자체를 구하기 어려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워낙 물자가 귀한 곳이니). 어쨌거나 그냥 환한 화장실 안에만 있어도 좋다. 화장실 하나 밝다고 이렇게 둘이 히히덕거리며 좋아하다니 그간 에티오피아에 은근 적응했구나. ^^;

 

내일부터는 이제 방향을 틀어 발레 마운틴을 향해 가야하니 오늘 꼭 아베베와의 통화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샤샤마네는 아디스랑 멀지 않아서 그런지 머스의 휴대폰이 터진다.

 

-          아베베, 네가 전에 추가되는 거리가 800Km가 넘어서 800비르를 추가로 더 내라고 했잖아. 근데 내가 지도보고 계산해 보니까 500Km가 안 넘을 것 같아. 그럼 다녀와서 500비르만 더 내면 되지?

-          내가 대신 차에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은 지겠다고 했잖아. 난 800비르를 받아야해.

-          추가되는 1Km당 1비르라며? 그러니까 500비르면 되는 거 아냐?

-          800비르를 더 내고 발레마운틴에 다녀오던지, 아니면 가지 말던지 둘 중 하나야.

 

어랍쇼? 아베베가 이렇게 세게 나오면 안 되는데? 우리는 당연 아베베가 잘못을 시인하고 500비르에 오케이하던지, 아니면 서로의 중간 가격으로 새로이 네고가 되던지 뭐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가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 쓰벌, 영어도 안 되는데(게다가 얼굴 안 보고 하는 전화 통화는 거의 쥐약이다) 아베베가 예상 밖 배째라 버전으로 나오니 이를 어쩌지?

 

-          우리가 발레 마운틴을 갈 생각으로 오늘 샤샤마네까지 벌써 와버렸는데 만약 우리가 발레 마운틴을 안 가면 남은 일정은 어떻게 하고?

-          샤샤마네 근교의 다른 관광지를 들러도 되고(이 옵션에 대해서는 이미 머스와 이야기를 나눠본 바 있는데 그다지 끌리는 관광지들이 없었다) 내일 그냥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온다고 하면 남아있는 이틀치에 대해 환불해 줄께.

 

, 무어라? 환불이라고라? 우리가 처음 계약서를 쓸 때 차량을 열흘간 렌트하기로 한지라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무조건 최소 열흘을 채워야 하는 줄 알았더니 차를 미리 가져다줘도 돈을 돌려준다 이거지? 혹여 내가 잘못 알아듣지나 않았을까 하고 재차 환불 여부를 확인받은 후에 알겠다, 일단 생각해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저러나 아베베가 220불에 달하는 환불은 해주겠다면서 발레행에 추가되는 80불에 집착하는 이유는 뭐지? -_-;

 

머스에게도 내일 일정은 생각해 본 뒤 내일 아침에나 알려주겠다고(매일매일 일정을 바꿔대는 이상한 승객들 -_-;) 양해를 구해놓고 우리는 또 다시 장고에 들어간다. 80불을 더 내고 발레를 다녀오느냐, 아니면 220불을 환불받고 내일로 에티오피아 남부 여행을 마치느냐.

 

잠시 생각해보던 김원장왈, 앞으로 5일 뒤인 21일로 예정되어 있는 이집트행 항공편을 앞당길 수만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자고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계획대로 발레를 다녀오고. 그래, 김원장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리셉션 데스크로 가서 아디스아바바의 티켓을 구매했던 여행사에 전화를 넣어본다. 오늘 여기저기 안 되는 영어로 전화하느라 나도 애쓴다 ^^; 머릿속으로 열심히 영어 문장 정리를 하고 있는데 -_-; 그 쪽에선 오늘 영업 끝났어요, 내일 다시 전화하세요. 딸깍이 전부다. 그리고 그렇게 단 두 문장 들었을 뿐인데 리셉션 아저씨가 5비르나 받아 챙긴다.

 

이미 김원장에게 결정권을 넘겼고, 어차피 항공권 사정은 내일이나 되어야 알 수 있는 것, 김원장이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니 나 역시 머스와 마찬가지로 내일의 일정은 내일 아침에나 알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저러나 만약 김원장이 후자로 결심을 굳히고, 우리가 항공권을 당겨 이집트로 떠난다면(사실 나는 이 편이 더욱 끌린다. 특별히 강조해서 밝히건데 절대 220불에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ㅋㅋ), 저 수많은 망고들은 어떻게 하지? -_-;

 

@ 아! 나 오늘 사고쳤다. 화장실이 밝다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노닐다가 그만!!! 안경을 떨어뜨렸다. 다행히도 아작이 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사이드가 조금 깨져나갔다(그것도 한쪽씩 사이좋게). 뭐 그래도 얼른 다시 집어 쓰고 거울을 보니 슬쩍 보면 잘 모르고 지나칠 만한 수준이다. 이게 혹 무슨 계시는 아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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