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분명 오늘 아침 아베베와 다시 전화 연결을 시켜주기로 했던 머스가 쌩까고 있다. 뭐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어차피 새로 짠 볼레 마운틴행 일정과 기존의 일정이 오늘과 내일까지는 거의 동일하니까 그 때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는 셈이다(김원장이 새로 짠 회심의 루트 : 오늘은 콘소까지 내일은 샤샤마네까지 열심히 달려가고 모레 오전, 발레 밑바닥 마을에 이른 후 모레 오후나 글피 오전에 발레를 올라갔다 내려와 아와사 따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가면 딱 열흘을 채우게 된다. 아싸~).

 

비록 볼레로 마음을 틀긴 했지만, 그리고 어제 역시 밤비가 살포시 내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미련이 있었는지 떠나기 전, 징카의 장을, 아니 무르시족이 징카의 장에 나왔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머스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더니 징카를 떠나기 전, 오늘 장이 서는 장소를 물어물어 찾아가 준다. 하지만 투르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직은 장이 서기엔 너무 이른가보다. 물건을 팔 사람들 몇만 나와 장사에 유리한 자리를 목하 물색 중이다. 아무래도 무르시족과는 연이 아닌게지,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고 떠나자. 우리는 이렇게 징카를 떠난다.

 

징카에서 다시 카코를 지나고, 카코에서 다시 케이아파르를 지나고, 여기에서 직진을 하면 다시 투르미로 가는 길이겠지만, 이번엔 좌회전을 해서 며칠 전 지나왔던 웨이토로 향한다. 여전히 비포장도로만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제로 최악의 도로는 벗어난 모양이다. 아베베의 말대로 발레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할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샤샤마네까지는 점점 길이 좋아질 것이다.

 

 

 

우리 차는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웨이토에서 멈춘다. 그러고보면 웨이토가 나름 이 동네 교통의 요지인 셈이다. 점심 시간대에 이르자 우리 같은 투어팀의 외국인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지나가는 대부분의 현지 차량들도 웨이토에 있는 이 3개의 레스토랑들에 들러 식사를 한다. 지난번 들렀던 레스토랑에서 이따만한 쥐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바로 맞은 편 레스토랑에 들어간다(레스토랑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다 거기서 거기인 수준의, 지붕만 갖춰진 반 야외 식당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스파게티 가격을 물으니 똑같이 15비르를 부른다. 흠, 나름 통일된(=짜고 치는 -_-;) 가격이라 이거지? 김원장은 근래 점심식사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우리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는 중이다. 고지대라서 그렇다, 밥먹고 별로 움직이는 일 없이 차만 타서 그렇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 외식 메뉴인 스파게티에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등등) 또 한 그릇만 시킨다. 웃긴 일은 주문을 받은 직원이 지난번 식당과 같은 주방으로 들어가 주문을 전하더라는 것.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앞에 앉아있던 현지인에게 김원장이 이 레스토랑과 맞은 편 레스토랑과의 관계를 물어본다.

 

“여기랑 저기랑 주인이 같애. 그리고 바로 앞 저기까지 합쳐서 요기 3개의 레스토랑 주인이 모두 같애”

 

그 말을 증빙이라도 하듯 내 앞으로 또 다른 쥐가 후다닥 뛰어간다. -_-;

 

그렇게 말을 섞게 된 그는 알고보니 아직 어린 학생이다. 형제는 자기까지 7남매인데 그 중 본인만 학교를 다니고 있단다. 학비는 한 달에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 드는데 이 비용이 본인 가정에서는 충당하기 어려운 거금인지라 부모님은 자신이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고 계신단다. 학교를 다닌다고 돈이 나오냐, 차라리 농사 짓는 것을 도와라 그러신다나? 그래서 본인이 직접 돈을 벌어 학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면 수업을 듣고 그러다 다시 학비가 떨어지면 지금처럼 또 돈을 번단다(현재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자신을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지만, 본인은 공부도 좋고 무엇보다 학교를 마치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을 하거나 선생님이나 의사가 될 수도 있다면서. 그렇게 해서 돈을 벌게 되면 이후에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겠다고도 했다. 뭐랄까, 그런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부끄러움의 크기란.

 

한순간 이런 비슷한 레퍼토리로 나가다가 그러니 돈 좀 달라 -_-; 요구했던 인도나 네팔 아이들이 생각나서 멈칫했던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때가 탄게야 ㅠ_ㅠ), 끝내 그런 일말의 뉘앙스 하나 풍기지 않고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한다면서 악수를 청하고 가는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조금 쓸쓸해보였다. 그에게 이런 희망찬(?) 이야기를 들었으니 가슴 든든하고 마음이 뿌듯해져 와야하는 거 아닌가? 왜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거지?

 

웨이토부터 콘소에 이르는 길은 전에 이미 한 번 밟았던 길이지만 이번엔 거꾸로 달려가는 길이라 그런지 여전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치 하나는 정말이지 끝내주는구나. 이 길도 언젠가는 모두 포장이 되고 – 현재 구간 구간 도로 공사 중인 곳이 제법 많다. 하지만 이들이 도로 포장하는 양을 바라보자면 대체 이런 속도로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차가 다닐만한 도로가 생겨날지 짐작하기 어렵다. 공사용 차량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업의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이 커다란 돌을 힘겹게 하나씩 들고 나르거나 바닥에 놓은 채 손발로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정말 차 한 대 어디서 빌려다 주고 싶다 – 차들도 지금보다 많이 다니게 되면 – 이 역시 단순히 도로가 놓인다고 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현상은 아니겠지만 – 이 곳도 그 모습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이 그 본모습을 잃는다고 해서, 그 공간을 사람들이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난개발, 차지한다고 해서 아쉬워하진 말아야지. 우리가 흔히 ‘지구는 하나’라는 표현을 접하곤 하지만, 그 지구상에는 분명 완전 다른 세계들이 존재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면 환경을 더럽힌다며 엄청난 벌금을 물기도 하는 반면, 어떤 나라에서는 그 쓰레기가 먹거리나 유용한 생필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내 어찌 자연을 사람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길 수 있을까.

 

콘소에서는 머스가 처음 살펴보라 내려준 Edget(?)인가 뭔가하는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머스 말로는 엣젯이 이 나라말로 발전을 뜻한다고 한다. 음… 발전이 필요한 숙소이긴 하다 -_-;). 살짝 피곤함이 몰려와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 귀찮기도 했지만, 달리는 차에서 내다본 콘소는 (제법 큰 마을이라고 해도) 징카보다 우울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둘러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여기 묵기로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리셉션 벽에 아예 나 같은 사람도 척 알아볼 수 있게끔 현지인들의 트윈룸 숙박 가격은 40비르/박면서 외국인에게는 같은 방을 80비르라 적어둔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외국인은 두 배의 요금을 내는 것이 공식적으로도 당연하다는 듯.

 

방에 있어 그 밖의 것들은 에티오피아에서라면 당연(?)하다고 할만한 수준이었다. 변기는 커버가 없었고 전기는 안 들어오고(그래도 어두워지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물 역시 찬물 밖에 안 나오고… 게다가 에티오피아의 숙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그 외관이나 내부가 살짝 감옥스럽다. ^^; 더불어 오늘 묵는 콘소의 숙소 역시 입구에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그러니까 전기가 나가는 그 직전까지 매우 소란스럽다는 것까지 다른 곳과 비슷하다.

 

그리고 또 하나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외국인들이 이용할만한 숙소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여지없이 가이드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투어를 하라며 호객을 한다는 것인데, 이 곳 역시 콘소 빌리지 투어를 하라는 가이드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가이드와 함께 콘소 빌리지 투어를 나가는 것 외에 마침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옵션에 일명 ‘뉴욕’이라 불리우는 침식 기암군(?)이 있는지라 부족 구경은 제쳐두고 차라리 얘를 볼까말까 살짝 고민하는 중이다. 머스 말로는 내일 아침 일찍 뉴욕을 보러가려면 오늘 미리 신청해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미리 신청해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예감이 썩 좋질 않아설라무네 ^^;)

 

아침에도 모르는 척 했던 머스를 다시 불러 지금이라도 아베베와 연결시켜 달라고 했더니 콘소 역시 현재 휴대폰이 불통이라고 한다. 흠… 어쩔 수 없이 아베베와는 내일에나 통화가 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 아프리카 여행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여행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간 남아프리카나 동아프리카에선 그다지 동감한 적 없었던 그 말을 에티오피아에 와서야 조금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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