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밤비 내리는 소리는 딱 자장가더니 결국 정신 사나운 닭울음에 잠을 설쳤다. 안 그래도 좁은 침대에 가운데마저 꺼져있어서 이틀밤 동안 모로 잤더니만 여기저기 몸이 찌뿌둥한데… 아, 한국 우리 집 안방에 있는 침대가 아주 좋은 침대였구나(이런 데서 잘 때마다 새삼스레 느끼곤 하는 내용).

 

 

 

어제 저녁 산책을 할 때 로칼들에게 듣기로는 오늘 투르미에 장이 선다고 했다. 차를 고치고 있던(아니, 그럼 그간 떨어져나간 그 부속품을 아직도 안 부착한 채 주행하고 있었단 말인가? -_-) 머스에게 장이 서냐 재확인을 하니 머스는 아니라며 오늘 갈 길이 험해 투르미를 빨리 떠나야 한다는데 대체 누구 말이 맞는건지? (이럴 땐 머스에 대한 신뢰도가 다시 떨어지면서 이 아저씨가 과연 누구 편인지 되새겨보게 된다. 물론 돈 주는 사람 편이겠지 -_-;)

 

결론은 우리가 맞는 것으로, 즉 오늘 아침 투르미에 장이 서는 것으로 났지만(사무엘님의 정보를 보면 이 동네 장이 서는 요일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문제는 장이 오전 10시가 넘어서나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한다. 투르미의 장을 보고 떠나느냐, 아니면 오늘과 내일에 걸쳐 무르시족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위해 오늘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 둘 것이냐…

 

결국 우리는 투르미 장을 포기하고 징카로 떠나기로 한다. 머스의 염려대로 디메카를 지나 케이아파르(Key Afar)에 이르는 길은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는 거의 나비떼와 맞먹는 우스운 속도로 -_-; 달려야 했다(그래도 케이아파르 근교부터는 길이 나아졌다).

 

 

케이아파르의 아이들은 그래도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었으나 식당 주인 언니가 콜라 한 병에 7비르를 받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고, 그 기분은 다시 카코 마켓에서 풀어졌다. 때마침 지나던 카코(Kako)라는 작은 마을에 장이 섰길래 머스에게 부탁해 잠시 차를 세우고 장 구경을 했는데 그다지 크지 않은 장이어서 그랬는지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 외국인에게 거의 노출이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여기서 이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을 향해 외치는 You!의 뜻이 다름아닌 Hello!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아이의 자발적 통역으로 1비르를 내고 바나나를 자그마치 10개나 받아들기도 했다(그럼 대체 바나나 하나에 얼마란 소리지? 10원?).

 

 

 

 

 

 

징카에 도착하니 한동안 코딱지만한 마을들만을 몇 봐왔다고 활주로가 있는 징카가 정말 큰 마을처럼 느껴졌다. 비록 그 활주로가 평소에는 전혀 활주로답지 않고 징카 사람들의 놀이터겸 축구장으로 쓰인다한들… 이것 좀 봐, 여기엔 주유소도 있잖아! 큰 마을이 맞다니까(설령 현재 이 마을 주유소에 기름 한 방울 없다하더라도 ^^;).

 

우리가 숙소를 고르는 동안 오늘 막 마고 국립공원을 지나 무르시족을 만나고 왔다는 팀의 드라이버와 우리의 머스가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전해준다.

 

내일이 징카의 (작은) 장날인데 날씨가 좋으면 무르시족이 장에 나오기도 하므로 굳이 우리가 그들을 찾으러 산넘고 물건너갈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요즘 매일 밤마다 비가 내리고 있는지라 그들이 그 길을 지나오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들을 찾아가려면 무조건 마고 국립공원을 지나가야 하며 그럴 경우 국립공원 입장료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 비용은 1인당 100비르씩 200비르이고 여기에 차 통행료조로 80비르가 추가된다는 것, (정확히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국립공원을 통과하여 그들을 만나러 갈 때 스카우트 한 명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65비르라는 것, 마지막으로 무르시족 마을 입장료로 100비르를 더 내야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물론 여기에 더해 무르시족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당 2비르씩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모두 더해보니 최소 445비르의 추가 비용이 생긴다. 이거야 원, 자꾸 시험에 들게 하는군(참고로 무르시족은 내가 ‘원시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족 중 하나로 여인들이 입술을 늘려 접시를 끼우고 다니는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이번 에티오피아에 오기 전까지는 이들 부족의 이름이 무르시라는 것도, 이들이 에티오피아 남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생각보다 큰 추가 비용이 드는 것도 마음에 정말 안 들고, 김원장이 속도를 낼래야 낼 수가 없는 우리의 후진 차를 부웅~ 힘있게 앞서 나가는 다른 투어 차량들을 보면서 우리 차에 대한 짜증을 부풀려나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결정적으로 어제 투르미에서 하메르족과의 조우 경험으로 인해 내가 무르시족을 왜 구경하러 가야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자문이 자꾸 생긴다. 거기에 더해 김원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김원장은 에티오피아 남부 오모밸리 투어가 이렇게 원시부족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인줄 몰랐다나? -_-; 진작 알았다면 본인은 사람보다는 자연 위주로 루트를 짰을거라고 한다.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하여 지금까지 보아온 에티오피아의 경치가 훌륭하다면서(이럴 때보면 나랑 취향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노트북에 저장해 온 에티오피아 여행기들을 뒤져보자 어느 치과 선생님께서 이 곳으로 봉사나오셨다가 가족들과 여행간 동부의 한 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용이 제법 그럴싸하다. 그 산은 바로 발레(Bale) 마운틴. 역시나 에티오피아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럼 우리 무르시고 뭐고 다 포기하고 남은 일정은 발레를 다녀오는 것으로 바꿔볼까? (그럼 대체 징카까지는 왜 온거지? -_-; 하는 우울한 질문은 삼가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내일 무르시족을 안 보는 대신 발레로 일정을 바꾸겠다고 하자 머스는 본인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아디스아바바의 아베베와 상의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물론 그래야겠지. 저녁에 아베베와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아베베왈 발레 마운틴까지의 길이 워낙 험해 차에 무리가 갈 위험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고객이니 그 위험은 본인이 감수하는 대신, 우리에게는 발레 마운틴으로 목적지를 바꾸면서 원 예정보다 늘어날 800Km가량의 주행거리에 대해 1Km당 1비르씩 실주유 비용만 대라고 한다. 그래봐야 800비르인데 그 돈 얼마 안 되지 않냐면서(얼마 안 되긴 -_-;). 어쨌거나 생각보다 간단히 그렇게 OK. 아베베, 얘가 일처리 하나는 시원시원하게 한다니까!

 

김원장이 지도를 보면서 남아있는 5일간 여기 징카부터 발레까지 어떻게 가고 다시 어떻게 아디스아바바로 돌아가야 하는지 루트를 신나게 짜고 있는 동안, 옆에서 지도를 건성으로 보고 있던 내게 지도 한 구석의 축척이 눈에 들어온다. 어라, 그 축척에 맞춰보니 김원장이 새로 짠 발레행 루트와 우리의 원래 루트 거리 차가 아무리 계산해봐도 800Km가 안 나온다. 아니, 800Km는 거의 터무니없는 숫자다. 아무리 넉넉히 잡는다고 해도 추가 주행 거리는 500Km가 채 안 될 것 같은데? 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숙소 정원에서 다른 드라이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머스에게 다시 찾아간다. 머스를 비롯, 다른 드라이버들은 내 계산이 맞다고 하면서도 본인들은 드라이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에 경비 문제에 관해서는 끼어들기 곤란하므로 나보고 직접 아베베와 다시 이야기 해보는게 좋을 것 같단다. 어쩔 수 없지. 당장 아디스아바바와 전화 연결이 쉽지 않다니 내일 아침 발레로 떠나기 전에 다시 트라이해보는 수 밖에. 일이 이렇게 풀려나가니 조금 전까지 아베베에게 가졌던 호감이 갑자기 팍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_-;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 징카의 숙소 : 우리가 처음 찾아간(사실은 머스가 알아서 내려준) 곳은 징카 최고의 숙소(?)라 할 수 있는 <징카 리조트>였다. 이름 그대로 리조트 분위기가 좀 ^^; 난다. 가격은 1박에 250비르에 이르는데도 당장 물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일단 후퇴. 다음 찾아간 곳은 Goh 호텔. 리셉션에서 싱글룸과 더블룸이라며 보여준 방이 실제로는 더블룸과 더블베드+싱글베드가 들어있는 트리플룸이었는데 가격은 각 100/150비르였다. 이틀간 투르미에서 가운데가 꺼진 좁은 침대에서 둘이 불편하게 몸을 세워가며 나눠잔지라 오늘은 그냥 침대가 두 개 있는 트리플룸에서 럭셔리하게 지내기로 했다(뭐 럭셔리하다고 해봐야 변기도 고쳐야했고 뜨거운 물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방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 어젯밤 김원장이 뭘 잘못 먹었는지 비 맞으며 그 먼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던 것에 비하면야 ㅋㅋ).

 

@ 김원장만의 영화 : <도마 안중근> 다 보고 나더니 갑자기 애국자로 변신 모드. -_-; 김원장왈 이 영화가 서세원 작품이라더라. 영화 제작에 관심 많은 코미디언들이 제법 많네.

 

@ 징카에서 그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스파게티에서 벗어나 스테이크를 한 번 썰어볼까하고 징카 리조트까지 다시 찾아갔었다. 그러나 고기가 없다더라. 아니, 고기만 없는 게 아니고 메뉴판에 등장하는 태반의 메뉴가 되질 않았다. 그냥 음료와 더불어 팬케이크 한 접시 달랑 시켜 나눠먹고 돌아오는 길, 뭔 개구리들이 그리도 많던지. 우기가 벌써 시작된 것일까?

 

 

 

@ 사실 무르시족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징카 근교에 또 다른 부족들이 많이 산다. 이 동네에서 무르시 다음으로 이름난 부족이라면 아마도 아리(Ari)족이나 반나(Banna)족이 아닐까 싶은데… 역시나 자칭 가이드들이 찾아와 우리를 아리족 빌리지로 데려가려고 애쓰더라(불행히도 그들은 우리가 아리족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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