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정에서 오늘과 같은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시작은 단순히 터무니없다 생각되는 이 곳의 부족 빌리지 입장료(?)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에 아베베와 남부 여행에 대해 가격 네고를 할 때, 아베베왈 일일 110불로 모든 것이 다 커버되고 우리에게는 오직 우리의 먹고 자는 비용만 추가하면 된다고 하면서 그 비용이 아디스아바바의 그것과 비교하여 지방이기 때문에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뒤늦게 생각난 듯 덧붙이기를 ‘아, park fee도 고객 부담입니다’라 하길래 나는 그게 처음엔 단어 그대로 주차비거나 혹은 일정표상 유일하게 park라 활자화 되어있는 Mago national park의 park fee 정도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당시 재차 확인을 하지 않은 나의 탓도 크지만, 당시 대화상 내가 느끼기에 아베베의 어조는 정말이지 미미한 액수일 거라는 뉘앙스를 풍겼었거들랑 ^^;).

 

그런데 며칠간 이 동네를 여행해보니 그야말로 모든 ‘볼거리’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이 곳 물가와는 터무니없는 갭을 보이는 수준으로 말이다. 에티오피아에는 워낙 외국인 가격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지만(현지인의 더블 수준),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그 가격을 얌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바로 오늘과 같은 요구이다. 투르미를 관광하려면 주변의 하메르 부족 빌리지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마을을 찾아가 안내해 주는데 드는 가이드 비용이 50비르, 그리고 그 빌리지를 들어가는데 필요한 입장료가 또한 50비르, 그들의 전통 무용을 보는데 1인당 100비르를 추가로 내라는 -내 생각에는 터무니없는- 요구 말이다.  

 

(뭔 파일 하나 열다가 갑자기 컴이 다운되는 바람에 이후 날아간 내용은 대략 생략 -_-; 아~ 우울해)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원시 부족들을 보겠다고 하루에 10만원도 넘는 돈을 주고 여행을 하고 있으니 오늘 몇 만원 더 쓴다고 해서 우리 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_-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해서 때마다 이런 흥정을 되풀이하며 나는 이들을 ‘관람’하고, 이들은 그런 나를 위해 ‘쇼’를 해주는 것도 좀 짜증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우리끼리 놀기로 했다. ^^ 사실 투르미를 걷다보면 돌아다니는 하메르 부족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다가, 그들 역시 우리를 발견하면 스스로 알아서 우리 앞으로 다가와 포토!를 외치며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그렇다, 이들을 찍으면 돈을 줘야한다 -_-) 굳이 그들의 빌리지를 찾아가는 애를 쓰지 않아도 그들과 접할 일은 종종 있는 것이다.

 

  <마주보다 서로 돌아서는 김원장과 독수리>

 

 <우리 둘만의 트레킹 중>

 

우리를 열라 꼬시던 가이드를 뒤로 하고 마을 밖으로 우리 둘만의 트레킹을 다녀온 뒤 숙소를 향해 돌아가던 길이었다. 숙소 근처에서 학교와 교회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이번엔 우리 발길이 그리로 샜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학교는 조용했지만 교회에서는 한창 설교 중인 듯 싶었는데, 우리가 그녀들을 만난 곳이 바로 그 근처였다.

 

 

그녀들은 하메르족이었다. 한 여인이 다른 한 여인에 비해 좀 더 나이가 든 것처럼 보였다. 당연 서로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볼 때 그녀들을 따라가면 그녀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나온다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당연히 그녀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몰래 카메라 -_-;>

 

처음에는 그녀들이 앞장서고 우리가 뒤따르는 형국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원장이 앞서가고 나는 좀 더 나이가 든 여인의 손을 정겹게 잡고 자연스레 그녀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그녀는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하메르족 여인이었다. 수없이 가늘게 땋아내린 단발 머리는 동물의 지방성분과 진흙을 섞어 온통 붉게 물들이고 상체는 드러낸 채 하체만 동물의 가죽으로 가린. 가까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그녀가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나이가 스무살이 채 안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나는 그녀가 임신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처음부터 그녀가 임신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가 다른 여인과는 달리 가슴부터 배를 보일 듯 말 듯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어쩌면 임신을 했기 때문에 배를 가리고 있는 것일런지도), 배가 나온 정도로 보아 이미 임신 중기가 훌쩍 넘어선 것 같았다. 이에 비해 더 어린 쪽은, 그러니까 나이를 먹어봐야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소녀는 완전 상체를 노출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 여물지 않은 젖가슴을 덜렁거리며 ^^;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는데 아직 임자가 없는 상태인지 임신한 여성과는 달리 쇠로 된 두꺼운 목걸이는 하고 있지 않았다(이들은 보통 화려한 색구슬을 엮어 몇 겹의 목걸이를 하는데 임자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쇠로 된 목걸이를 착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동물의 치아로 만든 목걸이도 가지고 있었는데 흉내내는 울음소리로 미루어보아 좀 커다란 이빨은 소의 것이고 작은 이빨들은 염소의 것 같았다(이들이 아는 영어 단어라고는 '포토'와 '원 비르', '투 비르'가 전부인지 대화라는 것을 나누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편하더라는).

 

 

그녀들과 함께 걷는 길은 정말 그들이 사는 마을로 이르는 길인지, 종종 그 길에서 다른 하메르족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잊을만하면 사진 찍고 돈을 달라 요구하던 작은 소녀가 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둘이 세트로 사진을 찍으라 요구하는 것이어서 돈을 주기로 마음먹고 결국 한 장을 그들과 함께 찍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새로운 친구가 살포시 가슴을 가리는 것이어서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내가 이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내가 이들을 그야말로 동물원 원숭이 보듯 구경하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의 감정이랄까. 옷을 입고 사는 것이 문명이며 발전이고 옷을 벗고 사는 것은 미개하고 부끄러운 짓인가. 누가 대체 그렇게 규정 지었으며 수치심의 분별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당연스러움인지.

 

 

‘화이트 마사이’라는 책에서였나, 스위스인 여성인 주인공이 마사이족 남성과 결혼해 마사이족과 함께 살면서 혼자만 상하의를 갖춰 입고 다니다 어느 날인가 본인도 마을의 여느 여성들처럼 상의를 벗어제끼는 장면이 나온다. 외눈박이 마을에 가면 두눈박이가 비정상이듯,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외눈박이가 있을텐데 나는 왜 남들의 외눈박이만 찾았는지. 왜 내 생각이, 내 기준이, 모든 것을 재어보는 잣대가 되는지. 그리고 내 생각과 내 기준과 내 잣대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와 손을 잡고 있는 그녀는, 나와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대화랍시고 서로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커다란 가시나무 넝쿨로 울타리와 문까지 만들어놓았던 그녀의 집에는 생각보다 넓은 텃밭이 있었고, 도무지 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저 그늘만 몇 점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나무로 듬성듬성 지어놓은 공간에는 나름의 아늑함이 있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라지 않는가. 

 

 

우리가 이 집에 왔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했는지 금새 마을 주민들이 몇 모여들었다. 그 중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와 우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젖을 물리던 한 아주머니의 쭈글거리고 처진 젖가슴을 보니, 그야말로 우리네 여성의 가슴이라는 것이 그간 얼마나 기능대신 모양에 치중하고 있었는가를 여실히 깨닫게 만들어 주더라. 나보다 분명 어릴 그 아주머니의 가슴은, 그야말로 젖,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벌써 한참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젖이 거기 있었다. 아무리 빨아도 고 작은 아가가 배불리 먹기에는 불충분해보이는.

 

 

어른들은 곧 자리를 떴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인지 유달리 엉겨붙어 안기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내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가 하메르족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장난감화되어 가고 있는 동안 -_-; 우리를 집으로 데려온 임신한 여성은 근처 어느 집에서 불씨를 가져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비닐 푸대 자루 같은 것을 가져와 깔고 앉으라며 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잘 때 깔고 자는 물건인 것 같았다. 

 

이 곳 아이들도 우리 물통에 하도 집착을 하기에 물을 좀 따라줄까 주변을 둘러보다 박을 하나 발견했는데, 안이 너무 더러워서 차마 거기에 물을 따라 줄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박에 끓인 물을 붓고 커피 열매를 섞어 우리에게 하메르식 커피를 대접해 주는데에는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이 집에 머무는 동안 김원장과 내가 따로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이 곳에서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는 걸 우리 둘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와 주민들과 아이들과 보내고 있는 시간이 마치 영화속 어느 순간 멈춰버린 한 장면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너무 생경하여 잘 짜여진 민속촌의 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가운데에서 나는 행복했다. 

 

<그녀들의 발자국> 

 

그녀가 내가 한국어로 남긴 긴 인사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도 상관이 없다. 결국 그녀에게 이렇게 집으로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커피 잘마셨다고 내가 자발적으로 건넬 수 밖에 없었던 10비르의 돈이 그녀들로 하여금 앞으로도 돈을 밝히게끔 만들거라 욕을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이렇게 그들의 곁을 다시 떠나 언제 그런 일을 겪었냐는 듯 내가 살던 모습대로 하루하루를 채워갈테고 그들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겠지.

 

그래도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앞에 팔장끼고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들의 집을 허리 숙여 슬쩍 들여다보며 혀를 차고 그들을 나와 다른 미개한 무엇으로 여기며 원래 살던 곳으로 서둘러 흙먼지를 털어내며 돌아가지 않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 오늘의 영화 : <이장과 군수> 신라의 달밤에서도 유해진이 나왔던가? 만약 그렇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주연 자리를 꿰어차고 있는 미남배우 차승원에 비해 유해진은 얼마나 발전적인 인물인가? ㅎㅎㅎ 나는 유해진이 좋다(뜬금없지만 박지성은 더 좋고 ^^). 뻔히 예상되는 결말에서 약간 비틀어 마무리한 것도 괜찮고, 차승원의 똥 싸는 연기가 기억에 팍 남는다.

 

 <숙소에서의 식사. 스파게티 이외 먹을만한 요리가 되는 곳은 어디인가>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만한 투르미의 숙소>

@ 새로이 발견한 이 숙소의 단점 : 온 동네 닭들이 돌림 노래로 끝내주게 울어제낀다는 사실. 그게 뭐 문제냐고? 아 글쎄, 얘네가 시계를 볼 줄 모른다 -_-;

 

 

<특별 뽀~오너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