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시각보다 10분 일찍 아베베와 우리 드라이버가 도착했다. 계약과 동시에 김원장이 내내 궁금해했던 차는 분명 어제 우리가 타고 다녔던 아베베의 차보다는 나은 수준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김원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원장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니 역시나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족히 출고된지 10년은 넘어 보이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디오마저 접촉 불량으로 작동이 안 된다. 덕분에 여행 내내 조용히 달릴 수는 있을 것 같다 ^^;). 어제 홍대길님의 조언대로 무조건 차를 먼저 보고 계약했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바로 호텔이 워낙 유명한데다가 아베베 역시 믿음직스러워 보여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에티오피아통이라 할 수있는 홍대길님 말씀으로는 본인도 이곳저곳 알아본 후 아베베의 카 렌탈 조건이 경쟁력있어 아베베에게 차를 빌리기로 했지만 대신 완전 후불제로 계약하셨다고 했거들랑(홍대길님은 주유비 일체를 홍대길님이 부담하는 걸로 하고 하루 800비르에 계약하셨다고). 어쨌든 차에 실을 짐도 다 챙겼고 계약서상 사인도 이미 끝낸 몸, 복잡하게 더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자 가자 가자!

 

비록 차는 후졌어도 김원장은 앞 좌석에 앉고 모든 짐은 뒷 짐칸에 던져놓고 나는 혼자 뒷좌석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아디스를 벗어나며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지불한 돈의 액수도, 타고 있는 차량에 대한 불만도 순식간에 모두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좋구나, 좋아(돈이? -_-;).

 

 

얼마나 달렸을까? 처음엔 분명 팔랑팔랑 꽃씨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전면 윈도우에 부딪히는 소리가 매우 둔탁해지는 듯 싶더니 순식간에 턱,턱, 하고 뭔가가 터져 나간다 -_-; 뭐야? 저게 더이상 꽃씨들이 아닌거야? 아아.. 저게 다 뭐란 말인가? 하늘 가득 날고 있는 저 벌레들의 정체는? 쟤네도 70% 이상은 수분으로 이루어져있는 것인지 푸욱 익은 토마토 으깨지듯 수없이 차창에 부딪히며 죽어나가는 걸 보는게 참으로 심란하다. 와이퍼에 끼어 죽기도 하는 놈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큰 놈은 5cm도 넘겠다. 메뚜기도 아니고 잠자리도 아니고 날개 달린 왕개미들? 대체 이 곤충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왜들 이렇게 떼로 날고 있는 거지?

 

 

다행히 어느 구역을 벗어나자 그 아이들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우리 드라이버 아토머스(이름을 정확히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몇 번씩 되묻기도 뭣하고 -_-;)도 차를 세우더니 물을 부어가며(그렇다, 우리 차는 워셔액을 뿜어내는 기능도 맛이 갔다) 유리를 닦는다. 살짝 나가 차량 전면부를 보니 흠... 완전 참혹하다 -_-;

 

 

우리 차는 리프트 밸리 상에 있다는 코카 호수를 지난다. 이 리프트 밸리가 혹 내가 케냐에서 보고 걸었던 그 지구대의 연장일까? 가이드북이 없으니 감으로 그저 그렇게 생각만 해볼 뿐이다. -_-; 나중에 집에 가서 언제고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한 번 찾아봐야겠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모두 길가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것은 아닐진데 모두들 길가를 따라 걷고 있다. 아디스 근교를 지나던 출근 시간에는 이 사람들이 출근, 등교하느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런 시골에서 이 시간에 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여정의 마지막즈음에 이르면 의문이 풀리려나? 

 

  

지나던 이름 모를 작은 마을 하나에서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셔보기로 한다. 이런 시골 마을이라면 바가지가 없지 않을까?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 그 원산지에서 먹는 맛은 어떨까? 크림이 들어간 마키야토를 주문해보지만 크림이 없어 안 된다고 한다. 크림없이 그냥 나온 커피는 그 색처럼 맛도 향도 매우 진하고 또한 무지 달다(직원은 가격을 물어보는 우리에게 잔당 1비르라고 했다가 얼른 1.5비르로 말을 바꾼다). 워낙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이므로 딱히 뭐라 평을 내리기 어렵다. 기회는 계속 올테니 몇 번이고 더 먹어봐야지.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마찬가지로 모든 동네 사람들이 읍내에 다 모여든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장이 선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 역시 바삐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모여 있을 뿐이라고 해야하나. 집에 할 일이 없어 이렇게들 나와 있는걸까, 아니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나와 아는 얼굴들과 킬링 타임겸 수다나 떨고 있는 것일까.

 

마침 맞은 편에 작은 과일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과일 좀 사볼까? 어리버리해보이면 혹여 바가지를 씌울지도 모르니 먼저 가격을 묻지 않고 이미 가격을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해 보자. 우리가 세운 잔머리 작전은 2비르를 내며 바나나를 달라고 하는 것. 아직은 어려보이는 점원이 2비르를 받더니 바나나 5개를 건네준다. 어라, 퇴탕수님인가가 1비르에 10개도 넘는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니 만약 퇴탕수님이 맞다면 바나나가 한 개에 10원도 안 된다는 말인데?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건가? 여하튼 2비르에 5개의 바나나라면 개당 40원 꼴이다. 정말 싸긴 싸구나. 맛도 끝내준다.

 

 

다음 우리 차가 멈춘 곳은 Ziway 호수이다. 황당하게도 우간다에서, 그리고 케냐에서 그리 귀하게 보이던 대머리 황새가 여기에 떼를 지어 살고 있다. 뭐야, 대머리 황새가 너무 흔하잖아? 워낙 귀하게 봤던 기억이 있는지라 지와이 호수변에 널려있는 -_-; 게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별로 개의치 않는 그들의 존재가 다소 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크긴 크다. 날개를 펴 눕힌다면 내 키보다도 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코 앞에서 자세히 하는 짓들을 보고 있으려니 좀 무섭기까지 하다(얘네가 무리지어 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황새와 김원장>

 

다음 방문한 곳은 Langano 호수. 아토머스가 호수를 보여준다며 차를 끌고 간 곳은 호숫가의 Bekele Molla Hotel이라는 한 리조트였다. 오오, 이 동네서 보기 드문 리조트 분위기. 다만 몇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 리조트에 입장료가 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리조트 바로 앞의 호수가 호수라기엔 거의 바다스러울 정도로 매우 크긴 한데 그 색이 붉은 진흙빛이라는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물놀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호수인 모양이었다). 아토머스의 말로는 이 리조트에서 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입구에 제출할 경우 입장료가 면제란다. 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점심을 여기서 먹어볼까?

 

메뉴판을 청했는데 허걱, 거의 우리나라 가격에 육박하는, 이 곳 기준으로 엄청난 가격이다(거의 말이 안 되는 가격이랄까. 과연 현지인들이 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을까? 말로만 듣던 외국인용 영문 메뉴판인가?) 이 정도 가격이라면 차라리 입장료를 내고 말지. 김원장이 아까 들어올 때 리조트 입구에서 얼핏 주중 1인당 8비르라 본 것 같단다. 혹시나 해서 아토머스에게 입장료를 물어보니 알아 보겠다네. 드라이버가 본인이 안내해 온 곳 입장료도 몰라 알아본다고 하고, 이후 알려주는 가격도 1인당 13비르라고 하니 어쩐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정 그러면 저렴한 음료라도 한 잔만 마셔요”하는 권유는 또 알쏭달쏭이다. 어쨌거나 두 명분으로 26비르를 내느니 아토머스의 제안대로 음료나 한 잔 마시자. 우리는 10비르짜리 콜라 한 병을 시켜 나눠 먹는다. 그리고도 돈이 아까워서 ^^; 잘 꾸며놓은 리조트를 끝에서 끝까지 한 바퀴 돌아본다.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의 리조트형 숙소들 분위기랑 비슷한 느낌이다.

 

 

리조트 부지를 나올 때 아토머스 몰래 입장료를 적어놓은 보드를 재확인해 보니 김원장의 눈썰미가 옳았다. 차액에 해당하는 1인당 5비르는 누구 손으로 들어갈 뻔 했을까.

 

샤샤마네를 거쳐 오늘의 마지막 종착점인 아와사(Awasa 혹은 Awassa)에 도착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여기까지의 길은 소문처럼 좋았다(문제는 우리 차가 너무 후져서 최고 80Km이상은 달릴 수 없었다는 것). 과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 아와사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어쩜 아디스아바바를 떠난 뒤로 이만한 도시급을 못 본지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아토머스는 아와사에서의 숙소를 정하라며 우리를 (발음이 안 되는 -_-) 한 게스트하우스 앞에 일단 내려주었다. 척 보기에 아와사 중심부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한 외곽의 게스트하우스였지만 그런 만큼 조용하고 무엇보다 큼지막한 정원을 앞에 둔 방들의 세팅이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고 밝은 더블룸에 화장실도 있고 TV까지 구비했는데 가격은 불과 100비르라고 한다. 어제 아디스아바바의 바로 호텔과 비교했을 때 뭐하나 빠지는 게 없이 완벽한데 말이지. 지방은 원래 이 정도 물가인가?

 

혹시 모르는 일이니 다른 숙소 구경도 해보기로 한다. 아토머스는 아와사에 대해 잘 모르나? 우리와 함께 시내 여기저기를 천천히 달리며 숙소를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내려준 곳은 영어 간판조차 없는 한 호텔. 입지는 번화한 시내 한 복판으로(번화하다고 해봐야 뭐 그저 그런 수준이긴 하지만) 길가 반대편 방만 얻을 수 있다면 조용하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소 후줄근한 외관에 비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작긴 하지만 로비에서부터 잘 관리되고 있음이 한 눈에 들어오는 호텔이다. 방 구경을 해보니 방도 생각보다 근사하다(오히려 방 자체만 놓고 보면 좀 전의 게스트하우스보다 낫다). 길가의 방인데도 창문을 닫으니 그다지 시끄럽지도 않다. 그렇다면 가격은? 오호… 270비르. 가격을 듣는 순간 이미 마음은 떠났지만, 생각해 볼께~ 말을 남기고 떠나는 내 뒤통수에서 가격은 230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앞선 게스트하우스로 마음을 굳혔다. 일단 야채 좀 살 수 있을까? 우리의 말에 이번엔 야채 가게를 찾아 드라이브 삼만리를 하는 아토머스(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또 호수가 보인다. 이름을 물어보니 아와사 호수라고. 리프트 밸리를 따라 호수가 많기도 하다. 그리고 생명체는 어디나 물 옆에 모여살고 ^^). 오호, 이런게 바로 개인 운전사를 고용한다는 것이었군. 돈을 쓰기가 어렵지, 일단 돈을 지불하고 나면 돈 생각은 별로 안 나더라니까. ^^;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이런 고급 서비스를 십분 즐겨야지 ㅎㅎㅎ(어쩌다 세계 최빈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게 되었는지 몰라 -_- 아니, 어쩜 이게 당연한 건가?)

 

다양한 종류의 야채거리를 조금씩 고루고루 골라 담고 15비르 정도 지불했다. 주인의 행태로 볼 때 바가지를 쓴 것 같기도 한데 대체 얼마나 바가지를 쓴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쨌거나 한국과 비교하면 무지 싸니까.

 

아토머스, 다음은 점심을 먹을까 하는데요? 그의 ‘예스’가 “예이~ 마님, 적당한 곳으로 모십지요”로 들리는 착각. ^^; 그가 안내해 준 식당인 Lewi 레스토랑은 이 곳을 지나가는 외국인이라면 한 번씩은 다 들르는 곳인가 보다. 여기저기 백인들이 보이는데...(여기서 우연히 홍대길님을 또 만난다. 한 번은 더 만나리라 예상하고 헤어졌던 예멘의 슈와제네거씨와는 못 만났으나 어제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그와는 또 만났으니 사람일은 정말 모를 노릇 ^^) 어... 백인들과 같이 앉아 먹는 흑인은 우리처럼 운전사인가 보다. 우리도 아토머스 데리고 와서 밥을 사줘야 하나? 잠시 갈등(홍대길님도 ‘어째 이 동네는 운전사랑 같이 먹는 분위기네요’라 말씀하시는 바람에).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한 두 푼도 아니고 매 끼 어떻게 밥을 사주냐~로 우리 편하게 스스로 결정 ^^;

 

 

로스트 램, 스파게티 볼로네이즈, 물을 주문(15% 택스포함 55비르). 생각보다 스파게티도 맛이 괜찮고 양고기도 육질이 부드럽다. 양도 많은데 엄청 먹어치운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먹으려면 얼마나 들까? 3만원? 여기는 5천원 돈이다. 게다가 현지인의 두 배라는 외국인 가격일지도 모르는데.

 

식사 후 처음 방문했었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짐을 부린다(이 때도 아토머스가 무거운 배낭들을 날라준다. 내가 잠깐 그를 오해했었나?). 본인은 다른 저렴한 곳에서 묵을 예정이지만 저녁에라도 차가 필요하면 아무 때나 부르란다(0911-889-061). 노노, 이미 오늘 보여준 서비스로도 부담스럽다. 그냥 푹 쉬렴. 내일 아침에 만나자.

 

방에 들어와 짐을 부리고 이것저것 마구 늘어놓은 뒤에야 우리 방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화장실은 그럴싸한데 물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물탱크를 열어야 한다나 뭐라나. 그리고 몇 분이 지나자 물이 졸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럼 샤워를 해볼까? 홀라당 벗었는데 어라, 뜨거운 물이 안 나오네.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직원에게 또 묻는다. 아줌마가 청년에게 묻고 청년이 아저씨를 부르고...(아... 또 미안하다 -_-;) 우리 화장실에서 아저씨가 순간 온수기 같은 것을 만지기 시작한다. 뚝딱뚝딱 제법 소리를 내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옆 방으로 옮기라는 시늉이다.

 

짐들을 질질 끌고 옆 방으로 간다. 물발은 더욱 약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이 나온다. 야호~ 이거라도 어디냐.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_-; 훤해서 몰랐는데 우리 방만 불이 안 들어온다. 이 시간에 사람을 또 불러 저 높은 천장의 조명을 교체하자니 이거야 원, 못할 노릇이다. 사다리 질질 끌고 오며 저것들 뭐야? 하며 욕하겠지? 어쩌면 방을 또 바꿔야 할지도 몰라. 몰래 국까지 다 끓여놓았는지라 -_-; 한국의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을 할텐데. 김원장이 그냥 오늘 하룻밤은 어둠의 자식으로 지내잔다. TV를 조명삼아 틀어놓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밥을 먹는다. 그러길래 여기가 아프리카라니깐, 에티오피아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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