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현지인들이 제법 살고, 관광객들도 제법 찾는, 예멘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인 올드 쉬밤에 저렴한 숙소 하나 없을까, 하고 무작정 찾아온 내 예상이 보기 좋게 틀린 셈이다.

 

사막의 맨하탄’이라 불리우는 - 말 그대로 사막 한 가운데 고층의 전통 가옥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올드 쉬밤의 모습을 그리 표현한 듯 - 올드 쉬밤에서의 낭만적인 밤을 위해 세윤의 숙소에서 모든 짐을 꾸려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5명의 승객을 태우는 쉐어택시를 이용할 경우 일인당 편도 100리알이 정가이지만 보통 외국인에게는 그 두 배인 200리알을 받는다고 한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던 우리는 그냥 둘이 한 대를 500리알에 흥정하여 편하게 왔다) 와디 하드라마우트를 따라 쉬밤까지 왔다.

 

우선은 짐부터 풀어놓아야 했기에 가이드북에서 유일하게 소개하고 있는 쉬밤 성 바로 밖 숙소(Shibam Motel)를 뚫어보기로 했다. 보여준 방들은 그런대로 좋아보였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39불/박에서 절대 깎아줄 수 없다는 것(자신이 주인이 아니고 직원에 불과한지라 깎아줄 능력이 안 되는 대신 더블룸이나 트리플룸이나 같은 가격에 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세윤에서 묵었던 방 수준에 비해 두 배 정도는 좋아보였지만, 가격은 거의 5배 이상이니 우리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안 되겠다, 다른 숙소를 찾아보자. “쉬밤에는 여기 밖에 숙소가 없어요”하는 직원의 말을 꿋꿋이 뒤로 하고. 
 

  

가방을 짊어지고 쉬밤 성내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었는데 햇살은 이미 강렬했다. 성내를 둘러보다 Tourist Center라고 쓰여진 사무실을 찾아 들어가니 간판은 투어리스트 센터인데 실상은 기념품 가게였다(알고보니 쉬밤 성내 이런 식의 이름을 내 건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어쨌거나 기념품 가게 주인을 통해 쉬밤 성내에는 숙박업소가 없다는 안까운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성문 밖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옵션 세 가지를 꼽아 보았다.

 

1. 다시 20Km 가량 떨어진 세윤으로 돌아가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 짐을 풀고 가벼운 몸으로 다시 이 곳으로 와서 당일치기로 구경하기(일명 왔다리갔다리, 똥개훈련 -_-;)

2. 근처 만만한 어딘가(밥을 먹고 있는 이 식당?)에 배낭을 맡기고 쉬밤을 후딱 둘러본 후 세윤으로 다시 돌아가기(하지만 쉬밤을 오전만 보자니 좀 아쉬운데다 돌아가봐야 세윤에서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오후까지 쉬밤을 구경하자니 뜨거운 한낮에 쉴 곳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3. 그냥 돈 뿌리고 쉬밤 모텔에 묵기


곰곰히 생각해보던 김원장이 결정이 어려웠는지 선택권을 나에게 넘겼다. 그리고 나 역시 갈등을 하다 3번을 택했다. 조금 쪽팔렸지만 다시 쉬밤 모텔로 돌아가 넓직한 트리플룸을 잡았다. 돈 내기까지가 어렵지, 역시나 돈을 지불하고 나니 그 다음은 별로 돈 생각이 안 나더라. -_-;

 

 

 


 

 

 

  

사실 올드 쉬밤은, 어제 본 다큐멘터리 화면 속의 모습이 더 멋졌다. 쉬밤의 역사적 가치가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덜 와닿았기 때문에 -_-; 뜨거운 볕 아래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골목골목이 그다지 아름답지도, 쾌적하지도 않았다. 너무 오래 된 가옥들이라 집집마다 화장실을 갖추지 않았는지 공중 화장실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거기에 더해 염소와 닭, 당나귀와 고양이가 그늘을 찾아 기어들어 골목의 일부를 때때로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걔네들도 여기저기 똥오줌을 하도 뿌려놓은지라 그런 골목길을 걸어들어갈 때마다 지린내가 진동하곤 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참으로 멋진 성곽과 건물들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그 성곽이 마치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커다란 우리로 여겨질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 곳이 그렇게 찬사를 받는 곳이란 말야? 우리가 너무 더울 때 찾아서 그런가?

난 아직 쉬밤에 대해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이따가 선선해지면 다시 찾아오자.


 

 

  

뜨거운 태양이 그 기운을 다해가고 있을 때, 우리는 시간에 맞춰 올드 쉬밤 맞은 편 마을의 뒷산을 올랐다(이 또한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전통과 같다고 했다). 때마침 맞은 편 운동장에는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낮엔 찾아볼 수 없었던 쉬밤의 주민들이 모두 다 나와 관람하고 있는 듯했다. 운동장이라고 해봐야 거의 모래밭이라 이런 곳에서 축구 하기가 쉽지 않겠다, 생각하는 순간, 경기는 끝이 났다(그렇담 꽤나 전에 경기를 시작했다는 말인데 정말 더웠겠다). 김원장 말로는 경기 결과가 무승부였는지 선수들이 승부차기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으나, 어느 새 해는 서쪽 하늘 끝에 살짝 남아있을 뿐이어서 우리는 서둘러 산에 올라야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라보는 쉬밤은 정말 아름다왔다. 이게 바로 그 쉬밤이구나, 싶을만큼. 게다가 때마침 동네방네 자리잡은 모스크들에서 아잔이 돌림노래마냥 울려퍼지자 그 분위기는 배가 되고도 남았고.



 

 

 

 

 

 

  

해가 저물고서야 남아있는 빛을 가로등삼아 내려왔다. 이제 다시 쉬밤 성내를 거닐 차례였다. 어, 그런데 쉬밤 성문 앞에 누가 봐도 한국인이, 그것도 여성이 서 있었다. 다시 세윤으로 나가기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뜻밖에도 그녀는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예멘을 방문 중이라고 했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에서 예멘의 Zabid란 고대 도시를 보존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프랑스에서 자원봉사식으로 이 곳을 방문해 한동안 작업을 해왔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멋지게 들렸다. 이국땅에서 만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나 할까. 마침 내일 그녀도 동료들과 함께 사나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내일 다시 공항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오전의 그것에 비해 저녁의 쉬밤에는 활기가 있었다. 노인도 아이들도 청년들도 여인들도 성내를 거닐었다. 수크 골목에는 작은 행상들이 나와 간단한 먹거리를 팔았고 그 모습을 구경하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나 먹어보라 집어주는 주민들도 그 안에 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쉬밤이 예뻐졌다. 이 정경을 차분히 누리고 싶었다. 우리, 중앙 광장에서 샤이 한 잔 마시자!

 

김원장이 기꺼이 노천 샤이 스톨을 찾아가 두 잔을 주문했는데, 아침을 먹었던 식당에서 잔당 10리알을 받았던 샤이를 그는 두 잔에 100리알이라고 했다. 김원장이 비싸다고 하니 그럼 50리알만 내라나. 그것도 비싸다고 했더니 그는 이미 우리 몫으로 따라놓았던 샤이 두 잔을 냉랭히 다시 거두어 가버리며 안 판다는 시늉을 한다. 우리는 그에게서 다시 쉬밤의 미운 모습을 본다.

 

중앙 광장에서의 샤이 타임을 포기하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을 대신 찾는다. 이 곳 역시 이미 어두워진 밤거리에 삼삼오오 주민들이 나와 샤이를 마시고 있다. 다큐에서 보았던 것처럼 맨 바닥에 자리를 깔고 둘러 앉은 사람이나 작은 턱에 걸터앉은 사람이나 무릎을 세운 뒤 무릎부터 허리 뒤로 띠를 한 바퀴 빙 둘러 묶어 넘어지지 않게 앉아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처음 예멘으로 들어올 때 검문소를 지키던 군인에게서부터 처음 본 ‘캇’이라는 잎을 모두들 볼 안에 한가득 밀어넣고 열심히 씹고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달달하기가 이를데없는 샤이를 한 잔씩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짜이스러운 밀크티를 들고 지나간다. 우리 식당에도 저 메뉴가 가능한지 물으니 가능하단다. 가격은 두 배인 20리알(100원). 와, 진짜 맛있다(꽤나 달긴 하지만). 식당에서 밀크티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려니 아저씨고 아이들이 들러 저녁을 먹거나 먹거리를 집으로 포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여성들은 이런데 안 나다닌다). 한 아저씨가 먹는 오믈렛스러운 빵이 먹음직스러워보여 우리도 손짓으로 주문하여 먹는다(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안에 달걀을 풀어 바르고 방울 토마토를 썰어 넣은 뒤 네모지게 접어 후라이팬에 지져낸다). 날이 더워서 그런건지 뭐든지 주문하면 그 즉시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다. 바로 구워져 뜨끈하게 앞에 놓인 우리 몫의 빵을 먹고 있으려니 마침 저녁 먹거리를 사가려고 식당을 찾았던 어떤 아저씨가 본인의 빵을 그냥 나누어주고 가기도 한다. 고마운 아저씨가 주고 간 빵을 먹어보니 우리네 도넛 맛이 난다. 다시 쉬밤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풀린다.

 

 

내일 새벽 일출 시간에 맞춰 다시 산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일출을 맞는 쉬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이미지를 안겨줄까. 그런데 내일 그 시간에 과연 일어날 수나 있을까. ㅋㅋ

 

@ Shibam Motel : 2008년 4월 현재 싱글 28불, 더블 39불(우리는 트리플룸을 더블 가격에 사용중, 화장실, 냉장고, 에어컨 포함). 조식은 불포함이나 숙소내 레스토랑이 있어 미리 주문하여 먹을 순 있다(숙소내에서 음료나 물 따위도 구매가 가능한데 바깥 가게들보다 두 배 정도 비싼 것 같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직원들이 친절하다. 예멘 물가를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수준에 비해 가격이 상당하므로(독탕이라 그런가? 아니면 이런 땅에 그럴싸한 숙박시설을 만들어놓기가 어려웠던가?) 여유가 없다면 다른 여행자들처럼 세윤에 머물면서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방법이 최선일 듯.

 

@ 한낮에 숙소에서 아랍 문화에 대한 글들을 읽었는데 소위 아라비아 숫자라고 일컬어지는 부호와 십진법은 모두 인도인들이 창안해낸 것이라고 한다(그러고보니 언젠가 그렇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 다만 세계문명 속에서 이를 유지, 발전시키고 유럽에 전한 사람들이 아랍인이었기에 유럽인들이 아라비아 숫자라고 불렀다고. 그리고 유럽인들이 일부를 변형해서 써온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이라 하니 내가 ‘왜 아랍에서 아라비아인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가?’라 가졌던 무식한 의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역시 아는 게 힘이련가.

 

@ 오만인들이 주로 하얀 통짜 원피스를 입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는데, 아랍 문화에 대한 글 중 아랍인들이 흰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요즘은 흰색이 너무 쉽게 때가 타서 조금 못사는 나라에 가면 회색 등 더러움이 쉽게 덜 가는 색깔을 선호하기도 하여 빈부가 구별되기도 하나, 우리들만큼 호화스럽거나 사치스러운 면은 그다지 심하지가 않다. 또한 남녀를 불문하고 선정적이거나 노출되는 옷은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흠, 그렇다면 오만은 잘 살아서 하얗게 입고 다니고 그렇게 세탁소가 많으며, 예멘은 못 살아서 색이 들어간 옷을 입는걸까? 그런데 예멘에도 세탁소는 제법 있어보이던데? 또 무식한 아줌마의 나홀로 가설이 마구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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