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9시가 훌쩍 넘었다. 뭐야, 이거. 원래 계획은 7시면 일어나 씻고 아침 챙겨 먹자마자 더워지기 전에 살랄라 주변 여행을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내일 긴 버스 이동이 예정되어 있는지라 오전에 한바퀴 돌고 오후에는 얌전히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 두려고 했는데. -_-; 어제는 특별히 한 일도 없는지라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난 일이 다소 황망하기까지 하다. 어쩔까? 기왕 늦어진 것, 낮 시간은 쥐죽은 듯 숙소에서 조용히 보내고 햇살 약해지는 시간에 한 바퀴 돌아볼까?

 

처음에 동의하는 듯 보였던 김원장은 답답했는지 결국 얼마 뒹굴거리지 못하고 늦었지만 그래도 출발해 보자고 한다. 흠, 햇살이 벌써 기운을 뻗치거늘. 주섬주섬 먹거리를 챙겨 숙소 밖을 나선다. 아, 벌써 덥구나, 더워.

 

가이드북에 나온대로 숙소에서 제법 떨어진 HSBC 은행 앞을 찾아가 Mughsail행 마이크로 버스라는 놈을 찾아보지만, 도무지 보여야 말이지.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물어보지만 택시를 타야 한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어찌 된거야?

 

땀은 삐질삐질 흐르는데다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하다. 길거리에 서있으니 지나가는 택시들은 계속해서 짧게 경적을 울려대며 호객을 해댄다. 어찌할까? 그냥 또 렌트 해버려?

 

지나온 길을 되짚어 가며 보이는대로 렌트카 업체를 쑤셔보지만 대부분 벌써 문을 닫았거나(아니면 아예 오전 근무를 하지 않거나) 문을 열었어도 오늘은 차가 없다는 말들만 되풀이한다. 주말도 성수기도 아닌데 차가 없다니! 내일이면 예멘으로 가야하는데 우리가 너무 느긋했었나 보다. 김원장은 정 차를 못 구하면 어제 숙소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옆 방 아저씨의 차를 빌려보자고 한다. 옆 방 아저씨? 오만과 예멘 사이의 국경 마을에 살며 비지니스상 살랄라를 찾았다는 아저씨는 우리를 본인의 방으로 초대(?)하며 근처 어디든 가고 싶으면 자신이 태워다 주겠으며 필요하면 아무 때나 자신의 차를 사용하라 하긴 했었다(복도에서 그저 마주쳤을 뿐인데 -_-;).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생판 모르는 옆 방 아저씨의 차를 빌려 뻔뻔히 사용하긴 우리나라 정서상 좀 그렇다. 그렇게 한 군데만 더, 한 군데만 더!를 외치며 렌트카 사무실을 찾아 돌아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정말이지 옆 방 아저씨 방으로 한 번 찾아가보자며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마지막으로 들린 사무실에서 한 대 남아있던 차를 겨우 구한다.

 
차를 빌리긴 했지만 우선은 숙소로 들어와 샤워 한 차례부터 하고 정신을 차린 뒤에야 본격적으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첫 목적지는 Mughsail.







방목 중인 낙타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보니 어느새 눈 앞에 펼쳐진 그럴싸한 해변. 
 

 

 


가까이 다가서보니 바닷물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맑다.


 

 

 


우리는 근처 동굴 주변에서 느긋한 시간을 누렸는데 그러다 우연히 해변 가까이 얕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김원장이 발견한다. 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거북이 하는 양을 지켜보는데 파도가 제법 거친지라 열라 헤엄쳐대는 거북이가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해먹고 이번엔 욥의 묘를 찾아간다
. 살랄라가 멋지게 내려다 보이는 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욥의 묘는 생각보다 어설프게(?) 관리되고 있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는지 관리인 아저씨가 밖에서 친구분과 한담을 나누고 계시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얼른 옷을 갖춰입고 허둥지둥 묘역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네, 참배를 드리네 하면서 어수선하다. ^^; 하지만 그 덕분에 마음씨 좋은 관리인 아저씨의 호의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여성의 경우에는 입장시 머리를 가려야 하는지 머리 가리개를 주셨다).

 

 

참고로 김원장과 나는 같은 학교의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인데, 그 동아리의 이름은 (안 어울리게도 -_-;) 기독학생회이다. 그런데 명색이 기독학생회 출신인 우리가 욥의 묘를 오가며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은 이렇다.


: 그러니까 이 욥이 욥기의 욥이란 말이겠지? 욥기라... 내용이 뭐지?

·     김원장 : 너 미션 임파서블 봤지? 거기 보면 톰 크루즈가 욥기를 통해서 블라블라...


, 심히 부끄럽다 -_-;


 


# 살랄라 렌트카 업체 : 우리 숙소인 알 하나 호텔에서 터미널 방면으로 걷다보면 왼편으로 길이 뚫린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건너편에 인터넷 업소 간판이 걸린 건물이 있는 삼거리). 이 삼거리를 끼고 세방향 모두로 렌트카 업체가 많이 몰려있다(간판에 Rent a car라고 쓰여져 있어서 찾기 쉽다). 열 군데도 넘게 사무실을 들렀다가 결국 우리가 이용한 곳은 우리 숙소인 알 하나 호텔과 같은 건물의 1층 사무실(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간판에는 그저 아랍어로만 되어 있지만, 문에 영어로 Rent a car가 가능하다고 쓰여있다(다른 렌트카 사무실들과 마찬가지로 이 곳도 겸업인데 주업무는 복사나 제본 따위인 것 같다 ^^;).


 

스틱의 토요타 코롤라를 내어주며 내건 조건은 full insurance 포함 하루 10리알에 프리 마일리지 200Km였는데 영어가 잘 안 되던 직원들은 여권만 맡기라며 신용카드 데포짓도 요구하지 않고, 마일리지 체크도 안 하고, 기름도 full이 아니었으나 사용후 안 채워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왔다(오만이 진짜 이런 식인가?). 이후 반납시 양심상 1리알 어치 주유를 해서 사용한 만큼 대략 채워 돌려줬는데, 주유시 좀 웃기긴 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여기 2500원 어치만 넣어주세요” ^^; 반납시 보니 역시나 대충 살펴보더라. 오만이 진짜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정말 멋진 사회다.

 

# 오늘 우리가 오만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위해 찾은 곳은 23 July st 상에 위치한 ‘Chinese Cascade’ 레스토랑이다. 어제 저녁 산책길에 외관이 근사해서 찍어두었던 곳이다. 자그마치 200가지가 넘는 메뉴 중 -_-; 게살수프, 모듬 해산물 샐러드, 새콤달콤 쇠고기 요리, 마늘 소스 생선 요리 등을 푸짐히 시켰다. 게살수프는 너무 짰고(게다가 고수풀을 살짝 -_-;) 해산물 샐러드의 해산물들은 아주 작게 튀겨져 있어서 오뎅스러운 맛이 났으며(그러나 맛있었다) 쇠고기 탕수육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쇠고기 요리는 그저 새콤하기만 했다(달콤은 어딜가고). 생선을 찐 뒤에 걸죽한 마늘 소스가 뿌려져 나올거라 생각했던 생선 요리 역시 잘게 썰려 튀겨진 뒤 마늘 소스에 담겨 나왔다. 안타깝게도 앞서 나온 전채들 양이 제법 되었던지라 정작 메인 메뉴는 반 밖에 못 먹었다(맛이 있었다면 억지로라도 좀 더 먹었을텐데 ^^;)

 

 

 

 

예전에 한식을 못 먹고 여행할 때는 중국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대리만족을 했었는데, 요즘은 매일 한 끼씩 한식을 만들어 먹다보니 중국 음식도 예전만큼의 만족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식당을 나오며 김원장은 이제는 중국 음식보다 차라리 양식이 더 맛있는 것 같단다). 인간은 정말 간사한 동물이라니까. 참, 이렇게 배터지게 먹고 우리 돈 만원 남짓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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