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아웃시 계산을 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이란에서는 매년 노루즈를 기점으로 물가가 인상된다고 하는데 체크인시 우리에게 가격을 알려준 직원은 이번 노루즈 이전 가격, 체크아웃 담당 직원은 이번 노루즈 이후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우리가 결제해야할 금액이 달라진 것이다. “체크인할 때는 이 가격이라고 했단 말이야~” 결국 그 때 직원과 통화 연결, 확인 후 문제 없이 이전 가격으로 지불하고 나온다.

 

쉬라즈행 버스는 만석이다. 들고 온 짐들로 미루어보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커다란 장난감 총을 준비한 아저씨도 보인다. 어제 TV 뉴스를 본 김원장 말로는 이번 노루즈 기간에 3400만명이라던가, 거의 이란 인구의 반이 이동을 할 예정이라고 했단다. 명절 전야라서 그런가, 사람들의 표정이 들떠보인다.

 

 

이란을 오기 전엔 막연히 이란이란 나라가 저지대라 무지 덥고 고운 모래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리라 상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란에 와보니 완전 고원에 거칠고 척박한 황무지들이, 그리고 마치 어디선가 불쑥 솟아난 듯한 괴이한 모양의 산들이 참 많다. 언젠가 북인도 잔스카르 트레킹에 관한 책을 읽다가 그 곳에서 찍은 현지인들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풍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살면서도 그게 뭐 별거라도 되냐는 듯 너무나 무덤덤해보이던 그들의 표정. 그 때 다시 알았다. 우리의 가치라는 것이 지극히 상대적인 것임을.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 역시 주변 풍경을 특별하다 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겠지. 하지만 달리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화면들은, 적어도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6시간 반 남짓에 쉬라즈에 도착했다. 이 곳 터미널에서는 택시 부스 같은 것이 있어 행선지를 말하고 돈을 지불하면 택시를 배정해준다. 가격은 터미널 부지 밖에서 직접 택시를 잡아 네고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나오는 것 같지만(실제로 우리같은 외국인들만 주로 이용하는 것 같더라) 어찌되었던간에 택시를 잡고 흥정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찍어둔 숙소까지 1500토만에 이동한다.

 

, 설마설마 했는데 방이 꽉 찼다고 한다. 터미널 택시 부스에서 우리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에스파뇰이 우리와 같은 숙소(Anvari Hotel)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던지라 우리가 그들보다 빨리 숙소에 도착할 수 있어 내심 기뻐하고 있었는데 방이 없다니... 어쩌나~하고 있는데 그들이 뒤늦게 들어온다. 얘들아, 여기 방이 없데~ 알려주니 우리는 예약하고 왔어, 대꾸한다. 덴장, 그럼 우리만 X 됐네 -_-; 우리가 내심 안돼보였는지 숙소 언니가 근처 다른 곳을 전화로 알아봐준다. 조오~기 옆에 빌라 호텔로 가봐. 화장실은 공용이지만 2만토만짜리 트윈방이 있데.

 

배낭을 짊어지고 빌라 호텔을 찾아 나서다 바로 몇 발짝 옆에서 가이드북왈 중저급이라는 또 다른 추천 숙소를 발견한다. 여긴 얼마나 비싸려나? 욕실 딸린 더블룸이 조식포함 26500토만이란다. 오호, 이 정도면 빌라 호텔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 게다가 여기는저급이 아니더냐. 오케이하고 방을 보니 어랍쇼, 이건 더블룸이 아니라 싱글룸이다. 여기에 엑스트라 베드를 추가해 주겠다는 것이다. 뭐야, 더블이라며? 내일 방이 나면 더블로 옮겨줄께. 오늘은 노루즈라 모든 방이 다 차고 이 방 하나 뿐이야. 지금 다른 방 사람들은 이만한 데에서 4명도 자고 5명도 잔다구! 대신 25000원에 해줄께.

 

우리가 짐을 푼 싱글룸에는 엑스트라 베드라며 이불 한 채가 왔다(당연히 여느 리조트처럼 접이식 베드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가 이불을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주인 아저씨는 매우 어수선하고 말이 많아 다소 정신없어 보이지만(오버쟁이 아저씨 ^^;), 그래도 무척 친절하신 분이다. 내일이 노루즈 당일이라 미리 예약해두지 않으면 페르세폴리스행 택시를 수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아저씨 의견에 넘어가 그냥 편하게 아저씨 소개의 대절 택시를 이용, 내일 오전, 세 곳의 유적지를 방문하기로 한다(3만원).

 

저녁 산책길, 유난히 많은 차들 때문에 쉽게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청년 하나가 본인이 탈 택시를 잡다말고도와줄까?”하며 대로를 함께 건너주더니 다시 돌아 건너간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저런 매너에(게다가 저 얼굴에 ^^;) 홀라당 넘어가지 않았을까?(지금은 그저 뉘 집 아들인지 기특한 청년이로세, 할 뿐이다. , 내가 너무 늙어버렸다 -_-;) 가이드북에 등장하는, 쉬라즈에서 이름난 관광지 중 하나라는 성 안팎으로는 늦은 시간인데도 인산인해다. 성 앞 잔디밭에 주저앉아 당근 성보다는 사람 구경을 한다(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구경을 한다). 용기있는 자는 미인을 차지하는 법,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_-; 사람들도 몇 있고, 할아버지 한 분은 대추야자를 권하기도 한다. 그냥 이런 분위기가 참 좋다.

 

어제 말레코 토자르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종업원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남한이냐 북한이냐, 한국은 좋은 나라다, 이야기를 건네며 마지막마다 빼놓지 않고 해주던 한 마디, “Welcome to Iran!”

김원장은 그 말을 들으며나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사심없이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었던 적이 있었나?’를 자문하더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마음은 별다른 수식 없이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진정은 통하는 것이다.

 

카샨에서 묵었던 호텔에 적혀있던 한 문장이 생각난다.

Hospitality is our ancient tradition’

 

# 오늘의 영화 : <고대문명의 비밀페르시아제국> 30분짜리 짧은 다큐. 이전 다큐보다는 재미없다. 내일 페르세폴리스에 가기 전에 눈에 바르고 가려고(이 얄팍한 욕심 ^^;) 챙겨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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