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행기를 읽다보면 이란의 도시들에 대한 여행자들의 평이 대부분 동일한 것 같다. 우선 수도 테헤란은 교통 지옥으로 묘사되며 밤(Bam)이 지진으로 그 모습을 잃은 지금, 남아있는 3대 관광지라는 에스파한, 쉬라즈, 야즈드에 대해서는 대략 이렇게 말한다. 쉬라즈(페르세폴리스가 아닌)는 기대보다 별로, 에스파한은 듣던대로 좋았다고 말하며, 야즈드는 기대보다 좋았다고.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그런 좋은 인상을 남기는 야즈드만의 비결이 있다면 아마도 고풍스럽고 운치 넘치는(그러나 저렴한 ^^;) 숙소들이 아닐까? 물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는 구시가 자체도 분명 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옛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시가라면 어느 나라나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김원장도 근사한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으면서(뭉그니님의 정보가 아니었음 방값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를 뻔 했다. 비록 차와 이란빵에 추가로 계란요리나 잼/치즈/버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간단한 메뉴긴 하지만) 숙소가 너무 멋져 야즈드를 떠나기 싫어질 것 같다고 한다.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이런 멋지구리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까?

 

노루즈의 영향으로 쉬라즈행 버스표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을 들은터라 예매를 해보고자 시내에 있다는 버스 회사 사무실들을 찾아다닌다. 따로 영어로 표기해 놓지도, 그렇다고 버스 회사 사무실처럼 차려놓지도 않아 비슷하게 생긴 아무 가게나 들어가 미친 척 돌다리를 두들겨 본다(버스 사무실의 위치가 론리플래닛 지도와 잘 안 맞는다). 이사들을 갔나, 물어물어 겨우 두 곳을 찾았는데 한 곳은 우등버스급 같은데 매일 오후 1시에 달랑 1회 운행한단다. 그럼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아 패스. 두번째 방문한 곳에서 모레와 아침에 해당하는 파르시 두 단어와 쉬라즈를 반복하니 창구 뒤 언니가 표를 출력해 주는데, 오전 8시 출발, 우리 좌석번호, 가격(1인당 6천원)같은 숫자는 다 읽겠는데 도무지 출발일을 알 수가 없다(이란은 우리와는 다른 달력을 사용한다). 뭐 맞겠지. ^^;

 

 

 

그럴싸한 아이스크림집에서 완전 베스킨라빈스식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라먹고 바로 옆 Amir Chakhmaq Complex에 올라가본다(300/).

 

 

 

 

 

 


나선형의 좁고 높은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 바라보는 야즈드 전경은 탁월하다(이렇게 미나렛 꼭대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려면 무아진들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역시나 에스파한에서 노루즈 방학을 이용해 아버지의 고향 야즈드에 놀러온 고등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20대 중반은 되어보이는구만, 이런 수염 덥수룩한 청년(?)이 고삐리라니 -_-; 어쨌거나 그를 통해 이런저런 이란에 관련된 이야기도 듣고 버스표의 출발일도 재확인을 받는다. 모레가 맞단다.

 

다음 방문한 곳은 Saheb Zaman Zurkhaneh. 어정쩡한 낮시간에 방문한 탓에 본래 목적이었던 운동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지만, 입구에 있던 아저씨는 대신 지하에 있는 야즈드에서 가장 큰 오래된 물 저장고를 보여주고 1000원을 받아간다(그 크기를 보아하니 야즈드가 물이 엄청나게 귀한 사막 도시였음을 절로 알겠다). 보여주는 것에 비해 너무 비싸다며 김원장이 화를 낸다 -_-; 오늘이 김원장 생일인데 기왕이면 좋게좋게 넘어갈 것이지.

 

내 노트북을 기꺼이 연결해주겠다는 피씨방(Friendly Internet Café, 자메모스크/실크로드 호텔로 들어가는 길 입구 멜리은행 맞은편쪽으로 위치)에 들러 밀린 사진을 올려볼까 했는데 daum에 로그인이 되질 않는다. 싸이월드에 접속해보니 이번엔 방명록만 접근 불가다. 이유가 뭐지? 잠깐 보는 다음의 메인 화면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시끌벅적, 다이나믹한 곳이군. 그러다가 엇, 티벳 소식이 내 눈을 잡아끈다. 이런, 부디 더 이상의 희생이 없어야할텐데.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조로아스터교의 조장터침묵의 탑(Tower of Silence)’ 구경을 나선다(1시간 대기 포함 왕복 택시비 4000원 지불). 시내에서 얼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꼭대기에 마치 성곽스러운 조장터 건물이 남아 있는 민둥언덕 두 개가 거짓말처럼 황량한 벌판에 서있다. 언덕 아래쪽으로는 시신을 독수리들이 먹기 좋게끔 잘라주었던 주방이라는 소문이 있는 -_-; 옛 흙집들이 몇 채 있는데 전체적인 풍경이 마치 스타워즈의 꼬마 아나킨이 살던 마을 어드메 같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고나 할까 

 

 

 

 

 

아래에서 바라보기에는 남성용 조장터로 알려진 왼편 언덕의 형태가 더 멋져보이지만 나는 여성용으로 알려진, 오르기 좀 더 편해보이는 오른편 언덕을 택한다. 그래야 왼편 언덕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아무래도 좀 더 높은 남성용에 오르는 편이 그만큼 시야가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야즈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평평하군. 해발 1200m에 이런 사막지대가 있고 그 속에 야즈드라는 보석같은 오아시스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언뜻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야즈드, 비록 이제는 이 곳에서 조장을 하진 않지만(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실제 조장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전히 침묵의 탑 아래 가까이 조로아스터교도들의 공동묘지가 마련되어 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470년부터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는 불을 모시고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Ateshkadeh)을 한 곳 더 방문할까 물으니 김원장이 거절한다. 어째 이번 여행은 이전 여행들에 비해 나나 김원장이나 이름난 관광지를 확인사살하겠다는 열의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여행에 여유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더욱 게을러졌거나 관광에의 흥미 자체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 이유가 뭘까? 나이를 먹어서? 그간 여러 나라들을 이미 여행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리엔트 호텔의 야외 옥상 레스토랑을 택해 저녁 식사를 한다. 자연이 빚어내는 조명도, 바로 앞 자메 모스크를 비추는 인공적인 조명도 모두 환상적이다. 마침 아잔이 울려 퍼지는 시간인지라 분위기는 한층 더 업이 된다. 김원장은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이 분위기에 완전 젖어들었는지 다시금 야즈드를 떠나기 싫단다.

 

그냥 내내 야즈드에만 있다가 오만으로 갈까?”

그래도 이란에 왔는데 딴데는 몰라도 페르세폴리스는 가봐야지 -_-”

 

오늘의 메뉴는 석류와 호두 소스에 졸인 닭고기 요리라는 Fesenjun과 낙타 고기 파스타 ^^;.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 위에 새콤달콤한 석류 소스가 흥건히 뿌려져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막상 내 앞에 놓인 것은 국물 별로 없는 정체불명의 닭찌개(?)에 맛 역시 시큼짭조름하여 기대에는 못 미쳤다. 물론 밥에 비벼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지만(처음엔 이 요리에 사용된 소스 재료가 그야말로 참신 그 자체라 느껴져 선택을 했는데,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석류나 호두나 이란에선 흔한 소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낙타 고기 파스타로 말하자면... ... 파스타에 올려진 고깃덩어리들이 낙타의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포옥~ 잘 익은 소갈비를 뜯는 기분이었다(사실 내 입이 그다지 고급스럽지 못하여 이 곳에서 그렇게 양고기를 먹어대도 소고기와 양고기의 큰 차이를 모르겠다. 낙타고기 역시 마찬가지 -_-). 어쨌든 김원장의 생일 기념 식사치고는 아주 독특했던 메뉴.

 

 

식사 후(요리 둘에 샐러드와 음료 주문, 15% 택스포함 8000원 미만) 노루즈 휴가기간에 방문하게 될 테헤란의 인기 숙소(www.firouzehhotel.com)도 미리 예약을 해두기 위해 다시 PC방에 들러본다. 한메일, 핫메일 어느 쪽도 로그인 되지 않아 그냥 포기, 결국 딸리는 영어지만 전화를 거는 수 밖에. 근처 전화방에 들러 테헤란 숙소 주인과 통화한다. 알고보니 노루즈 기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는지라 반대로 테헤란은 텅 비나보다. 오히려 비수기 특별할인 시즌이라며 방 걱정 말고 오란다. 통화후 계산을 하려니 전화방 아저씨가 500원 돈을 요구한다. 시외 통화긴 하지만 그래도 비싼 것 같은데...(지난 번 100원짜리 국제전화가 터무니없긴 했다) 여전히 이란의 물가가 아리송하다. 아니면 몇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는 것인지?

 

오빠, 생일 축하해. 좋은 구경 많이 시켜줘서 고마워 ^^ 앞으로도 쭈욱~ 잘 부탁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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