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한에서 3일간 머물렀던 Pars 호텔을 떠난다. /침대 모두 좁고 화장실도 샤워룸도 공용이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물어뜯는 벌레가 없다는 장점때문에 -_-; 방을 바꾸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 체크아웃시 보니 우리가 머물렀던 방이 아침식사를 포함하여 1 21000토만이라 게시되어있다(우리는 아침없이 17000토만에 머물렀다).

 

오전 8시 차가 있기를 바라며 터미널로 시간 맞춰 찾아갔는데 볼보 버스 등급의 매표소에서는 오직 오후 1시 버스 밖에 없다고 한다. 이를 어쩐다? 5시간을 어찌 기다리나? 잠시 고민하다 등급이 떨어지면 어떠냐, 되도록 빨리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면 아무 회사 버스나 타고가자해서 어디선가 나타난 왕친절 짱가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8시에 출발한다는 버스 티켓을 손에 넣는다. 에스파한에서 5시간 걸린다는 야즈드까지의 가격은 불과 1500/. 정말이지 믿기어려운 저렴한 가격이다.

 

 

이란에서의 버스 가격은 거리보다 버스의 질에 좌우된다고 하더니 가격이 저렴한만큼 우리 버스도 전에 이용했던 버스보다는 많이 노후된 모델이고(그래도 벤츠긴 하다) 차량내 서비스도 가격에 비례하더라. 8시에 출발한다던 차는 8 20분에야 출발했지만, 그래도 4시간 반만에 야즈드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1500원 지불/1000원이면 될 것 같은데) 박일선님께서 강추한 Malek-o Tojjar에 찾아갔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하루만 방이 가능하고(트윈룸 4만원) 내일부터는 노루즈를 맞은 단체 손님이 이미 예약되어 있는지라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단 방구경부터 해보니 우리가 카샨에서 익히 보았던, 그리고 탐냈던 예전 고택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이다.

 

우선 짐을 맡기고 다른 숙소를 찾아나선다. 이번엔 뭉그니님미 묵으셨다던 Kohan Hotel. 역시나 말레코 토자르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우리는 야즈드에서 3일 정도 묵을 생각인데 이 곳 역시 오늘, 내일 양일간만 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화장실이 없는 방도 괜찮다면 마지막날은 방을 옮겨 묵을 수 있다고도 한다. 방의 위치나 뷰는 말레코 토자르보다 떨어지지만 숙소의 입지나 방 자체만을 놓고보면 오히려 이 곳이 나아보인다. 게다가 가격이 ^^; 화장실 딸린 방의 경우 25000(화장실이 없는 방은 15000). 지금까지 이란에서 묵었던 숙소 중 가격대비 최고의 호텔이다.

 

말레코 토자르는 론리플래닛에서 맛집으로도 소개한 곳이다. 맡겨놓은 배낭을 찾으러 간 김에 운치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 정말이지 분위기가 죽인다. 200년 된 가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는 높다란 벽 속의 한 가운데 중정을 바라보며 카펫이 깔린 평상 위에서 한가로이 양고기와 닭고기가 섞인 케밥을 먹다보니 내가 정말 멋지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호강한다. ^^  

 

 

 

해가 기울자 어슬렁어슬렁 유명한 구시가 골목을 따라 산책에 나선다. 나름 방향 감각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야즈드의 구시가를 걷다보니 어느새 길을 잃었다. -_- (야즈드에서 <천국의 아이들>을 촬영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란에선 밤에 길을 잃어도 별 걱정이 안 된다. 우선 밤에 노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 여기서 말하는 밤문화란 우리의 밤문화=술문화와 완전 다르다 ^^; 여름에 무지 더운 나라라서인지 상인들은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고 점심때 몇 시간 닫았다가 다시 오후 늦게나 문을 연다. 행인들도 마찬가지로 아침, 저녁으로 나다니는데, 특히 저녁에 가족이나 친구끼리 몰려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그래서 곧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그 누군가는 말이 안 통해도 분명 친절함으로 무장된 짱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가장 높은 미나렛을 가지고 있어 야즈드의 방향탑 역할을 한다는 Jameh 모스크를 향해 다시 방향을 가늠해 보고 걷다보니 어느새 익숙한 거리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25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야즈드 거리를 여기저기 걷는다. 한 아이가 금붕어를 사가지고 돌아가다가 봉지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상당량의 물을 바닥에 흘리고 말았다. 얼른 주변의 공용 수도로 뛰어가 물을 채운다. 건조한 나라여서인지 필요할 때 누구든 물을 사용할 수 있게끔 배려해 놓은 것 같다.

 

 

 

밤에 보는 자메 모스크는 무척 아름답다. 게다가 주민들이 이 시간에도 기도드리러 오가곤 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근처 실크로드 호텔도 잠시 들러 구경해본다. 역시나 백인 여행자들이 몇 보인다. 실크로드 호텔이라... 너무나 의미심장한 이름이군(베르나르 올리비에의나는 걷는다가 떠오른다). 야즈드는 완전 사막도시지만, 옛부터 교역로가 교차하던, 마르코 폴로마저 언급했던 역사 깊은 도시이자 현재 조로아스터교의 마지막 중심지이기도 하다.

 

1500년 전, 이 황톳빛 골목길을 지나다녔을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 보는 일, 야즈드에서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 짱가를 만나는 일 : 오늘 아침 에스파한의 버스 터미널에서 우리를 도와준 짱가 아저씨 역시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친절을 베풀어주신 분이다. 우리가 원하는 표를 살 수 있도록 따라다니며 도와주시고, 플랫폼도 안내해주시고, 막간을 이용해서 차도 대접하겠다 하셨고, 파르시로(원장)이라는 사람이 야즈드에서 3일 뒤에 떠나는 쉬라즈행 버스 예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 메모까지 적어 챙겨주셨다. 그리고도 모자라 우리 버스가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출발하기까지 우리가 좌석에 잘 앉아있는지 확인하고 기다려주셨다(김원장은 이후 달리는 차 안에서 기념품 하나 챙겨오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국에서나) 외국여행중 내게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게서 뭔가를 얻어내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특히 인도같은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부름에 생까고 지나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도와주기 위하여 내게 말을 건넨다(물론 소수의 호객꾼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런데 나는 자꾸 그것을 잊고 습관처럼 우선 경계부터 하고 본다. -_-; 중동 여행이 끝나갈 즈음, 나도 그들처럼 변해 있을까? 그들을 닮을 수 있을까? 그들이 내가 이 땅을 여행하는 동안만이라도 잠시나마 나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의 가장 큰 소득이지 않을까.

 

 

# 오늘의 영화 : 김원장 혼자 나는 이미 본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를 보다. 만남의 광장보다 못 하다는 평이다. 어쩜 혼자 봐서 그럴지도 몰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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