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장은 이미 이 나라에 상당히 적응해버린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은 기본이요, 처음엔 아귀다툼처럼만 느껴지던 이 곳의 운전문화에도 신경이 덜 쓰인다며 마구 달려드는 차들 사이로 아무데서나 길을 건너기도 한다(물론 현지인들 수준으로 길을 건너기는 요원해보인다. 찻길을 건널 때 뛰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다). 이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고기 햄버거도 잘 먹고 시에스타도 잊지 않고 챙긴다(위빠사나 관련 글들을 읽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지만 ^^;).

느지막히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을 받아먹은 뒤 화장실이 없는 방으로 새로이 짐을 옮긴다. 세면대마저 없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내일이면 쉬라즈로 떠나니 그정도 불편이야 참아야지(, 이 숙소는 중앙 연못 덕택인지 덜 건조한데 반대 급부로 모기들이 날아다닌다 -_-;)

오늘은 야즈드 근교의 KharanaqChakChak 두 곳을 여행사 안 끼고 가이드 없이 둘이서만 다녀와 보기로 목표를 세웠다. 말이 안 통하는 젊은 택시 아저씨가 주행거리 1Km120원을 달라고 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기다려주는 시간에 대한 댓가가 문제다. 역시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간단한 영어를 구사하는 짱가가 나타나 1시간 대기에 5000원을 더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대충 거리 계산을 해보니 여행사 가격에 비해 저렴할 것 같아 오케이. 출발. 그런데 이 차가 지금 어디 먼저 가는거지? Kharanaq? 아님 ChakChak?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인생도 이런거야 씨부렁거려 보면서 

예전 여행 정보로는 야즈드에서 착착까지의 거리가 비포장도로가 섞인 60Km, 80Km니 다소 엇갈리는데 반해 우리는 내내 잘 닦인 포장도로를 이용해 110Km를 달려서야 착착에 이르렀다(설마 아저씨가 일부러 돌아서? ^^; 포장도로가 놓이면서 거리가 늘어난게 아닐까?).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인 착착이 절벽 한 가운데를 파고 들어간 원 동굴 밖으로 새로 덧붙여 지은 촌스러운 색상의 건물들 때문에 정작 그 빛이 바래는데 반하여 착착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신기루가 보이는 황량한 사막을 지나고 어디서 떨어졌는지 솟아났는지 모를 기이한 산들의 모습 자체가 훌륭한 볼거리이며, 대체 어떤 사연으로 이렇게 거칠고 깊은 곳으로 착착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저절로 궁금해질테니까(처음 내 눈에 착착 사원이 들어왔을 때 내 반응이 바로 그랬다. “아니 대체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와서 왜 또 저런데다 지어놓은거야?”).

착착으로 이어진 길고 긴 전신주들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로버트 태권브이가 숨어있는 비밀기지로 안내하는 길이래도 믿겠다. 하지만 착착 사원 절벽 아래 다가가자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자갈밭 주차장에는 대형 관광버스도 한 대 서 있고 자가용을 이용한 다른 관광객들도 그 수가 제법 되는, 그야말로 그 순간 조로아스터교의 신성한 성지는 잠시 사라지고 그야말로 야즈드 근교의 유명 관광지쯤으로 보이는 착착과 대면하게 되었다.

 

3월인데도 건조한 사막에서 한 낮에 산을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오르막과 계단을 연이어 오르니 마침내 커다란 나무로 드리워진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입구는 닫혀있다. 쉬는 시간인가?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동굴 천장 틈새에서 물방울이 착, , 떨어지고 있다(착착 사원의 이름이 바로 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건조한 사막, 거친 산, 중턱의 절벽, 그 안의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착착으로 오던 길에 몇 번의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 중 거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Kharanaq 방향 표지판을 보았다. 지도상으로는 그 길을 이용해서 30Km 만 더 가면 Kharanaq, 그리고 다시 그 곳에서 80Km 가면 야즈드인 듯 싶다. , 이제 Kharanaq으로 가자. 

하지만 그 길로 접어들어 얼마 달리지 않아 원래의 길이 끊기고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풍경도 길 사정도 완전 나미비아의 gravel road. 기사 청년은 이 길을 처음 달려보는지 갑자기 나타난 비포장도로가 무척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 그 마음 잘 알지 ^^; 비포장도로로 몇 Km나 달렸을까, 들어오는 시야의 끝까지 계속 비포장도로만 보이자 청년은 난감해한다. 그러면서 포장도로를 이용하여 돌아가자는 몸짓이다. 그래, 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한참을 돌아 달려 청년이 말한 Kharanaq행의 또다른 포장도로로 접어들어 얼마간 달리자 이번 역시 길이 끊어진다. 당황한 청년. 우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도로 끝에서 공사중이던 아저씨에게 청년이 길을 묻는데 아저씨의 손짓과 표정을 보니 아까 처음에 우리가 달렸던 그 길 밖에 없다는 것 같다. 오호...  

안 그래도 가이드북에 오후 2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나와있는데 다시 그 길로 찾아간다고 해도 시간 맞춰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원장, 어쩔까? 그냥 야즈드로 돌아가지, .

고마 됐다, 아그야. 야즈드로 돌아가자고 하니 청년은 반가운 표정이다. 그래, Kharanaq, 안 보면 또 어떠냐(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은 뭉그니님 여행기를 참조할 것). 웃긴건 그렇게 야즈드로 돌아왔는데 청년이 47000원을 요구하는거다. 내 입장에선 그를 위해 비포장도로를 이용해서라도 Kharanaq으로 가자고 박박 우기지 않고 야즈드로 그냥 돌아온 면도 없지않아 있기 때문에 25000~30000원쯤으로 쇼부를 볼까 어쩔까 하던 참이여서 그의 무리한 요구에 좀 화가 났다. 대체 47000원을 요구하는 합리적 근거가 뭔데? 하지만 서로 각자의 언어로 따져봐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 -_- 이니 언성을 높일 필요도 없다. 결국 우리가 한 발 양보하여 처음 청년이 이야기했던 Km120원을 종이에 적는다. 차에 그대로 주행거리가 찍혀있으니 그도 더 이상 반박을 못한다. 착착까지 예상했던 거리보다 실제로는 꽤 더 달린데다가 Kharanaq 가는 길을 찾는답시고 30Km 가량 돈 것까지 우리 몫이라는게 좀 억울하긴 하지만 ^^; 어쨌든 주행거리로 따지니 대기시간까지 합쳐 35000원이 나온다(잔돈이 없어 36000원을 냈는데 당근 안 거슬러준다). 돈을 받아든 청년의 만족하는 표정이 또 한 번 속을 긁지만(아니, 그럴 것을 왜 47000원이나 달래?) 다시 한 번 이란에서의 대절 택시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기사가 인상이 좋다고 해도 믿지말며, 기사가 인상이 나쁘다고 해도 의심치 말라. 현재까지 합승 택시 기사분들에 대한 기억은 다 좋은데, 대절 택시 기사분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지 않은 스코어를 보이고 있다.

근처에 박일선님이 추천했던 찻집(Hamun-e Khan)이 있어 찾아가 본다. 한 낮이라 가게들은 대부분 철시를 한 시간인데 뜻밖에 이 곳은 관광온 현지인들로 바글바글하다. 카샨에서 본 것처럼 예전 목욕탕으로 쓰이던 곳을 찻집 겸 식당으로 개조한 곳인데, 사람들이 많으니 편안히 차 마실 분위기 형성은 안 된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평상 자리도 거의 없고 오히려 차 마시는 동양인 둘을 다른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분위기 -_-; 흠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나온다(350/^^ 분위기에 비해 찻값은 정말 저렴하다. 에스파한의 찻집에선 주전부리가 나오고 천원을 받았는데 이 집은 달랑 차만 나왔다).

김원장 입이 심심하다고 해서 철시한 가게들을 따라 혹시나 하고 낙타 버거집을 찾아가 본다. 어제는 이 시간대 닫았던데, 오늘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는지 아직도 영업중이다. 김원장이 어제 낙타고기 파스타에 이어 오늘은 낙타 버거에 도전한다(낙타고기라고 해도 비싸지 않더라. 음료 포함 1100). 낙타 버거를 몇 입 베어 물다보니 야즈드가 사막 도시라는게 다시금 실감난다. 역시 일반 햄버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맛.

 

숙소에서 좀 쉬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선다. 구시가의 모든 가게들이 언제 문을 닫았냐는듯 몰려나온 사람들 속에서 성업 중이다. 야즈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해 줄 곳은 말레코 토자르. 낮은 낮대로 분위기가 좋더니 밤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다. 피자를 주문했더니 굽는데 20분 정도 걸린다며 괜찮겠냐 물어온다. 물론이지.

 


김원장은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 저녁 식사로 통닭이라도 시켜먹을라치면 꼭 퇴근길, 차에 시동을 걸며 지금 주문을 하라고 시킨다. 그래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을 수 있다는 논리다. 휴일에 자장면이나 피자를 시킬 때도 얼마나 걸리는지 꼭 물어본다. 좀 걸리겠다 싶으면 여지없이 다른 집을 찾는다. 점심시간 때도 마찬가지다. 평소 본인이 진료실에 갇혀있다고 -_-; 생각하는 김원장은 점심시간이 근무 중 유일하게 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빨리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은 코에 바람을 넣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손님이 많은 식당은 안 들어간다(때문에 가끔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못 먹는 날이 생긴다 -_-). 이런 연유로 인해 나는 평소 김원장이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보니 여행 중에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김원장은 본래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환경이 김원장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하나. 우리는 피자가 구워지는 동안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 대해 걔는 그런 애야, 라고 단정지어 이야기하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내가 알던 걔는 저 건너로 머~얼리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어느새 따끈하게 구워진 피자가 나왔다
.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 참고 : 야즈드 오리엔트 호텔 내 실크로드 여행사에서 취급하는 투어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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