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명의 의사가 “태어나는” 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초중고 시절 일단 공부를 꽤 잘해야 한다. 그래서 의대를 진학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2년의 예과 과정과 4년의 본과 과정까지 총 6년을 공부하는데 그 과정 중 치루어지는 시험은 그 질도 높거니와 양도 장난이 아니게 많다. 매년 학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과락’을 하기도 한다. 몇 학생들이 의대 적응과 어려운 공부 등을 이유로 몇 년씩 더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6년 만에 졸업을 한다. 그리고 국가 고시를 본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일단 ‘의사’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는 의사는 거의 없다. 또 이들 대부분이 또 다른 시험을 거쳐 1년의 인턴 과정에 들어간다. 인턴은 한 달마다 각 과를 돌며 수련을 받는다 하여 ‘수련의’라 불리우기도 한다. 이런 인턴 과정은 (이론상) 본인들의 적성을 고려하여 이후 전공과목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병원에서 엿본 인턴 선생님들은 적성이고 뭐고 따져볼 겨를 없이 거의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쨌든, 1년의 인턴 과정이 지나면 또 시험을 본다. 각 과별로 이루어지는 이 시험에서 합격을 하면, 이제 4년간의 레지던트 생활이 시작된다. 이들을 또한 각자의 전공 과목이 있는 ‘전공의’라 부르기도 한다. 4년 동안의 레지던트 생활이 끝나면, 또 다시 시험을 본다. 이게 전문의 시험이다. 몇 차에 걸쳐 이론과 실기 시험을 다 끝낸 후에야 이들은 드디어 ‘전문의’가 된다.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보드(board)를 땄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무슨무슨 내과, 무슨무슨 소아과라는 간판을 걸고 진료를 하시는 분들이 다 이런 전문의이다. 아, 이 과정 이외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러면 3년쯤은 우습게 더해진다.
 
고로 다시 요약하면, 우리나라의 한 남성이 의사로 다시 태어나는 데 의대 6년 + 인턴 1년 + 레지던트 4년 + 군대 3년 = 총 14년이 소요된다. 재수나 삼수를 하고 의대에 들어와 과락 몇 번 하면 3~4년은 또 후딱 간다. 시간 자~알 간다. 여하간 이렇게 전문의가 되고 나면 기나긴 시험은 끝난다. 이제 본인이 몸 담았던 병원에 남거나, 다른 병원에 취직 하거나, 아님 자신만의(혹은 공동으로) 병원을 열거나 하는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중 맨 마지막의 ‘개원의’라는 옵션을 택하면, 보통 아침 9시 전후부터 저녁 7시 전후까지 자신만의 병원이라는 곳에 갇혀서(?) 1년 365일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보통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렇게 20년 이상 일하는 것 같다.

 

김원장은 재수를 하지 않았다. 운이 좋아(?) 과락 같은 것도 면했다. 의사가 된 뒤 군대를 갔고, 돌아와 인턴을 마쳤다. 그리고 레지던트가 되기 전에 타의로 1년을 쉬어야(?) 했다(그러나 마치 자의로 그런 것만큼이나 당시에는 내가 그의 생활을 무지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다시 4년간의 레지던트 생활. 그러니까 고 3 졸업 이후로 총 15년이 걸린 셈이다. 그래, 가뿐하다. T_T 

 

15년이 지나고 김원장은 경기도 모처에서 13개월쯤 자신만의 병원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개원의' 생활을 때려치우고, 한국을 떠난 지 4개월도 넘게 지난 지금, 이렇게 체코의 한 구석, 쿠트나 호라에 서있다. 그리고 쿠트나 호라를 헤매던 중, 쿠트나 호라의 또 다른 ‘개원의’를 만났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 개원의가 운영하는 병원의 앞문과 조우했다. 그 앞문에는 대략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진료시간>

월요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3시

, 수, 목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금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정오 12시

 

김원장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다. 마치 진료시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진료라도 받으러 올 환자처럼. 물론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 바로 충격ing… 다시말해 김원장은 현재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현재 열심히 진료에 임하고 계신 다른 선생님들도 아니고, 이렇게 놀러 댕기고 있는 김원장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 짧디짧은 진료시간 안내문에 이토록 충격을 받다니... 그 모습에 나도 조금 놀란다.

 

유럽에서 second house는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체코의 이 선생님도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을 떠나 그다지 사치스럽지 않을 그들만의 또 다른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심이 틀림없을 것이다. 혹자는 유럽의 높은 세율 때문에 그런 생활이 자의반 타의반 가능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규칙이나 제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여유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꿈꾸지만, 다들 그저 ‘꿈’으로만 여기고 있는 생활. 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변혁을 일으키지 않는가!

 

한국에서 (비록 옆에서나마) 의사의 일생을 상당부분 지켜봐 왔다. 아직 우리 앞에 남아있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이제 나는 체코의 의사와 닮아가는, 한국의 한 의사와 그 일생을 같이 할 것이다.

 

Tip

 

 

관광: Ossuary (납골당, Sedlec U Kutne Hory) / 학생 할인 20코루나(일반 30코루나), 카메라 반입료 30코루나 / 입구에서 한국어 설명본을 무료로 빌려 읽을 수 있음 / 숙소에서 나와 ‘Church of Our Lady’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직진으로 뻗은 길이 차례로 Na Namesti, Masarykova이다. Masarykova를 따라 2Km 가량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Church of the Ascension of the Virgin’이 나오고 이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프라하에서 일일 투어로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납골당 앞에 세워 놓은 대절 버스들을 볼 수 있다

 

 

     

      Cathedral of St. Barbara (Velechram Sv. Panny Barbory V Kutne Hore) / 학생 할인 15코루나(일반 30코루나), 카메라나 비디오 촬영 금지 / 쿠트나 호라 시내 관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 성당은 다소 구석진 곳에 위치한 편이지만 시내에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이 성당에 가기 전에 한때 이 도시가 번영하는데 원천이 되었던 은광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으나 최소 3인 이상이 필요한데다가 덧붙여 가이드까지 딸린 제한된 투어만이 가능한 관계로 관심을 접었다

 

* 오후 5시면 유령 도시가 되는 쿠트나 호라…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 전에 구해두길. 체코에서는 주말에 프라하 이외의 도시를 여행할 때 상당 부분의 편의 시설이 감소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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