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아프리카를 떠나기로 예정했던 날까지 이틀 밖에 안 남았는데, 그 동안의 시간을 어디에서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지 아침에 일어나서야 -_- 궁리해 보기 시작한다. 김원장은 내세울만한 의견이 딱히 없다길래 그럼 워낙에 내가 주장했던 바 있는 Bela Bela로 가서 온천욕을 즐기자고 우겨본다.

 

어젯밤, 둘이 각자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 거의 방석만한 전기 장판에 몸을 지지며 다음 여행 계획을 짰는데, 몽골과 러시아를 TSR로 묶어 여행하고 핀란드로 넘어가는 한 달짜리 여정이었던지라 김원장은 벨라벨라를 가자는 내 주장도 듣는 둥 마는 둥 별 관심 없는 듯, 한국에서 우리 점방을 목하 열심히 봐주고 있는 후배에게 내친 김에 한 달 더 부탁해서 8월에는 그 여정을 진행하자는데 오히려 관심을 보인다. 나야 뭐 당근 좋지. 하지만 일단 오늘은 벨라벨라부터 가고. ^^; 

 

짐을 챙겨 나와보니 그 어느 날 보다도 안개가 짙다. 오늘은 운전, 더욱 조심해야겠다 싶은데 시동을 걸자마자 그 놈의 알람마저 계속 울려댄다. 앞이 안 보이는 덕분에 저절로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접어들었지, 알람은 시끄럽게 울어대지, 김원장이 다시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 야, 혹 지나가는 마을에 정비소 있는지 좀 확인해 봐

 

뭐가 보여야 정비소가 있는지 없는지 알텐데 -_-;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는 조금씩 나아지는 듯 싶지만 시야보다도 소음에 더욱 민감한 김원장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흠... 이를 어쩐다? 어느새 차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수도권역인 가우텡 지역으로 진입, 그러자 마을이 등장하는 간격이 줄어들고 차들이 많아지고 그와 더불어 흑인들이 살고 있는 빈민가 역시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다.

 

- 정비소는 잘 안 보이는데?

 

그즈음 어느 마을에선가 길은 Y자 갈림길이 되는데, 오른편으로 가면 벨라벨라요, 왼편으로 가면 요하네스버그라고 한다. 그런데 김원장이 이번 갈림길에서 우린 오른편이야, 하는 나의 말을 듣고도 차를 왼편으로 돌리네. 어랍쇼?

 

- 오른편이라니까?

- 벨라벨라 안 가. 이래서는 더 이상 운전하기 싫어.

- 그럼 어디가?

- 요하네스버그로 가서 비행기 티켓을 바꿀 수 있으면 바꿔보게.

 

켁. 이게 뭔 일이람? 어쨌거나 그럼 이제 당장 찾아내야 할 곳은 벨라벨라 가는 길이 아니라 요하네스버그의 남아프리카항공사 사무실 위치다. 론리플래닛을 펼쳐 항공사 사무실 위치를 파악하고 들고있던 지도와 열심히 매치를 시키고 있는데 옆에서 김원장이 또 한 마디.

 

- 여기서 조벅 시내보다는 공항이 더 가깝지 않니?

 

아, 그렇다. 역시 머리 하나보다는 머리 두 개가 낫구나. -_-; 공항이라면 여기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 그럼 공항으로 먼저 가보자. 그럼 직진하다가 OO 마을에서 우회전해서 OO번 도로를 타야해~

 

세계 어디서나 공항 근처에선 대부분 공항가는 안내판을 충실히 설치해 놓기 마련, 어느 지점에 이르자 지도도 필요없고 안내판만 보면서 따라가면 오케이겠다. 공항이 가까와져서인지 머리 위로 비행기도 나는구나.

 

한 달 전쯤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한국서 날아와 툭하니 떨어졌던 요하네스버그의 오 알 탐보 공항에 다시 진입하려니 당시 생각이 모락모락난다. 하지만 지금은 공항에서 버벅대지 않고 우리 차를 댈 주차장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 역시나 안내판을 따라따라 주차장에 진입, 차를 세우는데 성공! 이제 티켓을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지.

 

- 스케줄을 바꾸고 싶은데요.

- 언제 출발하시고 싶으세요?

- 내일이요. 그런데 혹시 오늘도 자리 가능한가요?

- 잠깐만요. (잠시 조회를 해보더니) 둘 다 있네요. 오늘로 바꿔 드릴까요?

 

오호라, 이리 쉽사리.

 

사람 마음이 참으로 웃긴 것이 벨라벨라 못 가는데서 오는 아쉬움도 잠깐이고, 일정을 바꿔야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이번엔 원하는 앞으로의 이틀간 내내 좌석 여유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다가, 뜻대로 이틀을 땡겨 바꾼 표를 손에 쥐자 기쁨도 잠시, 이젠 얼른 떠날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시각을 확인해보니 체크인 시간까지는 몇 시간 안 남았는데 그동안 차에 주유도 만땅으로 해두어야 하고, 기왕이면 세차까지 끝낸 뒤 반납, 혹시 모를 예상외 지출을 막아보고 싶어진 것이다. 거기에 그간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짐들은 비행용에 맞도록 재정리, 구분하여 꾸러미화해야하고 게다가 벨라벨라가면서 먹겠다고 아침에 밥도 지었는데 그것도 먹어야 하고...

 

자, 그럼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우선은 공항 주차장에서 낯선 기계를 이용해 요금 정산을 하고 차를 빼는 것부터. 그리고 처음 우리가 남아프리카에 도착, 우리를 픽업나온 숙소 아들이 우리를 태우자마자 가장 먼저 들렀던 공항 부지내 주유소에까지 무사히 기어들어가 기름을 가득 넣으며 묻는다.

 

- 근처에 세차장 있나요?

- 글쎄요, 가까이에는 없는 것 같고 아무래도 시내쪽으로 나가야 할 거여요.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시내쪽으로 조금만 나가보기로 한다. 못 찾으면 공항으로 그냥 돌아오지, 뭐. 그런데 여기서 어느 쪽이 시내야? -_-;

 

다행히 3분 정도 걸렸을까? 아무렇게나 접어든 길가에서 <세차 서비스 개시!> 문구를 내건 쇼핑몰 단지를 발견하고 급좌회전. 새로 생겨서인지 아주 친절하기까지한, 어쩐지 가족스러운 팀에게서 내외부 세차를 받기로 한다(세차장에서 단순한 세차일만을 하기엔 미모가 출중한 한 언니가 괜히 아깝더라는). 그들 몇이 달라붙어 열심히 차안팎으로 세차를 하는 동안 우리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짐정리 모드에 들어갔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달달달~ 춥기까지한 남아공을 떠나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한국으로 가야하니 옷부터 정리해야지. 탑승전에 부칠 물건, 들고 탈 물건 분류하다보니 또 다시 한 달간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짐정리에 세차까지 모두 마치고 남아있던 모든 먹거리를 꺼내 쇼핑몰 한 구석에 앉아 어설픈 점심을 먹는다. 김원장은 이런 우리의 모습이 다소 구걸버전 -_-; 이라며 썩 쾌적해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비장의 통조림이었던 장조림캔이 뚜껑을 열어보니 고기 한 점 없는 only 메추리알조림이었다는 다소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지만(이 통조림을 구매할 때 뉴질랜드 남섬에서 루트번 트램핑을 할 때 메추리알이 들어있던 장조림을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메추리알이 그려진 장조림캔을 앞뒤 재보지 않고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던건데... 흑, 그 배신감이라니), 여하튼 끝까지 찰지고 하이얀 쌀밥과 함께 마지막 남아프리카에서의 식사를 마쳤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근 한 달간 초반에 시동이 잘 안 걸려 고생했던 점이랑 막판에 무지막지하게 울려대던 알람을 제외하고는 그 막강 ^^; 성능을 자랑했던 우리 차와도 작별하고(무사히 반납까지 마치고 나니 해외에서의 첫 렌트카 경험을 성공리에 종료했다는 마음에 어찌나 뿌듯하던지), 체크인하고, 무료로 얻은 priority pass 카드로 입장 가능한 라운지를 찾아(라운지 입구 데스크에서 카드를 내면 본인 확인 후 쓰윽 긁고 신용카드 영수증 같은 것을 준다) 음식도 살짝 챙겨들고 나와 김원장과 나눠먹고도 시간이 남아, (라운지 인터넷이 고장중이었던지라) 인터넷도 잠깐 하고, 긴 비행에 앞서 소화시킨답시고 괜시리 공항도 빙빙 돌며 걷기 운동을 하다가 보딩을 한다. 그런데 좌석표에 찍힌 번호를 찾아가니 이런 된장, 또 등좌석이 제껴지지않는, 2-4-2 배열 캐빈의 가운데 맨 뒷자리. 흑.

 

그러나 우리에게 펼쳐진 마지막 행운이 있었으니 앞 좌석이 꽉꽉 채워지도록 우리의 옆으로는 아무도 찾아오질 않는 것이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우리 앞에 놓인 열들이 모두 차고 더 이상 올라탈 승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승무원들이 비행 준비에 접어들자 우리 얼굴에 감출 길 없이 피어나는 웃음꽃 ^^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까지의 이 길고 긴 시간을 불편하나마 누워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 아는 사람은 아마 알거다(헉, 그런데 가방을 열어보니 작지만 맥가이버칼을 갖고 탔네 -_-).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 

 

# 렌트카 반납

 

우리의 경우 공항을 두 번 찾았는데(처음은 비행기표 스케줄 교체하느라), 처음 공항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여러 렌트카 업체들이 세워놓은 안내판에서 우리가 이용한 업체인 National/Alamo 렌트카 업체명을 슬쩍 보았다. 덕분에 두 번째 들어가는 길에 헤매지 않고 그 안내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따라가니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공항 주차장이 아닌, 렌트카 업체 전용 주차장이 나왔다. 해당 구역에 주차를 하니 National/Alamo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오더라. 트렁크를 열어보는 등 차량의 겉 상태를 대충 훑어보고, 시동 걸어 주유량 만땅 등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를 물어보고 우리가 처음에 받았던 계약서 사본을 요구한 뒤 그 사본에 이런저런 사항을 기입하여 다시 차키와 맞바꾸는 것으로 간단히 반납 절차는 끝이 났다. 영수증을 받고 싶으면 저쪽 사무실로 가라길래, 예정보다 예고도 없이 이틀 일찍 반납하는 경우였으므로 청구될 금액이 궁금하여 사무실을 찾아갔다. 영수증은 차량 상태를 확인했던 직원이 내게 건네준 계약서 사본을 다시 내미는 것으로 곧 발급해주었는데, 금액을 확인해보니 사용한 당일, 즉 오늘까지의 금액만 (신용카드로) 청구되었다. 다시 말해 내가 약속보다 이틀 먼저 무작정 가져와 반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추가 금액이 청구되지 않은 것.

 

우리가 가입한 보험료, 택스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하루 사용료 223R X 27일 = 6,021R에, 처음 계약시 이미 우리에게 고지한 바 있는 계약비 25R를 포함, 토탈 6,046R (=816,915원)가 청구되었다.

 

영수증에서 이외 눈에 띠는 숫자를 들여다보니 렌트한 27일간 총 주행거리가 10,089Km로 하루 평균 374Km를 달린 셈이 된다.

 

PS. 이후 혹 그 원인 파악이 안 되는 알람 때문에 뭔가 더 추가되어 청구되지 않을까, 했지만 5개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감감 무소식인걸 보면 별 문제 아녔나보다.    

 

# (마지막) 드라이브

 

주행거리 : 220Km

 

Ermelo - (N17) - Bethal - Leandra - 이 지점쯤에서 어쩌다보니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달리는 국도로 빠져나오게 됨 - Springs - N12 -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 

 

# 가계부 

 

1. 공항 주차비(한 30분 정도?) : 10R (정산은 주차장에 설치된 기계로 미리 한 뒤 나가는 시스템인데 처음해보는 우리도 문제없이 해냈다) 

2. 주유 : 184R

3. 세차 : 25(옵션에 따라 요금 다양)+5(팁)=30R

4. 환전 : 남아있던 1,032R=132불(at 공항의 Master Currency Foreign Exchange). 공항에서 해서 그런지 환율도 좋지 않고 수수료도 많이 부과 -_-; (갑자기 여정 변경한 죄) 

5. 면세점 : 환전후 남아버린 9R로 껌 두 통인가 사다

6. 공항 내부 인터넷 : 신용카드로만 결제 가능(3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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