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꼭 가야겠다, 특별한 목적이 없이 일단 동쪽으로 달린다. 우리는 서쪽에서 왔고, 남쪽은 이미 대충이나마 지나쳤으니 이제 남아있는 곳은 북부와 동부인 셈이다. 북쪽 방향으로 내가 좋아하는 온천 도시가 하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김원장은 온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오직 동쪽뿐. 동쪽으로는 남아공에서 새롭게 관광지로 띄우는(?) 기가 역력한 음푸말랑가(Mpumalanga) 주가 있고, 더 나아가 스와질랜드도 있고, 더 멀리로는 모잠비크마저 있다. 그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있겠지. 우리도 동쪽으로 간다.

 

몇 번이나 톨비를 내며 고속도로만을 내달리다 잠시 Witbank에 들렀다. 윗뱅크는 근처 탄광을 시작으로 중공업이 발달한 대도시라고 했다. 윗뱅크 표지판을 보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우리가 생각하기에) 시가지 중심에 이르는데에는 도시가 꽤 커보였으나, 막상 두 발로 돌아다녀보니 시내 중심부라고 해봐야 별로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닭을 먹으러 들어간 KFC 안내문을 보니 이 도시에만 KFC가 세 개나 있다네. -_-; 어쩜 우리가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곳은 구시가지이거나, 아니면 몇 개의 번화가 중 한 곳일런지도 모르겠다.

 

<서아프리카에도 글씨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 넣은 간판이 많다던데, 그러고보니 중국에서도 이런 간판을 종종 보곤 했던 기억> 

 

윗뱅크 나들이를 끝내고 음푸말랑가 주쪽으로 더 나아간다. 윗뱅크 같은 곳에서는 웬만해서 숙박할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이젠 다시 교외로 나갈 차례. 정처없이 외곽을 달리다보면, 가이드북에 소개되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마치 잘 닦여 반짝반짝 빛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원석같은 마을이 어쩌다 우리 눈에 띄는 행운을 잡을지도 몰라.

 

 

그렇게 기대를 품고 방문하게 된 음푸말랑가의 첫 도시, Belfast. 벨파스트?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세운 마을이기라도 한가? 남아공에 워낙 유럽 여기저기서 이민온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출신국의 지명이나, 인명 등을 그대로 따오는 일도 흔한 것처럼 보인다.  

 

http://www.belfastsouthafrica.com/

 

벨파스트에서 하루 머물러볼까, 이 곳이 오늘의 보석이 되어줄까... 마침 마을 입구에 i 가 있다. 자원 봉사자처럼 보이는 아주머님 두 분이 수다로 지키고 계신 곳.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들을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두 분은 곧 본연의 다소 썰렁하고 무관심(?)한 자세로 돌아간다. 생각보다 다양한 브로셔를 구비한 곳이었지만, 막상 벨파스트 관련 브로셔보다는 주변 - 이 동네의 주변이라는게 바운더리가 워낙 넓은지라 ^^; - 관광지에 대한 브로셔가 훨씬 많다. 일단 대충 챙겨서 마을 구경부터 가보자!

 

벨파스트는 한마디로 "현재 공사중"이다. 무엇을 위한 공사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시가지 도로를 다 파헤쳐 놓아서 차도 거의 안 다니는 찻길을 가로 질러 건너려면 매번 몇 미터 이상씩 돌아 임시로 만들어 놓은 인도(?)를 통해 건너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어라, 이 작은 마을에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네. 그녀는 하는 일없이 시가지를 왔다갔다하는 우리가 혹시 중국인은 아닌가, 매우 궁금해하는 눈치다. 

 

브로셔 어딘가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 시내 한복판의 한 숙소는 호텔이라 하기엔 너무 낡았지만, 그렇다고 모텔이라 하기엔 제법 많은 부대시설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위치라면 좀 시끄러울 것 같잖아? 게다가 이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말고는 변변한 식당조차 눈에 띄질 않는다. 흠... 아무래도 이 곳은 오늘의 숙박지로 부적합해 보이는군.

 

자,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보자. 벨파스트를 뒤로 하면 할수록 지대가 점점 높아지더니 어라, 이것 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한 줌 놓치지 않고 너른 품에 잔뜩 안고 있는 고원과 그 빛을 아름답게 반사해내는 호수들이 섞여 깔린 주변 풍경이 찬란하기 그지없다(나는 스코틀랜드를 못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이 풍경이 스코틀랜드 고원 지대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 이 지역을 Highlands Meander라고 부른다더니, 여기저기 그 구역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들이 보이는구나. 김원장, 우리가 하이랜드에 올라섰나봐~ 표지판마다 여지없이 플라이 낚시를 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동네가 "fly-fishing mecca"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http://www.highlandsmeander.co.za/index.html

 

그 즉시 이 눈부신 풍경 위로 바로 오버랩되는 영화, 가을의 전설. ^^; 이 동네, 사람 참 차분하게도 만드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새로운 마을은 Dullstroom.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는 어쩐지 별로였는데 ^^; 마을 입구에 도달하는 순간 알아 버렸다. 왜 여행을 다니다보면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어도 그런 느낌이 팍팍 오는 마을이 있지 않은가? 여기는 휴양을 위해 찾는 마을이구나, 하는. 마치 우리가 클라렌스(http://blog.daum.net/worldtravel/10786013)에서 느꼈던, 그와 비슷한 분위기가 이 마을에서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것이다. 클라렌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늦은 오후 무렵 도착해서였는지 노을빛 홍조로 물들은 클라렌스의 이미지에 반해, 이 곳은 환하게 밝은, 그래서 실제 기온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것. 우리는 당연 이 곳에서 묵기로 한다.

 

http://www.dullstroom.co.za/

 

어제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어쩌다보니 숙소비로 과용을 하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그래서인지 숙소는 마음에 들어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을 정도다. 아침에 깻잎과 김치로 맛나게 차려먹은데 이어, 모든게 잘 갖춰진 숙소에서 김치라면부터 끓이고 온갖 주전부리 다 풀어놓은 채 둘만의 만찬을 즐긴다(여행하면서 어찌나 잘 먹고 다녔는지 어째 비육되는 듯한 느낌 -_-;). 비록 바람은 정신없이 불지만, 그래도 창밖의 경치는 한가롭고 아름답기만 한데, 이런 곳에서 우리는 방콕이라니.

 

...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일까?

 

# 드라이브

 

주행거리 : 370Km

 

<출처 http://www.shellgeostar.co.za/planyourroute.asp>

 

Rustenburg - (N4) - (Pretoria) - Witbank - Belfast - (R540) - Dullstroom 순으로 이동했다.

 

프리토리아/요하네스버그 근방은 이동하는 차량이 많으니 인터체인지들을 드나들 때마다 주의할 것.

N4의 오늘 구간은 톨게이트가 많으며(때마다의 요금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간혹 고속도로변에서 과속 측정을 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벨파스트 시내는 현재 공사중으로 R540을 타려면 우회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마을 내 안내판을 따라 돌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벨파스트에서 덜스트룸에 이르는 R540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 숙소

 

우리야 아무런 정보 없이 찾게 된 도시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덜스트룸은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와 2시간 정도의 적당한 거리로, 송어 낚시가 워낙 유명한 곳이라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 주민들의 주말 휴양 나들이 장소로 이름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숙소도 제법 다양한 편.

 

http://www.highlandsmeander.co.za/dullstroom/directory_dullstroom.html

 

원래 마음에 두었던 숙소는 이런저런 브로셔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었던 The Dullstroom Inn.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인집 언니왈, 마침 뜨거운 물이 안 나와 수리할 사람을 부르긴 했는데 언제나 해결이 될지 모른다고 하더라. 다행히(?) 우리도 방 수준이 그 가격에 부응할 거라 기대했던 것에 비해 좀 노후되고 어수선한 느낌을 받은터라(방 배치 구조상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가 적어보이기도 하고)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친절한 주인 가족이 미안해하며 대신 추천해 준 숙소가 바로 The Flying Dutchman Pub & Restaurant. 이름 그대로 이 곳은 덜스트룸의 제법 이름난 레스토랑인데(뭐 그래봐야 덜스트룸이 매우 작은 마을이긴 하다만),

 

http://www.restaurants.co.za/details.asp?resId=3674

http://www.dullstroom.co.za/eat.php

 

이 집에서 레스토랑과는 별도로 아파트 스타일의 방 3개를 숙박용으로 보유하고 있다. 찬바람 부는 비수기철이라서인지 방은 모두 비어 있었는데, 마지막 보여준 3번 방이 앞서 보여준 두 개의 방에 비해 찻길 반대편으로 창이 나있어 좀 어둡기는 했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면적만큼은 제일이었던지라 이 방을 택했다. 방값으로 700R나 지불해야 했지만 아침 포함 가격이라길래 그나마 아까워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는. -_-; 영수증에 인쇄되어 있는 다음 문구가 재미나다.

 

"Small Fishing Town with a Big Drinking Problem"

 

 

@ 방 : 더블 침대. 놀랍게도 뜨끈한 온돌 시스템!!! (날이 추워서 진짜 좋았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놀았다는 ^^;). 상가 건물의 2층에 위치. 

@ 화장실 : ensuite, 샤워부스

@ 방 가격에 걸맞도록 모든게 잘 갖추어져 있는데, TV는 없다

@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B&B의 특성을 십분 살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룸서비스로 부탁했는데, 덕분에 제법 근사한 분위기의 아침이었다.

@ 날이 따뜻했으면 허가 받아 플라잉 낚시라는 것도 한 번 트라이 해봤을텐데...

 

# 가계부 (단위 ZAR 남아공 랜드)

 

1. 루스텐버그에서 주유 : 237.6

2. 톨비 5회 : 11+7.2+7.2+19+31=75.4

3.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치약 구매 : 3.4

4. 윗뱅크 KFC : 23.4 (현재 우리나라 KFC도 팝콘 치킨 팔고 있나?)

5. 윗뱅크 길거리 빵집 : Vetkoek 한 개 1.2 (맛은 만다지 mandazi 맛. -_-; 다소 질겅거리는 식감. 펫쿡의 모양이 궁금하다면http://home.comcast.net/~osoono/ethnicdoughs/vetkoek/vetkoek.htm, 그리고 펫쿡의 맛이 만다지와 비슷하다는 나의 불친절함에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이는 사람들을 위해선 http://www.bellaonline.com/articles/art7250.asp).

6. 윗뱅크 주차요원 : 2 (실제로 1시간까지는 무료인 것 같았으나 무사히 차를 지켜준데에 대한 작은 감사의 인사로. 그 역시 끝까지 우리에게 친절함으로 답례)

7. 벨파스트의 수퍼(Highlands Spar) : 51 (생선튀김 7.5+방울토마토 7.15+포장샐러드 15+진짜 맛있는 롤케이크 14+물 6.5 등)

8. 숙소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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