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서 그리스의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들어와 라리사(Larisa)로 이동, 라리사에 머물면서 메테오라(Meteora)에 다녀오는 것으로 그리스 여행의 서문을 열었다. 척 봐도 그간 여행해 왔던 동유럽에 비해 그리스는 확연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집집마다 아주 작은 크기일지언정 발코니를 가지고 있었고, 그 발코니를 장식용으로만 두지 않고 최대한 잘 써먹는 사람들끼리 모여살고 있었다. 마을 중심부의 작은 광장에는 여지없이 분수가 물을 뿜어대고 있었고, 늦은 밤까지, 아니 오히려 밤이 깊을수록 그들은 분수 광장을 오가며 삼삼오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오 이런, 그리스가 이런 곳이었다니, 충격.

 

내가 4학년때 서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항공권을 판매한 여행사에선 내게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었다.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에 더해 스페인을 택할 것이냐, 아님 그리스를 택할 것이냐, 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나는 당연(!) 그리스를 선택했는데, 결국 졸업 논문 일정 때문에 예정 도착일이 계획과 틀어지면서 나는 그리스 대신 스페인을 여행해야만 했다(물론 아쉬움은 잠깐이었다. 어차피 스페인도 처음이었고, 아시다시피 스페인은 그 모습 그대로 멋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처음 계획에 비추어보자면 마음에 담은지 7년 만에 올 수 있었던 셈.

 

흔히들 (필연적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볼거리면에서는 이탈리아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유럽 여행 중 그리스까지 오게되는 시점은 그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끝물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리스 여행은 종종 "기대보다 별로"로 귀결되곤 한다. 하긴 요즘 그리스 여행의 데스티네이션 트렌드는 아예 내륙의 어디가 아니다. 바로 순정만화에나 나오는 이름들을 가진 지중해의 여러 바다에 눈부시게 흩뿌려진 섬들이지. 어쨌거나 생각보다 제법 오래 머무르게 된 그리스는 굳이 평을 내리자면 내게 역시 "기대보다 별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고픈 곳이다. 대체 왜 그러는거냐 스스로 자문해봐도 답을 모르겠다.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 메테오라를 다녀온 뒤 다음의 목적지로 삼은 곳은 그 유명한 세계의 중심 델포이(Delphi).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델포이 신탁. 급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이디푸스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옴파로스.

 

 

 

 

 

 

 

 

 

 

라리사의 한 싸구려 로컬 식당에서는 자신있게 올리브 요리를 권하는 주인 아저씨와

평소 올리브의 심오한 맛을 잘 모르는 나 사이에 묘한 갈등의 파장이 일었고,

 

델포이의 한 분위기 괜찮은 로컬 식당에서는 수블라키를 주문했는데(그리스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보다도 많이 먹었던 메뉴)

수블라키가 하도 안 나와서 아예 양을 잡으러 갔나, -_-; 하고 있던 차에

결국 앞 집(역시나 비슷한 메뉴를 내 건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접시채 가져오던 아저씨가 생각난다(앞 집 갈까 여기 갈까 하다 여기 들어왔는데 -_-;).

 

라리사의 그 작달막한 숙소에선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야말로 십몇년 만에 맥가이버를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한지라(오오, 기억나, 다음 장면이 기억나~ 외치며 그나마 그리스 말로 더빙하지 않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었었지) 아, 이젠 돌아가야할 때가 아닌가 심각히 의견 나누기도 했으며,

 

델포이 숙소에 대해서는 발코니도 제법 큼지막하고 전망이 너무나 훌륭했던 기억만이 남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리스 신화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델피에서 어찌 묵기까지 했는지 스스로가 가소롭다).

 

어쨌거나 초코 우유를 마시며 코린트만을 바라보고 있는 김원장 사진을 들여다 보자니,

이 모든 게 한낱 꿈만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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