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를 여행하고 크로아티아를 잠시 들러 자그레브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슬로베니아로 들어갔었다. 당시 헝가리에서의 계획은 단순 크로아티아행이 전부였지만, 막상 자그레브에 도착하곤 썰렁한 자그레브의 모습에 일단 슬로베니아로 들어가 아드리아해변으로 이동, 해변을 따라 여행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헝가리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때 있었던 일. 우리가 탔던 국경 마을행 버스가 우리를 그 마을의 역앞에 내려준 것이 아니라, 몇 블록 떨어진 어귀에 내려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헝가리 국경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크로아티아를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우리가 역을 찾아 걸어가느라 그만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만 것. 황망히 역에서 어쩌나 하고 돌아서던 우리 앞에, 역전에서 버스를 타고 크로아티아로 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건 누구였더라? 마침 버스는 출발 직전이었던지라 허겁지겁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며 승차했는데, 올라타보니 자그레브행 버스 승객은 오직 우리 둘 뿐이었다. 기사분과 차장분까지 셈하면 모두 넷.

 

아저씨들은 말이 안 통하는 우리에게 뭐라뭐라 설명을 하더니 버스를 후미진 어느 골목으로 돌려 신나게 쇼핑을 해대고 - 물론 그 목록은 생필품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크로아티아는 아직 전후 경기가 살아나기 전이었나보다 - 차에 가득 박스에 박스를 더해 실은 뒤 그제서야 크로아티아를 향해 달렸다.

 

우리 둘만의(아니 우리 넷만의) 버스 여행은 지극히 즐거웠는데,

드디어 입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전해지던, 마치 여행 고수들에겐 비급과도 같은 크로아티아로 실제 입성한다는 "사실"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도로변 마을 집 벽에서 발견되는 총탄 자국에 섬뜻섬뜻하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달려온 찬란한 시골길에 비해 우중충한 잿빛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고,

우리는 터미널에 내려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다시 떠나기로 한다. 예정에도 없던 슬로베니아로.

 

그렇게 얼결에 슬로베니아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래서인지 슬로베니아는 나름 참신하고,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주었다. 

 

처음 머물렀던 곳은 당연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리아나.

 

우리가 루블리아나를 찾았을 땐 뭔 행사라도 있었는지 시내의 저렴한 모든 숙소가 모두 꽉꽉 차있어서, 오랜 이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시내 외곽의 캠핑 사이트로 나가야 했다. 사실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그간 시내 외곽의 캠핑장에 가 볼 일이 없었는데 덕분에 그 때 캠핑장에서 묵으면서 텐트 없이도 여러 방법으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캠핑 문화를 실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간 간접 매체로만 접해야했던 캠핑카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고, 견물생심이라고 이후 캠핑카에 대한 로망이 생긴 것도 아마 그 때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루블리아나의 모습 몇 장.        

 

 

저 아래, 아치 구조물 속은 뜻밖에도 수산물이 넘쳐나는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루블리아나에서 가장 놀랐던 것? 가장 서유럽다운(?) 동유럽이었다는 것. 아니 그 보다는 자본주의가 가장 많이 침투한 동유럽 국가라고 해야하나? 많은 사람들이 늦게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하고 ^^; 버스 아저씨는 사람들이 올라탈 때마다 차비를 정확히 내는지 눈을 부라리고 확인하고... 

 

슬로베니아 역시 보석은 해안에 콕콕. 코퍼(http://www.koper.si/podrocje.aspx?id=0&langid=1033)에 머물면서 피란도 다녀오고 그 유명한 Skocjan caves도 다녀오고(http://www.park-skocjanske-jame.si/Eng/a-Skocjan%20Caves%20Regional%20Park.htm).

 

아래 사진에 그 모습이 소개된 이 동네선 제법 이름난 피란말고도, 코퍼에서의 시간이 참으로 따스했다. 시장에서 고등어 사다 레스토랑과 겸업하던 숙소 주인에게 소금을 빌려 고등어 구워먹고, 감자도 볶아먹고... 작은 광장을 껴안은 시장에서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해안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었는데... 코퍼 구시가지의 반짝반짝 빛나는 바닥을 가진 작은 골목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지. 이탈리아의 여느 해안가 시골 마을도 이렇지 않을까?

 

 

 

 

 

 

 

간혹 지나온 한 나라를 기억할 때, 잊지 못할 사람이 어울려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슬로베니아는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곳이다. Skocjan caves를 다녀올 때 돌아오는 길에 본인의 목적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걷고 있던 우리를 역까지 기꺼이 태워준 그 아저씨. 지금은 무얼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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