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빙그르르 돌다 바닷가쪽 어딘가에서 만난 한국 청년.

 

그이가 들고 있던 가이드북이 한글이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책에 시선이 쏠렸고,

그 역시 그런 나를 아마도 거의 간발의 차이로 한국인이라 짐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 어, 두 분, 한국분이세요? 크로아티아까지 여행하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는데...(당시엔 그가 그렇게 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5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는 군대에서 뭔 악기를 연주하다 제대한 청년으로 벌써 2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전(!)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김원장은 선천적 낯가림으로, 나 역시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입을 벌리기 보다는 귀를 벌려 그의 자랑스러운 여행 루트와 호기로운 여행담을 듣는데 치중하고 있었는데(간만의 영계에 정신 못 차렸던.. 쿨럭), 신나게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그가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행색(돌이켜보건데 좀 우울했다 -_-)을 다시 훑어보며 물었다.

 

- 그런데 두 분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어요? 여행한지는 얼마나 되셨길래?

- 어... 중국에서부터 육로로 인도까지 여행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이 갑자기 막혀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유럽으로 건너왔어요. 지금이... 대략 5개월이 넘어가는 것 같네요(이럴 때 보면 나도 한 유치한다니까).

 

나의 입에서 '인도'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마도 그에게 '인도'라는 나라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심지어 지금도 인도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은 수나마 있긴 있다). 아니면 자기보다 긴 여행 기간에 주눅이 들은건가? 어쨌거나 그는 우습게도 그 즉시 깨갱,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 모습이 진짜 귀여웠다.

 

- 오빠, 우리 저 귀여운 청년, 술 한 잔 사 주자.

 

우리는 저녁에 다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한 술집에서 만났다. 마찬가지로 반들반들 반짝반짝한 포도 위에 야외 테이블을 내어 놓아 보기에도 참 좋았던, 즉 술 땡겼던 술집. 비록 체코 맥주만은 못했지만(오.. 아직도 그립기만한 감브리너스. 다시 체코에 간다면 요 놈 때문이야. 그건 확실해), 그래도 분위기 하나는 좋았던(여기가 어디라고. 두브로브닉이라잖아) 그 술집에서 우리는 그와 거품 올려진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곳에서 그는 다시 크로아티아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던 본인의 계획을 바꾸어 우리의 루트를 따라 유고슬라비아를 여행하겠다 결심했고.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떠나 몬테네그로로 입국하던 날, 그 당시 (구)유고슬라비아는 당시 마악~ 한국인에게 비자를 없앤 시점이었는데, 그 '마악'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소에서 비자가 없다며 우리 셋의 입국을 막은 것. 나는 당연 대사관을 들먹이며 얼마 전 정해진 사항이라 아직 지침이 안 내려왔을 뿐 한국인은 무비자가 맞다며 확인해보라 우겨댔고, 그 직원이 본인이 제일 확실하게 안다며 이래저래 확인을 미루는 동안 버스는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난감. 그 와중에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쓰윽 통과하던 일본애가 주는 것 없이 얼마나 얄밉던지. 지금이라면 슬쩍 뒷구멍을 찔러라도 봤을텐데, 당시엔 얼마간 '유럽(이라는 곳)'을 여행하던 잔재가 남아 그럴 생각도 안 했던 듯 싶다(인도처럼 내놓고 요구하질 않으니). 어쨌거나 하루에 한 편 있을 뿐이라는 두브로브니크 발 몬테네그로 행 버스는 국경에 우리만을 남겨둔 채 떠나가 버렸고, 결국 우리의 고집스런 주장에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보던 직원과는 결국 3일 짜리 즉석 통과 비자를 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아, 그런데 이 때까지 잘 지내던 또 하나의 한국인 '그'와 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는 일이 여기서 발생하는데, 그가 요의를 참다못해 출입국 관리소 뒷 마당에서 그야말로 실례를 해버린 것이다. 그 코딱지만한, 관리소라기 보다는 초소스러운 그 곳에 그럴싸한 화장실이 없었다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은 더 이상 비자가 필요없다며 바락바락 우기고 있는 내 앞에서 국제적으로 한국인 망신시킬 일이 있나..(뭐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망신 운운 할만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당시의 보다 젊은 나는 그랬다 -_-) 그 사건 이후 그는 남의 나라 입구에서부터 노상방뇨한 죄로 (정작 본인은 이유도 모른채) 나에게 전과 같지 않은 대접을 받게 된다.

 

여하튼 통과 비자라도 받아든 우리는 다니던 차가 드물던 그 곳 국경 근처에서 셋을 한꺼번에 태워줄 차를 찾기 위해 기다리고 뛰어다니고 해야 했으며, 결국 몬테네그로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던 노부부가 몰던 승용차 뒷 좌석에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가장 가까운, 몬테네그로의 한 작은 마을 터미널까지 신세를 져야했다.

 

거기서 다시 마악 출발하려던 버스를 잡아타고 꼬불꼬불한 산 고개를 넘어 이번엔 세르비아로,

그리고 다시 껌껌한 세르비아의 한 터미널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후 어슴츠레 동이 터오는 새벽녘에야 불가리아행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원래 계획? 당근 몬테네그로의 한적한 해변 마을에서 며칠, 그리고 다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도 구경하고, 분위기 파악 뒤 가능하면 코소보까지도 내치려고 했었지. 그리곤 루마니아로 고고고! ㅎㅎ 계획이야 항상 빠방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은? 하루 종일 터미널에서 기다리거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를 가로 질러 달리거나 하여 불가리아로 불가리아로 달리고 있지 않은가(흑, 루마니아는 무슨 죄야)... 불가~리~스.

 

세르비아/불가리아 국경에선 불가리아가 세르비아 애들을 무시하는지 -_-; 열라 깐깐하게 심사를 해대는지라 반대로 이번엔 진작 통과된 우리 셋은 하염없이 하릴없이 세르비아인 승객 모두가 OK 사인을 받을 때까지 국경 사무소 앞마당을 산책해야 했다. 아.. 불가리아, 이럼 안 되지 않냐? (더 웃긴 건, 나중에 불가리아/그리스 국경을 넘나들 때 이번엔 그리스 애들이 열라 깐깐하게 불가리아 애들을 까대는 것이다. 찍 소리 못 하고 그들의 요구에 맞춰 꽁꽁 꾸려운 짐 보따리 하나하나를 풀어대던 불가리아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내가 다 화가 나더라만)          

 

결국 몇 승객의 짐이 퇴짜를 맞고서야(압류?) 우리 버스는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향해 계속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와의 헤어짐을 몹시도 아쉬워하던 그와도 시원스레 안녕!

 

우리가 소피아에서 머물던 민박집, 낡은 빌라의 2층에 살던 주인 아저씨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던 분이셨고, 시내 밤길을 걷다 아무나 붙잡고 호객하던 아주머니가 있던,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샐러드에서 기어다니는 벌레를 발견하곤 이래뵈도 유기농 야채인가봐, 웃은 적도 있었다(그러고보니 이때는 진짜 여.유.가. 있.었.네). 물론 아침은 거의 맥도날드 맥모닝 메뉴 신세를 졌는데(한국에선 그래본 적이 없는지라 맥모닝 메뉴만 보면 여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별 거 아닌 맥모닝 메뉴조차도 내게는 여행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되어버렸네), 그 생활도 시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한식집을 발견하곤 쫑이 났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가서 한식을 먹기도 했었지(주인되시는 분께 배낭여행 하는 사람들도 여기를 찾아올 수 있도록 인터넷 통해 광고 할께요~ 약속도 했었는데 그래서 효과 좀 보셨는지 궁금). 그렇게 시내와 식당을 오가면서 한 번은 택시에 바가지를 옴팡 쓰기도 했다. 김치가 눈 앞에서 아른아른, 급한 마음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정차해있던 고급(?) 택시를 탔다가 벌어진 일. 이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나보다. 그 바가지에 대한 억울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제법 갔었지, 아마?   

  

 

소피아에서 본 불곰. '불'가리아라 '불'곰이냐.. 낄낄거렸던.

 

 

 

소피아에서 노닐다 벼룩시장을 간 적도 있는데.. 유독 눈에 뜨이던 물건 중 하나가 권총. 소련 시절 페이드 인, 그리고 페이드 아웃.

 

그리고 불가리아 최고의 '관광지'라 불리울만한 곳, 릴라 수도원. 나중에 보니 이 곳을 다녀온 누군가는 그러더라. 자신의 머릿속엔 불가리아=릴라 수도원 공식이 세워져 있다고. 나도 거의 그래.

 

 

 

 

 

 

 

수 백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커다란 무쇠솥들이 있던, 그래서 과거의 위세를 다시금 떠올리게했던, 그러나 현재는 어두컴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서 더 대비되던 수도원의 옛 주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새까맣게 그을린 굴뚝(?) 내부와 저~멀리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지나온 역사와는 상관없이 척 보기에 너무나 예쁘던, 아름답다기 보다는 정말 예쁜 릴라 수도원.

옆에서 이 곳 사진을 띄워놓고 예전 기억을 더듬고 있는 나를 보며 김원장이 한 마디. 

 

- 릴라 수도원에서 먹었던 튀김 기억나? 두 개에 우리 돈으로 백원인가, 이백원인가 그랬는데...  

 

그러고보니 릴라 수도원을 거닐다 뒷문으로 나가 기념품도 팔고 하던 작은 가게에서 도넛스러운 튀김빵을 먹었었지. 그러면서 우리 요거트도 챙겨 먹지 않았었나? 맛없는 요거트 마시며 다음엔 스틱든 저 사람들처럼 릴라산에 오르자, 했었는데... 응. 기억나.

 

기억난 김에..

 

우리, 불가리아 다시 갈까?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릴라 수도원 가는 길에 들렀던 그 작은 마을의 간이 우체국에서

떠올리자면 언제나 보고싶은 그이들 모두에게

한 바닥 엽서를 마저 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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