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를 여행하다 보면 천(川) 하나를 건너거나 작은 언덕을 넘는 것만으로도 행정구역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름난 산이나 커다란 강 역시 자연스레 군이나 도를 가르고요. 그렇다면 산맥은 어떨까요?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의 국경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겠죠?

 

폴란드 남부에는 타트라 산맥이 높다랗게 솟아 슬로바키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측 타트라 산맥 발자락에 <자코파네>라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평평한 편이지만 폴란드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평평한 나라인지라 산 아랫마을 자코파네는 여름엔 여름대로 주변에 널린 산과 호수를 엮는 멋진 트레킹과 하이킹 코스로, 겨울엔 겨울대로 스키를 타기 위해(최근엔 월드컵 스키 점프 대회가 열리기도 했답니다) 폴란드인들이 제 1순위로 꼽는 휴양도시라고 하네요.

 

http://www.zakopane-life.com/

http://www.zakopane.pl/articles.php?topic=30

http://www.discoverzakopane.com/zakopane.uk.html

 

 

자코파네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호수에서 놀고, 하루는 산에서 놀았는데요, 제가 먼저 찾아갔던 호수는 ‘바다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Morskie Oko 호수였습니다.

 

<호수 찾아 가는 길에 만난 작은 폭포>

<잘 정비된 호수까지 가는 길>




 

자코파네에서 24 Km 정도 떨어져 있어 대중 교통편인 버스를 이용,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지만 버스는 굽이굽이 멋진 길을 천천히 달려 50분 후 종점(Polana Palenica)에 승객을 내려 놓습니다(미니버스 이용시 30분 소요). 이 곳에서 입장료를 내고 폴란드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섞여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9 Km를 걸어가면 호수에 닿을 수 있으며(편도 2시간), 이외에도 여력이 남는다면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본다거나 더 깊숙히 위치한 또 다른 호수(Czarny Staw pod Rysami)까지 여정을 늘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걷는게 부담스러우시다면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마차가 버스 종점에서부터 호수 입구까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왕복 운행을 하고 있으니 그 편을 이용하셔도 되고요.

 

다음 날 제가 찾아갔던 산은 Kasprowy Wierch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2,000m급의 산이다보니 케이블카를 이용했는데요, 첫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7분 정도 올라간 뒤에 그 곳에서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8분 정도 더 올라가도록 되어있어 매우 흥미로왔죠. 그렇게 15분만에 뚝딱! 해발 1,987m 봉우리에 떨어졌고요, 이 곳에서부터는 쭈욱~ 걸어서 내려 왔습니다(단, 내려오는 방향을 잘못 잡으시면 슬로바키아로 빠지게 되니 그 점 주의하셔야 합니다 ^^;).



<오른편은 폴란드, 왼편은 슬로바키아>

<이번엔 오른편이 슬로바키아, 왼편이 폴란드>

<폴란드쪽으로 방향을 잡고>

<돌아보니 온 길도 멀고, 갈 길도 까마득하고>



<하이킹 중 만난 이름모를 호수>

<드디어 반은 내려온 듯>

자코파네에서 버스로 15분이면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 하차 지점에서 산 능선을 타고 2,012m의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은 뒤 중간 중간 준비해 간 도시락도 먹고 충분히 쉬면서 총 5시간 정도 걸려 다시 처음의 바닥 지점(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잠깐을 제외하고는 계속 내려오기만 하는 건데도 은근 힘들었네요 ^^; 개인적으로는 산이 호수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는데요, 호수는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훨씬 많아 번잡스럽더라고요. 호수에서도 그랬지만 산에서 하이킹을 할 때에는 황인종으로 분류할 만한 사람이 오직 저희 둘 뿐이었던지라 마주치는 친절한 폴란드 등산객들로부터 내내 인사를 받았답니다(그래서 더 기억이 좋게 남았을런지도 모르겠네요).

자코파네의 또 다른 매력은 이 곳 역시 많은 여행자들이 꿈꾸는 유럽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자코파네 다운타운으로 한 번 구경 나가 볼까요? 제가 묵었던 민박집에서 숲 냄새 그득한 길을 따라 졸졸 흐르는 개울을 건너면 곧 다운타운 한복판입니다. 첼로를 켜는 엄마와 거기에 맞추어 클래식부터 흘러간 팝송까지 맑은 톤의 피리로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어린 딸, 즉석에서 관객들의 신청곡을 받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히피스러운 복장의 아저씨, 간단한 마술을 부리며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삐에로 등이 저절로 코를 실룩거리게 만드는 바비큐 꼬치, 4인조 밴드의 반주 아래 거품까지 고소한 생맥주,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을 듬뿍 넣은 바삭한 와플, 양젖으로 만든 이 지방 특유의 치즈(모양도 맛도 별스러운 아이랍니다) 등을 파는 음식점 골목 사이사이마다 포진해 있습니다. 맞습니다. 서유럽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넋 놓고 아름다운 선율에 빠지기도 하고, 둘러싼 관객들 사이로 발돋움해 가면서 환호와 박수도 아끼지 않고, 마술의 비밀을 캐내려는 듯 아이들 사이에 섞여 뚫어지게 바라도 보다가, 냄새에 이끌려 도톰하게 썰린 고기 꼬치를 저녁 식사 겸 안주 삼아 배불리 먹고 디저트로 한 손엔 아이스크림, 다른 한 손엔 와플을 들고 신랑을 졸라 치즈까지 골고루 골라 한 봉투 사 들고 자코파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피서를 즐기러 온 다른 휴양객들의 여유로운 얼굴에도 붉게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더군요(어쩜 그들도 저처럼 한 잔? ^^;).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은 자코파네. 유럽에서 박물관, 미술관, 성당, 건축물로 이어지는 순례에 지치셨다면, 한 번쯤 들러 리프레쉬하고 가셔요. 혼탁했던 머릿속이 한 번에 확~ 시원해지실테니까요.

★ 관련 여행지

폴란드를 여행하시면서 자코파네와 마찬가지로 자연에 파묻히고 싶으시다면 더 늦기 전에 Białowieża National Park를 한 번 고려해 보세요. 제가 다음에 폴란드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꼭 가야할 곳으로 점찍어 둔 곳입니다.

http://www.bpn.com.pl/index_en.htm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선 이미 각종 개발에 의해 큰 숲들이 사라졌지만 이 곳만큼은 그 속도가 가장 느린 곳이라고 합니다(여러 단체들이 폴란드 정부를 상대로 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네요). 그만큼 저희에게 주는 것이 크겠죠.

물론 이외에도 지갑만 빵빵하다면 폴란드의 자코파네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감추어져있던 자연으로의 귀소 본능을 마구마구 이끌어 낼 산 아랫마을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많답니다.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폴란드 평평한 것 좀 보세요 ^^;) 역시 서유럽에선 알프스만한 곳이 있을까요? (참고로 구 소련 중에서 경치가 가장 좋아 푸쉬킨과 톨스토이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곳이 오른쪽 바닥의 코카서스 산맥이라네요, 알프스 오른쪽으로 둥글게 연이은 카르파티안 산맥도 좋고,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의 피레네도 그렇게 멋지다고들 하고요). 

 

 

알프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자그마치 5개의 국가에서 다이렉트 접근이 가능하군요(http://www.alpseurope.com/). 얼마 전 s0525님께서 지난 여름 유럽 여행 후기를 올리셨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아름다운 두 분의 모습 뒤로 멋지게 펼쳐지던 배경, 그 곳도 바로 알프스 자락이었지요. 이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세우실 때 산 아랫마을들도 살짝 고려해 주세요~

 

★ 자코파네 근교의 추천 여행지

 

예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크라코프(Kraków)만큼 적당한 곳도 없겠네요. 폴란드에서는 바르샤바보다도 더 알려진 곳이죠. 자코파네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어 오가는 길에 충분히 연계하여 여행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라코프보다 오시비엥침(Oswiecim)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우리에게는 폴란드 이름인 오시비엥침보다 독일어 명칭인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수용소 출입구의 기만적 문구>



<천명에 달하는 수감자들의 총살이 집행된 죽음의 벽’>

 

<정지!>


 

지금껏 폴란드, 하면 생각나는 것들에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 부인, 바르샤바 조약, 레흐 바웬사, 대우 폴란드 공장,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있었다면 거기에 꼭 더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제 2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리고 그에 얽혀 사라져버린 수많은 목숨들까지요... 

오시비엥침은 크라코프에서 차로 불과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곳에 서면 영원에 가까운 깊은 슬픔을 느끼시게 될 거여요.

...

그간 우리는 유럽의 밝고 화려한 면만을 보고, 그리워하고, 꿈꾸고 있진 않았던가요.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학살장 중 하나였던 ‘Majdanek Death Camp’의 철책>

 


<이 곳에선 중국인을 포함, 26개국에서 끌려온 24만 명(유태인만 1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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