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왈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 될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고 하였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한 명쯤 제가 손을 잡아줄 그 누군가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안녕하세요? 이 말만 철썩 믿고 과감히 아쿠아 매거진에서 <지구 겉핥기>란 제목 하에 새로 인사를 드리게 된 아뽕입니다. 이 자리에선 제가 여행을 해 본 곳 중 기억에 남는 곳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고요, 이외 여행에 관련된 잡다구리들, 앞으로 여행해 보고 싶은 곳 등에 대해서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 정보는 변하기 마련이고 혹은 소개드리는 여행지를 벌써 다녀오신 분들도 있으실 테니 어떤 분께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분께는 아주 생소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언제든 가감첨삭은 대환영이랍니다.

 

아쿠안 여러분들께 어느 나라, 어떤 곳을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다가, 한동안 아쿠아에서 <크로아티아(Croatia)계 결성>이 회자되었음이 기억나 크로아티아로 쿵! 낙점하였습니다(그런데 계주는 어느 분이시죠?)

 

 

지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크로아티아는 지중해 중에서도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름을 지닌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 보고 있습니다(예, 근처에 이오니아해도 있지요). 이름이 덜 알려진 나라들이 흔히 그렇듯 크로아티아 역시 주변의 강대국들이 꽤나 이름 날릴 때마다 돌아가며 억지로 모실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를 지닌 국가입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야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으니 우리에겐 아직 낯선 나라임이 당연할는지도 모릅니다(굳이 여행지를 빨리 가봐야 하는 곳과 조금 여유를 두고 가도 괜찮을 곳으로 구분 짓는다면, 크로아티아는 ‘되도록 빨리 가보면 좋을 곳’으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탁월한 자연환경과 친절한 사람들, 저렴한 물가 등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갈수록 그 빛을 빠르게 잃어가기 마련이니까요).

 

흔히 처음 발을 디디게 되는 유럽 땅이 런던이나 파리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일 가능성이 높고 그 일정이 한 달 이상이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크로아티아는 그야말로 유럽을 찾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여행에서의 destination으로 고려대상이 되겠죠. 동떨어진 위치 탓에 힘들여 찾아가셔야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생애 첫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세요? 그래도 새끼줄에 끼워 넣을 만한 곳입니다.

 

크로아티아의 매력은 그 해안에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저는 2002년에 헝가리쪽에서 내륙을 가로질러 한 번, 슬로베니아쪽에서 해안선을 따라 다시 한 번 더 입국을 했는데, 내륙은 일견 평화로워 보였으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집들의 벽에 총질 자국이 생생히 보이는 둥 전쟁의 상흔에서 아직 채 치유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해안선을 아우르는 루트는, 음,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당시 저도 크로아티아를 마음에 두고 있진 않았습니다. 다만 그 즈음 헝가리에 잠시 눌러앉아 지내고 있었는데, 제가 활동 중이던 세계일주 동호회의 한 회원분이 헝가리에 있다면 크로아티아를 절대 빼놓지 말라고 온라인상으로 조언해 주셔서 빨빨거리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민박집 주인도 그런 제게 안 그래도 요즘 TV에서 크로아티아 관광청 발(發) 선전을 많이 보여준다며 내전이 일어나기 전엔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휴양지였다는 말씀도 살짝 날려 주시더라고요(늦었지만 이 두 분께 마일리지 1,000마일씩 쏩니다). 



 

크로아티아에는 달마시아라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나오는 그 점박이 개들과 당연 연관이 있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순 없지만 공교롭게도 달마시아 지역의 자연 경관이 이 곳이 원산지라는 달마시안 개와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한 편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지만 다른 한 편으론 하얀 바탕에 불규칙한 까만 점을 수없이 가진 달마시안 산들이 열을 지어 줄줄이 누워있는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차를 렌트하실 예정이라면 주의하세요.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좌우로 꼬불거리는 길도 길이지만, 경관에 취해 사고 나기 딱 좋은 곳이니까요(실제로 곳곳에서 큰 사고를 목격했답니다).

 

 

크로아티아,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브로브니크(Dubrovnik)를 위시하여 자다르(Zadar), 스플릿(Split)과 같은 빼어난 항구 도시들이 여럿 있지만,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좀 더 한적하게 크로아티아를 즐기시려면 섬으로 들어가시는 일정을 한 번 고려해보세요. 크로아티아에는 섬도 무지 많고, 이들 섬을 잇는 페리도 부지런히 항을 드나들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아우르는 크루즈도 물론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섬에서 숙박을 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네요.

 

저는 코르출라(Korcula)라는 제법 큰 섬에서 묵었습니다. 성벽에 둘러싸인 구시가지 좁다란 골목 안의 그만큼이나 작은 집이 바로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곳이라네요. 주변에선 손에 꼽는 큰 섬이라지만 중세 베네치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구시가지는 한 바퀴 돌아보기에 그다지 크지 않고, 동서로 길다란 섬을 차로 가로지르는 데에는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가 즐비한 섬 안에서도 밖에서처럼 이런저런 옵션이 쏠쏠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구성원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해변이요? 물 좋은 곳 많죠~(크로아티아에 누드 비치가 몇 있단 말씀 아직 안 드렸죠?)



 

섬 내 코딱지만한 렌터카 업체에서는 현대 아토스, 푸조, 씨트로엥 등의 차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나 스쿠터, 심지어 모터 보트나 요트도 빌려 준다네요. 



 

사실 저는 자동차 운전은커녕 자전거도 못 탑니다만(대신 김기사 운전시키는 사모님입니다. 어~서~), 뒤에 매달려는 잘 다닙니다. 섬 곳곳을 여행할 때 기꺼이 저희의 발이 되어준 스쿠터랍니다. 섬의 내부에는 교통량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언덕을 넘나들거나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에는 마찬가지로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둘러보는 섬 구석구석은 정말이지 평안해 보이더군요.



 

수면을 유유히 가로지르며 다니는 배들을 위한 코르출라 섬의 바다 위 주유소랍니다. 인상에 팍 남았죠. 이 동네를 꽉 잡은 페리 회사의 카페리 한 대가 잠시 들러 밥 먹고 가네요.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크로아티아에선 단 하루도 정식 업소(?)에서 숙박한 일이 없습니다. 일명 민박에서 매일매일을 해결했는데요, 성수기 끝물이라서였는지 터미널마다 민박집 주인이나 호객꾼이 나와 기다리고 서있다가 어리버리한 여행자들을 앞다투어 얼른얼른 채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결판 났습니다. 반 정도는 주인집의 방 일부를 사용하는 방식이었고, 나머지 반 정도는 아예 이들이 따로이 소유한 민박용 독채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지만 일단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가깝게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즐거웠답니다.

 

특히나 길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달리신다면 Zimmer / Camera / Chambre / Room 따위의 3~4개 국어가 나란히 쓰여진 민박집 팻말을 쉽게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의외로 영어가 아래쪽에 쓰여져 있습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이 나라의 메인 관광객인지 눈치채기 쉽게끔요). 식사요? 바로 맞은 편이 이탈리아라서인지 피자와 파스타, 리조또가 넘쳐나고(비록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창조되었다 하더라도) 갓 잡아낸 해산물들은 싱싱+탱탱합니다. 고등어(스러운 놈) 사다가 소금 뿌려 구워먹고 오징어(비슷한 놈)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맛나다 좋아했지요.



 

혹시 여기까지 와서 크로아티아만 여행하고 돌아오기 서운하시다면, 바로 윗 나라, 슬로베니아와 묶으세요.  



 

크로아티아를 먼저 방문하셨다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란(Piran)이 그 이상 매력적이라 느껴지지 않으실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난 여름에 돌비님께서 이미 추천하신바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산 Skocjan 석회 동굴(http://www.gov.si/parkskj/indexan.htm)은 그 규모나 광경, 프로그램 면에서 꼭 한 번 방문해 보실 만 합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안내를 받으며 동굴 투어를 하게 되는데 말이 투어지, 단순 투어가 아니고 마치 탐험을 하러 가는 분위기가 은근 조성됩니다(동굴 내부는 눈으로만 찍을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네요.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는 남쪽의 몬테네그로(Montenegro)로 향했지요. 분명 한 달 전쯤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이 막(!) 맺어졌음을 확인하고 갔는데 국경 초소에서 한국인은 비자가 필요하다며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우기는 겁니다. 실랑이질이 길어지면서 결국 연결편 버스는 우리를 두고 떠나버렸는데도 담당 직원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3일짜리 유고슬라비아 통과 비자를 받아 나가던지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거여요.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두브로브니크를 지나 다시 제 3국으로 출국하려니 되밟기가 끔찍해서 결국 히치해가며 열심히 유고슬라비아를 내달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한 번 더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두브로브니크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두브로브니크는 그 날도 눈부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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