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기억 속에 또렷해지는 영상이 있다면 자신있게 이 날 오후의 일정에서 꼽겠다. 행선지는 똔레삽 혹은 톤레삽(Tonle Sap)으로 불리우는 그 곳.

 

똔레삽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수상가옥촌이다. 내가 감히 그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똔레삽이 지니는 여러 의미를 떠나서 결국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 없었다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수식어를 가진 똔레삽에 구태여 가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가는 길은, 지금껏 누볐던 시엠립 시내의 포장도로와는 달라, 툭툭을 타고 가기에는 썩 쾌활하진 않았다. 그나마 쿠션이 훌륭한 나는 엉덩이의 의미없는 울림을 기꺼이 즐길 수 있었으나, 이상 체중에 못 미치는 오빠는 당연히 그 울림이 곤욕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게다가 오빠는 멀미를 하는 편이다). 둘 다 힘들어했던 부분은, 정신사나운 덜커덩거림보다, 그 비포장 도로에서 뿌옇게 뱉어내는 흙먼지였다. 우리 툭툭 옆으로 자가용을 빌려탄 일련의 무리들이 앞질러댈 때마다 우리는 콜록거리며 뽀얗게 변신해야만 했다. 마스크만 있었어도... 

 

똔레삽

 

우리가 빌린 배다. 10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저렇게 앞에서 삿대를 잡고, 15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뒤에서 모터를 잡았다. 승객은 오빠와 나, 단 둘 뿐에 저렇게 아이들 둘이 이 배에 올라탄 전부다. 

 

똔레삽 

 

똔레삽 수상가옥은 가까이에 있는 태국 방콕의 그것과 비교하여 볼 때, 혹은 필리핀 팍상한에서 본 그것과 비교하여 볼 때, 훨씬 그 life quality가 떨어진다. 아니, 지금껏 다른 나라의 여러 빈촌들을 들러봤지만 여기만한 곳이 없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빈곤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놀잇감을 찾아내는 아이들.

 

똔레삽 

 

하지만 오늘도 태양은 떠오르고 어김없이 삶은 지속된다. 아니,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는, 가슴 시리는 똔레삽의 한 풍경.

 

똔레삽

 

이들에게 배는 운송수단이자, 거주수단이자,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윗 사진은 움직이는 작은 점방.

 

똔레삽 호수 위에는 이처럼 점방도 떠다니고, 집도 떠있고, 교회도 떠있고, 학교도 떠있고, 식당도 떠있고...

 

똔레삽

 

원인 모를 적개심이 묻어나는 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한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그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왔고, 이들의 고단한 삶에 허락도 없이 침범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니...

 

우리 배의 삿대를 잡았던 아이는 저들이 베트남에서 피난온 난민이라고 했다. 어린아이 어머니의 모자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똔레삽

 

우리 모두는 먹고 살아야 한다. 그게 어디에서든지. 어떤 조건에 처해있든지간에.

 

똔레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by 푸쉬킨

 

똔레삽

 

물은 보는 것처럼 초콜렛색을 띄고 있다. 부유물도 많고 하수도 처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 곳의 위생 상태는 나의 관념으로 비추어보면 형편없이 끔찍하지만, 이 곳은 나의 관념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혹은 통하더라도 이들의 능력이 미칠 수 없거나).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 역시 그들의 관념으로는 성스럽기 그지없는 어머니강이 아니던가.

 

똔레삽 

 

톤레삽을 한바퀴 돌고 나오면서 우리의 뱃사공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이미>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미> 배 한 대 임대 비용을 포함, 그들의 모든 품삯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USD $12), 그들은 <이미> 수없이 말해 익숙해진 억양으로 "이 배에 너희 둘만 태우고 배를 운행했으니 우리에게 팁을 줘라" 이야기했고, 나 역시 <이미> 마련해 둔 1달러 짜리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역시나 <이미>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자, 여기. 대신 너희 둘이 나누어 가져야 해" 그러면 <이제서야> 만사 OK. 배 안에는 서로의 만족을 담은 미소만이 감돌 뿐.

 

학교

 

다시 시엠립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던 한 작은 마을에 툭툭 운전사분께 잠시 차를 세워달라 부탁드렸다. 운전사분은 그 마을의 전망대에 올라갔다오라 권했지만, 우리는 사양하고 대신 시장이 선 광장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관광객은 도통 오지 않는 곳인지, 지나가는 우리를 하던 일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는 어른들과 우리를 따라오며 "헬로, 헬로"하는 아이들이 새삼 반갑다. 아이들이 헬로, 할 때마다 더불어 우리도 헬로, 하고 대답해주니, 그 반복적 행위가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 듯 꺅꺅 소리지르며 지치지도 않고 끊임 없이 인사를 해대고 우리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수줍게 웃어넘기는 그들이 너무 이쁘다. 윗 사진은 그 골목 안에 있던 한 학교로, 막 하교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김촌

 

나와 서른 두살 동갑내기인 툭툭 운전기사 Mr. Kim Chhon. 

 

7살, 4살, 3살배기 2남 1녀의 아버지로 마지막 헤어짐을 앞두고 그간 3일치의 약정료에 얼마간의 감사의 뜻을 더하여 돈을 건네니 세어보지도 않고 집어 넣으며 고맙다고 하더라.

 

그의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순박한 웃음과 성실함이 문득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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