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에서 장가계에 올 때 이미 9시간을 무좌로 타고 온지라 어느 정도 내공이 생긴 우리는 곤명행 열차표 예매를 위해 장가계에 머물면서 두 번이나 장가계역을 찾았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 장가계역에서는 곤명행 표를 살 수 없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지난 번처럼 다 매진이라는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알아낸 것이라고는 다만 장가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배화라는 곳에 가서 곤명행 표를 사라는 것. 으흠, 4시간이라, 9시간도 탔는데 가뿐하지, 뭐. 다행히 배화역까지는 경좌표가 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장가계발 배화행 기차에 올라탄다. 와, 우리 좌석이 있다!

 

기차기차 안은 여전하다. 옆 자리에 앉은 예쁘장한 아가씨는 피스타치오로 보이는 견과류를 끊임 없이 쪼개 먹으며 우수수 바닥에 껍데기를 버린다. 그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아저씨 둘도 쉴 새 없이 해바라기씨를 까먹는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우수수… 기차는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근처 바닥은 걸을 때마다 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우리 앞에 앉은 아저씨, 우리 뒤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번갈아 혹은 같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눈이며 목이 다 아프다. 중간에 아기 하나를 안고 한 부부가 올라탔는데 아기 앞에서 아빠가 연신 담배를 피워댄다. 아니, 아예 걷지도 못 하는 아기 입에 담배를 물려 보기까지 한다. 오빠는 중국인들 태반이 폐암에 걸릴 것을 우려하면서 콜록거린다.

 

그래도 4시간은 어영부영 지나갔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니까 4시간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 돌아가면 오늘 꿀꿀한데 요 앞 부산 해운대나 갔다 올까~ 하겠다” 낄낄거리며 내렸다. 이 때까지는 정말 가뿐했다. 기차들의 교차 지점이니까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그런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장장 20시간이 걸리는 곤명행 경와 차표를 요구하는 쪽지 한 장씩을 오빠와 내가 각자 나눠 들고 매표 창구마다 머리를 들이밀 때마다 대답은 한결같이 없다는 거였다. 아, 이를 어쩌나. 그럼 여기에서 자고 내일 표를 살까?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내일 표도, 제일 고가라는 연와 표마저 없었다. 그러던 중 나와는 다른 창구에서 나와 똑 같은 행위를 벌이던 오빠의 낭패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떡하냐. 표를 사긴 했는데 또 무좌다”
오빠가 선 창구에서 뭐라 뭐라 하길래 멍~하니 있었더니 끊어준 거란다. 어쩌긴, 반환해야지. 20시간을 어떻게 서서 가냐…

기차역에 외국인 전용 창구가 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란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는 역마다 너무 작아서인가… 반환 창구로 보이는 곳에 가서 표를 내밀며 바꿔달라 써 보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이제는 아예 우리 표를 갖고 사라져 버린다.
“오빠, 어떡하냐. 역무원이 표 가지고 가 버렸어”

난감해 하는 나를 누가 탁, 친다. 뒤돌아보니 내 표를 가지고 간 그 역무원 아줌마다. 나와 말이 안 통하니까 아예 가지고 나온 모양. 또 뭐라 막 설명을 하는데 우리의 survival 중국어 수준으로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다. 어느새 우리 셋을 둘러싸고 근처에 있던 공안(경찰)을 비롯,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둥그렇게 모여 선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영어나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그들이 하는 말 중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한궈렌(한국인)’ 뿐이다.
“오빠야, 이거 나라 망신이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일본인 흉내 내면 안 되겠지? ^^; ”
전자수첩으로 ‘이 표가 반환이 됩니까?’를 겨우 찾아 보여주니 끄덕끄덕. 그러나 또 뭐라 하더니 결국 답답한 듯, 가슴 한 번 치고 우리를 대합실로 데려간다. 그 곳에서 검표를 하는 다른 역무원에게 한참 설명을 하더니 우리를 제 1 순위, 군인용 대기석 맨 앞에 나란히 앉힌다. 아줌마 하는 양을 가만히 보니 여기 앉아 있으면 다른 역무원이 그 기차로 안내를 할 것이고 우리는 그 열차의 장에게 가서 표를 바꾸라는 것 같다(아줌마가 한 바닥 가득 써 준 한문 중 ‘열차장’을 겨우 읽어냈다). 창구 안에 앉아있을 때에는 심통이 가득한 얼굴의 아줌마였는데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주시다니… 순간 너무 아줌마가 고마워져서 전자수첩으로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지만 아줌마는 손을 휘휘 저으며 아니라 하시고 미소와 함께 다시 매표소로 사라졌다. 긴장이 풀리니 이제 배가 고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앞 자리에 앉혀 준 아줌마가 고마워 섣불리 자리를 뜰 수가 없다(기차 시간이 3시간 이상 남았는데도). 우리는 참을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가 결국 食後回來라고 써 본다. 이렇게 써도 과연 알아 들을까?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역사 밖에서 만만한 마파 두부와 계란 볶음밥으로 무사히 민생고를 해결했다.

 

배가 든든해지니 다시 걱정이 앞선다. 무좌로 20시간이라니 장난이 아니다. 과연 자리가 있을까, 또 식당칸에서 뭉개져야 하나. 그 수 밖에 더 있나, 뭐. 북경에서 출발해 온 열차가 오후 7시 36분, 역에 도착하자 아줌마 부탁대로 우리는 처음으로 안내를 받아 플랫홈으로 나간다. 하지만 여지없이 뒤이어 뛰어오는 중국인들에게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열차도 에고 에고 겨우 탄다. 가자, 어여 가자, 식당칸으로… 오빠 말로는 중국에서 가장 좋은 열차편이라는데도 입석이 가능해서인지 서 있거나 경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양새는 조금 나아졌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밥을 잔뜩 먹고 올라탔는데 배가 고플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가장 싼 채소 볶음(새콤한 양배추?)을 시키고 먹는 둥 마는 둥, 열차장을 찾는다. 결국 찾아낸 열차장은 생각보다 한참 젊다(게다가 잘 생겨서 얼른 내가 나선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의사 전달에 성공, 침대 자리가 비는지의 여부를 check 해 볼 테니 여기 식당칸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 조금은 당당해져서 식당칸에 계속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려니 열차장이 돌아오는데 경와는 곤명까지 한 자리도 없고 연와가 지금 한 자리, 새벽 3시 25분에 도착하는 귀양에서 한 자리가 더 난다고 설명해 준다. 오빠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니까 그럼 귀양까지는 식당칸에 있다가 귀양 지나서 둘이 한꺼번에 말랑말랑한 침대칸으로 가라고까지 조언해 준다. 그래, 그러자. 그 때 들어가도 어차피 12시간은 더 가야 하니까… 시계를 보니 앞으로 8시간은 식당칸에 앉아 있어야 할 형편이지만 이전에 탔던 열차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은지라 기꺼이 참기로 한다. 아, 그런데 귀양까지는 왜 그리 먼지… 꾸벅꾸벅 마누라를 남겨 놓고 졸던 오빠가 아예 엎드려 잔다.

 

오빠추가 요금을 더 내긴 했지만 연와는 정말 좋다. 물론 우리가 가장 안 좋은 입석표로 탔다가 가장 좋은 연와로 옮겨와서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완전 compartment style로 작은 방마다 양쪽으로 상, 하층의 침대가 있다. 오빠하고 나하고는 다른 방으로 내 방에는 나 이외 모두 남자들이 자고 있다. 오빠 방 사정은 어떤가 물었더니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그냥 내 방에서 자기로 한다(나중에 알고 보니 오빠 방에는 한 사람이 여자였다). 처음에는 잠이 안 올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기우, 아침에 오빠가 흔들어 일어났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린다. 고도계를 켜 보니 어느새 1500m를 훌쩍 넘어있다. 곤명이 해발 1895m에 위치해 있다더니 고도계가 1900m을 오간다. 기차는 예정보다 1시간을 연착하여 오후 4시 30분에야 곤명에 도착한다. 막판에 쾌적한 연와를 타서 호강을 하기도 했지만 장가계를 떠난지 근 30시간만의 일이다. 당분간 정말이지 기차는 타고 싶지 않다.

 

Tip

교통 : 장가계역  - 배화역 / 보객 1인당 19원 / 4시간 소요
          배화역  - 곤명역 / 신공조특쾌 무좌 1인당 140원, 이후 귀양역  - 곤명역 구간을 식당칸 앞 자리에서 다시 연와로 변경하였는데 추가로 1인당 163원씩을 더 지불했다

숙박 : 곤호반점 / 곤명역 앞 대로로 15분 가량 걷다 보면 왼쪽에 위치 / 2인 1실 1박 60원, 온수 사용 가능한 샤워실과 뻥 뚫린 중국식 화장실은 공동 사용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