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제 자리로 왔다. 다시 처음 상황 그대로에 직면한 것이다. 고 몇 십일 사이에 우리나라하고 4시간 남짓 거리에 새로운 나라가 짠~ 하고 생겨날리도 만무하다. 처음부터 되짚어 가만히 생각해 본다. 어차피 보홀은 경비행기를 잠깐만 타도 된다는 것에 점수를 후하게 주었던 터였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갈 거라면 뭣하러 보홀로 가겠는가!(오빠는 멀미 대왕이다) 나는 다시 필리핀 최고의 청정지역이라는 팔라완으로 마음을 돌린다.

실제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팔라완 엘니도를 다녀왔었다. 이사벨은 엘니도와 비슷해서 싫고 아만풀로는 너무 너무 비싸고 클럽 파라다이스는 가는 길이 게 중 멀고... 하여 결국 4년 여 전 엘니도와 저울에 올려 놓고 심히 고민을 했었던 도스팔마스로 다시 맘이 기울어졌음은 인지상정이라고 해야 하나.

 

도스팔마스를 가장 저렴하게 가기 위해 다시 사냥에 나섰다. 인터넷 상에서 가장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사이트를 스-윽 찾아 들어가니 역시 다른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같은 허니문 상품보다 1인당 무려 30만원 가량 저렴하다. 그럼 내가 여기에서 만족하느냐, 물론 그럴리 없다. 이번에는 배낭 버전으로 계산기를 옆에 놓고 두드려 본다. 국제 항공권 가격, 필리핀 국내 항공권 가격, 마닐라 호텔 가격, 도스팔마스 리조트 가격... 하나하나 나오는 달러나 페소의 숫자를 원화화 하여 열심히 더해가며 새삼 인터넷의 위력에 다시금 놀래 준다. 비록 대략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허니문 상품과 비슷하게 사양을 맞춰보니 잘하면 1인당 20만원 정도를 더 줄일 수 있을 것도 같다(궁금하신 분들은 따로 알려 주시라. 무서워서 공개는 못 하겠다). 벌써 한 발은 도스팔마스에 가있는 것 마냥 기분이 업 된다.      

 

그러던 중 내가 거의 매일 출근하는 세계일주카페에서 우연히 '캄차카' 이야기를 듣는다. 언젠가 가 보고야 말겠지만(사람은 긍정적/희망적으로 살아야 소망이 이루어지는 법이란다^^;), 귀가 얇은 나는 어느새 도스팔마스인지 도스칠마스인지를 까마득하게 잊어 버린다. 내가 언제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겠다고 했냐, 우리나라가 더울 때는 좀 더 시원한 곳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냐 자위하며 내친 김에 캄차카 뿐만 아니라 접어 두었던 몽고까지 바이칼과 묶어 펼쳐 낸다. 역시 태초의 땅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곳들이다. 이 곳 저 곳 일정표도 받아본다. 비교해 보면서 흐뭇한 웃음도 지어본다. 그러나... 비용은 둘째치고 일정이 안 나온다. 최단으로 잡아도 6일 이상은 나올 것 같다. 나는 다시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괜히 잠꼬대를 해 본다.

 

"오빠야, 우리 은퇴까지 4년 남았잖아"

"(시큰둥하게) 응. 근데?"

"작년에 우리 휴가 안 갔잖아."

"(슬슬 눈치를 채고) 응. 근데?"

"그래서 말인데..."

"(이제 무슨 말을 할 지 훤히 안다는 투로) 하고 싶은 말부터 해 봐"

"그러니까 올해는 1주일 가고, 내년에는 2주일 가고, 3년 후에는 3주일 가고, 4년째는 4주일, 즉 한 달 가고, 그리고는 은퇴해 버리는 거야. 은퇴가 조금 늦어지면 또 어때? 과정도 좀 즐기자구"

 

예상 외로 오빠는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는 눈치다.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럼 그럴까? 1주일로 한 번 다시 짜 봐"

 

와~ 1주일이라니! 맘이 마구 들뜬다. 여기 저기 여러 곳이 머릿속에서 마구 엉킨다. 1주일, 7일이란 말이지. 토요일 밤에 출발해서 월요일 새벽에 오면, 으흐, 자그마치 그게 며칠이냐... 나는 다시 항공 스케쥴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그런데 거기에 이렇코롬 비슷하게 써 있다.

 

* 파격! 푸켓 직항! 패키지는 물론 에어텔로 내 맘대로 즐길 수도 있다 *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나는 지치지도 않고 다시 직항으로 새단장한 푸켓

에어텔 상품을 파헤친다. 그러나 태생적 단점인 일정, 다시 말해 3박 4일 아니면 4박 5일로만 가능한 고 놈의 일정이 심히 걸리적거린다. 게다가 엄밀히 비교해보니 4박 5일 일정은 3박 4일 일정과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만 아니면 진짜 딱인데...

 

"오빠야, 우리 올해가기로 한 1주일, 둘로 쪼개서 3박 4일씩 두 번 가면 안 되냐?"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 흑.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7일을 포기하는 수 밖에...

 

푸켓에 산재해 있는 엄청난 수의 리조트를 뒤져서 원하는 지역에 위치한 리조트로 1차 걸러내고, 다시 수준별로 2차 거르고, 물망에 오른 손가락 갯수 안에 들어온 리조트를 각개격파한 다음, 90% 가량 맘이 바라는 바에 근접하는 리조트를 선정한다. 그 이름은 바로 반인디. http://www.baanyindee.com/

 

반인디에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빠똥 비치까지의 무료 교통편에 대해서까지 묻고 그들의 신속하고 친절한 답을 받아내고서야 맘을 확실히 잡은 우리는 드디어 돌아오는 7월 14일부터 17일까지의 1차 휴가를 예약한다. 남은 일은 3박 4일간의 일정을 짜는 것. 좀 이르지 않냐고? 흑흑. 사실 그랬다.

 

첫날 도착해서 빠똥 비치 누비면서 게이 바 가고, 둘째날 팡아만 씨카누 타고 프롬텝에서 일몰 본 뒤 푸켓 타운에서 마사지 받고, 세째날 롱테일 보트타고 스노클링하고, 마지막날 타이난 부페까지 먹으면 되겠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완벽하다싶게 짜 두었는데, 아뿔싸, 이제 오빠 주변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난다. 모두 다 오빠를 심란하게 만드는 일들이다.

 

"야, 우리 그냥 2주 팍 쉬어 버릴까? 너무 지친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싫다고 해야 하나. 조금 지겹고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분명 이건 좋은 거다. 얼른 에어텔 취소부터 한다. 그리고 2주일간 오빠 대신 일을 봐 줄 분을 물색한다. 다행히 의대를 졸업하고 한의대로 편입한 내 동기 중 하나가 자기 방학때 가능할 것도 같단다. 조만간 그의 방학 일정을 받기로 했다. 그럼 고 날짜에 맞추어 타이 방콕행 왕복 비행기편만 예약하면 끝이다.

 

지금 나는 방콕을 중심점으로 1주일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1주일은 타이 남부 해안을 집적거리는 새로운 루트 정리를 마악 마쳤다. 부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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