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서부 티벳의 카일라스가 힌두교도들에게 역시 성지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는 힌두교도이자 우리와는 생김새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네팔인이나 인도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직 두 나라 다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말을 건네보기 전까지는 이 사람이 네팔인인지, 인도인인지를 구별해낼 수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이 두 나라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눈치가 생겼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그들의 행색이었는데 눈만 빼꼼 내어놓고 완전 중무장을 한 채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으면 십중팔구 그들은 인도인이었다. 산악 지대인 네팔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추위나 고도에 그만큼 적응이 되어있었기 때문인데,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서부 티벳에 머무는 그 기간 동안에만도 순례 길에 오른 인도인 3명이 고산병으로 죽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달릴 길이 바로 네팔인이나 인도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그들의 나라에서 카일라스로 오는 지름길인데, 출발지인 ‘사가’는 해발 4,600m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고 마지막 목적지가 되는 장무는 2,300m에 위치해 있는, 무척 험하고도 고도차가 많이 나는 길이다(반대로 이곳으로 오는 네팔인이나 인도인들에게는 갑자기 고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위험한 여정이 된다). 지금까지 달렸던 그 어떤 길보다도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아 차는 심하게 덜컹거려대는데 그래도 오늘이면 내려간다는 기쁨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빠도 나도 이제는 티벳을 떠날 때가 온 것이 틀림 없다.시샤팡마

 

이제나저제나 언제서야 차가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일까 싶지만 차는 몇 개의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고, 8,00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봉우리, 시샤팡마 앞을 지나도록 작은 오르락내리락 만을 반복할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내 엉덩이가 과연 내 엉덩이가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쯤 정면을 가로막는 커다란 고개를 가리키며 츠링이 한 마디 한다. “저 고갯길이 해발 5,2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라룽라(Lalung-la)여요.” 우리는 라룽라를 살짝 오른쪽으로 빗겨, 다음 고개인 통라(5,120m)로 힘겹게 오른다. 드디어 정상, 그리고 순간 말을 잊게 만드는 저 히말라야…

 

오빠통라에 잠시 멈추어 선 차에서 내려 내 앞에 몇 겹의 횡렬로 늘어선 히말라야를 감상한다. 날이 그다지 맑은 편이 아니라 시야가 좁긴 하지만 그래도 그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전후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산 천지, 엄청난 고봉들만의 잔치다. 내가 지나온 저 산들 뒤로는 라싸가 있고, 앞으로 펼쳐진 저 산들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드디어 세 번째 나라 네팔이겠지~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츠링이 던지는 기쁜 소식, “자,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지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차는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천천히 바뀌는 풍경에 이토록 가슴이 설레일 줄이야… 초록색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색이었는지, 잿빛 어린 황토의 나라에서는 몰랐었다. 한 술 더 떠서 오빠는 “야, 저거 봐. 나무야!” 소리까지 지르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나무다운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오빠에게서 그 동안의 여정 중 이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왔던 지라(티벳과 네팔을 잇는 이 길의 아름다움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하여 세계적으로도 이미 이름 나있다) 은근히 기대는 했었지만, 멋진 자연 경관이 나를 감동시키기에 앞서 한 그루 푸른 나무가 내게 더 감격적으로 다가선다. 나무들이 자라는 곳, 사람들이 사는 곳, 논이 있고 밭이 있는 곳… 우리 차는 계곡 옆에 세워진 도시 니얄람을 지나 티벳의 마지막 도시인 장무를 향해 계속 달려 내려간다. 여기에서부터 펼쳐지는 광경이 정말 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높낮이가 다르게 겹겹이 둘러싸인 산 사이로 아슬아슬 깎아낸 등성이를 가로 질러 자꾸자꾸 내려가고만 있으려니 꼭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하다. 이미 이 길이 두 번째인 오빠는 안개로 뒤덮여 시야가 넓지 않은 오늘, 내가 이 곳을 지나가게 된 것이 사뭇 안타까운 모양인데 설악산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한적한 겨울 바다 역시 그만의 운치가 있는 만큼 안개 자욱한 이 길 또한 특유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깥 풍경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Tip


강교통 : 사가 - 얄룽 창포 / 배(?) / 기다리는 시간은 1시간도 더 걸렸는데 막상 타는 시간은 5분도 안 걸림 / 1인당 1.5원 / 배를 모는 사람이 굼떠서 그렇지, 차가 있는 낮 시간에는 언제든 운행한다고 한다
         얄룽 창포 - 니얄람(입구에 checkpoint) / 7시간 / 중간에 히말라야의 시샤팡마(8,012m)가 보이는 허허벌판 한 가운데 난데없이 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초모랑마(초모랑마라면 ‘에베레스트’의 티벳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자연 보호비 명목으로 1인당 25원을 요구한다. 돈을 지불하고 지나가보면 알겠지만 대체 뭘 보호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니얄람 - 장무(입구에 checkpoint) / 1시간

관광 : 니얄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밀라레빠 동굴 / ‘밀라레빠’는 티벳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인 중 한 명이다 / 입장료 15원

숙박 : 이해가 안 가지만 가이드 말로는 장무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무조건 두 호텔 중 하나에 묵어야 한단다. 국경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장무 호텔과 GangGyen 호텔이 그것 / 좀 더 저렴하다는 GangGyen 호텔의 도미토리는 5인실로 침대당 50원(깎아서 30원 + 대신 샤워 시 추가 8원을 더 내기로 하고) / 화장실과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샤워실은 공동 사용

* 처음 계약에 따라 원래 계획했던 15일 여정에서 하루씩 줄어들 때마다 전체 비용에서 가이드 비용 조로 200원씩 깎기로 했었다. 가이드는 하루라도 더 벌기 위하여 오늘 우리를 니얄람까지만 안내하고 싶어했는데 우리로서는 국경까지 불과 1시간의 거리를 남겨 둔 채 하루를 더 머무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장무까지 강행했다. 결국 총 11일만에 전체 일정을 끝낸 셈이 되어 우리 5인에 대하여 모두 800원, 1인당 160원씩 깎은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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