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을 넘는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나라가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반도라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육로로 그 어떤 다른 나라에도 갈 수 없으니 자연히 “나, 비행기 타 봤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해외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다시 말해 다닥다닥 붙어있는 유럽에서처럼 기차 안에서 하룻밤 잠을 자면서 한 두 나라의 국경을 넘는다는 건 정말 먼 나라 이야기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비행기를 타거나 혹은 배를 타야만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어쨌든 오늘, 2002년 6월 9일, 여행을 떠난 지 세 달 만에 세 번째 나라에 걸.어.서. 도착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바닥에 노란 줄이 그어져 있는 다리를 하나 건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사람들의 얼굴도, 사용하는 언어도, 들려오는 음악도, 통용되는 화폐도, 믿고 있는 종교도, 지나다니는 차의 모양도, 길거리에 파는 음식도, 주변 풍경도… 이 모든 것이 갑자기 확연히 달라져 버렸다. 마치 내가 몇 시간 비행기라도 탄 것처럼. 단지 몇 발짝 걸었을 뿐인데…

 

티벳 역시 인상 깊은 나라임에는 틀림 없지만, 네팔에 들어서는 나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단순히 또 하나의 새로운 나라에 들어선다는 막연한 설레임도 한 몫 했겠지만, 이제는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물이 턱없이 부족한 서부 티벳에서 며칠씩 세수는커녕 이도 제대로 못 닦는 생활을 하여야 했고, 시가체 이후로 장무에 도착할 때까지 샤워는 꿈도 못 꾸고 머리에 물 한 방울 묻힐 기회가 없었다(당연히 머리만큼은 현지인화(?) 되어 매일 아침 떡 지고 엉킨 머리를 빗어 내리던, 중국의 곤명의 한 숙소 이름이 새겨져 있는 플라스틱 빗의 빗살은 이미 여러 개 날아가 듬성듬성 이 빠진 꼴이 되어 버렸다). 날은 또 어찌나 추웠는지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질 않나, 눈이 펑펑 쏟아지지를 않나, 제대로 된 잠바 하나 없는 우리로서는 보온을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대신 차곡차곡 겹쳐 입는 방법을 택했는데 불행히도 여행하는 내내 한 번도 벗어본 적이 없다. 그냥 그대로 침낭 속에 들어가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 생활하고, 다시 쓰러져 자고, 또 일어나 생활하고… 제대로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는 나에게서 냄새가 날 것이라는 환각 혹은 실제 상황에 시달리면서, 마냥 커다란 세탁기에 나까지 구겨 넣고 한꺼번에 돌려버리고 싶었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 우리를 괴롭힌 것은 도무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그들의 식단이었는데, 부득이하게도 다양한 조미료의 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들의 담백하기가 그지없는 빵에서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티벳식 빵을 구할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고(우리에겐 다행히 과일쨈이 있었다 ^^), 보통은 짬파 아니면 툭파, 혹은 툭파 아니면 짬파 만이 그들 입에서 나오는 메뉴의 전부일 때가 많았다. 손톱에는 때가 까맣게 껴 있고, 손등엔 이게 다 때겠지 싶은 내 손을 보면서 짬파를 만들기 위해 도무지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할 염두가 생길 리 만무했으니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티벳식 국수 툭파 뿐이었다. 그리고 툭파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Grace의 말로 그 설명을 대신하고 싶다. “Oh, my god… Please, please, please, NO MORE NOODLE…”
  
아침엔 항상 한 잔의 따뜻한 ‘morning coffee’로 시작한다던 Grace와 Marc는 눈에 뜨이게 수척해져 갔다. 우리 역시 여정이 뒤로 갈수록 이렇게 폐인이 되어가는구나, 이렇게 망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짙어졌다. 티벳도 분명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우리’가 살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번은 오빠가 요즘 들어 눈을 제대로 뜨지 못 한다는 두세 살 난 티벳의 아기를 진찰한 적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원인이 ‘불결함’이었다. 위 아래 눈썹 가득 눈곱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 뜰래야 뜰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먼지 나는 흙 마당에서 놀아대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동물의 똥이 묻은 손 그대로 쓰다듬는 엄마. 워낙 환경이 척박하니 그들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티벳인들은 그런 곳에서 살면서도 우리에게 놀랄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끊임없이 보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살기에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에게 티벳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일 게다.

 

장무장무에서 애벌 샤워를 끝내고 네팔로 넘어오기 전, 하나 하나 옷을 벗는다. 에라, 기분인데 침낭도 돌돌 말아 가방 밑바닥에 미리 박아둔다. 장무는 아직 쌀쌀한 편이지만 반 바지, 반 팔로 갈아입으니 날아갈 것 같다. 커다란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를 하나 건너는 것으로 드디어 네팔에 섰다. 네팔식 발음에 귀가 설긴 하지만 그들의 영어가 반갑고, 쿵짝쿵짝 버스를 울려대는 그들의 음악이 하나도 안 시끄럽게 느껴진다. 아직도 1,000m는 더 내려가야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 도착한다. 어제처럼 차는 꼬불꼬불 아슬아슬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데 어제와 달리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네팔인이고, 차 역시 원색의 꽃들로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한 인도제 TATA 버스다. 길가에 다닥다닥 나무로 만들어진 가게들에서는 코카 콜라 간판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데, 그 너머 계곡으로는 래프팅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바야흐로 확연히 다른 땅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든다.

갈레 슈우 티벳, 나마스테 네팔!

 

* 갈레 슈우 : ‘안녕히 계셔요’의 티벳어 / 나마스테 : ‘안녕하셔요’의 네팔어. ‘안녕히 계셔요’로도 쓰인다.

 

Tip

환전 : 장무에는 “change money”를 외치며 돈 다발과 계산기 하나를 달랑 들고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현재 중국 돈 1원당 네팔 돈 9.6~9.9루피(Rupee, Rs) 정도를 부르는데 9.6루피를 부른 아줌마에게 9.8루피로 하자고 하여 국경을 넘기 직전 남은 돈 모두를 환전했다(현재 카트만두의 사설 환전소에서는 US$ 1 = Rs 77에 거래되며,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중국 화폐에 대한 환율이 국경보다 좋지 않다고 한다)

교통 : 티벳 장무 - 네팔 코다리(Kodari) / 네팔 택시 / 꼬불꼬불한 산길 8Km를 20여분에 걸쳐 달림 / 1인당 100루피 / Friendship Bridge 앞에 세워줌. 마지막으로 여권 검사 한 번 더 받고 터벅터벅 걸어서 다리를 건너가면 바로 네팔! (티벳 국경은 오전 9시 30분 이후에 열렸다. 네팔이 티벳보다 2시간 15분이 느리지만 우리가 네팔 국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오전 8시면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코다리 - 바라비세(Barabise) / 버스(카트만두까지 직행 버스가 없단다. 비자를 받고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버스들이 많은 곳에서 ‘바라비세’를 외치며 호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음) / 약 20Km를 2시간에 주파 / 1인당 40루피
          바라비세 - 카트만두(Kathmandu) / 버스(버스에서 내려 보이는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가면 마을 안쪽으로 왼편에 창구 같은 매표소가 있음) / 약 100Km를 쉬며 가며 4시간에 주파 / 1인당 65루피

    
* 현재 네팔은 Maoist들의 일으킨 내란으로 검문 검색이 잦아 평소보다 시간이 더욱 소요된다

비자 : 국경 마을인 코다리에서 사진 한 장과 US$ 30으로 60일짜리 단수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다(복수 비자일 경우에는 US$ 50인데 꼭 US$로만 받는다)
숙박 : 그 유명한 ‘카트만두 게스트하우스’ / 카트만두의 인사동격인 타멜(Thamel) 한복판에 위치한 이 곳은 이 근처 약도를 그릴 때 항상 그 중심이 된다 / 바르비세에서 출발한 버스가 우리를 내려놓은 카트만두의 한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한 대 150루피 부르는 것을 70루피로 깎아서) / Ultra Basic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부터 에어컨이 달린 Deluxe방까지 종류에 따라 US$ 2~ US$ 60 사이로 다양하다(일주일 단위로 묵거나, 월 단위로 묵으면 가격이 좀 더 저렴해진다) / 우리는 방 안에 세면대와 선풍기까지 있는 하루 $ 8의 더블룸 선택 / 향기 나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 사용 / 숙소 내 세탁소에서부터 미용실, PC방, 상점, 여행사, 레스토랑, 환전소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숙소 입구 ATM에서는 Citibank 현금 카드로 현지 화폐 인출이 가능) / Tel : 977-1-413632, 422800 / www.ktmgh.com / E-mail : kghouse@wlink.com.np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