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아침에 눈을 뜨자 어제 고성 내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맛난 빵집에서 사 온 카스텔라가 보인다. 냠냠… 어쩐지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숙소 사장님이 주선해 준 말을 타고 눈 앞에 바라보이는 창산에 오르는 날이다. 비록 말을 타고 오르는 여정이긴 하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오르자 하여 ‘조선족랭면집’을 찾아간다. 일요일이라 한 자리에 모두 모였다는 대리의 조선족 분들은 모두 8분. 분명 한 가족은 아니나 한 가족처럼 정겨워 보인다. 우리가 시킨 것은 간판에 내 건 ‘랭면’과 된장찌개, 담백하고 맑은 국물의 평양냉면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국물이 얼큰한 물냉면을 시원하게 내어 주신다. 된장찌개는 거의 농활 때 먹던 맛으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누런 빛이라기 보다는 붉은 빛이 돌며 맛이 아주 진국이다. 주인 아저씨가 방금 개를 한 마리 잡고 들어오시던 중이라서인지 배 두들기며 나가는 우리 뒤로 “다음엔 개장국 한 번 더 먹으러 와요” 하신다. 자, 그럼 이제 산에 올라가 먹을 것 좀 챙겨 볼까? 장 구경은 언제해도 즐거운데 게다가 한국에 비하면 물가가 많이 싸서 무엇을 사기에도 부담이 적다. 우리는 중국에 와서 거의 매일 한 통씩 먹는 파인애플을 하나씩 들고 먹으며 사과니, 배니 과일들을 주섬주섬 사고, 어제 먹었던 카스텔라가 예술이라 줄 서서 그 빵을 또 산다. 여기에 물 한 통 가득 채우고 이제 그럼 말 타러 가자!

 

창산마부 아저씨가 우리에게 내어 준 말 중에 한 놈은 털이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튼튼한 것 같은데 다른 한 놈은 비실비실 비루먹어 보인다. 그래도 연장자인 오빠에게 좋은 말을 내주어야겠다는 착한 마음에 큰 말을 내어 주는데 마부 아저씨가 아니란다. 아가씨가 이 말을 타란다(참고로 아저씨는 ‘아가씨’, ‘아저씨’, ‘가자’ 정도의 한국말을 구사하실 수 있다). 그래? 아가씨가 좋은 말을 타라는데 그렇담 얼른 타야지. 말 두 마리는 오빠와 나를 태우고 산 길을 터벅터벅 오르기 시작한다. 내 말이 앞 서고 오빠 말이 내 말 꽁지를 뒤따라오는 형국인데 마부 아저씨는 계속 내 말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며 길을 바로 잡아 가시고, 오빠가 탄 말은 그저 졸졸이다. 어째 내가 저 말을 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을 타고 한 시간 가량 산 길을 오르는데 경사가 꽤나 심해서 걸어서 올라가기에는 우리에게 조금 무리였겠다 싶다. 하지만 이런 길을 아저씨는 고삐를 쥔 채 거의 말과 보조를 맞춰 뛰다시피 산 길을 오르시는데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워진다. 오빠의 말이 오빠와의 산행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할 것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거친 숨소리를 내어 뿜는데 어느새 길은 백족의 공동묘지로 들어섰다. 백족은 명나라 이전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을 주로 했다가 청나라 때에 이르러 나무관을 사용하여 매장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던데 관리가 잘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조상을 잘 섬기는 것 같다. 이렇게 1시간 가량, 엉덩이가 뻐근해져 올 때 즈음 우리는 중화사에 닿을 수 있었다. 중화사를 중심으로 양 쪽으로는 아주 좋은 trekking course가 있어 보통 그 양 course를 2시간씩 돌고 내려간다는데 우리는 그 중 왼편을 선택하여 마부 아저씨의 풀피리 소리를 들으며 2시간 가량을 걸었다. 아래 대리 고성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이해가 보이는데 이렇게 높은, 해발 약 1,940m 높이에 저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이(그나마 지금 크기가 많이 줄어든 것이라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호수 안에 간혹 보이는 섬 사이로 배들이 왕래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시 말을 타고 내려갈 생각을 하니 올라올 때의 경사가 생각나 아찔해진다. 숙소에 비치된 방명록에 의하면 다녀 온 사람들 중 상당 수가 내려올 때 너무 무섭거나 혹은 괴로워 말을 안 타고 그냥 걸어 내려 왔다는 글이 있어 더욱 부담스럽다. 이럴 때 무거운 가방은 죄악이라는 생각 아래 우리는 서둘러 가방 안을 비우기 시작했다. 사이 좋게 마부 아저씨와 빵이며 과일, 물까지 나눠 마시고는 말에 올랐다. 경사가 심하여 올라올 때 보다 말 등에 앉아있는 나의 높이가 더욱 높게만 느껴지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 만큼 무섭다거나 아찔하다거나 아프다거나 하진 않다. 다리에 힘을 주고 몇 분을 내려와 보니 탈 만하다. 스스로를 애마부인이라 대견해 하는 나를 비웃는 오빠를 뒤로 하고 계속 내려오다 올라오는 한 쌍의 서양인을 만났을 때에는 호기롭게 인사까지 먼저 건넬 정도였다.

 

한참을 흔들흔들 타고 내려와서인지 소화가 쉽게 된 것 같다. 오빠말에서 내려 잠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오빠와 함께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간다. 돌솥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밥까지 추가해서 다 먹어 치우니 배가 정말 부르다. 좀 걸어야겠다. 이번에는 남문 쪽 구경가자. 직선으로 잘 정비된 도로 양 편으로 대리석으로 도장을 파 주는 사람이며, 옥 가게, 남색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물을 들인 천을 파는 가게가 참 많다. 그 구석에서 우리는 대나무통에 든 밥을 파는 아줌마를 발견한다. 신기한 맘에 옆에서 아줌마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줌마가 1원이라며 먹으라고 권한다. 하나 먹어보자. 우리도 하나를 사서 아줌마가 대나무를 반으로 갈라 핫도그처럼 막대를 꽂아 찐 밥을 꺼내 검은 깨와 설탕을 뿌려 준 것을 맛있게 한 입씩 번갈아 먹는다. 1원 받아서는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하며 실 없이 아줌마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군 옥수수가 눈에 확 뜨인다. 양삭에서 찐 옥수수를 한 번 맛있게 먹었던 터라 군 옥수수가 안 반가울 리 없다. 나, 저것도 사 주라 해서 1원 짜리 옥수수를 또 먹는다. 옥수수를 먹으니 목이 칼칼해지네… 이럴 땐 역시나 달기가 이를 데 없는 파인애플이 최고다. 우리는 역시나 1원씩 하는 파인애플을 하나씩 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장가계에서처럼 우리가 보기에는 엽기스러운 음식도 많이 먹는 중국인들이지만 또한 그만큼 우리의 입에도 맞는 음식이 많다. 과일만 해도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하면 세네 배는 더 잘 먹는 것 같다. 아, 오늘은 제발 어제처럼 숙소 사장님께서 미나리전을 부쳤다면서 맛이나 보라며 이따 만큼 주시는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행복한 고민을 하며 눕는데 어찌 배가 더부룩하다. 많이도 먹어서 그렇겠지. 이렇게 먹고 자면 살 찌겠다 괴로워하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울렁거리는 배를 잡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었다. 속이 너무 안 좋은데 밖이 너무 깜깜하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용 조용 도둑 발걸음으로 랜턴을 찾아 들고 문 밖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서는데 그만 우욱~ 손으로 입을 막고 허겁지겁 세면대로 가서 음식물을 게워낸다. 아무래도 과식으로 체한 모양이다.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잠자리로, 그러나 내내 괴로워하다 다시 30분도 채 못 되어 세면대로, 또 한 차례. 그리고 이후 또 한 차례. 세 번을 토하고 나자 정신이 좀 든다. 힘이 빠진 다리로 비틀비틀 방으로 올라가니 오빠가 깬(그제서야!) 모양이다. 자다 깬 부시시한 얼굴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어디 아프냐 뭐라 뭐라 하는데 괜찮다고 하니까 다시 잠에 든다. 나는 그렇게 모로 누워 밤을 꼴딱 새웠다. 아침에 세 번 더 토하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 챈 오빠가 온갖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사 온 진토제를 복용하고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잠에 들 때까지…대리

 

덧붙임 : 유나의 상태를 가족처럼 걱정해 주시며 손수 누룽지까지 끊여 주신 숙소 사장님께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금방 회복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퍼주시기만 하셔서 언제 돈 버실지 모르겠네…^^

 

Tip

관광 : 대리-창산 / 말 타기 / 1인당 30원(소문에는 No. 3 Guest House 사장님이 주선해 주시는 이 가격이 최저라고 하는데 우리는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사장님 추천에 따랐다) / 오르고 내리는데 각기 1시간씩 소요
창산 풍안동 / 절벽에 나 있어 벽 타기를 잠깐 해야 하는 고통이… 특별히 볼 것은 없음 / 1인당 1원(입장료가 아니라 떨어질 경우의 보험료 같음^^;)
한국식당 : 서울식당 / No. 3 Guest House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터라 숙소와 붙어 있음
고려정(코리아나) / No. 3 Guest House에서 고성 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왼쪽에 위치. 두 집이 일직선 상에 있음 / Guest House 운영
조선족랭면집 / 고려정을 지나 나오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북문 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에 위치 / 입구에 크게 ‘개장국’이라 쓰여 있음
PC방 : 양인가 cafe 등지에서도 차와 함께 internet이 가능. 그 밖에 PC방이 곳곳에 있지만 한국어를 편하게 쓰려면 고려정(코리아나)이 낫지 않을까(ADSL이라 붙여진 광고문도 봤음)… 다른 곳은 주인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힘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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