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명을 떠나 운남성 중서부에 있는 대리로 이동하는 길에 있었던 김원장의 비분강개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앞에서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김 원장의 한 성격에 대해 대충은 알고들 계실 거라 믿는다. 오전 10시 20분에 출발하여 5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다는 하관 - 참고로 대리는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백족(白族) 자치주의 현청 소재지로 서기 738년에 남조가 세워 9세기 초에 수도가 되었다가 937년, 남조의 뒤를 이어 운남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한 대리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대리의 뒤를 이은 후리(後理)는 1094년에 세워져 몽골족이 이 지역을 정복한 1253년까지 존속하다가 몽골족이 이 성의 수도를 곤명으로 옮겼고,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상업 중심지가 호수를 따라 더 남쪽에 있는 하관[下關]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 행 미니버스는 밍기적 밍기적 터미널을 출발한 뒤에도 1시간 가량을 시내를 맴돌며 이 사람 저 사람 호객 행위에 바빴다. 20~30분 간격으로 하관행 버스가 자주 있었던 탓인지 출발할 무렵에는 반 이하로 차 있던 승객이 시내를 헤매고 다니는 동안 결국 한 자리도 남기지 않고 다 차자 그 때서야 버스는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멈추어 호객을 하고 그 때마다 승객들과 차비 흥정을 하고 짐을 싣고 하는 일련의 행위를 반복하는 동안 오빠는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대체 얼마를 이러고 출발하겠다는 거야?” 하며 편치 않은 심경을 감추지 않는다. 짐과 사람을 가득 실은 버스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마자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버스 회사 사장한테 대판 따진다.” 오빠는 절로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또 투덜거린다. 내가 생각할 땐 이 정도 속도로 달리다가 사고라도 나면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고인이 될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버스 운전사, 차장, 승객 할 것 없이 우리와 또 한 명의 아주머니 승객을 제외한 모든 남자 승객들이 담배를 피워 대기 시작했다. 창가에 앉은 나는 너구리 소굴에서 벗어나고자 앞 자리와 내 자리에 반씩 걸친 창을 열어보지만 앞 자리 아저씨들이 자꾸 문을 닫는다. 질세라 나는 또 문을 열고 아저씨들은 문을 닫고, 이런 신경전이 계속 반복된다. 내가 이렇게 미묘한 창문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오빠의 중국에 대한 강연이 이어진다. 요 근래 들어 중국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이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는 등 이미 중국 바람이 분 터이다. 하긴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 오고 있는 터라서인지 스스로 자유주의의 수호자라 일컫는 미국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날이 부흥하는 중국을 겨냥하여 새로운 냉전의 기류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나라의, 게다가 인구가 10억을 훨씬 능가하는 나라의 민주화, 선진화가 어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여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이루기까지 수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만 했다. 한 나라가 진정 안팎으로 부강해지려면 단순히 경제적인 면만 발달한다거나, 문화적인 면만 발달한다거나 하는 식의 불균형한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한 나라를 측정하는 여러 지표 모두가 조화롭게 발전해야만 한다는 것이 오빠의 지론이다. 이렇게 침을 뱉어대고(물론 그럴 만큼 공기가 탁하다), 담배를 피워대고, 달리는 차들마다 내뿜는 매연이며,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은 아무리 높은 벌금을 부과한다 하여도 하루 아침에 고쳐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수도인 북경이나 상해 같은 국제도시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지방을 여행하다 보니 더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끄덕끄덕 동의한다.


대리길 옆으로 백족을 내걸고 장사를 하는 식당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어느새 차가 전체 백족의 80%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 대리로 들어선 모양이다. 백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 중의 하나로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간간이 지나치는 백족 가이드 여성은 머리를 길게 길러서 하나로 땋은 다음 올려 두건 같은 것을 두르고 하얀 반팔 상의에, 검은 색 옷깃이 있는 겉옷을 입고 있다. 화려하게 수놓은 앞치마에 남색 천으로 두른 바지까지 척 보기에도 전통의상이다. 어제 석림에서 보았던 합니족은 검은색과 푸른색이 전통의상의 주류를 이루는 것 같더니 여기는 단연코 흰색이 눈에 많이 뜨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리는 ‘백족’의 ‘대리’라기 보다는 ‘대리석’의 ‘대리’라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다 같은 호수, 이해를 끼고 고성 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 명성 그대로 대리석 다듬는 모습을 수이 볼 수 있다. 열흘 정도 후면 백족의 가장 큰 축제라 할 수 있는 삼월가(三月街)가 열린다고 하는데 강택민 주석도 참가할 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에 뛰어난 백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때까지 대리에서 머물 수 있을까?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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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 곤명 하관 / 곤호반점에서 역쪽으로 가다 처음 나오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 / 어느 분은 30원에도 오셨다는데 우리는 1인 64.5원을 50원으로 낙찰보고 탔다 / 1시간을 아무리 곤명 시내에서 뺑뺑이 쳤어도 결국 5시간 내 도착
하관 대리고성 / 하관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버스 타고 온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4번 버스 정류장이 있음 / 1인당 1.2원 / 고성 양인가까지 30분 가량 소요
숙박 : 대리를 여행하시려는 분이라면 아마 한 번 이상은 들어보셨을 것으로 사료되는 유명한 곳, No. 3 Guest House. 직접 와 보시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답니다 / 4번 타고 ‘양인가’에서 하차. 바로 건너편에 플래카드 걸려 있음 / 침대당 10원. 우리는 문 사장님 배려로 커다란 4인방을 2인 비용만으로 사용함. 온수 사용 가능한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동 사용, 세탁 무료(이렇게 감동적인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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