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연이은 편향 포스팅을 통해 벨라루스는 마치 탱크와 전쟁이 전부인 나라인 것 마냥 보여줬지만...

솔까말 좀 그렇다. 내가 보기엔 ㅋㅋㅋ 


오늘은 인벤 인터뷰를 통해 밀덕으로서의 본인 정체성을 깨달은 김원장과 민스크의 Great Patriotic War Museum으로 간다. 

어제 (대중교통으로 연결이 불편한) 르네상스 호텔 간다고 우버 택시 한 번 태워줬더니 계속 우버 타자 우기는 김원장 어린이

숙소에서 대 조국 전쟁 박물관까지는 우리 돈 2300원 정도 나왔다. 물론 우버니까 돈은 안 내고 내렸다. 




Great Patriotic War Museum


@ 홈페이지 : http://www.warmuseum.by/

@ 운영 시간 :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티켓 판매 및 입장은 오후 5시 30분까지)

@ 월요일 및 국경일은 휴관

@ 입장료 : 성인 8루블/인, 스마트폰 포함 카메라 대당 1.5루블, 영어 오디오 가이드 3.5루블 


벨라루스어/러시아어를 읽을 수 없어서 정확한 공식 명칭이 뭔지 모르겠다. 대 조국(혹은 애국) 전쟁 역사 벨라루스 국립 박물관? 하여튼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전쟁을 했을 당시 - 엄청난 희생을 겪긴 했지만 벨라루스 측에서는 '승전'으로 기록된 - 에 관련된 기념 박물관이다. 




넓은 박물관 부지 외부에도 당시 전투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입장. 영어 오디오 가이드는 들어봐야 머리만 아플 것 같아서 성인 둘 + 카메라 하나 선택



매표소 아줌마가 티켓과 함께 작은 스티커를 주셨는데, 얌전히 들고 개찰구로 가니 개찰구 아줌마가 스티커를 떼어 김원장 옷에 붙여주셨다.

김원장 찍사 당첨


박물관의 규모는 상당하다.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이 순서대로 빠지지 않고 관람할 수 있도록 어리바리한 부부에게 방향을 안내해 주셨다

총 10개의 관을 꼬불꼬불 들락날락 차근차근 올라갔다 쭉 내려오면 끝


민스크 국립 인문 대학교 동양학과 정미자 교수님 글에 의하면 각 관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한글로도 쉽지 않...)

제1관 : 평화와 전쟁

제2관 : 2차 세계대전 초기 1년과 전쟁 직전의 세계

제3관 : 전쟁으로 가는 길

제4관 : 방어전선

제5관 : 2차 세계대전 당시 급진적 변화와 소비에트 연방의 후방 부대

제6관 : 1941-1944년 나치의 벨라루스 점령

제7관 : 파시즘에 대항한 벨라루스 내 빨치산 부대의 활동과 지하투쟁

제8관 : 벨라루스 해방과 독일 동맹국 및 일본의 패배

제9관 : 전쟁 후의 벨라루스(1944-1950)

제10관 : 위대한 승리의 유산

다음은 김원장이, 본인이 너무 좋았으니 밑도 끝도 없이 밀러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라며 간만에 열심히 찍어댄 사진들.

김원장 주장에 따라 밀러샘 보시라고 올려 봅니다. 뜬금없이 베오그라드 무기 박물관 갔을 때가 생각나네 ㅎ


























백만년 만에 김원장이 여행 중 구경(?)하러 온 곳에서 본인이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진기명기한 경험을 겪었으나...

사실 나는 세계대전에 대해 아는 바가 매우 미천하여 날것 탈것 쏠것만 구분할 수 있을 뿐, 김원장이 알려준 모델명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 ㅜㅠ

다만 아래, 사람의 뼈가 박힌 채 발견된 수통만큼은 이 박물관에 전시된 참혹한 전쟁 관련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 하겠다.




















뭔 훈장 사진을 이리 많이 찍었노
















Medical Instruments 왕진 가방? ㅎ


길림성의 누군가에게서 받았다는 손수건... 뜻밖의 한글이라 눈에 확 띄었다. 홍군은 인민의 구성? 구심? 연길하남농민회


화려한 승리 홀


이름은 승리 홀인데 당시 참전 부대와 전사한 영웅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개인적으로 승리의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다. 


참고로 제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는 대략 5천만명에서 7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한 연방 국가에서 그 절반에 달하는 약 3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로 소련(다시 말하지만 패전국 독일이 아니다. 승전국 소련이 가장 큰 인명 손실 피해국이다. 벨라루스에서만 3백만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는 벨라루스 인구의 1/3에 달하는 숫자이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벨라루스에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을까? 동부 전선 지도를 붙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도를 펼치고 독일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직선 하나 그어보라. 답이 보일거다). 말이 3천만명이지... 현 남한 인구를 대략 5천만명으로 잡고 헤아려 보라. 내 가족의 반 이상이 전쟁으로 죽었다고 말이다(참고로 당시 소련 - 현 러시아 말고 - 인구는 총 1억 8천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을 미프영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 VS 나치 독일군 사이의 전쟁으로 주로 인식하지만, 이게 다 헐리우드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소련의 입장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소련군 VS 나치 독일군의 전쟁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승전의 주역도 연합군이 아닌 그들의 나라 바로 "소련"이고, 제 2차 세계대전이 아닌 "대 조국 전쟁(대 애국 전쟁)"으로 부르는 것이다. 참고로 소련에는 '대' 조국 전쟁 말고 (그냥) 조국 전쟁으로 부르는 전쟁도 있다. 옛날에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 고로 그들에게있어 대 조국 전쟁은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난 뒤 매우 어렵게 일궈낸 승전으로 그로부터 수 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러시아인의 단결을 불러 일으키고 민족적 자긍심을 살리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존재이자 상징일 수 밖에 없겠다 (이 쯤에서 다시 한 번 써보자면,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여전히 현재 우리가 남이가 관계이다. 당근 모스크바를 비롯, 같은/비슷한 이름의 박물관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 VS 공산의 냉전이 얽히고 섥힌 6 25를 겪었고 이 아픔 때문에 소련과 중공은 북한과 더불어 주적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어린 나는, 독일도 나쁜 놈이고 소련도 나쁜 놈이니 세계대전때 당연히 둘이 한 팀이었을거라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과 소련이 서로 싸웠다고 하니 갑자기 머릿속에 대혼란이 ㅋㅋㅋㅋㅋ 일었던 기억이 난다(이해가 안 돼! 외워지지가 않아! -> 시험의 폭망). 순전히 내 경우만 놓고 생각해 보자면, 아마도 당시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에 있어 소련의 희생과 공적이 본의 아니게 축소된건 아니었을까 싶다(아니면 해당 수업 시간에 내가 또 졸거나 딴짓을 했을지도 ㅋㅋㅋ 말 나온 김에 공부 잘한? 김원장한테 수업 내용을 물어보니 본인도 당시 소련의 역할에 대해서는 딱히 배운 바 없는 것 같단다. 댁도 졸았...).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비중은 다를지언정)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료가 되는 세상에서 균형 잡고 살아가는게 쉽지는 않겠다. 이제 독일은 유럽의 맹주이자 맥주의 나라이자 덕국으로 불리고(나에게는 프랑크푸르트발 퍼스트클래스 한 번 타보고 싶은 루프트한자의 나라), 러시아는 짤방이 넘치는 불곰국이 되었고(나에게는 싸고 빠른? 아에로플로트의 나라), 한국과 중국은 엄청난 무역량과는 별개로 사이가 좋았다 나빴다 한다. 트럼프는 러시아랑 쿵짝쿵짝 했다는 소문이 있다가 제재를 가하는척하질 않나,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푸틴과 남몰래 생일 잔치 벌이며 러시아 국영회사에서 일하지를 않나... 정말이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요즘은 어떤 뉴스를 봐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ㅎ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재는 제발 좀 막자. 예루살렘 거룩한 무덤 성당/성묘 교회에서 예수님의 묘에 손을 올리고 나는 감히 기원했다. 세계 평화를. 부디 들어주세요. please


덧) 글을 올리고 나서 인터넷을 더 뒤적이다가 김원장과 써티가 수업 시간에 졸지 않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아싸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獨·蘇전쟁이었다" 중 일부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c998688694434ee58c7c38ee66753653]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의 패배에 가장 큰 이바지를 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그러나 이 자명한 사실이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에 이념 대결이 벌어지면서 자본주의 진영에서 감추어졌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자 추이코프 소련군 장군은 처칠이 써서 노벨상을 받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의 수천 쪽 중에서 동부전선에는 겨우 열 몇 쪽이 할애되었다고 투덜댔다. 냉전이 끝난 지 한 세대가 되는 지금 누누이 진상을 가릴 필요는 없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우리나라에도 독소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좋은 외국의 학술서가 여럿 번역되어 많이 바로잡히기는 했어도,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유럽 전역 동부전선의 역할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하는 기운이 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류한수 (상명대 교수, 유럽 현대사)



사실 20세기에 벨라루스가 겪은 치명적 아픔은 대 조국 전쟁 말고 하나가 더 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최근 다시 여러번 소환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체르노빌은 (벨라루스 국경과 가까운) 우크라이나 땅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하지만 원전 사고 당시 벨라루스 방향으로 바람이 불면서 방사능 낙진의 70~80%가 (사고지인 우크라이나가 아닌) 벨라루스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 사고로 벨라루스 국민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아시다시피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또 다른 헬게이트를 여는 꼴이니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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