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번 짤막한 카미노 맛배기 여정은 스페인에서도 갈리시아 지방만을 지나게 되는데


상기 지도 우측 하단 귀퉁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갈리시아 지방은 사실 포르투갈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상당히 가까워서 갈리시아 지방에서 스페인어와 더불어 공용어로 쓰이고 있는 갈리시아어 역시 듣자하니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중간쯤(?) 되는 언어라고 한다. 

실제로 갈리시아 지방 카미노 중 차를 빌려 160 Km 남짓, 남쪽으로 두 시간만 달려간다면 내가 작년에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었던 포르투갈로 돌아갈 수 있다(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초록색 안내판에 GALICIA라고 써 있다. 나 1년 만에 갈리시아 또 온 녀자야 ㅎㅎㅎ 당시 여행기는 클릭)




다시 첫번째 지도로 돌아가서 사리아부터 팔라스 데 레이까지는 갈리시아 중에서도 녹회색의 루고 주였고, 

어제부터 보라색의 라 코루냐 주를 걷고 있다(참고로 이 지역은 갈리시아어로 A Coruña, 스페인어로 La Coruña, 영어로 Corunna라 불러서 준비할 때 좀 헛갈렸다. 요즘엔 A Coruña로 미는 모양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 묵는 숙소의 이름은 Pensión Arca이고 주소를 Arca-Pedrouzo (A Coruña)라고 소개하는데,

라 코루냐 주 산하 Pedrouzo 區(=갈리시아어로는 O Pedrouzo)이며 Pedrouzo 아래 Arca洞, O Pino洞 등등이 있다고 대충 개념을 잡으면 될 것 같다. 


서론이 길었지만 한 줄로 정리하면 카미노를 준비할 때 Arca / Pedrouzo / O Pedrouzo / O Pino 등은 그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짐작하라는 것. 이거 나만 헛갈리고 나만 집착하는건가 ㅎ




Pensión Arca


홈페이지 http://www.pensionarca.com/IN/ 

예약 : 부킹닷컴에 안 잡히는 집으로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리뷰 체크하고 홈페이지 통해 예약

Double bed. Private bathroom 46유로 

@ 장점 : 1층에 공용 부엌 있음, 방은 널찍하고 수압도 좋고 조용하다

@ 단점 : 더운 날 쥐약. 숙소에서 사먹는 음료수 비쌈 ㅎ

@ 위치 : 알아온 그 위치


점심부터 먼저 사먹고 (어제 리바디소가 깡 시골이었다면) 오늘은 씬나게 수퍼마켓에 들러 문명의 이기를 누리리라 룰루랄라 하고 미리 알아온 가까운 수퍼 A로 갔는데... 헉, 오늘이 일요일이었어. 혹시나 하고 더 큰 수퍼 B로 발길을 옮겼는데... 어머나 세상에 내가 스페인 일요일을 우습게 봤나보다 ㅜㅠ 방심했다가 완전 새됨. 다 닫았음. 스페인 도착 이래 매일 1Kg씩 먹던 체리를 오늘만큼은 못 먹게 생겼네.


땡볕이 내리쬐는 거리를 되짚어 숙소를 찾아갔더니 "만실, 연락처XXX" 안내문만 붙여진 채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일단 벨부터 눌러보고 동시에 이리로 전화를 하란 이야기인가, 내 전화기로 전화 어떻게 거는건가 (그걸 모르는 녀자) 헤매고 있을 때 다행히 문이 덜커덩 열렸다. 아줌마가 레세르바시옹? 뭐 어쩌구 하시는 것 같아서 씨, 씨 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선 시각은 오후 12시 50분. 아줌마는 체크인까지 10분만 기다려달라는 듯 했고(아마도 1시부터 손님을 받겠다는 뜻인듯?) 안내에 따라 1층 공용 거실에 들어서니 이미 다른 두 팀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1시가 되자 온 순서대로 아줌마가 체크인을 받기 시작했고, 한국인으로서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뒤에 다른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거나 말거나 할 말 안 할말 다 하는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매번 3층 방까지 오르락 내리락 직접 손님을 안내하는 주인 아줌마 덕분에 3번째였던 우리가 체크인을 한 시각은 1시 20분이었다 ㅋㅋㅋ 김원장한테 호기로이 나도 할 말 안 할말 다 할테야! 했지만, 내 뒤로는 아직 아무도 안 왔...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스페인어를 못 하고 아줌마는 영어를 못 하시... 구글 번역기로 이 동네 일요일에 문 연 수퍼 혹시 있나요? 물었다가 아줌마의 애처로움만 샀을 뿐, 아무 소득이 없었다(참고로 아줌마네 냉장고 안에 기본 음료수는 구비가 되어 있으며, 우리의 경우 물을 사고 싶었는데 작은 물 밖에 없고 그마저 병당 1유로라고 했다. 이게 대체 몇 배 뻥튀기야. 하지만 방 가격이 저렴하니...)  


공용 부엌은 꽤 그럴싸하다


 아줌마는 우리를 꼭대기 3층 방으로 안내했고, 김원장이 드디어 꼭대기 층에 묵는다며=층간 소음 걱정 없다며 반가워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 했다. 일기 예보상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오늘이 가장 더울 예정이었는데, 하필 우리 방이 꼭대기층이라 아래층보다도 잘 달궈지고 있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그것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 몇 년 동안 이만큼 더웠던 숙소가 있었던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혹은 기억이 다소 몽롱할 정도로 헤롱헤롱 더웠다. 오후 4시쯤 확인해 보니 바깥 기온 36도. 우리 방은 몇 도인지 짐작도 안 가고... 그냥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저 숨만 쉬어도 땀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근처 카페까지 물 사러 가기엔 길거리도 덥고 다리도 아프고 거기 물이 그만큼 싸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 숙소의 비싼 물만 들이켜댔고

하필 오늘이 일요일인 탓에 다른 주전부리도 없고 해서 아아 우울했다(나중에 비싸도 콜라를 마실테야 내려갔는데 아줌마가 냉장고 방 문 잠그고 퇴근해 버림). 김원장과 나는 몇 번이고 번갈아 샤워를 해댔고 카미노할 때 쓰려고 챙겨 왔지만 정작 카미노 중에는 쓰지 않았던 '아이스 스카프'라는 것도 목에 둘러보고, 왜 내가 조용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에어컨 있는 숙소를 콕 찝어 챙기지 않았을까 자책도 하고 ㅋㅋㅋ 그랬다. 모두들 알겠지만 이 맘때 유럽의 낮은 길기도 드럽게 길어서 ㅋㅋㅋ (하지가 코 앞) 아 진짜 욕 나오는 날씨였다. 


복도에서 만나는 다른 방 손님들도 반숙된 모습으로 마주칠 때마다 인사가 오늘 날씨 너무 더워로 대동단결. 

주인 아주머니는 미봉책인지 희망고문인지 대형 선풍기 하나 달랑 회전 모드로 3층 공용 공간에 설치해 놓고는 (아니 그럼 2층 손님들은!) 행여 성난 손님들의 시위에 휘말릴까 얼른 퇴근해 버리셨는데, 그 바람에 3층에 머무르고 있던 우리 포함 객실 3개의 손님들은, 객실 문을 열어둬야 하는지 닫아둬야 하는지 더위와 프라이버시, 세이프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했다. 


우리 방을 제외하면 다른 두 팀은 외부 공용 욕실을 같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들락날락하는 처지였는데 객실 배치 구조가 계단-할아버지 방-우리 방-공용 욕실-다른 방 이런 순서라서 (문들을 모두 열어 놓는다면) 다른 방 손님이 건물을 오르내릴 때 우리 방과 할아버지 방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할아버지도 공용 욕실로 갈 때 우리 방을 자연스레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1층에 가려면 할아버지 방이 보이고 선풍기 바람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쐬기 위해 복도쪽으로 나가면 중년 부부 방이 보이는 


평소 20도 이상의 날씨라면 실내에선 아담과 이브 모드로 지내는 우리가, 36도 날씨에 언제 볼일을 보러 갈지 모르는 옆 방 손님들을 위해 동방예의지국의 일원으로서 윗도리 아랫도리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예를 지킬 것인지 고민할 이유는 하등 없었다. 문을 열어두면 선풍기가 우리 방쪽을 향할 때 0.3도 정도는 잠시잠깐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 뭐 어때, 까짓거 그냥 보여주는거야(응???) 그래봐야 상대방 손해, 상대방 안구에 테러를 가하는 축이라는 결론.


탈수와 싸우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밤 10시쯤인가... 그제야 조금 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반 탈진 반 나체 상태로 뻗었다가 옆 방 사람들이 더워서 샤워하러 왔다갔다 하는 문소리가 시끄러워 우리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12시 30분쯤 이번엔 우리가 너무 더워서 샤워하는 바람에 남들이 시끄러워할까봐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가 20대라면 (홍홍홍 생각만 해도) 모를까 70대 할아버지의 알몸 실루엣이 지나가서 깜놀하고 닫았다가 버티다 다시 열었다가 모기가 들어오는 바람에 다시 닫았다가 에라 모기한테 좀 물리자 쪄죽겠다 하고 열었다가 모기하고는 절대 같이 못 자는 김원장 때문에 다시 닫았다가... 그랬다가 저랬다가 이랬다가 말았다가...


평소 일어날 5시가 되었다. 아 된장. 걷는 것만 힘든게 아녔어 ㅎㅎㅎ


배낭을 메지 않고 + 알베르게에서 자지 않고 + 베드버그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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